인민의 해일
밀라노시.
"이젠 다 틀렸소."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 끝났어! 당신도 들었잖아? 우리가 졌소! 망했다고!"
"하, 하다못해 와스터라이히로 피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오. 응? 그간 대대손손 제국을 위하여 충정을 바쳐왔으니 그 정도는 배려해주실 수 있잖소!"
처절한 절규, 비명, 공포에 질린 애걸까지.
어쩜 이렇게 몰락을 눈앞에 둔 인간의 반응은 신분이나 차이 출신성분의 구분 없이 이리도 똑같은지.
그래도 나름 합스부르크를 위하여 이 밀라노 공국을 근 100년간 잘 다스려왔으니 이번에도 신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잘 이야기해달라는 청탁을 하러 온 메테르니히만 되려 꼴이 우습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한 놈은 카이저를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맞서 싸우겠다고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바로 기사도 정신이고 봉건귀족이 이 땅의 통치계급인 이유 아닌가?
턱.
못 봐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 오는 듯이 흐르는 식은땀을 자연스레 닦아낸 메테르니히가 확신을 담아 선언했다.
"적들은 절대로 포강 방어선을 넘어오지 못할 겁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허세였다.
"만일 넘어오려고 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겠지요. 한창 바르바로이가 어쩌니, 해방구가 어쩌니 타령할 때 말입니다."
"하, 하지만···그때와 지금은 다르잖소? 그때는 라벤나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고, 지금은!!!"
"예. 적 군단장이 포로로 잡힐 만큼 치열한 전투였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 대가로 아군은 총사령관이 포로로 잡혔지만.
구태여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으리라.
지금 메테르니히는 이들의 협력을 요청하러 온 거지 겁을 주려고 온 게 아니었으니까.
"비록 루스인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동맹군들은 건재합니다. 저 프랑스인들도 이번 전투로 적잖은 피해를 보았고, 선거도 끝났으니 더는 저돌적인 공세를 펼치려 하지 않겠지요."
"그거···확실한 겁니까?"
"제 말을 정 못 믿겠거든 여러분의 이성에, 경험에 질문해보십시오."
그럼 적어도 한 놈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을 고치는 녀석이 나오겠지.
괜히 빼도 박도 못하게 단언했다가 나중에 꼬투리를 잡히는 것보다야 이렇게 알아서 그리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게 훨씬 세련된 기술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반격이 어려워졌을 뿐, 절대 방위선은 아직 굳건합니다."
그러니까.
"모쪼록, 품위를 잃지 말아 주십시오. 예로부터 봉신은 군주의 얼굴이라고들 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이리 방정을 떠셔서야 장차 전 유럽에서 우리 합스부르크를 어찌 보겠습니까?"
"···어흠!"
"흠, 흠."
그제야 어느 정도 진정된 듯 명사들이 경쟁적으로 헛기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을 봉신이라 불러주었다는 건 양자 간의 봉건 계약이 아직 건재함을 재확인해주었다는 것.
다시 말해 설령 이대로 포강 너머의 모든 영토를 폭도들에게 빼앗기게 되더라도 밀라노와 베네치아 두 지역만큼은 합스부르크의 보호 아래 국체를 온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암시.
"카이저께서는 이미 롬바르디아-베네토 지역만큼은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반드시 지켜내리라고 약조해주셨습니다."
그거면 족했다.
어차피 메테르니히가 뭐 군인도 아니니 현 상황을 타개할 계책을 낼 필요도 없고, 그냥 이들이 알아서 무너져내리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정도만 해도 밥값은 한 거니까.
"저를 불신하는 건 좋습니다. 적들을 두려워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카이저의 말씀을 불신하는 불충을 저지르진 말아 주십시오."
"무, 물론이요!"
"전 처음부터 빈만 믿고 있었습니다!"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 만세! 신성로마제국 만세!"""
속내가 너무도 훤히 보이는 가식적인 만세삼창.
