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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화 〉[4권] 144회 - 마법사의 성물 (144/188)



〈 144화 〉[4권] 144회 - 마법사의 성물

브라우닝은 둘 다 가져가라는 손짓을 했다. 하딘이 물었다.

“둘  가져가도 되는 겁니까?”


“슬프게도 나조차 레버 액션의 높은 고장률은 막지 못했네. 대비하게 형제여.”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딘은 1895년형과 1894년형 소총 모두 양손에 들고 상대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브라우닝이 외쳤다.


“차례를 기다린 형제들은 한꺼번에 오시오! 갈 길이 급하다고 들었소!”


 그의 앞으로 카르델과 아비투스가 다가왔다. 아비투스는 어느 틈에 어디서 가져온 건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있었다. 아비투스가 정중히 말했다.


“드시겠습니까?”


“감사하네! 형제여!  그래도 피곤하던 참인데.”


브라우닝은 머그잔을 받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딱 마시기 좋은 온도였다. 브라우닝은 ‘미사’도 잊어버리고 상대에게 물었다.

“좋은 작품이군. 그대가 직접 만든 건가?”


대답은 카르델이 했다.

“이놈 입대했을 때 첫 보직이 취사병이었어요.”

아비투스가 투덜거렸다.

“그걸 왜 지금 말하냐. 아무튼, 제 지금 보직은 척탄병입니다.”
브라우닝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르바티아의 ‘아르디티’ 유격대 출신이라고도 들었네. 갑옷을 입고 험준한 지형을 돌파하며 기습하거나 가장 먼저 돌격하고 가장 마지막에 후퇴하는 용맹한 전사들이지.”

“연방군으로 전입하고 나서는 ‘헬파이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전 산탄총을 선호합니다. 선생님.”

브라우닝은 흐뭇이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거침없이 보급품 상자에서 총을 한 자루 꺼냈다.

“자, 이 복음을 쥐어보게. 어서. 작년에 갓 양산된 거야. 양산이 시작됐다는 건 성능이 보증되었다는 의미지.”

아비투스는 얼핏 보기에는 사냥용 엽총과 비슷하게 생긴 산탄총을 손에 들었다. 그는 처음 보는 총에 낯설어하는 시선을 보냈다.


“반자동 산탄총이야. 이제는 산탄을 속사하기 위해 1897식 산탄총의 ‘슬램 파이어’ 같은 번거롭고 위험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 탄창에 4발 들어가네.”


아비투스는 조금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거에 당했다가는 표현하기 싫은 꼴이 되겠군요.”

“천벌은 가혹할수록 교훈도 깊이 남는다네. 이제 시험 사격을 해보게. 점수는 매기지 않겠네.”

아비투스는 브라우닝에게서 사용법을 간단히 전달받고 약실에 탄을 밀어 넣었다. 카르델은 뒤에서 팔짱을 끼고 흥미진진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심호흡하고 사람 모양의 나무판을 향해 겨누고 방아쇠를 꽉 잡아당겼다. 납의 폭풍을 맞은 나무판은 윗부분이 사라졌다. 아비투스가 턱을 떨구고 아랫입술을 벌리며 경악했다.

“하나님 맙소사!”

브라우닝은 흡족해하는 반응을 나타냈다.


“자세가 훌륭하네! 주께서 말씀하시길. 힘은 빛을 만든다! 그리고  복음은 아주 힘차다!”

살짝 거리를 벌리고  광경을 보고 있던 레스가 의문에 찬 눈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있는 구절이에요?”

루나는 격렬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브라우닝은 보급품 상자에서 여러 가지 탄약을 하나씩 탁자에 좌르륵 늘어놓았다. 아주 거룩한 목소리로 브라우닝이 설명했다.


“12게이지. 20게이지. 슬러그탄. 고무탄. 빈백. 암염탄. 작열탄. 탄피는 모두 구리로 만들었지. 최고 등급을 받은 조병창에서 생산돼서 신뢰도도 높아.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마지막 문단에서 브라우닝은 살짝 짓궂게 발음을 굴렸다. 루나가 얼굴을 감싸고 뇌까렸다.

“오, 인류여.”


아비투스는 거북한 듯 말을 더듬거렸다.


“총부터 탄약까지 전부 귀한 것들인데 제가 다 받아도 될지 모르겠군요.”


“승리는 무기가 아니라 전사가 이룩하는 것이지. 나의 소임은 성도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니 형제는 부담가질 필요가 전혀 없네.”

아비투스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표정으로 허탈하게 살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나만 더 부탁드릴  있겠습니까?”

브라우닝은 긍정적인 눈짓을 상대에게 보냈다.

“쌍 총열 산탄총도 받아갈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작품을 모욕하기는 싫습니다만, 총이 고장 날 때를 생각해서 예비하고 싶습니다.”


기도문을 읊듯이 브라우닝은  짓궂게 미소를 지으며 흥얼거렸다.


