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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4화 (14/150)

14화 시공을 초월한 인연

미치겠다. 김시혁이라는 한국인은 나를 알고 있는데, 나는 전혀 모른다. 입이라도 좀 열리면 좋으련만…….

“이제 시작이다. 친구!”

- …….

“우리는 전설이 될 거야. 같이.”

- 안 돼!

마운은 고함을 질렀지만 점점 시야가 멀어지고 있다. 청년이 오른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빛을 잃어 가는 목걸이를 왼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 조금만, 조금만 더…….

외쳤지만 마술처럼 화면이 닫혔다. 마운은 순간 검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헉!’

눈을 뜨자 보이는 처참하게 망가진 몸.

피로 칠갑을 한 자신이 보였다.

‘꿈이었나? 아냐, 절대 아냐. 그토록 생생한 장면들이 꿈일 수 없어.’

마운은 억지로 손을 들어 목을 더듬었다. 빨간 실에 매달린 옥 조각이 잡힌다.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유일한 물건…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또 할아버지는 먼 조상에게서.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다 생각해 왔다. 단돈 일 푼에도 사 주지 않을 옥 조각.

그런데 김시혁의 목에서 빛을 내던 것과 똑같다. 꿈이 사실이라면 옥은 한 쌍이었구나. 어떤 연유로 김시혁이 하나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빛을 내지 않는다.

너무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그리고 아쉽다.

큭큭큭…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죽거나 감옥에 처박힐 텐데.

* * *

“당장 내놓게.”

“총장님, 이건은 내가 마음대로 처결할 일이 아닙니다. 뻔히 알면서 저를 닦달하지 마세요.”

“난 그런 거 몰라. 내 제자를 데리고 가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답답하군요. 그깟 학생 하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습니까? 링다오(領導 지도자)와 대적하지 마십시오.”

“왕 처장, 자넨 내가 아끼던 제자고, 지금 고문당하는 학생은 자네의 후배일세. 다시 생각하게나.”

“총장님,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링다오는 잔혹한 분이에요.”

“왕 처장, 모든 책임은 내가 지지.”

“총장님, 그냥 풀어 주면 제 모가지가 간당간당합니다. 무슨 명분이 있어야…….”

“이노옴!”

결국 우 총장이 폭발하고 말았다.

공안 처장실 창문이 깨지면서 의자가 길로 튕겨 나왔다.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말단 공안 책상 위의 전화기도 길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공안들도 차마 우 총장의 몸까지 손을 댈 수 없는 입장이다. 그도 베이징에 상당한 꽌시를 가진 인물임을 아는 까닭이다.

삽시간에 폐허처럼 변해 버린 처장실.

- 됐나?

- 조금 더. 국장 내려올 때까지. 아직 멀었어요.

한 번 더 처장실의 온갖 잡다한 물품들과 서류 뭉치가 깨진 창문 밖으로 던져졌다. 누가 위세 등등한 공안국에서 이런 패악질을?

공안국의 모든 시선이 처장실로 모였다.

“이게 무슨 짓이야?”

“국장! 왜 아무 죄도 없는 학생을 잡아 두고 있는 거요? 당장 석방하시오.”

“우 총장, 당신 지금 공권력에 정면 도전하는 거야?”

“흥! 공권력이 인민을 죽이라고 있는 것인가? 당신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공권력으로 포장하지 마시오.”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맘대로 하시고 제자나 풀어 주구려.”

공안국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막가파도 유분수지.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던 일인데 우 총장이 깽판을 치는 바람에 틀어졌다. 지켜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졌다.

빌어먹을…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소문만 무성해질 것이다. 벌써 감찰반 놈이 1층 도로에서 깨진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다.

아들의 부탁을 받고 아무 꽌시도 없는 촌놈 하나 조지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로 생각했다.

우 총장이 이렇게 드세게 나오기 전까지는.

“우 총장, 두고 보자. 내 오늘 일은 결코 잊지 않을 거야.”

“그러쇼, 공안국장 얼굴은 안 보고 사는 게 만수무강에 좋겠지만, 꼭 두고 보겠다면 언제든 사양하지 않으리다.”

“왕 처장, 내보내.”

“…예, 국장님.”

