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헤르메스 (1)>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사실상 마법계에서 ‘루키’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행사로, 이전부터 그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비록 제출한 논문이 세간에 공개된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얻는 명예와 보상은 마법사 인생의 앞날을 펼쳐준다는 말이 가히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헤르메스엔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헤르메스에 제출된 논문에 대한 심사가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전부터 주최자인 그란시스 마탑에선 투명성을 보여달라며 탄원을 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란시스 마탑은 단 한 번도 그 탄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언제부터인가 어차피 우승은 라데우스와 관련된 놈들이라며 도전 자체를 포기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번 헤르메스가 경연제, 그것도 공개 경연을 선택하면서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하리누스다!”
“바하라의 뇌명, 하리누스!”
“코나드도 있어! 단 3년 만에 S급에 이른 용병계의 초신성!”
“대륙 5대 마탑 ‘세린나드’의 후계자인 가브릴 세린나드도 있다!”
고작 몇 주 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마법계의 루키들이 대거 참가를 신청했다.
티는 내지 않지만, 나름 매해 헤르메스를 신경 쓰던 카이젤이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말이다.
“올해는 제법 수준이 높군.”
“그, 그렇습니다, 가주! 작년과 비교해도 그 수준이 월등히 높아졌지요!”
행사의 흥행에 가장 좋아해야 할 이는, 다름 아닌 그 행사를 주최한 장본인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장본인인 그란시스 마탑의 마스터들은, 오히려 너무나도 흥행해 버린 작금의 상황에 위가 아플 정도의 당황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참가자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 경연에 찾아온 거물들의 존재가 문제였다.
“마법에 대해 뭘 알아야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영 알아 처먹을 건덕지가 없군. 쯧!”
그때, 카이젤의 옆자리에서 툴툴거리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인은 마법이라고는 1도 연마하지 않은, 단순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주변의 그 누구도 그 노인을 무시할 순 없었다.
“뭐, 그래도 눈이 즐겁다는 건 확실해. 짬을 내서 오기는 잘했어.”
신경질적인 노인의 반응이 누그러지자, 카이젤이 은근슬쩍 비위를 맞춰주었다.
“하하하, 원로원주의 눈높이에 맞아 다행이군요.”
“라데우스의 위광에 가려진 인재들이 물 밖으로 나오면 제국으로서도 이득이지. 그들이 공식적으로 활동할수록 제국에겐 이익이니까.”
“그렇다면, 앞으로의 헤르메스는 이런 식으로 경연 형태로 진행할까요?”
“가주가 간만에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군.”
이렇게 가벼운 대담에서 대륙의 판세를 흔들 정도의 일이 결정되고 있다.
마탑의 마스터들은 물론, 주변의 마법사들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주변 분위기가 갑자기 경직되던 찰나, 교황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헤르메스에는 나름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렇지. 가주의 자식들이 제법 큰 걸 걸고 대결을 한다고 했던가?”
그 말을 꺼낸 건 다름 아닌 마기우스. 케프렌의 가주였다.
마치 처음 듣는 듯한 능청스러운 말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덕분에 제삼자인 우리는 즐겁게 구경하게 되었군요. 하하하!”
초대된 VIP 중 케프렌 쪽에 가까운 이들은 즐겁게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갈라지려고 할 때, 교황이 눈치껏 끼어들었다.
“마하 라데우스라면 잘 알고 있지요. 마법계에서도 특출난 두각을 보이는 데다, 매해 교단에 신실함을 보이고 있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르하 라데우스 역시 최근에 그 위명이 울려 퍼지고 있죠.”
“크흠!”
“특히 네르하 라데우스라면, 과거엔 가주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렇게 훌륭하게 장성하였으니 마음이 놓이시겠습니다.”
“하하하, 성하께서 눈여겨보실 정도는 아닙니다.”
교황이 무슨 이유로 방문했는지 알면서도 카이젤은 겸손한 척하며 손을 내저었다.
교황이 진지한 눈으로 경연회장을 바라보았다.
“어려운 시기에 영웅의 출현은 반길 일이죠. 젊은 영웅을 중심으로 세계는 뭉칠 수 있고, 그것은 곧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동력원이 됩니다.”
“…….”
뭔가 미묘한 어조의 말에 주변의 이목이 교황에게로 쏠렸다.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계시를 염두에 두신 말씀입니까?”
흠칫!
계시란 말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계시.
일반적으로 대륙의 학계는 ‘천계’라는 상위차원의 존재를 긍정하지만, 천계가 직접 중간계에 영향을 끼친 건 몇몇 드래곤의 기억 속에나 존재할 정도로 너무나도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런 천계의 지배자이자, 인간들 사이에서 사실상 유일신으로 군림하는 존재.
계시란, 지금은 이름조차 불리는 것도 금기시되는 ‘그분’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교황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부정하지만.
이건 그냥 눈 가리고 아웅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계시든 뭐든, 성하께서 네르하 라데우스를 주목하고 있는 건 변함이 없군요.”
마기우스의 주변에 있던 제국의 후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건 즉, 교권이 라데우스 측으로 기울 수 있다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건 너무 과한 억측이군요, 나비엔 후작.”
“보면 알겠지요.”
나비엔이라 불린 중년인이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이번 경연의 결과에 따라, 참으로 많은 것들이 바뀔지도 모르니까요.”
“결과라.”
그 말을 곱씹던 카이젤은 누군가에게 조용히 텔레파시를 날렸다.
―준비는 어떻게 되었지?