“더블 배럴이 오리라. 더블 배럴이 오리라. 형제는 뭘 좀 아는군.”

그리고 보급품 상자에서 쌍 총열 산탄총을 하나 꺼내서 탁자에  올렸다. 고풍스러운 각인과 조각이 총몸과 총열에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개머리판에 뭔가 적혀있었다.

[Propius amici, inimicos propius]


아비투스가 실눈을 뜨고 글귀를 읽어보려다가 상대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적혀있는 겁니까?”

“고대어일세. 뜻은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욱 가까이.’”

레스가 이번에도 의문에 찬 눈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저것도 있는 구절이에요?”


루나는 눈가를 감싸 쥐고 신음을 흘렸다.


“아뇨…. 제가 알기로는 저건 르바티아의 유명한 마피아가 한 말이에요….”

피카니가 지나가는 투로 끼어들었다.

“제가 유머 감각이 남다른 분이라고 했죠?”

브라우닝은 아비투스의 옷에 성수를 뿌리면서 성호를 긋고 축복을 내려주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그리고 힘은 빛을 만든다.’ 형제에게 주의 도움이 함께 하시길.”


아비투스는 정중히 무기들을 챙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카르델이 앞으로 나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카르델 캐시디. 보직은 지정 사수입니다.”

“형제의 이야기는 들었네. 회개한 죄인이자 돌아온 탕아여, 무엇을 원하는가?”

“조준경만 달렸으면 화승총이라도 상관없어요.”


브라우닝은 너그러이 카르델의 빈정거리는 농담을 웃어넘겼다.

“허허허. 화승총에 맞아봐야 정신을 차릴 형제로군. 1903년식 스프링필드가 있는데 어떤가?”

카르델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쓰던 게 예전 모델의 스프링필드였죠.”


브라우닝은 상자에서 소총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군용 소총다운 묵직한 광택이 목재와 금속에 흘렀다. 카르델이 소총을 들고 다양하게 자세를 잡거나 노리쇠를 움직이는 동안 브라우닝이 설명했다.


“탈착 가능한 8배율 신의 눈. 안정적으로 반만 당기기 쉽게 개조된 방아쇠와 용수철 장치. 복음을 신뢰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특제 강선. 내가 좋아하는 호두나무로 만든 튼튼하고 묵직한 개머리판과 총몸. 빠른 차탄 장전을 위해 매끄럽게 다듬은 수제작 노리쇠. 주님의 융통성을 지닌 영점 조절 가능한 가늠자.”


카르델은 입가를 오므리며 감탄의 날숨을 뱉었다.


“여태껏 쥐어본 총 중에서 최고야.”


“저쪽으로 가서 영점을 조절하세 형제여.”

브라우닝과 카르델이 장거리 사격용 표적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품하면서 멍하니 구경하던 레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는  놀란 표정을 짓고는 단말마를 냈다.

“앗.”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레스는 시선을 무시하고 다소곳이 앉아서 쉬고 있던 타티아나에게 다가갔다. 타티아나는 겁먹고 눈을 크게 뜨며 몸속으로 떨었다.

“잠깐 따라와 줄  있어? 다른 사람이 듣는 곳에서 말하기는 거북한 용건이라.”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고 반사적으로 도움의 눈짓을 주변으로 흩뿌렸다. 하지만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눈은 닿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법한 거리로 둘은 움직였다. 레스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범한 어조로 말했다.


“의식이 잠깐 끊어졌을 때의 순간이 생각났어. 그렇게 긴장하지 마. 화내는 거 아니니까.”


“미안하다.”


타티아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아무튼, 대답부터 할게.  샤카자이아가 여자로 보여. 나도 혈기 왕성한 남자야. 샤카자이아는 객관적으로 매력적인 여자고. 남자들은 그런 상대가 근처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품어. 남자는 그런 생물이야.”


“무의미한 질문을 해버려서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그만해. 난  오해를 풀어주려고 부른 거야.”

타티아나의 금화 같은 노란 눈동자가 맑아졌다.

“오해?”


“그때 내가 잠깐 의식이 끊어질 정도로 화가 났던 건 너 때문에 그런  아니야. 내 과거 때문이지. 그건 너한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러니까, 이제 괜찮은 거지?”


타티아나는 조금 뜸을 들여서 말했다.

“넌 정말 특이한 남자야.”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누가 뭐라던 아무렇지도 않아.”

레스는 눈썹을 실룩이며 어깨를 살짝 으쓱이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았다.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너하고 고작 하루만 같이 지내봤는데도 기억에 남을 일이 정말 많아. 같이한 시간이 며칠 밖에  되는 데도 너희들이 유대가 어째서 그렇게나 강한지 이제 조금은 알게 된  같아.”

“기분이 풀렸다니 다행이네.”


