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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귀환기-115화 (116/270)

115화

천일영의 계략은 처음부터 모두 남궁천의 허를 찌르게 만들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사천당문이 구호 활동을 하면서 종남과 화해를 하고 땅에 떨어진 이름을 끌어올리는 것.

두 번째는 구호 활동 이전부터 안과 혜에게 전국의 약재를 사들이라는 것이었다.

시장이나 산지의 약재 중 7할 이상을 사들이고, 그중에서도 단삼과 작약은 전량을 구매하여 씨를 말려 버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것은 일부러 해독에 필요한 약재를 구하지 못하게 하려는 계략이었지만, 구호 활동이라는 명분을 가진 사천당문은 그 어디로부터도 외압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무림맹에서 천일영의 세 번째 계략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궁천은 당강용을 앞에 두고 애써 표정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남궁천은 결국 구파일방과 남궁세가를 제외한 사대 세가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독에 당한 무인이 죽도록 내버려 두는 맹주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는 없었기에. 그러나.

‘구파일방과 오대 세가들의 대부분은 사천당문의 무인들을 빼돌렸다가 낭패를 보았겠지. 사마정이 알아 온 정보로도 제법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무림맹에서 이 문제를 꺼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놈들은 본인들이 저지른 사건을 나에게 책임지게 하는 것이냐.’

남궁천은 마음에 들지 않은 이 상황에 천화(天火)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남궁천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무림맹이 사천당문을 용서하는 자리여야 했으니까.

“당 문주, 무림맹은 사천당문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소. 문주도 바뀌었고, 또한 좋은 일을 하며 명성도 되찾지 않았소? 그러니 무림맹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우리와 대업을 도모합시다.”

“음, 그것은 참으로 반가운 말입니다. 허나 맹주님의 배려에도 거절해야겠군요.”

“지금 무림맹의 제안을 거절한단 말이오?”

당강용은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남궁천이 알아차리라고 일부러 짓는 웃음.

이미 칼자루는 맹주 남궁천이 아닌 사천당문이 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남궁천은 천화가 이내 살기로 바뀌는 것을 겨우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거절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현재 사천당문은 전국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중이라 무림맹에 가담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림맹은 십 년이라는 제약을 사천당문에 두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몇 달 만에 사라지면 사천당문은 전과 같이 무림맹에게 특혜를 받는다고 소문이 날 것입니다. 애써 떨어진 이름이 다시 오르는 이 시점에 오해를 또 살 수는 없습니다.”

남궁천은 당강용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조금씩 그 의도를 파악했다.

즉, 당강용의 말은 사천당문이 무림맹에 다시 들어오게 하려면, 천하에 사천당문이 과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공표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알겠소. 무림맹의 이름으로 사천당문은 과거 죄를 지은 적이 없으므로 제재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제재가 아예 없었던 것으로 처리하지. 또한 천하에 이 사실을 공표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것이오. 이 정도면 마음에 드시겠소?”

“그 정도까지 해 주시다니, 맹주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무림맹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군요.”

“잘 생각하셨소.”

남궁천의 얼굴에 부드러운 빛이 돌았다.

겨우 큰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당강용은 남궁천의 표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른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헌데 맹주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이 정도까지 해 주는데, 사천당문은 무림맹에 또 바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무림맹으로 돌아가게 되면 사천당문이 가장 많이 해야 할 일은 바로 해독입니다. 전에는 간단한 독은 무료로 해 드렸거나 혹은 목숨이 위중한 상태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금액만 받았지요.”

남궁천은 당강용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괘씸한 말을 했더라면 이 정도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터다.

당강용이 다음에 할 말이 무엇인지 너무도 훤히 보였기에.

“그것은……?”

“앞으로는 간단한 해독은 금화 다섯 냥, 그리고 목숨이 위중한 경우나 희귀한 독을 해독할 때는 금화 삼십 냥을 받겠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무림맹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입니다.”

“금화 삼십 냥? 사천당문은 그렇게나 많은 돈을 받을 생각이란 말이오?”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약재가 귀하여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있으니, 그것을 감당하려면 이 정도의 돈으로도 오히려 손해입니다.”

뿌득.

남궁천은 이젠 숨기지 않고 눈에 보일 정도로 이를 갈았다.

다름 아닌 사천당문이 전량을 매입하여 약재의 가격이 올랐다.

당강용은 남궁천의 표독스러운 표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생각하실 것이 많은 듯하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천당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터라 바쁘거든요.”

“자…… 잠깐! 당 문주!”

“아직 하실 말씀이 남아 계신지요?”

“아…… 알겠소. 당 문주가 원하는 대로 해독을 할 때 그에 상응한 금액을 내도록 하지.”

남궁천은 자신의 손에 아무런 패도 없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사천당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음을 이제야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다.

‘당강용, 이놈은 무림맹의 역할을 역으로 이용했다. 약재의 씨를 말려 버린 것뿐만이 아니다. 약재를 독점한 사천당문이 무림맹에서 버림받은 기간 동안 마교나 사혈련과 해독의 거래를 해도 말리지 못한다. 이것을 알고 큰소리치는 것이다. 즉, 사천당문을 독점하고 싶으면 알아서 기라는 것인가.’

남궁천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천당문의 계획이 너무도 완벽했기에.