그렇지만, 비로소 저들의 눈동자에 음흉한 심계와 탐욕이 돌아왔다.
일신의 안전이 보장되자 뒤늦게 포강을 넘어오는 피난민들에게 사고가 닿은 것이다.
아무렴 저 피난민들이 빈손으로 찾아올 리가 있는가?
그들 대다수가 소위 폭도들에게 가장 시달리고 미움받는 부자와 지주들일진대.
전 이탈리아가 혼란한 와중에도 금고를 단단히 지켜낸 밀라노 은행에서 이번 소란으로 가문이 몰락하여 더는 찾아갈 예금주가 없어진 우수고객들의 예금을 꿀꺽하고 이런저런 사업들을 벌인다면-.
'하여간 속물들 아니랄까 봐.'
메테르니히가 질색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럴 때 보면 아주 잠시간에 눈빛 교환만으로 상대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제 재주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저 아름답고 순수한 생각만 읽어낸다면 몰라도 그의 직업상 불쾌하고 추악한 생각이 읽힐 때가 더 잦으니.
메테르니히는 저들의 만세삼창에 어울려주는 둥, 마는 둥 하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덜컥.
"어떠셨습니까?"
그리고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비서관이 되물었다.
"뭐, 일단 무조건 항복은 피한 것 같더군."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왜 아니겠어."
하아-.
메테르니히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비서관이 두 눈을 부릅 치켜떴다.
그가 기억하는 상관은 언제나 독선에 가까운 확신과 고집을 보여주던 인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애초에 이건 꼬드길 상대를 잘못 고른 거야."
메테르니히가 투덜거렸다.
몇 번을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의 대전략 자체가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천년도 전에 망한 로마와 좌우지간 천 년간 존속해온 도시국가들.
상식적으로 저들에게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내 나라」 같겠는가?
하다못해 이 분열사가 온통 수치와 굴욕으로 얼룩졌으면 모를까 도중에 르네상스 시대라는 도시국가들의 찬란한 전성기도 있었는데.
그러니 메테르니히는 소위 통일론자는 프랑스의 앞잡이나 멋모르는 청년들에 한정될 거라 여겼고, 실제로도 전쟁 기간 내내 그의 예측대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해방구니 어쩌니 해봐야 결국 제노바를 제외한 도시들은 혁명군이 직접 쳐들어가서 점령하기 전까진 줄곧 통일에 반대하는 구체제가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한번 저쪽으로 넘어가면 돌아오지를 않는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예전이 더 좋았다, 가짜 로마는 물러가라-라고 저항하는 이들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있어야 했는데.
지금처럼 신성동맹이 해방구에 허덕일 게 아니라 거꾸로 적들이 반통일론자들에게 시달렸어야 했는데.
저 폭도들이 한번 점령한 도시는 절대로 신성동맹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폭도들에게 아직 점령되지도 않은 도시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성동맹에서 이탈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메테르니히는 제 실수를 눈치챌 수 있었다.
"처음부터 저 천한 것들부터 공략했어야 했는데."
그게 꼭 봉건적 특권을 포기하거나 구체제를 허무는 방향성일 필요도 없었다.
저 통일론에 맞서려면 처음부터 특권계급이 아니라 피지배민들이 솔깃해할 만한 당근과 비전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야 저 특권계급들은 꼭 합스부르크에서 꼬드기지 않아도 알아서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 통일에 반대할 부류였으니까.
이들이 혁명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지하 저항운동을 주도하도록 만들고 싶었다면 먼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신성동맹을 지지해줄 기반부터 만들어줬어야만 했다.
단지 지금처럼 갈라서 있는 게 옳다, 통일 타령이나 하는 놈들은 모조리 악마 숭배자다-라고만 몰아세울 게 아니라 먼저 천한 것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봤어야 했다.
그랬으면 저 폭도들이 내세운 당근에 이탈리아 반도가 이리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으련만.
