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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2권] 58회 - 도화선 (58/188)



〈 58화 〉[2권] 58회 - 도화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오는 동안 길거리에서  싸구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 하딘과 피카니가 호텔로 들어왔다. 객실로 들어가기 전에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을 휴게 공간으로 와보니 아비투스는 웬 수상쩍은 남자를 꽉 붙잡아서 찍어 누르는 중이고 루나와 카르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주변 손님들은 계속 겁먹은 눈치로 애써 외면하고 있다. 보아하니 이런 상태로 지낸지  지난 듯하다.

하딘이 다가가서 일행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건너뛰고 바로 수상쩍은 남자의 모자를 벗겼는데 그는 상대의 세로로 갈라진 동공을 보고 놀랐다.

“카우보이?”

옆에 있던 카르델이 거기에 말을 덧붙였다.


“우리한테  일 있나 봐요. 이름은 히콕이랩니다.”

“아비투스. 재갈 풀어봐. 소리 지르거나 수상쩍은 짓하면 바로 때려.”

“분부대로.”

겨우 입이 자유로워진 히콕은 뒤편에서 멀찍이 서있는 피카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닥 홀리데이.”


“날 아십니까?”

국경을 넘고 나면 언젠가 자신을 알아볼 사람도 나타날 때가 올 거라 미리 각오했기에 피카니는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히콕은 곁눈질로 자기 손목을  붙잡고 있는 아비투스에게 슬슬 놔달라고 눈치를 줬지만 돌아오는 건 점잖게 좌우로 흔들리는 눈짓이었다. 입가를 움찔거리다가 히콕은 말을 이었다.


“툼스톤에 있었거든. 신문 사진을 보고 혹시 했지만 정말 그 돌팔이 치과의사가 이렇게까지 출세했을 줄이야.”

하딘이 대신 말을 받았다.


“우리들은 어떻게 찾았지?”

“나는 핑커튼이다.”


그 한마디로 다들 표정이 바뀌었다. 하딘은 굳은 얼굴로 잠깐 있다가 아비투스에게 포박을 풀어주라는 손짓을 했다.








레스는 만취해서 쓰러진 샤카자이아를 데리고 침대에 눕혀준 다음 1층으로 돌아왔다. 사소한 노동이었지만 피가 쑥쑥 도는 바람에 레스도 슬슬 위스키에게 몸을 점령당하려 했다. 마침 아자리가 자신의  조각을 윈프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서 그가 물었다.

“뭐하고 있어?”


“이 금을 돈으로 바꾸고 싶은데 윈프리 씨가 감정을 해주시겠데요.”

아자리도 술은 꽤 약했는지 얼굴이 취해서 붉었고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 윈프리는 손 안에서 금을 이리저리 굴렸다가 바에서 저울까지 꺼내고 계량을 했다. 아자리가 그걸 보고 낮게 감탄사를 뱉었다.


“거기 밑에 참 별 게 다 들어가 있네요.”

“방탄판도 있고. 산탄총도 있고. 카드 게임 속임수  때 쓰는 비밀 거울이랑 손님들을 위한 비상벨 발판도 있지. 바텐더란 재밌는 일이란다.”

계량을 마친 윈프리는 저울과 무게추를 다시 내려놓고 금 조각을 돌려줬다.

“14g정도 되니까 시세에 따르면 인간들 돈으로는 953탈레르하고도 87셉트. 마족 돈으로는 83길피 1실피 8채피. 우리 가게는 탈레르 밖에 없어서 환전을  해주겠구나. 당장 금고에 있는 현찰을 너무 많이 쓰면 곤란하거든.”

아자리는 액수를 자신의 수첩에 모두 적었다. 그동안 레스는 지끈거리는 자기 머리를 한손으로 받치듯이 대고 아자리 옆에 앉았다. 그를 보고 아자리가 물었다.

“단테는 뭐해요?”


“털 때문에 씻느라 힘들어서 힘 빠져가지고 바로 자겠대.”

“오늘 고생 많이 하기는 했죠.”

문득 수첩을 넘기다가 아자리는 시선이 ‘레스에게  먹이고 물어볼 목록’에 닿았다. 아자리는 ‘흐음’하고 목 가다듬는 소리를 내면서 노골적으로 수상쩍은 티를 냈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딱히 별로.”


그녀가 어떻게 은근슬쩍 물어보면 될까 고민하고 있는데 윈프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너희들이 여기서 재보급하려면 많이 힘들 거야.”

“왜요?”

레스가 대답했다. 아자리는 애써 술기운을 견뎌가며 궁리한 질문들을 지우고 귀를 기울였다.

“금은방은 손님들 신분을 철저히 파악해. 너희들로는 힘들지 않을까?”

걱정한 만큼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레스는 아직 한가한 표정이었다.