“내일 당장 사천당문의 죄가 없음을 공표할 것이네. 그러니 해독을 전문으로 하는 사천당문의 사람을 들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맹주님께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신다면 제가 더는 거절하지 못하겠군요. 내일 사천당문에 대한 공표가 끝나는 대로 해독을 전문으로 하는 자 열과 약재를 보내겠습니다.”

“알겠네.”

드르르륵. 탁.

당강용은 맹주의 방을 나섰다.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는데도 남궁천의 한숨 짓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예상대로 거금이 드는 일까지 마다치 않고 사천당문을 품으려는군. 이것으로 약재를 살 때 들어간 돈과 종남의 호위비를 내고도 한참을 남길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종남파에 준 돈과 병장기를 산 돈까지도 충당하게 되겠지.’

공자가 말하기를 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천금을 들이는 것은 하수 중에서도 하수나 하는 짓이라고 했던가.

비록 처음에는 큰돈이 들었지만, 회수할 계략까지 세워 놓은 공자의 수완에 당강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지만 당강용은 공자의 무서움은 둘째로 하더라도 무림맹의 정문을 통과하며 높은 하늘에 걸린 구름이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기지개를 활짝 켰다.

‘무림맹에 한 방을 먹이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구나. 창천의 하늘 아래 남궁만이 있다고 착각하지 말거라. 앞으로도 실컷 괴롭혀 줄 테니.’

당강용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다음 날.

무림맹이 사천당문의 죄가 없음을 세상에 공표한 이후, 당강용은 해독 전문 무인 열 명과 약재를 실은 우차 열 대를 대동하고 무림맹으로 들어섰다.

당강용의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어서 오시오, 당 문주.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오.”

“허허, 사천당문이 함께하니 이처럼 든든할 수가 없소이다.”

“역시 사천당문이 돌아오니 오대 세가의 이름이 더욱 빛나는군요.”

장문인들과 오대 세가의 문주들은 당강용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무림맹에 남아서 당강용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호의보다는 환심을 사려는 목적이 더 컸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당강용은 그들의 환대에 일일이 인사를 하며 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사천당문의 무인을 빼돌린 자들이다. 또한 내가 빼돌린 무인들을 죽인 것도 모르지는 않을 터.’

웃음이 꽃잎처럼 흩어져 날리는 이곳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하지만 당강용은 그들의 손을 맞잡았다.

당강용의 입술이 웃음을 머금고, 눈에는 호선이 그려졌다.

“저 역시 협과 도리가 넘쳐 나는 무림맹과 함께하니 진정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 같이 무림의 정의를 위해 노력해 보시지요.”

당강용의 말에 장문인들과 문주들은 모두 화답하듯 웃음을 머금고 눈에는 호선을 그렸다.

마치 당강용과 똑같은 가면을 쓴 것과 같은 표정이었다.

* * *

한편.

장문인과 문주들에게 둘러싸인 당강용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남궁천은 등을 돌려 의자에 앉았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기에.

‘사천당문을 멸문으로 몰아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구멍 난 돈을 메우려 했다. 해남도의 일에 워낙에 큰돈이 들었으니까. 또한 종남에 있는 것을 가져오기 위해 그들의 힘을 꺾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한가.’

남궁천은 더는 한숨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종남은 사천당문의 지원으로 방어를 더욱 굳게 하고, 높아진 이름 덕에 수많은 제자가 몰려든다고 한다. 녹슨 검이 사라진 종남을 이제 더는 건드리기 힘들 터. 사천당문 또한 전과 비교해도 그 힘이 더욱 강해졌고,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또한 상단까지 만들어 일부 약재를 장기간 독점까지 한다니.’

하지만 방금 남궁천이 생각한 것뿐이랴.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다. 이번 일로 인해 장문인들과 문주들은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팔다리가 전부 잘려 나가고 혀까지 잘리기 직전, 내가 하는 말은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맹주의 자리까지 내놓지는 않을 테지만 이대로라면 곧…….’

남궁천의 손이 탁자 위에 올라 있는 편지로 뻗어졌다.

그것은 하오문에서 보낸 편지였다.

<당추필을 죽인 자의 행방에 관한 의뢰. 결과는 불가(不可).>

하오문에게 남궁천이 정보를 요청했던 이유.

다름 아닌 개방을 통할 수는 없어서다.

비록 하오문이 남궁천에게 물을 먹이는 정보를 팔았지만, 그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존심을 굽히고 하오문에게 연락을 했음에도 소득이 없었다.

남궁천은 의자에 기대어 갈라진 목소리를 내었다.

“졌다.”

남궁천의 눈이 질끈 감겼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눈을 감은 잠시의 시간이 남궁천의 머리를 좀먹고 심정을 갉아 낸다.

그러나 남궁천은 이내 눈을 부릅뜨고 하오문이 보낸 편지의 뒷장을 꺼내 들었다.

<제갈현의 행방에 대한 의뢰. 결과는 정강산에 있는 객잔 별유천지.>

남궁천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이미 무너져 내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뒤를 캐내려는 남자.

그의 존재는, 남궁천에게 있어 어디에도 뿜어내지 못하고 쌓이기만 하는 화를 분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남궁천은 비틀린 마음과도 같은 목소리를 토했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인다, 제갈현.”

그 순간, 오랜만에 남궁천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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