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56화 (57/222)

56. 인연의 마무리

동이 튼다.

어둠이 사라진 자리에 빠르게 빛이 들어찼다.

맹렬히 싸우던 악마의 권속들도 바닥에 허물어지고.

그제야 학생들은 안심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레아는 악마에게 홀렸었던 학생 중 하나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악마의 힘을 받아들였다.

신체는 괜찮을지 몰라도 부정한 감정이 휘젓고 간 정신은 많이 상처 입었겠지.

심하면 기억을 모두 잃거나 폐인이 될 것이고. 운이 좋아도 정령술이나 마법, 검광을 피워내는 건 앞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악마에 홀렸다는 사실은 꼬리표처럼 남아 평생을 따라다닐 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혹한 얘기지만, 이들은 결국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고. 같은 학생들을 공격하고 살해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이다.

“아, 악마가 사라졌어.”

“아침이 와서 그런 건가?”

“아니. 누군가 쓰러트린 거야. 대체 누가…….”

“내가 아까 보기로는 그 검은머리가…….”

“어쨌든. 우리, 산 거지?”

살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학생들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 나잇대 아이들이 지을 법한 순수한 웃음이었다.

반면, 교수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어떻게든 악마를 지옥으로 돌려보냈지만, 이제부터 뒷수습할 걸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교장 피에트로는 전투를 치르느라 엉망이 된 몸을 성벽에 기대었다.

“후우. 말년에 이런 일이라니. 차라리 전투 중에 전사했다면, 명예롭게 죽을 수 있었을 텐데.”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피에트로 님이 없으면, 대체 누가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한 교수의 질문에 피에트로가 허허 웃었다.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고 보시오?”

“…….”

“대체 몇 명의 학생이 죽었는지. 실종됐는지도 알 수 없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우리를 씹어먹으려 할 테지. 황태자께서도 가만히 있지도 않을 테고 말이오.”

피에트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우울한 얼굴로 그 옆에 서 있던 교수가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 생각하십니까? 아시다시피 악마 소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교도들도 긴 시간과 절차를 거쳐, 겨우 가능한 게 바로 악마 소환인데…….”

“어떻게라…….”

잠시 그 의문을 입속에서 되새기던 피에트로가 말했다.

“질투. 열등감. 절망. 그런 어두운 감정들이 섬에 수백 년간 쌓였을 거요. 닳고 닳은 노인이 아닌, 감정이 풍부한 아이들이니 그 양은 적지 않을 테고. 어떻게가 아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이치에 맞을 것이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교수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 말은…… 지금껏 해온 저희의 교육 방식이 틀렸다는 겁니까?”

어딘가 간절한 얼굴의 교수를 향해, 피에트로는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어떤 일을 한 가지 단면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오.”

피에트로는 저 멀리 카스크 내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이 학사가 이렇게 된 건, 악마와의 전쟁 이후였소. 사람들은 배니아 로웰의 놀라운 영웅담을 기억하오. 하지만 그 필사적인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어 나가던 다른 학생들은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았지.”

지금처럼 방비가 되어 있지 않는던 과거. 그때 벌였던 악마와의 싸움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웠을까.

살아남은 학생보다 죽은 학생이 많았고.

그때의 아픔은 남겨진 자들의 마음속에 평생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직접 대악마의 목을 베고. 사람들이 무적의 초인이라 불러 마지않던 배니아 로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다.

“악마를 베고 돌아온 배니아 로웰은 평생을 학사의 발전을 위해 몸을 바쳤소. 그는 언제든 다시 악마의 군세가 쳐들어올 수 있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지. 매일 밤 꿈속에서 악마와 비참하게 죽어가던 친우들의 비명이 들렸다더군.”

전쟁을 겪어본 군인이 흔히 그렇듯. 배니아 로웰 역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 어느 역사책에도 그런 내용은 실려 있지 않았지만…….

그는 학생들이 강해지길 원했다.

강해져서, 자신의 친우들처럼 비참하게 죽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섬을 요새화하고, 성벽을 짓고, 아이들을 철저히 차별해 경쟁을 부추기고.

지금처럼 기형적인 형태의 코르디스로 만들었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던 영웅의 의외의 일면을 본 교수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배니아 로웰은 완벽한 인간으로, 사후에 시성되어 천국에서 신의 종복으로서 영광의 나날을…….”

