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마지막 시험지를 제출하고, 길게 한숨을 쉬며 허리를 쭉 뺐다.
“후아…….”
기나긴 기말 시험이 끝났다.
긴장이 조금 풀어지자마자 머리에 집어넣었던 것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난 그것들을 붙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손등에 아세톤을 발라 놓으면 휘발되면서 급격하게 시원해지는 것처럼, 암기했던 것들이 휘발되면서 머릿속이 시원해진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하하. 난 이제 몰라.
지금이야 다 까먹든 말든,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지엔 충실하게 다 써 냈다.
약간 기분 좋은 탈력감을 느끼고 있는데, 아나스타샤가 다가왔다.
시험 기간이면 으레 그렇듯 숨길 수 없는 다크서클이 눈 밑에 내려앉아 있었다.
“시험 잘 봤어? 타티아나.”
“예. 괜찮았어요. 아나스타샤는요?”
아나스타샤는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나? 잘 모르겠는데. 그냥 책들을 그대로 스캐너처럼 찍어서 기억해 놨다가 시험지에 쾅 찍어 낸 게 전부라서.”
“아나스타샤는 기억력이 참 좋지요.”
“벌써 다 까먹었는데?”
“저도 다 까먹었어요.”
“설마. 거짓말.”
“진짜예요.”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아나스타샤는 거짓말 말라며 날 쿡쿡 찔렀다.
난 정말 시험 끝나고 나니 기억나는 게 없다고 재차 말했다.
아나스타샤는 내 결백을 믿지 못하겠다며 방금 시험에 나온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난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나스타샤, 타티아나. 자유를 찾은 자매들이여. 과거에 얽매이지 말지어다.”
“발렌티나.”
어느샌가 옆에 온 발렌티나가 짐짓 분위기를 잡으며 뭔가 멋진 소리를 했다.
아나스타샤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이상한 소릴 하는 걸 보니 알겠네. 발렌티나. 잊고 싶은 시험지를 냈구나?”
“시끄러워, 아나스타샤. 난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뿐이니까.”
오늘따라 발렌티나의 말투가 이상했다. 평소 약간 애 같던 말투는 어디로 가고, 정말 모든 것을 내버리고 배수진을 친 전사의 모습이 느껴진다.
“내일 실기, 거기에 모든 걸 걸기로 했어.”
아나스타샤가 말 그대로 빵 터졌다.
“프흡, 발렌티나. 선택과 집중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거든?”
“웃지 마, 아나스타샤.”
“안 웃게 생겼어?”
나 역시 조금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선택과 집중은 좋지만 기본교과 성적을 포기해 버린다면 실기로 그걸 상쇄하기 위해서 그보다 더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야 그렇지만 그래도 낙제는 면할 정도는 했을 것이다.
발렌티나는 어쨌거나 기세등등해 보였다.
“이 슈만 소나타로 선생님을 기절시켜 버릴 거야.”
“진짜 제대로 꽂혔구나, 너…… 분명 꽤 연습하긴 했지만 그거 쉽지 않을 텐데.”
아나스타샤는 약간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기말 실기시험은 며칠에 나눠서 치러지고, 내일 시험을 쳐야 하는 발렌티나와 달리 나와 아나스타샤는 일찍 시험을 마친 상태였다.
때문에 아나스타샤는 슈만이 얼마나 까다롭고 점수 따기에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보기엔 발렌티나가 이렇게나 자신만만해하는 게 불안한 모양이었다.
발렌티나는 아나스타샤와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는 듯 내게 물었다.
“저기, 있잖아. 타티아나 넌 어떻게 생각해?”
그사이 발렌티나의 공부만 봐 준 것이 아니라 기말 시험곡도 같이 봐 주었다.
그녀가 받은 곡은 슈만 소나타 2번. 난 자주 시간을 내어서 내가 그 곡에서 느낀 세세한 노하우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레슨까지 받은 발렌티나는 엄청나게 빠르게 곡을 익혀 나갔다.
단순히 인템포로만 쳐 내도 시험에서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발렌티나가 더더욱 욕심을 내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솔직히 지금 발렌티나의 슈만 소나타 2번은 상당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더욱 완성도를 올려서 시험을 친다면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잘 되리라 생각해요.”
“그렇지? 그렇지?”
발렌티나는 굉장히 영리하면서도 감각적인 연주를 할 줄 알았다.
보기엔 그리 진지하지 않아 보이지만 음악에도 굉장히 진지했고 무언가 곡을 하나 잡으면 굉장히 깊게 파고든 다음 자신의 리듬을 섞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만 알아본 것이 아니라 선생님 또한 이런 발렌티나의 재능을 알아볼 테니, 시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자 싱글벙글 웃으며 발렌티나가 말했다.
