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2권] 59회 - 잠들지 않는 자들 (59/188)



〈 59화 〉[2권] 59회 - 잠들지 않는 자들



피카니 일행들은 히콕의 안내를 받았다. 시간은 9시였다. 별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진 밤하늘과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 그들은 걸었다. 루나는 마법 지팡이를 손에 들고 다녔고 남자들은 주무장을 숙소의 총기보관실에 맡겨놓고 권총만 허리에 차서 겉옷으로 가렸다.

히콕이 전차 정류장으로 그들을 데려와서 물었다.

“이 도시에 있는 핑커튼은  합쳐서 80명 정도야. 사무실에는 그중 절반이 있고 나머지는 도처에 퍼져서 정보원으로 일하고 있지.”

피카니가 물었다.

“그중에 ‘롱라이더스’라는 갱단에 잠입하고 있는 정보원은  명이나 있습니까?”

“도시를 떠난 지 오래돼서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는 나도 잘 몰라.”


그들은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고 표를 끊었다. 원하는 곳으로 갈 때까지 거치는 정류장의 숫자만큼 표를 여러 장 구입하면 되었다. 히콕을 제외한 일행들은 표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루나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표정이 들떠있었다.

“항상 지팡이로 날아다니면 그만이어서 지하철을 이용할 일이 없었는데 드디어 소원 이뤘다.”

옆에 있던 아비투스가 말을 받아줬다.


“사실 저도 열차나 전차를 타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루나가 생각난 걸 히콕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다른 도시하고 연결되는 철도가 없나요?”

그가 대답했다.

“열차도 있고 철도도 있지요. 그런데 전쟁 중이라 자꾸 사보타주를 당해서 철도가 끊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운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놈의 전쟁이 항상 문제네요.”

남자들은 괜히 여기서 더 꺼낼 말이 떠오르질 않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전차를 기다렸다. 홍일점인 루나는 괜히 어색한 공기를 치워야겠다는 의식이 들어서 부지런히 꺼낼 말들을 생각해냈다.


“아 맞다. 여기서 제 염화를 받았던 다른 마법사하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주둔지에서요.”


하딘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랬습니까?”

“남학생이었어요. 저하고는 다른 대학 출신이고요.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견문을 넓히러 여기까지 왔었다고 하네요. 여기 마법 가게 주인에 대해서도 들어봤고요.”


카르델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하마터면 중요한 이야기를 놓칠 뻔했네.”


“죄송해요. 오늘 정신이 없어가지고... 아무튼  가게 주인은 원래 여기 땅에서 살던 원주민 부족의 주술사였다고 하네요.”

피카니가 재촉했다.


“인상착의하고 종족은?”


“40대 초반의 인간 남자요. 피부는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이고요. 들은 바로는 조금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하네요.”


하딘이 냉정하게 판단하고 일행들에게 말했다.

“만일 그 사람하고 만나면 우리가 제국군이라는 사실은 반드시 감춰라.”


“넵.”


카르델은 대답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히 루나까지 같이 끄덕였다.

전차가 육중한 몸체를 끌고 느긋하게 다가오자 그들은 기다렸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전차 안에 있는 좌석들은 열차 객실처럼 짝을 지어서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었다.


차장이 전차로 올라탄 그들에게 바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표를 보여주십시오.”

차장은 분위기와 용모가 무척 특이한 청년이었다. 이빨은 줄로 갈아낸 듯 상어처럼 삐죽거렸고 눈매도 부리부리한 것이 목탄으로 휘갈긴 그림 같았다. 깊게 눌러쓴 챙 달린 차장 모자의 그늘 속에서 눈동자는 붉게 빛났다. 입고 있는 제복은 얼마나 정성껏 다림질을 했는지 마네킹에게 걸린 옷처럼 빳빳하였다.


남자들은 표만 보여주고 지나갔지만 루나는 여자 특유의 섬세함 때문에 홀로 차장의 비범한 모습에 반응하고 있었다. 차장이 겁먹고 굳어버린 루나를 향해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프십니까 레이디?”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로 저은 다음 아까 보여준 표를 다시 보여줬다. 루나 다음에 올라탄 카르델도 표를 보여준 다음 자리로 향했는데 도중에 움찔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모습을 보고 아비투스가 물었다.

“왜?”


카르델은 고개만 돌려서 차장을 쳐다보다가  길을 갔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인상을 쓰고 카르델이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이나 붙여둬. 핑커튼 사무소까지 15분은 걸린다니까.”

일행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차장이 객실 가운데를 걸어 다니며 말했다.


“다음 정거장은 뉴 크러스티아 거리 6번가입니다. 내리시는 길에 분실물이 없도록 꼭 주의하시고 서로 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문명인다운 태도를 취해주십시오.”