“완벽한 사람이 어딨겠소. 신이라면 모를까.”

피에트로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악마를 막기 위해 만든 환경이 도리어 악마를 불러들이다니. 배니아 로웰도 안쓰러운 사람이군.’

벌써 여름인데, 왜이리 새벽 공기는 차가운지.

피에트로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

이곳을 떠야 한다.

악마와의 전투로 초토화된 대지에 주저앉아 숨을 고른 이안이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얻어야 할 건 다 얻었어요.’

성검 조각을 얻었으며 소환된 악마도 저지했다.

동료로 들이고 싶은 캐릭터들과의 친분도 어느 정도 다졌으니, 목표는 완수한 셈이다.

그럼 이제 후딱 자리를 떠야 한다.

‘괜히 계속 있다가는 피곤해질 뿐이에요. 저는 여기서 싸우다가 죽은 거로 하면 되겠죠. 그러면 쓸데없는 추격도 피할 수 있고요.’

악마와 관련된 일은 원칙적으로 교단에서 조사를 나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피곤하고 귀찮은 일을 겪으며, 시간을 날려 먹게 될까.

하지만 당사자가 사망한 거로 처리된다면, 공식적으로 이안을 추적하기도 힘들어진다.

이안이 홀로 이루어낸 업적 위에 여러 놈이 숟가락을 얹겠지만. 오히려 그쪽에 시선이 쏠려 있는 게 이안에게는 더 편하다.

슥슥.

이안은 로브를 벗어 상처에 문질러 피를 묻힌 뒤.

대충 적당한 자리에 던져두었다.

이 정도면 아마 죽었다고 믿어주겠지.

이안은 여벌의 후드를 머리에 깊이 눌러 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사람들이 몰려올 것 같았다

‘짐은…… 뭐. 꼭 필요한 건 다 들고다니니까. 그냥 가면 되겠죠.’

밤 사이의 이변을 알아채고, 코르디스를 향해 다가오는 배들이 보였다.

저 중 하나에 숨어들어 탈출하면 될 것이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이안이 앉아 있는 구덩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야! 계속 찾았잖아!”

플로라가 찌푸린 인상으로 소리쳤다.

이안은 실실 웃으며 답했다.

“왜. 걱정했어?”

“너 같으면 걱정 안 하겠냐?”

보기 드물게 솔직하게 말하는 플로라에게 이안이 태평하게 대답했다.

“멀쩡하다. 그나저나 너부터 신경 쓰지? 엉망진창인데.”

그제야 플로라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가혹한 전투에 늘 입고 다니는 드레스는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헤져 있고.

새하얗던 장갑은 피와 그을음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평소 플로라가 어떻게 다니는지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플로라는 당황하는 대신, 양손을 허리에 짚고.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흥. 이게 바로 영광의 흔적이라는 거야.”

그 모습을 보며 이안은 느꼈다.

‘성장했구나.’

플로라는 불안정한 캐릭터이다. 불을 다루는 마법사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플로라의 가문.

그 저택의 지하에는 어두운 진실이 잠들어있다.

그렇기에 플로라는 언제든 타락할 수 있고, 플레이어의 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넝마가 된 옷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플로라를 보면…… 그럴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놓였다.

플로라는 잔뜩 고양된 얼굴로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그 악마. 네가 쓰러뜨린 거 맞지? 이건 엄청난 업적이야! 당장 귀족 작위를 받아도……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이안이 부드럽게 끊었다.

“나 떠난다.”

“어?”

갑작스러운 말에 플로라는 이해하지 못했는지, 눈동자만 또르르 굴렸다.

이안이 다시 말했다.

“코르디스 떠난다고.”

“어…… 왜? 왜왜! 왜!”

“여기서 할 일 다 해서.”

플로라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혼란스러운 얼굴.

대체 왜 이안이 떠나야 하는지 이해하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이안은 그런 플로라의 어깨를 웃으며 두드려주었다.

“열 밤만 자고 오면 돌아올게. 착하게 지내고 있어. 알겠지?.”

“…… 내가 애야? 그리고 네가 떠나던 말던 나랑은 뭔 상관?”

그 뻔한 거짓말에 이안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의 플로라는 아직 어린애였다.

하지만 성장한 지금은…….

이안은 마무리로 뭔가 멋있는 말을 할까 고민하다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해야 할 말만 남겼다.