“내일 시험에서 선생님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소나타를 치고…… 그걸로 좋은 성적에다가 내 레퍼토리엔 슈만까지 추가되는 거지.”
발렌티나는 어지간히 슈만이 마음에 든 것 같다.
다른 학생들이 기말 실기시험곡으로 슈만을 받아 들고 모두 반쯤은 기절하거나 슈만을 증오하게 된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반응이었다.
그렇게 내일 있을 실기시험까지 멋지게 마치는 것을 상상하는 듯, 잠시 말을 흐리던 발렌티나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 파티엔 올 거지?”
“……그런 걸 한다곤 했었죠.”
“싫어. 안 가.”
며칠 전부터 학기말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한 학기를 마치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재학생들이 홀에 모여서 춤도 추고, 자유롭게 음악도 하고 서로 친목을 다지는 작은 연회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 별생각이 없었고, 아나스타샤는 대놓고 싫어했다. 아나스타샤가 싫다고 하자 발렌티나가 인상을 썼다.
“너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안 오고, 진짜 왜 그래?”
“싫은 걸 어떻게 해. 바보 같아.”
툭 내던진 아나스타샤가 아차 싶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잠시간 발렌티나를 보다가 다시 말했다.
“어쨌건 내 알 바 아닌…….”
“아무튼, 아무튼 말야. 너 저번에 타티아나의 집에서 저녁 파티 한다고 했을 땐 먼저 가겠다고 했잖아. 이번엔 왜 싫은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파티가 다 같아?”
아나스타샤는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좋고 싫음이 분명했다.
발렌티나의 말로 미루어 보면 아나스타샤는 이전에도 계속 학교에서 열리는 파티엔 참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옆에서 듣기에도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차가운 태도였지만 발렌티나는 아나스타샤의 그런 태도엔 이골이 났다는 듯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내 쪽으로 표적을 바꾸었다.
굳이 철벽에 계란을 던질 생각은 없다는 모습이었다.
“타티아나 너는? 넌 갈 거지?”
난 원래 이런 종류의 파티를 그리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란 항상 바뀌기 마련이었다.
난 과거의 고정관념에 얽매여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정 짓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설령 싫어하게 될지라도 적어도 한 번쯤은 선입견 없이 겪어 볼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중앙음악학교에서 하는 교내 파티라니, 기대되지 않는가?
힐긋 아나스타샤를 돌아보니 그녀는 미미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참가하지 않을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음…… 아나스타샤 미안해요.
“예. 참가하려고요.”
“뭐라고?”
“그렇지? 그래야지. 난 타티아나를 믿고 있었어.”
발렌티나는 흡족한 듯 쾌재를 불렀고 아나스타샤는 흡사 배신자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난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가 보고 싶어요, 아나스타샤.”
“아니…… 왜?”
“처음이니까요.”
아나스타샤가 혀를 찼다.
“그래. 처음이니까 궁금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후회만 하게 될걸?”
“후회한다면 다음부턴 안 가면 되죠.”
“…….”
아나스타샤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도 맞아. 그런데 너 그건 알아야 해. 그 파티에 나간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본 파티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고 승락했습니다, 라고 서류에 도장을 찍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무슨 말인가요?”
“지금까지는 맴돌기만 하던 놈들이 작정하고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학기말 기념 파티지만 본 모습은 사교파티이니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사표시가 되는 것이란 뜻 같았다.
아니, 물론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긴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조금 공격적으로 말하는 투로 보면 그렇게 재미있지만은 않은 듯했다.
“진절머리 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아나스타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약간 머뭇거리고 있자 발렌티나가 대신 반론을 펼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아나스타샤. 귀찮게 하다니? 애들하고 인맥도 잘해 놓아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아, 나야말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몇 번을 말 해.”
실제로 친구라고 해 봐야 몇 없는 나나 아나스타샤와 달리 발렌티나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인기인이었다.
그런 발렌티나가 보기엔 아나스타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발렌티나가 말했다.
“그래, 넌 그렇다 치자. 하지만 타티아나는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게 안 좋게 말하지 마.”
“웃기지 마, 처음이라서 궁금한 것일 뿐…….”
코웃음 치며 말하던 아나스타샤가 내 얼굴을 보더니 점차 말꼬리를 흐렸다.
물론 그간 다니면서 내 재미없는 성격에 대해선 잘 알았을 것이다. 세상에 나처럼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겠지.
하지만 또 아는가? 갑자기 파티 같은 것에 재미를 붙일지?
아나스타샤가 약간 불안한 눈을 했다. 그리고 잠시 고뇌, 이윽고 입을 열어 결정을 내렸다.
“타티아나.”
“예.”
“나도 갈게.”
“예?”
진절머리 난다고까지 했으면서 뭐하러?
조금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자 아나스타샤가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하지만 내뱉은 말을 거둘 생각은 없는 듯했다.