그리고 레스는 돌아가자는 손짓을 했다. 타티아나는 평소답지 않은 눈으로 자리를 먼저 떠난 그의 등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동안 시험 사격과 영점 조절을 마친 카르델이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브라우닝에게서 축복을 받았다.


“주여 찬미 받으소서. 내 손에 전투를,  손가락에 전쟁을 가르치시는 분. 쓰인 대로 저들에게 심판을 내리소서.  복음은 그들에게 헛되지 않고 그들의 생명이다. 정확한 조준은 정직한 마음에서 나오니. 탕아여, 이제 그들의 방패이자 창, 눈이 되시오.”

카르델이 어색하게 성호를 긋자 브라우닝이 성수를 그의 옷에 뿌렸다. 바로 브라우닝이 루나를 보고 외쳤다.


“자매여! 기다리느라 수고하셨소! 어서 오시오!”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던 루나는  뜬금없이 자기를 부르나 영문을 몰라서 의문에 빠진 표정으로 자기를 가리켰다. 브라우닝이 손짓으로 재촉하자 루나는 마지못해 저쪽으로 갔다.

“호신용으로 권총이라도 가져가라는 건가요? 총은 거북한데.”


“실은 교황청에서 받아온 성스러운 물건이 하나 있소. 자매에게 필요할 거요.”

루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물? 교황청? 저한테? 대체 무슨 소리를….”


브라우닝은 루나의 질문은 모두 무시하고 탁자 위로 작고 낡은 나무 상자를  얹었다. 간단한 잠금장치를 풀고 덮개를 젖히니 작은  같은 물체가 상자 안에 들어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루나를 따라 와르르 몰려왔던 일행들이 그걸 보고는 다들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게 뭐야.”

카르델이 중얼거렸다. 뒤이어 하딘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외쳤다.


“저거 수류탄이잖아. 박물관에서 봤어. 200년쯤 전에나 쓰던 거야.”

루나의 얼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듯 표정도 사라졌다. 브라우닝이 경건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요. 바로 그 선대 용사 아서 왕이 직접 썼던 수류탄이네. 기록에 따르면 아서 아카수스의 동료 성녀 주니아와 대마법사 켈커트리가 힘을 합쳐서 만들었지.”


수류탄이 만들어진 역사는 길다. 근대 시기의 수류탄들은 쇠나 도기로 만든 용기 안에 폭약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무게가 상당했던 데다가 불안정해서 병사마다 지참시키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수류탄을 담당하는 병종으로 척탄병이라는 직책이 따로 생겼다. 척탄병들은 이 무거운 수류탄들을 잔뜩 짊어지고 먼저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 위험한 직책을 맡아야 했다. 그래서 척탄병이라 하면 용기 있는 병사라는 인식이 생겼고 척탄병이 맡는 임무가 사라진 지금도 단어 자체는 남아서 정예부대는 척탄병이라고 자신들을 자칭한다.

어쨌든 루나는 저 수류탄을 자기더러 어쩌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계속 가만히 있었다. 브라우닝이 헛기침하고서 목을 가다듬고 운을 떼기 시작했다.


“켈커트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걸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면  구절을 필수적으로 읊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역할을 맡는다니 조금 흥분되는군요. 어험! 어쨌든.”

루나의 눈이 점점 죽은 생선처럼 생기를 잃어갔다.


“성 칭기즈칸께서 수류탄을 높게 드시며 말씀하였다. ‘오, 주여, 이 물건에 축복을 내리시어 주님의 적을 산산조각 내소서’. 첫 번째로, 그대는 성스러운 안전핀을 뽑아야 한다. 그 후, 수를 헤아려라. 그 수는 수수께끼로 둘러싸여 있는데 단서는 둘 이상이자 넷 미만이다. 다섯은 아예 제외한다. 수를 헤아리고 눈에 거슬리는 자에게 던지면, 그 적은 뒈질 것이다.”


그리고 브라우닝은 상자의 덮개를 닫고 루나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그녀는 자기 얼굴을 감싸 쥐고 조금 흐느끼는 듯이 몸을 떨다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에게도 얼굴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상자만 들고 자리를 옆으로 비켰다. 일동은 가만히 그녀의 등만 바라보았다. 피카니가 손을 들고 브라우닝에게 물었다.

“그 성스러운 수류탄의 위력이 얼마나 됩니까?”

“아주 무시무시한 괴물을 쓰러트렸다는 기록만 있소.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효력이 떨어졌지만, 뛰어난 마법사가 관리를 해주면 아서 왕이 썼다는 그 위력을 볼 수 있을 거요.”


하딘이 말했다.

“여기서 그 위력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군요.”

“당연하지. 하나밖에 없는 거니까!”

브라우닝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상대의 속내는 눈치 못 채고 당당하게 말했다. 레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인류의 앞날은 어둡다.


다들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브라우닝이 그들을 향해 불러세웠다.

“어디 가는 건가 사쿠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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