“아무튼. 나는 싸우다가 죽은 거로 해줘.”

“.....왜.”

“귀찮은 일에 시달리기 싫어서.”

플로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안은 그런 플로라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너네 저택에서 보자.”

“…… 내 저택은 왜.”

“할 일이 있어서. 문 정도는 열어줄 거지?”

“흥. 오던가 말던가.”

그렇게 말하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는 게 너무나 플로라다워, 이안은 피식 웃었다.

플로라를 지나친 이안은 구덩이 위로 올라갔다.

레아가 그곳에 서 있었다.

“본의 아니게 이야기를 엿듣고 말았네요.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떠난다고요?”

“예.”

레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악마를 토벌하면 대단한 명성과 명예를 누릴 수 있을 텐데…… 그런 것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건가?’

일찍이 이런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던가?

이안의 행동은 언제나 레아를 감탄하게 했다.

레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쉽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레아가 악수를 건넸고. 이안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럼. 다음에 뵙는 거로.”

“예. 반드시.”

그걸로 충분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레아와는 이 정도 인사가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드를 눌러쓴 이안은 등을 돌려 항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레아는 그런 이안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설령 당신이 그런 것들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이름이 묻히게 두지는 않겠어요. 그리고…… 이제 저도 변해야겠죠.’

그런 레아의 다짐을 알 리 없는 이안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저 멀리서 학생들이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는 마리와 그렉, 마틴도 있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

이안은 손이라도 흔들어줄까 하다 그만두었다.

‘맞다. 나는 지금 죽어 있는 상태였지. 어쨌든, 살아남았다니 다행이네요.’

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가는 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여기서 쌓은 인연은 대강 마무리된 듯싶다.

이안은 걸음을 서둘렀다.

갓 항구에 도착한 배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페어윈드 영지의 병사들도 있어, 쉽사리 뚫고 갈 수가 없었다.

수상쩍게 주위를 배회하는 이안을 발견한 한 병사가 다가왔다.

“뭐야 넌.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얼굴도 안 보이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고.”

“어…….”

“일단 수상하니 따라와라.”

누군가의 의심을 사기에 딱 좋은 모습 덕분에 잘못 걸리고 말았다.

이안이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던 그때.

휘오오.

세찬 바람의 병사와 이안 사이에 맴돌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헤더 페어윈드가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병사는 헤더를 곧장 알아보았다.

“도, 도련님.”

“이 분은 급한 일 때문에 도시로 가야 합니다. 제가 보증하는 사람이니, 의심은 거두세요.”

“알겠습니다. 도련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병사는 한 치의 의심 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떠나가 버렸다.

헤더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떠나는 거군요? 그것도 몰래.”

“예. 도와주신 건 감사합니다.”

“뭘요. 이 정도 가지고.”

감사를 표하는 이안에게 헤더가 말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내심 기대했었습니다. 이 딱딱하고 가라앉은 코르디스에, 새로운 바람이 되어주기를. 뭐, 예상했던 방향과는 다르지만, 훌륭히 해주셨네요.”

그 뒤로, 헤더와는 몇 마디를 더 나누었다.

헤더는 기꺼이 이안이 죽었다는 증언에 입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후배님의 앞날에 순풍만이 불기를 바랄게요.”

아쉽지만. 오래 얘기할 시간은 없었다.

이제는 진짜로 촉박했다.

이안은 헤더의 배려로, 항구에 도착한 배 중 하나에 올라탔고.

배는 금방 항구를 떠나 도시로 향했다.

***

라이젤과 루크는 저 멀리 정박해 있는 배들을 보고 있었다.

저 정도 지원이면, 굳이 이 둘이 직접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다닐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지금 루크가 남을 도와줄 상태가 아니기도 했고.

라이젤이 옆에 있는 루크에게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할 거야? 이제 손 없는 병신이니, 검은 내려놓는 건가?”

루크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악마의 그림자가 결사대원의 발목을 자를 때.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했던 루크는 그 그림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땅을 짚었고…… 그대로 깔끔하게 오른손이 잘려나갔다.

루크는 라이젤을 쳐다보았다.

일부러 거슬리게 말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몰라. 야만인아. 이제 너한테 용무 끝났으니까 꺼져.”

“쯧쯧.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그렇게 말한 라이젤이 떠나갔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루크의 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홀로 남겨진 루크는 학사를 향해 걸었다.