가기 싫다고 충분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유받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잘 알기에 난 딱히 아나스타샤에게 함께 가자고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아나스타샤는 내가 가겠다고 말하니 약간 생각이 바뀐 듯했다.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정말 그럴 필요 없는데.
하지만 지금 아나스타샤에게 안 간다고 하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거냐고 물어 봐야 상황이 어색해질 것이 분명했기에 그 내심을 물어보기도 뭣했다.
발렌티나만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작전 성공, 작전 성공.”
“조용히 해, 발렌티나.”
아나스타샤가 으르렁거렸으나 발렌티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 좋게 흥얼거렸다.
* * *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며 아버지, 루슬란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기말고사를 마지막까지 잘 치렀다는 것과 모레 있을 교내 파티에 참가하고 싶단 이야기를 했더니 오빠가 갑자기 포크를 툭 떨어뜨렸다.
“교내…… 파티?”
“예. 학기말을 기념하는 파티를 한다더군요.”
평이하게 이야기했지만, 곧 난 아버지도 묘한 얼굴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
“……음, 그래.”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정말 드물게 당황하셨다.
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조금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오빠는 눈치 없이 두리번거리더니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거 말려야…….”
“조용히 해라.”
입에 음식을 넣은 채 아버지가 급히 말했다.
난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점차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교내 파티에서도 사고를 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얌전한 사고는 아니었으리라. 아버지와 오빠에게 이렇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정도면.
막상 난 아무것도 기억도 못 하는데 두 사람만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죄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에 대해 짜증이 났다.
대체 뭐 어떻게 살았기에 뭔가 하려고 하면 그 앞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진 않은지 매번 조심해야 한단 말인가.
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애당초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그야말로 동공에 지진이 일고 있는 아버지와 오빠를 보면 그저 조용히, 얌전하게 지내야겠단 생각밖에 안 든다.
내 말에 아버지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시더니 안쓰럽다는 듯 눈가를 누그러뜨렸다.
“아니다, 타티아나.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별일 아니었으니.”
“하지만…….”
“교내 파티라고 했지……. 중앙음악학교의 파티니 분명 그 수준도 훌륭하겠지. 드레스는 내일 맞추겠느냐?”
“아뇨, 아버지. 드레스코드 없이 자유복장이에요. 그리고 자유란 말인즉슨 교복을 입고 참가하란 뜻 아닐까요? 교복이 없는 다른 학교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저희 학교엔 교복이 있으니까요.”
“……그러냐?”
그 부분에 있어선 나도 모르고 아나스타샤도 모르고 심지어 정보가 빠른 발렌티나조차 몰랐다.
중앙음악학교에 교복이 도입된 것은 바로 이번 학기에서부터였고 교복이 있고 나서 처음 있는 파티였기 때문이다.
발렌티나는 교복이 없었을 때엔 참가하는 학생 거의 모두가 슈트와 드레스를 입었었는데 교복이 생겼다고 해서 딱히 교복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분명 교복을 입고 참가하는 학생들이 많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니 그냥 교복을 입고 갈…….”
“그렇게 하지 말거라.”
“아버지?”
아버지가 갑자기 반대 의견을 냈다. 난 조금 당황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학교에서 하는 작은 행사라지만, 설령 다른 학생 모두가 교복을 입더라도 넌 드레스를 입어야 하지 않겠느냐.”
“……예?”
그건 진짜 사양하고 싶은데요.
모두가 교복인데 나 혼자 드레스라니, 그게 얼마나 확 튀겠는가?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나는 파티장이 될 중앙 홀 문을 열고 입장하자마자 5초 만에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치고 말 것이다. 난 그런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다.
“전 평범하고 싶어요, 아버지.”
“타티아나. 정말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 나 보이길 바란다. 반대로 스스로가 평범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특별하다는 증거다.”
“전 진심인데요…….”
“나도 진심이다. 드레스를 입거라.”
약간 이상한 말처럼 들렸지만, 잠시간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말씀대로 할게요.”
“그래. 그래야 내 딸이지.”
무슨 상관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버지가 흡족해 주신다면 난 드레스가 아니라 우주복이라도 입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드레스를 입기로 하고, 루슬란 오빠가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타티아나…… 너 빨간색 드레스는 안 된다.”
“……?”
정말 어쩐 일이지? 설마 그런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는 동생은 용납할 수 없다, 뭐 이런 기특한 생각인 건가?
난 모처럼 오빠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루슬란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죠?”
“루슬란!”
“……?”
갑자기 아버지가 호통을 쳤고 난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버지가 오빠를 마구 야단쳤다.
“루슬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하지만 그 본성이라는 게 어디 안 가는…….”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도 그런 소리냐, 루슬란!!”
난 어깨를 옹송그린 채 잔뜩 성을 내는 아버지와 오빠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난 언제쯤 저 오빠에게 믿음을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