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197화 (198/222)

197. 싸움이 끝나고(2)

꿀꺽.

구슬을 삼키고 잠시 동안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랫배가 뜨거워지면서 온몸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끄읍.”

이안은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내쉬었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강대한 힘이 몸속에서 휘몰아쳤다.

새로운 힘이 혈관을 타고 빠르게 질주했고, 온몸의 장기가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이 엄습했다.

실제로 고통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이안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내장이 상했다는 증거였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이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 정신 차려요! 몸속의 기운을 어떻게든 제어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마, 말은 쉬운데…….”

이안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입술이 피가 나게 악물었다.

그리고 집중했다.

‘기운을 제어한다…….’

몸에서 두 가지 힘이 충돌하고 있었다.

이안의 원래 힘과 흑기사의 힘.

둘은 주도권을 쥐기 위해 서로 얽히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다.

절대적인 양으로는 이안의 힘이 더 컸다.

하지만 흑기사의 힘은 양이 적은 대신, 훨씬 더 농밀했다.

두 힘이 연신 부딪힐 때마다 내장과 핏줄이 터져나갔다.

이안은 정신을 집중하며 어떻게든 그 둘을 제어하려 했다.

‘씁. 더럽게 어렵네.’

그건 마치 혈관에 흐르는 혈액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듯한 작업이었다.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불가능한 걸 해내야 했다.

이안은 눈을 감고 더욱 집중력을 올렸다.

이네스는 그런 이안의 어깨를 잡고 차분히 설명했다.

[온몸의 신경을 깨워야 해요. 정신을 집중하고, 새로 들어온 힘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존의 힘과 합쳐야 해요.]

“…….”

[급하면 안 돼요. 뜨거운 수프를 마신다고 생각해요. 천천히. 열을 식혀가며 조금씩 먹듯이 생각해요. 어느 간을 넘기면 굉장히 쉬워질 거예요.]

이안은 대답 없이 이네스가 시키는 대로 했다.

머릿속에 자기 몸속을 떠올렸고, 두 가지 색의 기운을 강하게 이미지 했다.

한쪽은 이안의 회색 기운.

다른 한쪽은 흑기사의 검은 기운이다.

두 기운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은 채, 마치 강물처럼 혈관을 내달리고 있었다.

이안은 그 두 가지 색의 강물이 서로 섞이는 상상을 했다.

빠르지는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 가지 색이 얽혀갔다.

“윽!”

이따금 검은색 강물이 튀어 오르고, 그에 맞서 회색 강물도 튀어 올라 몸을 상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이안의 입에서는 핏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안은 집중을 잃지 않고, 다시 두 강물이 섞이도록 조종했다.

길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기껏 새로 받은 옷의 앞섬이 땀과 피로 범벅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흑기사와 싸우는 일만 하겠는가?

이안은 몰려오는 격통 속에서도 의지를 놓지 않았다.

게다가 이안은 흑기사와의 싸움 이후, 더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열망에 불타고 있었다.

‘게임에서 정해진 걸 바꾸려면 이 정도로는 턱도 없어. 더 강해져야 해.’

에스테반을 잃고. 다시는 이번 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특히 동료들은…….

그렇기에 이안은 필사적으로 흑기사의 기운을 제어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 작업한 끝에.

두 기운은 차츰차츰 섞였고, 이내 하나가 되었다.

급한 불을 끈 이안은 한시름을 놓았다. 이네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어요. 아직 완벽하게 합쳐지지는 않았지만,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에요.]

기진맥진해진 이안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새로움 힘을 느끼니, 꽤나 뿌듯해졌다.

‘죽어서도 이 정도의 힘을 남기다니…… 흑기사는 흑기사네요.’

[그간 먹어온 영혼들의 힘을 비축해뒀던 거겠죠.]

흑기사의 악행으로 모인 힘들이 결국 이안의 힘이 되었다.

꽤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이안은 바닥에 늘어진 채로 슬며시 눈을 감았다.

또다시 너무 많은 힘을 써 기진맥진했다.

“그럼 또 한숨 자볼…….”