시작은 한 줌이었을 통일론자들이 민중을 꼬드기고 참여를 독려하며 세를 확장해나간 결과 어느덧 이탈리아 반도 제패를 눈앞에 두고 있는 반면 개전 당시에만 해도 이 땅을 지배하고 있었던 신성동맹은 축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요컨대.
"망했군."
"가, 각하···!"
새파랗게 질린 비서관이 곁에서 만류하는 와중에도 메테르니히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굴욕적인 항복 협상에 나갈 희생양=국무장관을 아껴두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그가 어떤 말을 하던 빈에선 적당히 눈감아줄 테니까.
고작 이 정도 발언에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비서관의 정치경력이 아직 모자란다는 증거였다.
벌컥.
"저, 전하! 총독 전하-!"
순간, 정문이 활짝 열리며 저 너머에서 전령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또 뭔가 일이 터진 건가.
척.
"전하께서는 지금 여기 안 계시네."
"아니, 왜 길을-가, 각하?!"
"그래, 장관님일세.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럼 아예 못 봤으면 모를까, 발견한 이상 이대로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소식의 경중에 따라서는 기껏 달래둔 머저리들이 또다시 발작하려 들지도 모르니까.
도대체 얼마나 엿같은 소식인지는 몰라도 어차피 누군가 들어야만 한다면 메테르니히가 듣고 한 번쯤 걸러주는 게 낫-.
"저, 적군이 북상을 개시했습니다!"
···그냥 듣지 않는 게 나을 뻔했나.
후우-.
듣기만 해도 골이 띵해져 오는 소식에 다급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메테르니히가 되물었다.
"그러면 라벤나의 프랑스군이 북상을 개시했다는 말인가?"
"아뇨. 제노바군입니다."
"난 또 뭐라고."
국무장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뭐.
적들도 이대로 반쪽짜리 통일로 만족하긴 아쉬울 테니 한 번쯤 포강 방어선에 들이박을 때도 되었지.
"그래서, 숫자는?"
지금 포강 방위선에 진을 친 신성동맹군만 7만 명이다.
비록 라벤나 전투 이후 급히 회군하느라 진짜로 성한 병사들은 절반 정도밖에는 안 되고, 그마저도 해방구 관리하랴 탈영병 잡으랴 전투에 이래저래 빠지는 숫자가 있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7만 대군은 대군이다.
정 급해지면 라인란트 방면에서 옴짝달싹 않는 나보 놈에게 속아 붙들려 있던 병력을 빼 올 수도 있을 테고, 합스부르크 본령을 지키기 위하여 급히 동원 중인 병력도 있다.
저기 프랑스군 6만 명까지 더해서 달려들면 몰라도 인제 와서 가짜 로마군만으로는 어림도 없-.
"1, 10만입니다!!!"
침묵.
"···뭐, 10만?"
지금 뭐 십자군 전쟁 치르나?
턱.
혹시 제가 잘못 들었나 하여 메테르니히가 전령이 들고 온 급보를 뺏어 들었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결론은 같았다.
제노바, 아니 로마 4개 군단 총원 10만.
롬바르디아-베네토 방면으로 북상 중, 이라고.
***
파르마시.
"다들 날 미쳤다고 했었지."
마르코의 사위이자 평범한 목수.
마치니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언덕 위에서 저지대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와서 천 년 전을 이야기해봐야 누가 함께해주겠냐고."
콰콰쾅!
우렁찬 포성.
문외한이 보아도 착탄지는 중구난방이었고, 장전 속도는 느릿느릿했으며, 봐줄 만한 구석이라고는 오로지 대포 그 자체의 화력뿐이다.
그렇지만, 숫자만큼은 많았다.
저 지평선 너머에서 반대쪽 끝자락까지.
온통 보이는 것이라고는 보라색 로마군단뿐이었다.
파리에서 제작한 총을 쥐고, 마르세유에서 제작된 군복을 입고, 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똥통과 인도양을 건너온 화약으로 무장한 채.
