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蓬 벼락
제 갈연지를 납치한 사내를 그냥 돌려보내 기로 했을 때.
백 우진은 혈수마녀에 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만 볼 수 있도록 바닥에 작은 글귀를 남겼다.
추(풂).
제 갈연지 가 그러했듯, 백우진 또한 학관 내 부 인사의 소행 이 리 라 생 각했 다.
허나,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봐야하는 법.
이를 확실시하기 위해 그는 혈수마녀를 이용했다.
‘건방진 놈.’
달랑 한 글자 적어놓은 글귀로 자신을 이용하려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 지 않았으나, 마음과는 별개로 혈수마녀는 다급히 도망치는 사내의 뒤를 밟았다.
그래도 머리 가 빈 놈은 아닌지,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곳, 저곳을 쏘다니 기를 반나절.
놈은 그제야 자신에게 붙은 미행이 없음을, 또는 떨어져 나갔음을 확신하 고 진짜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대로였다.
“주변을 빙빙 돌더니 끝내 학관으로들어서더구나.”
“으음, 역시 그렇습니까.”
조금의 이변도 없는정직한결과에 오히려 맥이 빠질 지경.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흥, 다시는 그런 식으로 날부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게다.”
날카로운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기는 한데, 시점이 조금 어긋난 듯한느낌이 든다.
“혹시….”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백우진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물었다.
“화나셨습니까?”
자칫 복잡해질 수도 있는 생각의 갈래를 좁히기 위해서라곤 하나, 그녀로 하여금 조무래 기를 미행하게 한 것은 그야말로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쓴 격이었다.
중원 무림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없는 현경의 고수가 아닌가.
자신이 남긴 단어 하나에 조무래기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했 을수도 있는 일.
그러니 그녀의 정중히 사과하기 위해 다가가려 했던 것인데.
“•••아니다.”
“……?”
그녀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자신이 다가가니 그녀 또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게 아닌가.
화가 났냐는 말에 부정하는 말과는 달리 이상한 행동에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았다.
그녀 또한 자연스럽 게 뒤로 한걸음 물러 났다.
“•••왜자꾸뒤로물러나십니까?”
그녀의 얼굴이 약간발그레해 보이는 것은 자신의 착각인 걸까.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의 아하다는 듯 묻자, 혈수마녀 가 짜증 섞 인 목 소리로 답했다.
“네놈한테 나는술 냄새가싫어서일 뿐이다.”
“술 냄새요.”
그렇다면 더 이상한데.
백우진이 이틀 사이에 마신 술이라곤 전날 밤 그녀와 마신 과실주가 전부 였다.
이마저도 끈적한하룻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탕에 들어갔을 때 씻겨져 내려갔을텐데.
‘심지어 평소에는 잘만 있었으면서.’
그녀가 평소에도 자신이 풍기는 술 냄새를 싫어했다면 모를까.
그것은 또 아니 었다.
‘뭔가있어.’
그는 자신이 짐작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예상했다.
“혹시 저한테 실망하신 거라도 있으신 겁니까?”
앞으로 한걸음, 뒤로한걸음.
“없다고분명히 말했느니라.”
기숙사의 방은 그리 넓지 않았다.
성인 남녀가 몇 걸음씩 나아가고, 물러나다 보면 한쪽의 등이 금세 벽에 닿 을 정도로.
벽에 등을 지고 서게 된 혈수마녀는 천천히 다가오는 백우진의 모습을 보 았다.
“그만 다가오래도!”
제법 강단 있게 소리치자 잠시 발걸음을 멈춘 백우진.
“그러니까,뭐가문제인지 말씀을해주셔야죠.”
“아무 문제도 없다지 않느냐!”
“아니, 아무 문제도 없다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잖습니까.”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 혈수마녀.
허 나, 답답하기는 백 우진도 마찬가지 였다.
혈수마녀 같은 고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게 더욱 귀중해질 인재다.
어 떻 게든 좋은 관계 로 지 내 며 두고두고 써 먹 어 야 하는데 초장부터 이 리 삐걱대면 먼 미래의 계획에 모두 차질을 빚게 되는 것 아닌가.
“분명히 말했느니라. 아무문제도 없다고 말이다.”
“선배님께서 평소제 술 냄새에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오늘만 싫을 따름이 니라.”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겁니다.”
“뭐가말이 냐.”
멈춰 있던 걸음이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갔다.
“전 어제부터 지금까지 술을 안 마셨으니까요.”
백우진의 말에 혈수마녀 가 코웃음 쳤다.
“흥! 거짓말 마라. 네놈이 어젯밤 마신 술은술이 아니고 무엇…, 헙!”
“어,음.
99
증거처럼 늘어놓는 말에 혈수마녀는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백우진 또한 할 말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도 일단확실히 해둘 필요는 있을 것 같아 그녀에게 넌지시 물음을 건 넸다.
“저,혹시….”
아니, 건네려 했다.
“다,닥쳐라!”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에게서 권풍이 날아들기 전까지는.
쏜살처럼 날아든권풍이 그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억 |”
쿠당탕!
새처럼 날아가 침상에 처박히는 백우진의 모습을 뒤로한 채, 혈수마녀가 창틈으로 제 몸을 내던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다, 당분간 찾지 말거라!