우 총장과 왕 처장의 눈이 슬쩍 스쳤다. 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고마워. 왕 처장.

- 아이고, 총장님. 몸 조심하십시오. 국장이 벼르고 있을 겁니다.

우 총장은 피투성이가 된 마운을 직접 부축하고 공안국을 나섰다. 이런 만행이 자행되는 중국의 현실에 치가 떨렸으나…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게 슬펐고, 망가진 애제자의 모습에 또 슬펐다.

* * *

색다른 경험이었다. 시혁에게도.

그리고 이제 조금 알았다. 한 걸음 더 들어간 것이다. 옥 목걸이의 비밀에.

오랫동안 꿈을 꾸지 않다가 불현듯 보인 마운. 다른 날과 달리 주변의 풍경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마운만 보였다.

그의 처참하게 뭉개진 모습,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철창 속에 버려져 있었다.

분명히 보인다. 지금 그의 목 언저리에서 옥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처음이다. 마운을 몇 번 보면서 그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렇게 빛이 나는 건 시혁도 처음 보았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왜 저 목걸이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일까?

그렇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깨려고 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구나.

그런데.

마운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비록 형체는 없을 지라도 시혁은 마운을 마주 보았다.

- 친구, 보이나?

- …….

대답을 듣기도 전에 꿈에서 튕겨 나왔다. 비닐하우스를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 매번 징징거리는 소리를 하던 무진시 총무과장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마운과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몸을 일으키던 시혁은 문득 목에 걸린 목걸이가 변한 것을 보았다.

빛이 난다!

아… 내 목걸이도 마운처럼 황홀한 빛이 나는구나. 이제껏 자신의 목걸이가 빛이 난다는 사실을 몰랐다. 항상 잠에 빠진 후에 발광현상이 있었으니까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 꿈속에서 본 마운의 목걸이가 처음으로 빛을 발했는데… 지금 잠에서 깬 시혁의 목걸이도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다.

옥 조각의 한가운데 글자가 선명히 드러난다. 맞았어. 이건 구름 운(雲)자야.

대충 무진시 과장을 보내고 시혁은 멍했다.

그 순간.

허공에… 희미하게 보이는 저건!

옥 빛이다.

옥 빛!

왔구나. 마운… 우린 드디어 이렇게라도 볼 수 있게 되었어.

“헬로우 마운!”

* * *

아직도 꿈만 같다. 잠시 잠깐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내가 꿈 속에서 마운을 향해 의사를 전할 수 없었듯이 마운도 그랬으리라.

내가 그를 보고 있지만, 서로 소통할 수 없었듯이…….

아직 때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언젠가, 언젠가는 이렇게 꿈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날 것이다.

내년이면 전 국민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발표된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도… 몇 년 후면 정식 수교를 한다.

멀지 않았다. 우리가 만날 날이.

“아이고, 아직 새벽 3시밖에 안 됐는데 누가 이렇게 요란을 떨어?”

하우스 천막을 들치고 나오는 공 처사 때문에 상념이 깨졌다.

“아저씨, 좀 더 자지 그랬어요?”

“이리 시끄럽게 떠드는데 어찌 잠을 자누? 결국 만 장을 더 줬네?”

“예, 오늘 오후에 내무부 장관이 방문한다는데 박절하게 거절할 수 없잖아요?”

“그래, 잘했다. 이제 날씨가 슬슬 더워져. 계절의 여왕 5월도 다 갔구나. 벌써 6월달이다.

“우리 신라면 끓여 먹을까요? 잠도 다 깼는데.”

“시혁이 너, 스님이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또 신라면이냐?”

“하하하. 지금까지 라면과 달리 매콤한 맛을 내는 게 입에 착착 달라붙잖아요?”

“시혁아. 5월 한 달 동안 진짜 정신없었다. 예약을 거의 마쳤으니 한동안 조용하겠지. 좀 무섭구나. 너무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니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껏 정신없이 팔기만 했는데 제대로 정산을 해 볼까요?”

총 240만 장이 팔렸다. 물론 출하된 물량은 이만큼 되지 않는다. 예약분까지 합한 양이지만 어차피 돈은 다 받았다.

세상에 이런 장사가 어디 있나? 물건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먼저 전액 입금을 하고, 자신들 차량으로 인쇄소에서 대기하다가 실어갔으니 물류비 한 푼 들지 않았다.