“돈으로 못 바꿔도 금을 받아주는 곳이 어딘가 있겠죠.”


“사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거든.”

두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자 윈프리는 설명을 이었다.

“일단 물건을 사는 것부터가 힘들어. 지금 도시에 있는 물자들이 워낙 적어서 상점에서 손님들을 가려서 받고 있어. 그나마 물건들이 풍부한 곳은 ‘스트립’에 있지만 신분도 철저히 따질뿐더러 애초에 그쪽 동네 시민이 아니면 가게에 들어가지도 못해.”


“그럼 서민 구역은요?”

아자리가 물었다.

“가게마다 갱스터들이 지켜보고 있어. 상납금을 낼만큼 매출이 나오는지 감시하려고. 그런 곳에 다짜고짜 금으로 물건 값을 치르면 어떻게 되겠니?”


그제야 두 사람은  단테가 금을 사용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듣고 보니 예상 이상으로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레스는 뇌까렸다.


“마차 수리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생필품은 구하기 어려운데 그 와중에 붙잡히지 않게 숨어 다니면서 갱들한테 시비까지 걸리면  된다니... 돈도 없어. 하지만 기껏 있는 금은 돈으로 바꾸지도 못해... 이거 참...”

윈프리가 걸레로 주변을 한번 닦으면서 말했다.


“돈이 궁한데 총질에 자신이 있다면 결투장에 출전이라도 해보지 그러나?”

“뭔지는 몰라도 주목 끌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듣고 레스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관심이 생기면 내일 말해주지. 지금은 설명해줘도 취해서 까먹을 테니.”

그렇게 말하며 윈프리는 레스와 아자리를 위해서 불을 조금만 남기고 가게의 불을 끈 다음 입구에 걸려있던 문패를 ‘영업 종료’로 바꿔서 달았다. 아자리가 말했다.

“아직  닫기에는 이르지 않나요? 히끅! 죄송합니다.”


레스보다는 술이 강하다고 자신했지만 아자리도 위스키는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술기운이 온몸으로 퍼지자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얼굴은 몽롱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윈프리는   씩 웃어주고는 가게 안으로 향하며 말했다.

“어차피 아무도 안  거야. 나도 이제 씻으러 갈 테니 자러가기 전에 불만 꺼주렴.”

“끼끅! 네...”


가게에 둘만 남게 되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아자리는 그에게 뭔가 물어보려는 몸짓을 하려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야?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니까... 뭐였더라...? 까먹어버렸네.”


그는 술 냄새가 물씬 나는 한숨을 뱉고 말했다.

“뭘 물어보던 간에 피카니하고 지냈던 순간이나 스승하고 지냈던 시절하고 알미트라에 대한 것만 빼고 나머지는 절대로 대답   줄 알아.”


“크윽. 그것만 빼고 대답을 안 해주겠다니. 철저한 놈 같으니. 그런데 알미트라가 누구지?”

“응? 내가 알미트라라고 말해줬나?”


“그런데 알미트라가 누구지?”

아까 마신 위스키가 기어코 뇌까지 알코올로 점령해버리자 서로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실낱같은 이성으로 레스가 고개를 저으며 고장이 난 기계를 때리듯 자기 머리를 툭툭 때렸다.


“역시 위스키 같은 거 마시는 게 아니었어. 그런데 너 마법 능력 이제 회복됐냐?”

“왜요?”

“두 명으로 늘어났잖아. 그런 편리한 기술도 있었다니.”


“무슨 소리야. 하늘 아래 두 명의 마왕은 없다! 히끅! 그건 그렇고 권총 쏘기 연습해보고 싶은데 지금 시각에 사격 연습하면 민폐겠죠.”

 말을 듣고 레스는 뒷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냈다.

“잠깐만... 혹시 몰라서 아까 여기 도시를 베껴놨지. 우리가 여기쯤이니까... 딱히 연습할 곳이 없네. 어차피 취한 와중에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되고.”


“나 안 취했어어...”

“무슨 소리야 내가 안 취했어.”

“내가 더 안 취했어!”

“그럼 서로 안 취한건가?”

“그런가 봐요.”


“그럼 나가도 되겠다.”


“그래요.”


 사람은 그 와중에 걸음걸이는 올곧았다. 레스가 지도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려다가 아자리가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요! 우리 뭔가  잘못을 하고 있어요!”

레스도 우뚝 서서 같이 외쳤다.


“맞아. 뭔가 이상해.”


“변장을 해야죠!”


그렇게 말하며 아자리는 위층으로 급히 올라가서 뭔가 가져왔다. 레스의 터번과 자신의 고깔모자다. 레스는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천천히 크게 쳤다.


