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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인 줄 알았는데 괴담이다-7화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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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좋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가득하다.

그래도 끝까지 나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하던 이 몸의 언니(추정)가 좀 신경 쓰이긴 했지. 게다가 그 애는 이번 스테이크에도 손도 대지 않았다.

처음에는 채식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요새는 그냥 소화불량 같기도 하고. 약은 챙겨먹고 있길 바란다. 나처럼 이렇게 야매로 안 먹지 말고.

크, 그나저나 어떻게 그 타이밍에 옷 안에 넣을 생각을 했지? 이번 판단력은 훌륭했어.

나는 내 재빠른 기지에 감탄하면서 아직 쇄골부에 걸려있던 검은 알약을 꺼냈다. 킁킁 냄새를 맡아도 별 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무튼 이 녀석을 어딘가로 처리해야겠군. 우선은 서재 안쪽 서랍에 넣어두자. 일하는 분들이 잘 안 건드리는 곳이다.

아, 이걸 넣는 김에 티스푼도 정리해야겠다. 깜박하고 계속 들고 다녔네. 나는 주머니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앙증맞은 티스푼을 꺼내 테이블 위 작은 정리함에 뒀다.

자, 이제 할 일도 다 끝났으니 다시 카메라나 찾아봐야겠군.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카탈로그를 펴서 스펙을 비교해보리 시작했다.

어디보자, 디자인을 중심으로 광고하는 모델들은 쭉 빼고, 성능위주로 별점을 매겨 보자면...

“흐음.”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종이에 펜으로 온갖 카메라 제품을 적었다가, 두 줄을 그어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하지만 마침내 모델을 두 가지로 추리게 되자, 도무지 한 쪽을 고를 수 없었다.

음, 한쪽은 명암 디테일을 잘 잡아주고 선이 선명하게 나오는 걸로 유명한 제품인 것 같다. 초점 맞추기 쉽고 (이 시대치고는) 화질 좋은 사진기다. 심지어 우선순위 제일 끝이었던 디자인까지 충족시켜주는 중후한 매력의, 거의 완벽한 제품이다.

나머지 한쪽은 사실 첫 번째에 비해 아쉬운 제품이다. 화질도 조금 떨어지고, 초점 관련 언급도 없는 걸 보니 어쩌면 작동법이 좀 까다로울 수도 있겠다싶다. 그런데도 이걸 고려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색감이 장난 아니다.

아니 샘플 컷들이 하나같이 색감이 어플 보정 먹인 것처럼 반질반질 분위기 있는 게 이걸로 무어 경을 찍으면 무슨 세기의 명화처럼 나올 것 같았다.

흐으으음 어쩐담.

나는 펜을 돌리며 더 격렬히 고민하다가, 문득 이 모든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하, 아직도 내가 반 지하 원룸에 사는, 통장 잔고가 12,140원인 이틀 밤 샌 고 학번인 것처럼 고민하고 있었군!

둘 다 사면되잖아!

“너무 좋은 생각인 걸?”

나는 즉시 일하는 분을 불렀다. 침대 옆에 있는 작은 은종을 울리면 옆방에까지 들리는데, 그럼 대기 중이던 일하는 분이 방문해주시는 구조 같았다. 그 동안은 좀 죄송스러워서 못 썼는데,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한 번 시도해봤다.

부디 호출된 분이 왜 이 야밤에 부르고 지랄이냐고 내적쌍욕하시는 대신 너그럽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2분도 지나지 않아 내 방문 앞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그래!”

들어온 것은 안면이 익은 내 또래 소녀였다. 지난번에 이 몸의 아버지 관련 이야기를 했던 그 친구다. 나는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내가 고른 사진기 주문을 힘들지 않은 수준에서 되도록 빨리 넣어달라고 부탁했고, 소녀는 선선히 카탈로그를 받아들었다.

“내일 새벽에 바로 주문을 넣어달라고 전하겠습니다.”

“고마워.”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소녀는 내가 내민 카탈로그의 표시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사진기를 주문하시는군요.”

“아, 응. 좀 배워볼까 하고.”

“두 분의 결혼식 이후로 이 저택에 사진기에 들어오는 것은 아마 처음일 테니, 마담 자우어께 미리 말씀을 드리시는 건 어떨까요?”

어어엇! 갑자기 다시 ‘뭔가 사건이 있었습니다.’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나는 참지 않을 거다.

“아마 들었겠지만 내가 기억이 좀 섞여서 그런데, 왜 두 분 결혼식 이후로 사진기를 안 들였지? 무슨 일 있었나?”

“.......”

소녀는 머리를 살짝 기울이더니 잠시의 침묵 후에 대답했다.

“결혼기념 사진을 찍어야했을 사진사의 사진기에, 그것 대신 좋지 않은 모습이 찍혔기 때문일 겁니다. 오베르 경의 장례식 이후로는 이미 저택에 있던 사진기도 전부 처분했죠. 심지어 지금까지 사진사도 부르지 않고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것은 남아있는 꺼림칙함 때문일 겁니다.”

이 애매한 정보의 향연 속에 내 안의 탐정 세포가 깨어난다...!