들것에 실려 가는 부상자들이 눈에 띄었다.

‘내벽의 방어시설을 가동한 것도 그놈 덕이라 했던가?’

대체 이안이 몇 명의 목숨을 살린 걸까. 이안이 없었다면, 대체 몇이나 살아남을까.

아니,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큭.”

놈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 사실이 너무 분해, 루크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의심이었다.

루크의 뛰어난 직감은 이 섬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렸고.

당연히 의심의 화살은 이안에게 향했다.

그래서 일부러 마리와 그렉, 라이젤을 보내 시비를 걸고. 감시하게 한 거고.

근데 알고 보니 범인은 따로 있고, 모든 사건은 이안이 해결해버렸다.

그토록 싫어하고 하찮게 여기던 이안이.

세상에 이렇게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루크는 지친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찾아가던 장소로 향했다.

전설적인 영웅. 배니아 로웰의 동상.

루크는 배니아 로웰의 늠름한 모습을 고개를 들어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

모두의 칭송을 받고 싶었다.

위대한 업적을 세우고 싶었다.

영웅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그건 열등감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배니아 로웰은 이제는 한물간 구시대의 영웅 취급을 받고.

전대의 영웅들의 후손인 레아와 플로라는 승승장구했으니.

자신이 그 모두를 제치고 저 위에 우뚝 서면. 자신이 좋아하던 배니아 로웰도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웅은 따로 있는 모양이야.”

루크는 동상에 기대, 스르르 주저앉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이제 검은 못 잡는 걸까?

그런 의문들이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지금은. 지금만큼은 그저 쉬고 싶을 따름이었다.

***

이안은 멀어져가는 코르디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일의 범인은 로든이었지.’

대체 왜 게임에서는 로든이 범인이란 걸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그냥 맥거핀으로 남기려고?

아니면 정말로 제작자가 대충 만들어서?

고민하던 이안은 이내 답을 내렸다.

‘어쩌면 진짜 범인은 로든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려나.’

편견과 차별. 엄격한 학사의 분위기.

일을 벌인 것이 로든이었을 뿐. 로든이 아니었어도 언젠가. 다른 누군가가 똑같은 일을 벌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진짜 범인은 로든이 아니라고. 그 주위의 모두가 공범이라고 제작자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뭐. 나야 모르지.’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안은 멀어지는 섬을 보다 눈을 감았다. 딱히 감상에 젖거나 아쉬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있어야 얼마나 있었다고.’

그것보다는 모든 목표를 완수했다는 충족감이 더욱 컸다.

실력과 성검. 동료까지.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다음에 갈 곳에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골치 아프지만. 벌써부터 머리 썩힐 필요는 없겠지.

이안은 가볍게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 기쁜 건. 동료 예정인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거겠죠. 아주아주 큰 수확이에요.’

솔직히. 혼자서 악마를 사냥할 생각을 하면 막막할 때가 많았다.

옆에 의지가 되는 동료들이 같이 서주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그런 이안에게, 잠시 주저하던 이네스가 말했다.

[하지만 이안. 저는 동료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에요. 이안이 홀로 대악마를 벨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노력해보고, 안 되면 그때가서 동료를 찾아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예전부터 이네스는 동료를 구하는 걸 꺼려하는 기색이 있었다.

확실히. 동료에게 의지하면 이안의 성장은 더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안이 느끼기에, 이네스가 반대하는 건 단지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네스의 과거에 관련이 되어 있을 문제.

그걸 지금 건드릴까?

아니. 아직은 이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안은 어떻게 이네스를 설득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동료가 필요한 가장 실리적인 이유를 설명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동료는 꼭 필요해요.’

[그건 왜…….]

‘제가 했었던 게임에서는 최종보스에게 꼭 다섯 명의 파티를 짜 도전했었는데…….’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이어 말했다.

‘그중에서 반드시 한 명이 죽었거든요.’

이 망겜은, 끝까지 플레이어를 호락호락하게 놓아주는 법이 없다.

결코.

[그러면 이안이 동료를 모으는 이유는…….]

“뭐. 그것도 먼 훗날의 일이죠. 그 전에 갖춰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고요. 그러니 다음 목적지는…….”

뜸을 들이던 이안이 말했다.

“감옥으로 갑니다.”

이안

불길한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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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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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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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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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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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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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정령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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