거꾸로 틀어박힌 채 멀어져가는 혈수마녀를 바라보는 백우진.
“봤네 봤어.”
본 게 확실하다.
…
인적이 드문 산속까지 다다른그녀는 경지에 맞지 않게 숨을 거칠게 내쉬 며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신께 맹세하건대.
애초에 신이란 존재가 있는가에 대해서부터가의문이지만, 아무튼.
결단코 이를 보고 싶어서 본 것은 아니 었다.
‘사고, 사고였느니라!’
뒤를 밟던 사내가 밤늦게 학관으로 몰래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후였다.
야심한 시 각인지라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그가 있는 곳 으로 돌아갔다.
찾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한중에서 기감만 날카롭게 세워도 제법 긴 시간 동안 함께하고 있는 녀석 의 기운쯤이야 얼마든지 파악이 가능했으니.
어느 객잔의 별채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묘한 분위기로 꾸며진 방 안에 백우진과제갈연지가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돌아섰어야했거늘.’
갑자기 불이 붙어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고수가 기습을 가하는 듯 했다.
아직도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얽힌 혀가 서로의 입속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그때라도 돌아섰어야 했는데-.’
낭만보다 추잡하고, 음탕해 보이는 그 입 맞춤은 시 선을 잡아끄는 마력 이 존재했다.
현경의 고수가넋을놓고쳐다보게 될 만큼의 마력이.
인간의 형태를 한,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를 향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 며 헐떡였다.
그렇게 그녀는 망부석이 되어 지켜보았다.
행위에 열중하던 이들이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들때까지.
마침내 고개를 돌린 그녀는 보았다.
저 먼 지평선 너머로해가 조금씩 솟는모습을.
또한 그녀는 느꼈다.
제 아랫도리 부근에 맺힌, 촉촉한물기를.
“ 난감하구나.”
그때를 다시 금 떠 올린 그녀 가 한숨을 내 쉬 었다.
“이제 녀석 얼굴을 어찌 봐야 한단 말이냐….”
차라리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
얼떨결에 조금 보게 되 었다고, 그 뒤로 곧장 다른 곳으로 갔으니 안심하라 고.
그렇게 거짓말했다면 약간 얼굴을 붉혔을지언정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 데.
“하아….”
눈을 감을 때마다 두 사람의 격렬한 행위 가 떠오른다.
‘그 소심한 계집이 설마 그럴 줄이야….’
제 할 말조차 똑 부러지 게 못하는 소심한 여 아가 스스럼 없이 사내 위 에 올 라타 쾌 락에 허 덕 이 는 모습은 가히 충격 적 이 었다.
‘그것이 그리도 좋은것인가….’
그녀의 시선이 제 아랫도리로 향했다.
“아, 아아…!”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 그곳이 촉촉하게 물이 차 있는 게 아닌가.
“이런 낭패가….”
다 큰 어른이 이불 위에 실례를 한 것만 같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밀려들 었다.
벌써 세 번째다.
두 사람을 생각하며 아랫도리를 적신 횟수가.
“이 무슨 창피인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근처 개울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기감을 그물망처럼 넓게 펼쳐둔 뒤,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로 바지를 벗었다.
그녀는 개울가에 앉아 바지에 물을 적셨다.
처음 바지를 적셨을 땐 몹시 당황하여 삼매진화로 젖은 부분만 급하게 말 렸었다.
그런데 특유의 냄새를 품은 액 체 에 젖은 부분을 그대로 말리 자, 냄 새 가 그대 로 남아 그녀를 괴 롭혔더 란다.
냄새를 남기지 않으려면 이 액체를 깨끗하게 물로 씻어낸 뒤에 말려야만 했다.
“살아있으니 온갖치욕이란치욕은다 겪는구나.”
동시 대 에 살았던 사람들 다 죽은 세 상에 서 홀로 살아가는 것도 서 러운데 , 이 나이 에 개울가에 쭈그리고 앉아 바지를 빨고 있다니 .
액체를 물로 완벽하게 씻어낸 그녀는 삼매진화를 이용하여 바지를 뽀송 뽀송하게 말렸다.
흔적도 없이 말끔해진 바지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는그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여 살고는 있다만, 이게 맞는 것인지 …
알량한 호기심과 놈의 감언이설만아니었다면 진즉에 끊었을 목숨.
이미 창피란창피는다본 상황.
놈을 어찌 보아야 할지 난감한 차에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생각이 들때.
그녀의 시선이 바지를 벗고 있어 휑하니 드러난 제 다리 부근으로 향했다.
어 젯밤, 백우진이 제 갈연지 의 이곳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손가락이 닿기가 무섭게 자지러지는 여아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
!..
!....
.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고작손가락쯤 대는 게 무에 좋다고.’
과장이 너무 심한 게 아닌가싶다.
“어디….
이쯤이었던가.
그녀는 제 검지를 그곳에다 가져가 가볍게 눌러보았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의 몸은 오한이 라도 든 것처럼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혈수마녀는 물기가 묻어 있는 제 손가락을 보았다.
이 손가락이 닿는 순간.
벼락이 내리쳤다.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관통하는 강렬한 한줄기 쾌락이 마치, 벼락과도 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