차장의 말이 끝나자 전차가 움직였다. 다들 생각을 비우고 시선을 창가 바깥의 야경으로 돌렸다. 유리창 너머로 흘러가는 도시의 불빛을 보고 있자니 루나는 불현듯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가슴이 먹먹했다.


피카니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기분도 막연하기만 했다. 자기 자리 맞은편에 있는 루나가 눈에 들어오자 피카니는 우울한 얼굴 그대로 생각 없이 툭 말을 내던졌다.

“저기 마법사님.”


“네?”


“예전에 누군가를 배신한 적이 있다고 칩시다.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제가 노력해서 사과한다면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다른 일행들은 이미 자리를 차지한 다른 승객들 때문에 띄엄띄엄 앉아 있어서 주위에 듣는 사람은 달리 없었다. 루나는 당황했지만 무슨 일이냐고 묻기보다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물음에 답했다.

“그건 쉽게 답해드릴 수 없어요.”

“그렇겠죠. 저도 당한 쪽이라면 도저히 용서 못해줄 겁니다.”


그녀는 괜히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될  같아서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저 그것뿐이지만 피카니는 아려오는 속이 조금이나마 아무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소리해서 죄송합니다.”

“저기...”


“네?”

“언젠가  여행이 끝나면 저희 대학으로 와주세요. 변장하고 다른 모습으로도 좋으니까요. 재밌는 곳이 많아요. 그냥... 그렇다고요. 다른 군인 여러분들하고 같이 와도 되고요.”


 거 없는 시답잖은 소리지만 생각해보니 피카니는 요즘 이렇게 친절한 잡담을 다른 사람에게 받아본 적이 없어서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는 입가를 옴죽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이참에 진짜로 치과 진료 자격증도 따볼까.”

“해부학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갑자기 달리고 있는 전차 끝부분으로 누군가가 매달리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승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쏠렸다.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버버리코트 차림의 사내였다. 사내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던히 견뎌내며 빈 좌석을 찾아 시선을 사방으로 훑었다. 그러다 루나하고 눈이 마주친 사내가 히죽 웃어서 그녀는 움찔거렸다. 피카니는 살기 없이 손을 허리춤에 갖다 대었다. 사람 배에 주먹만 한 구멍을 뚫을 수 있는 45구경 자동권총이 아직 거기에 있었다.

마음대로 올라탄 승객을 향해 차장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인간답지 않은 규칙적인 걸음으로 다가가고는 물었다.


“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뭐? 아아. 오늘 급해가지고 좀 봐주시오.”

히콕이 자기 주변에 있는 군인들에게 속삭였다.

“‘블랙독’ 갱단이야. 동쪽의 상업 지구를 점령하고 있지.”


차장은 침착하고 엄격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가며 참을성 있게 말을 이었다.

“표가 없으시면 무임승차이니 본래 요금의 열배를 지불하셔야합니다.”

그는 마치 목각인형처럼 팔 한 번 까딱 안 하고 입만 움직였다. 구겨진 곳 없는 제복 때문에 더욱 인형처럼 보였다. 사내는 가소롭다는 얼굴로 자기 옷깃을 과시하듯이 고쳐 잡았다.


“거 이쯤 되시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셔야지? 댁도 이 동네 사람일 거 아냐?”

갑자기 차장은 심호흡을 하더니 전차 안에 있는 모든 유리창이 깨질 기세로 고함을 질렀다.

“무임승차는 용서할 수 없다아아아아아아아!”


목청이 얼마나 큰지 무덤에서 자고 있던 시체도 소음 공해로 민원을 넣을 정도다. 바로 코앞에서 그 소리를 맞아버린 사내는 아주 짧은 순간 기절하고 정신이 돌아오느라 기억이 살짝 끊어졌다.


차장의 소매 밑에서 용수철 튕기는 소리와 함께 작은 데린저 권총이 튀어나오더니 차장은 그걸 사내의 다리에 겨누고 다시 외쳤다.

“그리하여 시내 철도법 제 12조항과 차장의 권한으로 명한다!”

작은 총성과 함께 사내는 다리에 총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무너트렸다.


“악! 아앗! 아아아악! 잠깐만! 잠깐만!”


“즉결심판!”

차장은 한손으로 상대의 멱살을 붙잡아서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대로 다리에 피를 흘려가며 저항하는 사내를 전차 끝까지 데려 가더니 바깥으로 시원하게 걷어 차버렸다.


승객 중 몇 명은 이미 이렇게  거라 예상했는지 덤덤한 얼굴로 책을 읽거나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당연히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해서 공기가 묵직했다. 차장은 자신의 비밀권총을 소매 속으로 돌려놓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서 원래 자신의 자리인 객실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방금 광경을 보고 피카니 일행도 놀라서 다들 자다가 갑자기  거 같은 얼굴이 됐다. 히콕은 어째선지 히죽거리고 있다.

