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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19화 (119/258)

# 119화 수의사(6)

사실 내가 직감을 믿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마물원에서 일하며 점차 깨닫게 된 것이다, 때로는 감이 믿을 만한 지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를 스파이라 확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판단은 왕정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점점 확실시되어 갔다.

얼마만큼 열려 있냐는 질문에, 나는 무엇에 빗대어 비유해도 되냐고 대답했다. 왕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마물을 살리기 위해서 젖꼭지가 여섯 개가 되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거 참, 대단하시군요.”

왕정은 의외의 대답에 크게 놀란 듯했지만, 내 각오를 높게 평가해 줬다. 그 후 왕정은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신념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신념과 돈의 연관성에 대해서.

그리고 신념과 돈을 위해서 무엇을 포기할 수 있냐며 물어봤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 줬다. 드래곤과 지내며 눈치가 제법 늘어난 덕에, 나는 왕정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럼 당신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나를 보는 왕정의 눈빛은 매우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기다리는 왕정이 나를 재단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의 질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도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원하는 대답이었을까.

왕정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 질만큼 큰 미소를 지었다.

“따라오시지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왕정의 분위기가 나와 대화를 나눌 때부터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병원에서 숫기가 없고 수동적이던 동양인 남자는, 지금 상황을 주도하려고 들었다.

나는 그를 뒤따라 중의원을 나갔다. 왕정은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서도 약재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약 따위를 보여 주려고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게 아닐 것이다. 그는 점점 깊은 숲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느새 숲의 생김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숲의 생태계는 지구의 것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식물과 나무들,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 이계의 생태계였다.

깊게 들어갈수록 울창한 숲이 햇빛을 가려, 주변이 어두컴컴해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왕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군말 없이 따라갔다.

대신 털이 솟아오른 고양이처럼 언제든 싸울 준비를 했다. 왕정은 스파이다. 그렇다면 내게 원하는 건 무엇일까? 이 깊고 어둡고 이질적인 숲에 왕정은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그를 뒤따라갈 때였다.

갑자기 가슴주머니에 넣어 놨던 오리하르콘 브로치가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브로치를 재빨리 꺼내어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다행히 왕정에게 들키지 않았다.

‘마법?’

오리하르콘은 마법에 반응해.

나는 오리하르콘을 반응시킨 게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결계 마법 비슷한 거로군.’

이내 알 수 있었다.

왕정이 썩은 거목을 매만지자 그 즉시 주변의 땅이 갈라지더니,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난 것이다.

오리하르콘 브로치의 빛이 멎었다. 아마 침입자를 막기 위해 설치한 결계 마법인 듯했다.

그다지 놀라운 건 아니다. 요새 저러한 결계 마법을 보안이 필요한 건물에 자주 사용한다고 들었다. 문제는 장소와 사람, 왜 왕정은 이 깊은 숲에 결계 마법을 설치했는가.

내가 계단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자, 지하로 내려가던 왕정이 손짓했다. 조심성이 없는지, 나를 믿는 건지 모르겠다. 함정일까? 괜찮아. 지하에서 별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함정이라고 해도 곰이 쥐덫에 걸릴까.

나는 녀석을 사냥하러 온 것이다.

주저 없이 그를 따라 지하로 향했다.

*

‘어쩜 이리 수상할까.’

돌을 깎아 만든 계단. 요즘 시대에 LED도 아니고, 천장에 백열전구만 몇 개 달려 있다. 상당히 고루하고 낡은 곳이었다. 악당 놈들이 작당 모의 하기 딱 좋은 곳이네.

꽤 깊게 이어진 계단을 내려오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대충 만든 지하 계단과 달리 공터는 멀쩡했다. 마치 바스테 병원과 닮은 구조다.

공사하다 중단된 것처럼 공터는 곳곳이 헐어 있었고,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로 난잡했지만, 이곳이 바스테 병원의 시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별관 F동입니다. 이사진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되어 버려진 곳이지요. 기록상으론 계획에만 그친 곳이라, 아무도 이곳에 대해선 모릅니다. 그 잘난 도마뱀 이사장도요.”

왕정이 말하는 잘난 도마뱀 이사장은 사타리언 부인이겠지. 바스테병원이 설립되던 시기를 생각해 보면, 아직 사타리언 부인의 영향력이 윙바레사를 모두 장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그녀가 이곳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

‘냄새…….’

왕정과 나는 또 다시 건물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가는 동안 왕정이 이곳에 대해 설명해 줬다.