그까짓 신분이나 빈부격차 따위의 구분 따윈 없이.
그들이 마음 놓고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돕는 남녀 시민 동지들과 다 함께.
롬바르디아-베네토의 동포들만 봉건 압제자들의 군홧발 아래 신음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며 미숙하지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전선을 향해 내디디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누가 미친놈이지?"
타타탕!
때마침 저 너머에서 마침내 시작된 피아간 총격전이 대답을 대신했다.
얼핏 보아도 적들의 요새선은 굳건해 보였다.
포환이 몇 번씩 지면을 두드려도 흔들리는 기색 하나 없고, 설령 일부 요새벽이 파괴되거나 무너지더라도 적군이 무사히 후방으로 이탈하기 위한 비상 출구까지 준비되어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 요새선을 지킬 병력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그러니 이 너머에서 구경꾼들이 보아도 동요하는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숫자 그 자체에 압도당한 것이다.
마침내 저 압제자들이 인민의 바다에, 아니 해일에 휩쓸렸다.
"···아쉽군."
불현듯,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지난날 그가 프린켑스의 혁명적 방법론을 몸소 실증하고 돌아오겠다며 자원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도 저기서 총을 들고 혁명을 위하여, 해방을 위하여 적과 맞서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완전히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고 부인의 배를 부르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혁명 이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그리 무책임하게 죽으러 나갈 수는 없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혼자 웃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요, 내 사랑."
쪽.
마치니가 심통이 난 부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제야 부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방긋 웃으며 한껏 부풀어 오른 만삭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가야, 너희 아버지가 지금 엄마한테 뭘 해줬는지 보렴-이라고 자랑하듯이.
'···아기라.'
지금 저기에 나가 있는 병사들도 모두 언젠가는 갓난아이였겠지.
누군가의 사랑하는 자식일 테고, 또 장차 누군가의 부모가 될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스레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
"이래서 인민의 바다였구나."
바다는 그저 두렵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바다는 무수한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저 너머까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필요한 것을 주고받거나, 그동안 알지 못하던 사실을 전해주는 전령이기도 하다.
겨우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 이들이 봄까지 버틸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내어주고, 또 그 자체로서 무수한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고로, 민주공화국이란 인민의 바다다.
보다 거대하고 똑똑한 물고기도 있고, 보다 작고 약한 물고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가 이들을 차별하거나 배척하진 않는다.
그들은 누구나 똑같은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니까.
작금의 해일은 다만 이 바다가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모습 중 하나일 뿐.
이토록 많은 물고기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야말로 본 모습이다.
"또 무슨 허튼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념에 잠긴 마치니의 모습에서 무언가 눈치챈 걸까.
뒤편에서 그들을 빤히 지켜보던 장인 마르코가 참견해왔다.
"혹시라도 또 남의 귀한 딸내미 과부 만들 꿍꿍이 중이면 매타작 정도로는 안 끝날 게다."
"하하핫! 설마 그럴 리가요."
뜨끔.
"하여간 또 폭도 근성 못 버리고는."
마르코가 투덜거렸다.
"그러게, 그때 받아주질 말았어야 했는데."
"음, 혹시 외눈박이 나라에서는 두 눈 달린 놈이 비정상이라는 소리 들어보셨습니까?"
"허. 이 뻔뻔한 놈 좀 보시게.
기가 막힌다는 듯한 반응.
와아아-!
때마침 저 너머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끝내 기세에서 눌린 적군이 요새선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저 서쪽 너머에서 반대쪽 동쪽 끝자락까지.
온통 보라색 해일만이 그득했다.
"그래, 너희가 이겼다."
마르코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못해서 나온 승리 선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패배를 승복한 것도 아니었다.
마치니가 이겼다.
마르코 또한 이겼다.
그들 모두가 이겼다.
만세-!
천지를 뒤흔드는 만세 소리가, 하늘 높이 나부끼는 붉은 해일이 그리 부르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