“좋아! 이거라면 아무도 우리가 누구인지 모를 거야! 그런데 얼굴도 가려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것도 챙겨왔죠.”

아자리는 그렇게 말하며 스카프를 그에게 내밀고 자신의 얼굴에도 스카프를 둘렀다. 얼굴은 은행 강도나 애용할법한 복면으로 가리고 각자 터번과 고깔모자를 쓰자 그들은 수상쩍은 걸 뛰어넘은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여기까지 와버리니 그들도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레스가 욱신거리는 자기 머리를 움켜쥐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가 뭘 하려고 했더라?”


복면 너머로 서로 목소리가 뭉개져서 웅얼거렸다.


“일단 권총 가지고 뭘 하려고 했던  확실해요.”

“하지만 우리는 돈이 급하잖아. 돈 문제랑 권총?”

“강도질은 아니에요. 금을 환전해야죠.”


마치 스무 고개를 하듯이 서로 단서를 내놓았지만 도저히 합쳐지질 않았다. 지도를 바라보면 해답이 나올까 싶어서 레스는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발상이 하나 떠올랐다.

“금은방이 가깝네? 아하! 생각났어!”


그리고 자신들이 무엇을 할 생각이었는지 말해주었다.










피카니 일행들은 히콕을 데리고 하딘의 방으로 들어가서 사정을 들었다. 히콕은 탁자에 앉아서 설명했고 다른 사람들은 벽에 기대서거나 가구에 걸터앉아서 그를 둘러쌌다. 하딘이 입가를 손으로 가리면서 듣다가 입을 열었다.


“왜 굳이 여기까지 왔지? 그 폐광촌에서 원래 하던 일이나 마저 하지 않고?”


“방심 때문에 당한 채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거든.”

“자존심 때문에 다친 다리를 고쳐가며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신체를 개조하는 마지막 세대의 카우보이야. 남은 인생 내내 치욕이 될 거라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

물론 이것만으로는 그들이 납득할 리가 없으니 수사적 전략으로 히콕은 나머지 이유를 뜸 들여서 이었다.

“그리고 댁들 같은 패거리라면 낄 가치가 충분하지. 폐광촌에서 지내던 것도 갱단에 잠입하느라 어쩔 수 없이 놈들에게 일을 맡아서 그랬을 뿐이고.”


이번에는 아비투스가 물었다.

“그런데 핑커튼이 무슨 생각으로 댁을 잠입시켰지?”


“원래 우리들은 여기저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분을 감춘 채로 정보원으로 지내고 있어. 이번에 내가 숨어있는 곳이 이 동네의 갱단일 뿐이고.”

순서를 건네받듯 아비투스 옆에 있던 피카니가 말했다.

“그 마을에 있던 이유는?”

“갱들은  폐광촌을 자신들의 거점으로 넓힐 계획이야.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이 다시 국경을 왕래하게  테니 거기가 쓸 만해질 거라고 생각한 거지. 터전을 잡는 역할을 내가 맡았고. 표면적으로는 말이지.”

루나가 순서를 받았으니 물었다.

“실제로는 어땠나요?

“놀고먹었지요 레이디.”


여태까지의 태도하고는 노골적으로 구별이 가는 친절한 말투로 그가 대답했다.

다시 하딘이 말했다.


“솔직히 아직 믿음은 안 가지만 일손이 딸리는 참이니 거절할 생각도 안 나는군. 여태껏 추적해왔다면 그 친구들이 어디에 있을지도 짐작이 가는가?”

“방금 왔는데 어떻게 알아. 어디 소동이라도 일으켜주면 바로 붙잡을  있겠지만.”


이번에는 피카니가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특이한 놈들이기는 해도 그런 실수나 할 멍청이들은 아니야.”





금은방 주인은 아직 가게 문을 닫으려면 시간이 남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한참 전에 끊겨서 오늘은 일찍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경호원은 가게 구석에 앉아서 졸음을 참으려 애를 썼다. 결국 주인도 따분함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붙이들이 들어있는 유리장 진열대 위에 먼지가  쌓이게 천을 씌우고 있는데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옵쇼.”


주인은 반사적으로 바로 옆에 있는 계산대로 향한 다음 손님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고깔모자를 머리에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자애였다. 다른 쪽은 머리에 본 적 없는 괴상한 천을 두르고 여자애하고 똑같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였다.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어서 주인이 물었다.


“댁들 누구요?”

“금을 팔러왔소.”

레스가 말했다. 마스크 너머로 목소리가 웅얼거리기는 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가게 주인은 아직도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이었고 아자리가 자기 주머니에서  조각을 꺼내서 내밀었다. 경호원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서 만일을 위해 허리춤에 손만 대었다.

레스가 아자리에게 물었다.

“정확히 얼마였지?”

그녀는 바로 수첩을 펼쳐보고는 메모한 걸 읽었다.