자, 그럼 따져보자면 문맥상 이 몸 아버지인 오베르 경의 장례식은 저 결혼식 이후에 일어났다. 그리고 날짜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몸 아버지가 ‘식 전날 돌아가셨다’의 그 식이 저 결혼식인 것 같다고 8할 정도는 확신해도 되는 수준이지?

그렇다면 저기서 지칭하는 ‘두 분’은 각각 이 몸의 아버지와 어머니고 둘의 결혼식이었구나! 결혼식 전날 뭔가 아버지가 돌아가실 만큼 안 좋은 일이 일어났고, 거기서 어머니는 어떤 PTSD를 얻었을 것이다. 오오 이렇게 의사의 말과도 연결이 되는 군!

그렇다면 아버지의 죽음이 5년 전이니 결혼식은 이 몸의 어머니와의 재혼인 거고 양어머니, 계모가 맞다. 이 가설대로라면 내 초기 K-감성이 승리했다!

이렇게까지 추리하고 나니 약간의 뿌듯함과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양어머니한테 너무 그동안 성의 없이 대했구나. 앞으로는 좀 더 살갑게 힐링이라도 시켜드려야지.

사진기도 괜히 꺼져가는 불에 불쏘시개를 쑤시는 게 될지도 모르겠어. 나는 신중하게 일하는 분에게 물었다.

“...그 정도면 그냥 안 사는 걸로 하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의외로 일하는 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때로는 미신을 정면으로 거슬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릅니다.”

별 동요도 없는 그 표정을 볼 때, 의외로 사진기는 어쩌다보니 무의식 중에 피한 소품일 뿐 큰 영향력은 없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일단 구매하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내일 아침에 미리 양어머니와 말을 좀 해본 후에 구매해야겠구나.

“잘 설명해줘서 고마워. 사진기는 내일 생각해보고 주문할게.”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자세가 망설임이 없는 게 몹시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나는 부쩍 이 친구가 마음에 들어서, 신상을 좀 캐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아까 말했듯이 기억이 좀 부족해서 그런데, 이 저택에서 오래 일했어?”

“이곳에 오래 머물고 있긴 합니다.”

역시 어릴 때부터 일해 온 베테랑이었군! 이런 또래 친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다!

“그렇구나. 이름이 어떻게 돼?”

소녀가 처음으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선셋이라고 불러주세요. 제 별명입니다.”

“알았어, 선셋.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나는 선셋과 발랄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그날의 쇼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하도 약혼자의 얼굴과 사진기를 많이 살펴봐서인지, 그 밤에는 내가 아이돌로 활동하는 약혼자의 네임드 홈마가 되는 꿈을 꾸었다. 대포를 짊어지고 열심히 콘서트를 올출하며 SNS로 주접을 떠는 내 모습이 몹시 생생하고 재밌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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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세고 강한 아침!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금수저 백수!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난 나는 곧바로 어머니가 일을 본다는 개인서재로 여정을 떠났다. 4층에 있는 그 서재는 그 동안 알음알음 있다고 듣기만 한 곳인데, 그저께 기억상실문제로 의사와 상담할 때 어머니가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로제, 나는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보통 내 서재에 있으니, 혹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이 어미를 보러 와도 된답니다.’

서재에서 하루 종일 계시다니, 나처럼 소설이라도 읽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뭘 하고 계시는 건지 궁금하다. 역시 일인가? 역시 이 부유함을 유지하려면 가장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차후 기꺼이 언니(추정)에게 양보해야겠다.

아무튼 그래서 설명을 들었던 데로 이 서재를 찾아 4층으로 올라가보고 있는 중이다. 새벽이라 살금살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자, 막 떠오른 아침햇살이 창가의 흔들리는 커튼 틈 사이로 뻗어 나와 고풍스럽고 우아한 복도를 마치 무늬처럼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몽환적이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문득 그 쭉 뻗은 복도의 벽마다 달린 원목재질의 문 하나하나를 열어 탐험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나와서 이 저택 여기저기를 탐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활기찬 미래를 구상한 내 자신에게 칭찬해주며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구나.”

고동빛 거대한 양문 앞에서 나는 잠깐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노크를 했다.

“...!”

“...저기요?”

안에서 무언가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가구 같은 것이 쓰러진 것 같다! 나는 놀라서 한쪽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안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있었다.

“힉!!”

“엥?”

머리가 헝클어진 이복 언니(추정)가 책상 너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혹시 넘어졌나? 나는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뭐하고 있... 허어억!”

“나가!”

나는 들고 있던 카탈로그로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백스텝해서 문 밖으로 나갔다. 인생에서 그렇게 빨리 뒷걸음질 쳐본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문을 닫으며 침착하게 생각했다.

넘어지면서 상의가 어디 걸렸는지 찢어졌던데, 그게... 음......

가슴이 없었다.

근데 가슴 근육은 있었다.

“......허허허.”

여장 취미 이복 오빠(추정)라니.

도대체 이 몸은 어떤 스펙타클한 인생을 살고 있던 건지 궁금하다. 알고 보면 실은 돌아가신 이 집 아버지 친딸도 아닌 거 아니야? 응?

“모르겠다. 아무튼 취향이라면 존중해주자......”

나는 그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사진기나 사자.

※※※

근무수칙

9. 마담 자우어의 딸들에게 본인의 실명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실명을 말한 사용인은 즉시 해고되며 당일 일몰 전에 본 저택을 떠나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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