바스테 병원의 지하 시설인 F동은, 세간에 알려져선 안 되는 연구를 하기 위해 세워진, 비밀스러운 연구실이라고 한다. 그는 사타리언 부인조차 모르는 비밀을 술술 이야기해 줬지만, 나는 집중하며 듣지 못했다.

지하 계단을 내려갈수록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가 점점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약재 냄새인가? 아니, 그보다 더 독하다. 마치… 고기 썩은 내와 비슷해.

마침내 지하 3층에 도착했다.

왕정은 들뜬 목소리로 기대하라며 소리치고, 철문을 열었다.

크윽.

문이 열리자, 악취가 한꺼번에 나에게 몰아닥쳤다. 순간 후각이 마비되고, 머리가 어질어질할 만큼 강력한 악취였다. 하지만 왕정은 아무렇지 않은지, 입을 잔뜩 벌리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과거의 지식으로 일구어 낸, 우리 시대의 미래를 소개합니다!”

거대한 유리 탱크들이 건물의 한 층을 차지하도 있었다. 주로 위험한 액체 물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강화 유리로 만든 저장고였다.

세 개의 유리 탱크 안에 어떤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허여멀건 액체는 가끔씩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지독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악취의 근원.’

기괴한 액체를 바라보던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단지 악취가 나서가 아니다. 이유 모를 역겨움과 공포, 두려움이 느껴졌다. 저것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저게 무척 위험하다는 것은 알겠다.

“저게 대체 뭡니까?”

나는 왕정의 설명을 기다리며 울렁거림을 참았다. 그는 나와 같은 걸 보지만, 느끼는 게 다른 것 같았다. 왕정은 황홀함이 보일 만큼 기분 좋은 표정으로 유리 탱크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가, 뒤늦게 내 질문에 대답했다.

“인류의 미래가 될 보물입니다.”

왕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 주려고 했으나,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뭐냐고 묻잖습니까!”

왕정이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그가 스파이임을 알아냈어도, 무섭거나 두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미소는 너무나 섬뜩하게 느껴졌다.

“마물을 달인 액입니다.”

곧 이유를 깨달았다.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아.

*

왕정은 미래를 보여 주겠다며, 유리 탱크 아래에 있는 선반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왔다. 유리병에도 끔찍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실험실로 갑시다. 다정 님이라면 이 영양액이 가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금방 깨닫게 되실 겁니다.”

왕정은 나를 보며 말하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말없이 표정을 일그러트린 내 태도가 신경이 쓰였나 보다.

“당황스러우신가 보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험할 건 전혀 없습니다.”

나는 표정을 굳힌 채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아니, 사실 약간 떨리네요. 지금 상황, 상당히 불법적으로 느껴지거든요.”

너무 담담한 척하면 오히려 오해를 살까, 나는 능청스럽게 굴었다. 왕정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요. 폐쇄된 지하 병동과 정체 모를 실험실이라니! 하하하. 오해하실 만했어요. 하지만 이건 위험하거나 반인륜적인 실험이 아닙니다. 불법, 우매한 자들이 정한 쓸모없는 법도이지요. 다정 님도 직접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게 과연 무지한 자들이 정해 놓은 불법인지, 혹은 인정받지 못한 천재의 발명인지.”

왕정은 유리병과 스테인리스 주사기를 들고 다음 실험실로 향했다. 나는 그를 뒤따라가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악취와 함께 느껴지는 역겨움과 전신에서 느껴지는 메스꺼움을 지금까지 꾹꾹 참고 있었다. 그리고 참아 내야 했다. 마물을 달인 물이라고? 젠장, 지독히도 끔찍하잖아.

*

실험실에 마물들이 우리에 갇혀 있었다. 기이한 건 그들의 ‘목소리’가 나에게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때문에 육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이곳에 마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 있는 마물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을 입었거나, 그러한 병에 걸렸던 놈들입니다.”

왕정은 작은 덩치에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마물에게 다가갔다.

‘마츄…….’

우리에 갇힌 마물은 마츄.

녀석은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뭐라고 말 좀 해 봐.’

내 목소리도 녀석에게 닿지 않아.

마츄가 얼마만큼 겁이 많고, 예민한 마물인지 잘 알기에, 나는 지금 순간순간이 괴로웠다. 얼마나 무서울까. 왕정은 우리에서 마츄를 꺼냈다. 그 후, 스테인리스 주사기를 들어 끔찍한 액체를 주사하려고 했다.

“뭐 하는 겁니까?”

나는 그의 손을 잡아챘다.