피카니가 루나를 향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공무원들은 뭔가 단단히 잘못됐어.”

“저게 말로만 들은 ‘개척자의 정의’라는 거군요.”


차장은 아무  없었다는 양 피카니 일행들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부지런히 일했다. 바닥에 남은 핏자국은 금방 말라서 얼룩으로 변했다.











기마경찰대원 두 명이 총성을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아까 레스와 아자리가 들렀던 금은방으로 향했다. 그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금은방 주인을 만났다. 그리고 사연을 들어가며 수첩에 연필을 끄적거렸는데 금은방 주인의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경찰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경찰 중 하나가 반문하는 말투로 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제 와서 떠올려보니 드는 생각이지만 둘 다 술에 취했던 거 같기는 합니다.”

“술에 취하고도 그렇게 날랜 총잡이라니 대단하군요.”

경찰이 덤덤하게 토로하자 옆에 있는 동료가 덧붙였다.

“그보다는 이런 짓을 제정신으로 저지르는 놈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동료의 말을 무시하고 경찰이 질문을 다시 던졌다.


“혹시 그 친구들이 어느 갱단에서 왔는지 알아볼만한 단서가 있었습니까?”

“저도 무슨 이유가 있던 게 아닐까 필사적으로 생각해봤지만 그냥 또라이들 같았습니다.”

경찰은  물어볼  없다고 판단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의 동료가 말했다.


“어쩌면 진짜로 술에 취한 괴짜들이 일으킨 소동에 불과할지도 몰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너 이 가게가 어느 갱단 아래에 있는지 알잖아.”

“클랜턴이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갱단.”

“갱단들이 협약을 맺은 이후로 몇 달 만에 오늘 이곳이 공격을 당했어. 분명 그냥 일로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자신들의 말 위로 다시 올라가며 그의 동료가 중얼거렸다.

“그 괴짜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앞으로 목숨이 여러 개 필요하겠어.”








핑커튼 탐정 사무소 건물 대문에는 이리 적혀있었다.


[우리는 절대 잠들지 않는다.]


그렇게 적힌 문구 위로 사람의 눈동자 그림이 큼직하게 수채화 물감으로 나무 문짝에 그려져 있었다. 그들하고  좋은 기억이 있었던 카르델은 복잡한 얼굴로 그 눈동자 그림하고 눈싸움을 하다가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꽤나 허름하구먼. 연방보안관 사무소는 번쩍거리던데.”

히콕은 대꾸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 중간부분에 달려있던 칸막이가 옆으로 움직였다. 정확히 눈동자 그림 한복판에 사람 얼굴이 나왔다. 그 사람이 칸막이 너머로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주님은 사람을 만들었다.”


히콕이 대답했다.

“그러나 리볼버는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났다. 아비투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히콕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암호가 그렇게 유치해?”


“나한테 묻지 마.”

탐정 사무소 내부는 안쪽은 낭만 따위 없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배관 파이프가 터진 걸 제대로 못 고쳤는지 천장 한구석에서는 물이 새어나와 바닥에 놓은 양동이로 뚝뚝 떨어졌고 전구에는 날벌레가 꼬였다. 그 궁상맞은 풍경 속에서 뜬금없이 축음기 한 대가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있었다. 따로 말해줄 필요도 없지만 축음기는 상당히 비싸다.

하딘 대위가 축음기의 상표를 보고 말했다.


“모조품도 아니고 메디슨 스튜디오 정품이군. 분위기에 정말 안 어울리는데.”


히콕이 대꾸했다.


“제프 칼의 개인 소유품이오.”


“누구?”

하딘 대위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카르델은 그 말을 듣고 조금 경악했다.

“최정예 4인방 중 하나가 여기 있다는 소립니다.”


 같이 걸어가면서 히콕이 카르델의 말을 고쳐줬다.


“정확히는 이제 3인방이지.  사람은 죽었거든. 조 레오포드. 탐 칼리헬. 제프 칼까지 이 도시에 다 있어.”

카르델은 표정이 복잡했지만 나머지 일행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피카니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고용하려면 얼마나 필요합니까? 안 그래도 실력자가 절실했습니다.”

“글쎄. 워낙 제멋대로인 사람들이라.”

“무슨 뜻이죠?”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지.”


그들은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리도록 놓은 커다란 소파를 마련해둔 공간에 닿았다. 루나는 종일 남자들을 따라다니기만 하느라 무척 피곤했는지 자신의 소매 달린 로브를 끌어안고 크게 하품을 했다. 피카니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마법사님은 여기서 쉬고 계시죠. 가능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