“이안. 왜 불렀는데 대답을 안 해.”

갑자기 문이 열리며 플로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봤다.

뱉어낸 피로 엉망이 된 이안의 모습이.

“아 이건…….”

플로라가 굳었다.

이안이 혹시 오해할까 해명하기도 전에 플로라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방을 나가 버렸다.

“스, 스텔 양! 이안이 죽으려 해!”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

거울 속의 아비게일은 이안을 미묘한 눈으로 훑어봤다.

“……많이 다치셨습니까?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그런 건 아닌데, 워낙 호들갑을 떨어대서 말이죠. 이거 아니었으면 침대에 한 일주일은 꼼짝없이 묶여 있었을 수도 있어요.”

이안은 온몸을 감은 붕대를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외쳐대던 동료들의 잔소리가 귓속을 웅웅 울렸다.

아비게일은 이안의 상태가 괜찮다는 것에 안도하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녀의 눈 밑 다크서클이 저번보다 더욱 짙었다.

어지간히도 바쁜 모양.

이안은 그런 아비게일과 함께 여러 일에 대해 상의했다.

가장 첫 번째는 황제 쪽의 동향이었다.

“황제는 테이오스와 흑기사와의 연관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축하를 건네며, 교단에 초청장까지 보냈죠.”

“나보고 황궁에 오라고요?”

“그렇습니다.”

“함정이네요.”

“함정이죠.”

황궁은 적지다.

그곳에 걸어 들어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아비게일이 말했다.

“지금은 흑기사와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어 요양이 필요하다고 전해두었습니다. 대놓고 거절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요.”

“황제에 대한 사람들의 여론은 어떻죠?”

“반신반의하죠. 이번 사태에 테이오스까지 등장한 게 특히 컸습니다. 일반 백성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그렇다면 그 위에 위정자들은 이미 전말을 짐작하고 있다는 거였다.

누가 자신들에게 흑기사를 보내 암살하려 했는지를.

“특히 텔 왕국의 국왕이 격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제국에 더 제대로 된 해명을 요구하고 있죠. 황제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텔 왕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자기 목숨에 집착하는 법.

흑기사에게 죽을 뻔한 경험은 국왕에게 분노를 심어주었을 것이다.

다른 왕국들과의 전쟁은 제쳐둘 정도의 분노를.

‘괜찮네.’

아비게일의 설명에 따르면 전체적인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영웅의 등장과 흑기사 토벌로 교단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당장 거둬들이는 헌금의 양이 평소의 두 배를 넘는다나.

아비게일의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제국에 전쟁을 선포한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황제를 악마와 내통했다고 규정한다면 명분도 이보다 충분할 수 없구요.”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음……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이제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이니, 좀 더 천천히 생각하죠.”

“이안 님의 뜻이 그렇다면야.”

이후. 아비게일과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더 상의했지만, 대부분은 교단의 판단에 맡겼다.

이안은 그저 게임 속 지식과 실력이 있을 뿐. 정치나 행정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비게일은 글자가 빼곡한 종이들을 탁탁 정리하며 말했다.

“그럼. 저는 말씀 주신 사항들을 윗선에 보고 드리러 가겠습니다.”

“네. 수고 좀 해주세요. 잠은 제때 자시고요. 눈가가 아주 새까맣네.”

싱긋 웃은 아비게일이 안경을 벗으면 말했다.

“이안 님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솔직히 이번 흑기사와의 싸움이 어떻게 될지 몰라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

그 이후 이안은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영주와도 만나야 했고, 각국에서 보내온 사절들. 심지어 황제가 보낸 사절도 맞아야 했다.

“……위와 같이 말하시며, 폐하께서는 그대의 업적을 칭송하며, 빠른 쾌유를 위해 황가의 비약을 하사하셨소.”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절은 이안을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황제의 칙서를 읽었다.

주위에 지켜보던 이들은 그런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감히 영웅님께 저런 건방진 태도를.”

“몰래 혼쭐을 내줄까요?”

“쉿. 듣겠다.”

따가운 눈총이 사절에게 쏟아졌다.