왕정은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 이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겁니다. 며칠 전만 해도 이 녀석은 들개에게 뜯어 먹혀, 몸의 반쪽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보세요. 멀쩡해지고 있잖습니까?”

왕정은 자신이 발견하고, 개발한 ‘영양액’에 대해서 설명했다.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마치 자랑하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마물을 특별한 방법으로 ‘가공’한다면 뛰어난 효능을 지닌 약물이 된답니다. 이 작은 녀석의 몸은 영양액을 주사한 지 단 며칠 만에 원래대로 복구되었지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마물을 가공하여 다른 마물을 살릴 수 있다니. 하하하. 그리고…….”

끽끽끽-!

“이런. 벌써 때가 되었나.”

그때였다. 마츄가 발작을 일으키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녀석에게 손을 뻗었으나, 왕정의 행동이 더 빨랐다.

왕정은 영양액을 주사했고, 즉시 마츄의 발작이 멈췄다.

“보시다시피 약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조금 있지요. 알레르기 반응이나 불안정한 발작 등 몇 가지 더 보완할 점이 있긴 하지만 굉장하지 않습니까?”

유리병에 액체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왕정은 주사기에 다시 액체를 넣고 다른 마물에게 다가갔다.

그 마물은 나도 처음 보는 마물이었다. 푸른색 피부에, 온몸에 나뭇잎이 돋아난 거북이였다.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외상은 없었으나 어떤 병으로 죽어 가는 것 같았다.

왕정은 거북이에게 주사를 하며 말을 이어 갔다.

“마물로 마물을 살린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츄같이 저렴한 마물을 달여, 이처럼 값진 마물을 살릴 수 있다니. 엄청난 돈벌이가 될 겁니다!”

‘미친 자식.’

놈은 생명마저 재단하고 있다,

‘값어치’라는 욕망의 기준으로.

영양액을 주사 받은 마물 거북이의 마나가 점점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언뜻 경과가 좋아 보였다. 하지만 왕정이 다시 영양액을 주사하자 거북이의 몸 상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거북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 녀석도 달일 마물이거든요.”

왕정은 유리병에 담긴 영양액을 전부 거북이에게 주사하기 시작했다. 마물 거북이의 몸은 육체를 초과한 마나 때문에 점점 붕괴되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자라나던 나뭇잎들이 시들고, 푸른 피부가 검게 변해 갔다.

나는 영양액이 모두 주사되기 전에 달려가 왕정의 팔을 내려쳤다. 다행히 마물 거북이의 몸은 점점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도 육체가 풍선처럼 터져 버렸을 것이다.

[아파. 아파.]

들리기 시작한 마물의 목소리.

젠장.

지금까지 마물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 건 녀석들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붙잡고 있지 못할 만큼 지독한 고통!

“이런, 아깝게.”

널브러진 주사기와 유리병.

왕정은 한숨을 내쉬더니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따졌다.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

열이 차오른 나는 놈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렸다.

“당황스럽군요. 정말, 무슨 짓이지요?”

왕정은 이 상황에도 미소를 지었다. 당황스럽다는 놈이 태평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더 화가 나, 멱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칵칵칵!

숨이 막혀 말도 못 하는 주제에.

왕정은 바람 빠진 소리로 웃어 댔다. 나는 놈을 내동댕이치고, 놈의 몸을 발로 밞아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녀석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지 못했나?”

“킥. 녀석? 마물 말입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고통스러워한다고 해서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영양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물을 죽였지? 실험을 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마물들을 죽였고?”

그는 죄책감 따윈 없었다.

왕정은 마물의 죽음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대답했다.

“뭡니까? 당신은 마물에 연민이라도 느낀답니까? 킥킥. 내가 사람 잘못 본 건가? 킥킥킥. 마물이 무슨 인간도… 좋아. 최대한 연민을 베풀어서, 마물이 무슨 동물이라도 된답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끔찍한 말을 내뱉는, 나와 정반대의 사상을 가진 자의 모습은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봐요. 이 실험만 성공시킨다면 우린 벼락부자가 될 겁니다! 처음엔 마물, 그다음은 사람. 사람들한테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몇몇의 희생은 있겠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실험에 성공한다면 생명을 연장시키는… 마나를 증가시키는… 불로불사의 약이 될 겁니다. 불로불사! 킥킥킥.”

녀석은 인륜을 지키는 척했을 뿐이다. 감정이 격해질수록 본심이 드러났다. 저 새끼는 사실 마물이든 뭐든 상관이 없었던 거야. 사람마저 실험 대상으로 쓸 생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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