답변은 곧바로 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장로께서 백령대를 이끌고 인근에서 대기하고 계십니다. 나머지 전력은 6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케프렌의 움직임은?
―아직 선을 넘진 않았습니다만,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 경계 지대 인근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순간, 모든 전력을 동원해 소멸시켜라.
―네, 가주!
텔레파시로 인한 대화가 끝난 뒤.
카이젤은 생각했다.
‘조금, 어이가 없군.’
케프렌의 연공법보다도 더 뛰어난 마나 연공법.
그걸 이제 막 성인 티를 내는 라데우스의 일개 혈족이 만들어냈다는 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일은 없다.
무엇보다 케프렌의 가주가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게, 카이젤의 입장에선 코미디일 정도였다.
‘숙부님이 그렇게 극찬을 하시기에 보긴 했지만, 특별하다고는 느낄지언정 시대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다만 이런 건 있었다.
네르하가 마나 연공법의 구결에서 핵심적인 ‘무언가’가 빠졌다는 것을 눈치채긴 했다.
다만 그 공백을 눈치챈 건 어디까지나 카이젤 정도의 마법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 다른 격하의 마법사들은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준이었다.
워낙 상황이 심각하기에, 카이젤은 이런 망상까지 해버렸다.
‘만약 성취의 부족으로 채우지 못한 게 아니라, 일부러 공백으로 빼버린 거라면?’
카이젤조차 감히 추측하기 힘들지만, 그 결과물은 정말로 어마무시할 것이다.
‘훗,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카이젤은 천천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이 도시에 메테오를 떨어뜨리는 게 싸게 먹힐 수도 있겠군.’
* * *
“제가 이번에 헤르메스에 출품한 이론의 테마는 ‘영맥의 힘을 이용한 대지 마법의 효율증가’입니다.”
“삼색(三色)의 속성을 이용한 고유 술식입니다. 발현 수준은 5레벨입니다만, 속성 합일의 과정에서 트리플 캐스팅이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조작 계열 학파인 네메시스에서 공표한 이론을 발전, 보완시켰습니다. 이 이론이 상용화된다면 자율적 명령 수행이 가능한 골렘의 제작에 한 발자국 더 내밀 수 있을 겁니다!”
수많은 학파에서, 수많은 인재가 자신의 노력을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네르하에게, 옆에서 루시아가 말을 걸어왔다.
“괘나 집중하고 있네요?”
“조용히. 지금 한창 잘 듣고 있으니까.”
그런 네르하의 차가운 반응에, 루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금 어느 누군가가 자기들 이론을 열심히 빼먹고 있다는 걸.”
“…….”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천성 마법사로군요.”
‘마법사’라는 단어가 ‘도둑놈’이라고 치환해서 들리고 있긴 하지만, 네르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배울 게 많군.’
사실 네르하는 경연 시작 시점에 얼굴만 내비치고 숙소로 돌아가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150개나 되는 이론을 일일이 심사하고 평가하기까지, 하루로는 턱없이 부족하니까.
헤르메스의 기간은 총 3일이었고, 거의 마지막 순번에 배정받은 네르하가 자신의 이론을 펼칠 수 있는 건, 당연히 마지막 3일째일 게 확실했다.
하지만 네르하는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대륙 각지에서 몰려든 수재들의 이론을 접하고 그중 쓸 만한 것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지식으로 체화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래서, 뒷감당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뭘 말이냐?”
“헤르메스에 출품되는 마나 연공법은 마법계에 정식으로 공개되잖아요? 그런데 케프렌에 그런 식으로 도발을 날렸으니…….”
루시아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로 당신이 발표하는 마나 연공법이 도발에 걸맞은 정도라면, 가주님께선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을 죽여서라도 입을 막으려고 하실 거예요. 라데우스와 전면전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말에, 네르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뭐, 그렇겠지.”
“……!?”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륙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준 가장 큰 원동력이다. 가문 전력을 모두 끌고 왔어도 이상하진 않아.”
“자, 잠깐! 그걸 지금 말이라고!?”
당황해하는 그녀를 향해, 네르하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어째서 그걸 확신하죠? 당신이 가르쳐준 이 연공법은…….”
루시아는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네르하가 전수해 준 마나 연공법의 수혜를 가장 크게 받은 장본인이 바로 루시아 본인이었다.
유성검을 개발하고, 기존의 경지를 아득하게 넘어서 원탁의 기사들과도 검을 맞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당연히 루시아만큼 네르하의 마나 연공법이 가지는 가치를 절절하게 깨닫는 이는 없었다.
네르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확실히 처음엔 그저 판을 크게 벌일 생각으로 초대장을 날렸지. 세이라에게 건넨 ‘첫 번째 초대장’에는 그런 도발은 적혀 있지 않았고 말이야.”
분명 시작은 마하를 물 먹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스타로스에게서 심상치 않은 보고가 들어온 직후.
네르하는 그대로 처음의 계획을 다른 방향으로 수정했다.
대체 언제부터, 무엇을 보고 일을 꾸민 것인가?
루시아는 불현듯, 처음으로 네르하라는 존재가 두렵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거죠?”
네르하가 피식 웃었다.
“뭐, 첫 번째로는 헤르메스의 우승. 이건 원래 설정했던 목표이고.”
스윽!
네르하의 감겨 있던 중지가, 검지와 함께 펴졌다.
“두 번째는 경각심. 여전히 권력투쟁에 미쳐 미래를 보지 못하는 놈들에겐, 자기 머리 위로 천벌이 떨어지는 걸 보여줘야 정신을 차리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