240만 장이면 한 장당 4,500원이니까 총 108억.

여기에 올림픽 조직위에 상표 사용료로 1,500원씩 납부할 금액이 36억.

폴리 원단값이 4억 8천.

인쇄 비용은 애초에 200원씩 계약했으나 야간 작업 비용까지 합해서 400원으로 9억 6천을 지급했다.

이게 전부다. 세금도 없다. 올림픽 특별법에 의해 관련 사업자에게는 면세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다.

외상? 미친 소리하지 마. 조금이라도 물량을 더 확보하려는 시, 군의 틈바구니에서 누가?

어음? 돌았냐? 저 뒤로 순번이 밀려서 시장 모가지가 날아가고 싶어? 현금과 국고수표 아니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개시 첫날, 비료 포대 수십 개를 들고 은행으로 들어섰을 때, 지점장과 직원들은 거품을 물었다. 지점장도 말로만 들었지 국고수표를 처음 본다며 납작 엎드렸다. 재신이 왕림하자 숨을 죽이고 안절부절했다.

“저기… 저기… 고객님, 아니 사장님. 이게 다 뭔지?”

“돈이죠.”

“…압니다만, 이걸 어쩌라고…….”

“은행에 왜 왔겠습니까? 예금이죠.”

“아이고, 아이고… 그럼요. 은행에 예금하는 건 당연합니다.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조상님이 보이더니… 아이고 하나님, 부처님. 공자님.”

“국고 수표는 바로 추심을 돌려주시고요. 현금은 백 원 한 푼도 차이가 없도록 카운트해 주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기 다 마칠 때까지 커피나 드시면서 편하게 지켜보십시오.”

연신 하나님, 부처님, 공자님을 부르는 지점장과 달리 은행 직원들 안색은 노랗게 변했다.

- 우린 다 뒈졌다!

지폐 자동 계수기도 없던 시절이다. 저 돈을 다 세려면 손톱이 빠지도록 지랄을 해도, 밤을 꼬박 세어도, 다 못 한다에 아들 거시기를 걸 수 있다.

그게 대수냐? 돈벼락이 들어왔는데. 지점장은 주변의 다른 지점 행원들을 다 불러 모았다.

불광동 보람은행은 경찰차가 입구를 틀어 막았다. 결국 다음 날 오전까지 현금을 세느라 은행원들은 날밤을 깠다. 손가락에 피멍이 들 정도로.

시혁도 공 처사도 은행에서 같이 밤을 보냈다. 은행이 뒤로 돈을 빼돌리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첫 수익을 결산하기 위해 지켜보는 일은 흐뭇하기만 했다.

그렇게 계산을 한 결과 최종적으로 남는 금액은… 55억.

“…….”

“…….”

시혁도, 공 처사도 할 말을 잊었다.

잭팟을 예견했던 시혁조차 이정도일 줄 몰랐다. 너무 큰돈을 일순간에 벌었다.

상상할 수 없는 돈이다. 서울에서 가장 핫한 압구정 현도 아파트 30평을 이번에 벌어들인 55억으로 처바른다고 가정할 시 딱 110채를 살 수 있다.

대기업 대졸 신입 사원 초임 월급이 삼십만 원 선. 55억을 벌려면 한 푼 쓰지 않고 모아도 1만 8천 년이 걸린다.

삼송전자 사장이 일 년에 삼억을 받는다는 사실이 뉴스에 나오던 때, 시혁은 한 달 만에 55억을 벌었다.

실로 어마무시한 돈이다.

무섭다.

미래의 지식과 정보를 알고 있다는 치트 키가 이토록 무서운 거구나. 미리 선점하고, 미리 투자하고, 미리 포섭하고, 미리 앞질러 버리면…….

이 세상을 훔칠 수도 있겠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구상을 했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수립했지만, 처음 시도한 사업에서 이정도 큰 효과를 낼 것이라 예상을 못했기에 살 떨리는 것이다.

혹시 나의 존재가 역사를 비틀고 세상에 재앙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좀 더 보자. 몇 번 미래의 치트 키를 써보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겨우 첫발을 떼었다.

돈도, 인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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