“953탈레르하고도 87셉트. 아니면 83길피와 1실피 그리고 8채피.”

가게주인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안 잡혔지만 일단 금은 진짜였다. 어디서 알아왔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제시한 가격도 시세와 거의 비슷했다. 주인이 말했다.

“복면부터 벗지 그러시오. 금을 거래하려면 신원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신분증과 함께 증서도 써야하고.”

“환전해주지 않으면 이 가게를 털어버리겠다.”

농담으로 들리지는 않았는데 말투가 진지하지도 않았다. 가게주인이 그를 째려봤다.


“댁들 무슨 벌칙 게임이라도 하러 온 거요?”


결국 경호원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고 사내를 겨눴다.

“더는  봐주겠네. 뭐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딱 꺼져! 여기가 누구 아래에 있는 건지나 알아?!”


그러자 아자리는 자기 겨드랑이 밑에 달아둔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고는 경호원을 겨눴다. 여태껏 어깨부터 가슴까지 닿는 여성용 망토 때문에 권총이 보이질 않았다. 경호원이 그쪽으로 정신이 팔린 순간 레스는 춤동작처럼 발꿈치와 발끝만 움직여서 순식간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자세로 권총을 뽑아서 쐈다.  깜짝할 사이에 자기 권총이 총에 맞아서 박살나버리니 경호원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엉거주춤 손을 들었다. 경호원은 아자리가 총을 겨눈  지켜봤고 레스는 총의 조준을 그대로 가게 주인에게 돌렸다.


“알았어 알았다고! 하라는 대로 하면 되잖아!”


여태껏 그들을 이상한 놈으로만 여겼던 가게주인은 잔뜩 겁먹고 유리 진열장의 문을 열고 물품들을 하나씩 꺼냈다. 하나하나가 이루 말할 데 없이 귀중한 것들이지만 목숨이 걸렸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레스가 소리를 질렀다.

“어이 지금 뭐하는 짓이야!”


“뭐.. 뭐? 보석보다는 현금이 필요한 거야? 알았어 지금 꺼낼 테니까...”

“지금 우리가 강도로 보여?! 말한 액수만 꺼내라고! 그러니까... 정확히 얼마였지?”

아자리가 한숨을 쉬고 다시 말했다.


“953탈레르하고도 87셉트. 아니면 83길피와 1실피 그리고 8채피.”

“그래! 정확히 꺼내라고! 그런데 인간 돈이 나을까 마족 돈이 나을까?”


“들고 다니기는 인간 돈이 좋지만 요즘 인플레가 일어날 조짐이 보여요.”

“그럼 마족 돈으로 해야겠다. 자! 알아들었지?!”

이상한 놈들이 위험한 놈으로 바뀌더니 이번에는 미친놈으로 변해버렸다. 가게주인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답을 받고 싶어서 경호원에게 눈빛으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공포에 젖은 고갯짓뿐이었다. 그냥 강도들이라면 돈이나 보석만 챙기고 끝이지만 이놈들은 이해가 가질 않으니 더욱 무서웠다.


“그... 이 금조각은 내가 가져가면 돼?”


레스는 권총을 들고 있는 손을 그대로 휙휙 저어가며 손짓을 했다.

“거 빨리 좀 합시다.”


아무튼 가게주인은 마족들의 통화를 따로 모아두는 금고를 열어서 금화와 은화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손님들에게 보이도록 늘어놓았다. 주화들은 열 개씩 종이끈에 묶여서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금빛 주화 8묶음하고도 3개. 은화 하나. 그리고 동화를 꺼낼 차례인데 가게 주인은 문제가 생겨서 손을 멈췄다.


“저기... 채피가 지금 없는데? 그냥 은화 하나 얹어줄까?”


레스가 그 말을 듣고 아자리에게 물었다.

“잔돈 있어?”

“아뇨.”

“나도 없어.”

“워워! 아저씨 가만히 계시죠! 허튼 짓 했다가는 총구멍이 수백 개는  거다! 히끅! 음...”


“됐으니까 그대로 주시오.”

레스는 가게 주인에게 어서 달라고 손짓을 했다. 주화들이 튼튼한 종이봉투에 담겨서 그에게 전달됐고 레스는 권총을 겨눈 채로 뒷걸음질 치면서 말했다.

“오늘은 이정도로 봐주겠다! 다음에는 거스름돈을 챙겨오겠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가게를 나와 밤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가게 주인과 경호원은 그들이 남기고 간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공기를 견뎌내느라 머리가 아팠다. 간신히 가게 주인이 입을 열었다.


“경찰을 불러야 할까?”


“하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레스와 아자리는 훗날 이때 벌인 짓이 결과적으로 도시를 뒤집어버리는 계기가 됐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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