반응이 좋지 않자 당황한 사절은 황급히 나무 상자 하나를 건네주고는 자리를 떴다.

화려하게 장식된 나무 상자 안에는 황가의 비약이 들어있었다.

플로라는 투명한 색깔의 비약을 들여다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안. 이거 버려.”

“왜.”

“왜긴 왜야. 황제가 제대로 된 걸 줬을 리가 없잖아!”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비약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황가의 비약은 내상을 치료해주고, 영구히 근력이나 회복력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어.”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

“……다 방법이 있어.”

게임에서는 그랬다.

황가의 비약을 마시면 능력치가 올랐다.

게다가 이 속에 독이 들어있을 것 같지는 않다.

황제는 멍청이가 아니고, 그렇게 대놓고 일을 꾸미지는 않을 거다.

이안은 비약의 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내가 얼마 전에 느낀 건데, 먹어야 할지 말지 고민된다면 일단 먹는 게 좋더라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안은 그대로 비약을 한입에 삼켰다.

점도 높은 액체가 목을 타고 흐르자,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안의 신체 능력에 비하면 아주 근소한 차이였지만, 이게 어딘가?

‘요즘은 몸보신할 일이 많군.’

이외에도 각국의 사절이 온갖 진귀한 것들을 가져오니, 이안의 몸은 때아닌 호강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바쁜 일정을 수행하면서도 이안은 틈틈이 수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특히, 흑기사의 힘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했는데 그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검광이 엄청 늘었어요.”

이안은 성검에 서린 검광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색은 기존의 새하얀 검광과 같았다.

하지만 그 밝기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이안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검광의 부족이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다.

“이거 신기하네요. 흑기사의 힘을 흡수하니 검광이 늘었네요?”

검광은 마음의 힘.

단순히 신체가 강해지는 것과 검광이 늘어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이안의 의문에 이네스는 어렵지 않게 답을 내놓았다.

[저번에도 말했죠? 흑기사의 강함은 사람의 영혼을 거둬 얻은 것이라고. 싸움 내내 흑기사의 검광은 끝도 없이 솟아났잖아요?]

‘아…….’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의 힘이 이안의 몸에 축적된 거예요. 그러니 이안. 자신의 힘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영혼을 흡수해 자신의 영혼을 강화하는 게 흑기사가 가진 강함의 비결이다.

그런 흑기사의 힘은 이안의 영혼 역시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검광이 늘어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에 대한 미안함과 단점을 해결했다는 기쁨을 동시에 느끼던 그때.

이안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잠깐. 그렇다면 다른 능력들도…… 호크.’

이안은 얼른 호크를 소환했다.

소환된 호크는 이전과는 달랐다.

“핍.”

여전히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지만 그 외양이 변했다.

좀 더 커진 덩치에 베일 듯 날카로운 시선.

더욱더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깃털과 화려하게 늘어진 꽁지깃이 눈길을 끌었다.

놀랄만한 변화에 이안이 중얼거렸다.

“호크 너…… 엄청 컸구나.”

“핍!”

이안은 슬며시 손가락을 내밀어 호크의 배를 찔러보았다.

예전보다 훨씬 따뜻해진 빛살.

어쩌면 호크가 실체를 가지게 된다는 그 꿈같은 경지가 머지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은 이어서 다른 능력들을 확인했다.

천둥 거인의 포효나 월안을 비롯해 기타 다른 능력들 모두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확실한 진전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별 변화 없던 능력들이 순식간에 성장해지다니.

황당해진 이안이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 사기잖아.”

이안

불길한 인상:

■■□□□□□□□□

주머니 털기:

■■□□□□□□□□

축복받은 신체:

■■■■■■■■■□

영웅의 검술:

■■■■■■■■■□

승마:

■■■■■□□□□□

예절

■■□□□□□□□□

빛의 정령술

■■■■■■■■□□

신궁

■■■■■■■□□□

월안(月眼)

■■□

천둥 거인의 포효

■■■□□

드래곤의 마지막 가호

■■□

세계수의 뿌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