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9화
달리아에게 가까이 가면서 난 상황을 살폈다.
조건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일곱 살은 너무 어리기도 하고 디지털 피아노는 클래식 곡들을 연주하기엔 그리 좋은 악기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이름이나 연습하는 걸 대충 가르쳐 줄 순 없었다. 카밀레를 설득하기 위해 7살에게 레슨을 해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바로 승낙하긴 했지만 일단 하기로 했다면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이 아이가 지금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파악한 다음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르쳐 줄 필요가 있었다.
우선은 지금 연습하는 곡을 들어 보는 게 먼저다.
“곡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지금요?”
“예, 스카를라티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었죠?”
“……어떻게 아셨어요? 소리가 안 들리게 하고 있었는데.”
“리듬과 손의 위치를 보면 알죠. K466인가요? 꽤 어려운 곡을 연습하시네요.”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의 넘버링은 보통 K로 시작되는 커크패트닉 넘버링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넘버링으로 정리하면 총 555곡이나 된다.
당연히 555곡 전부를 알고 있진 못한다. 단지 피아노 연주자들이 주로 연주하는 곡들을 몇 곡 알고 있을 뿐이다. K466이라면 직접 연주해 본 적도 있고.
내가 곡을 알고 있다는 걸 증명하자 달리아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역시 그렇죠? 어려운 거죠?”
“……?”
“선생님은 왜 이 곡이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하세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거꾸로 받을 줄은 몰라서 약간 당황했다. K466이 왜 어려운 곡이냐고? 그야…… 글쎄?
“어려운 곡이니까요.”
“악보는 이렇게 쉬운데요? 음표도 적고.”
달리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악보를 직접 보여주며 말했다. 그 말처럼 악보 위엔 음표가 그리 많이 있지 않았다.
보기엔 분명 쉬워 보인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음표가 단 한 개만 찍혀 있어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음악도 있어요.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은 기교를 목적으로 연습하면 어렵잖게 습득할 수 있는 편이지만…….”
난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를 다루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깊이 있는 음악성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정말 어려워지기도 해요.”
18세기 바로크 시대를 이끌었던 작곡가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그는 헨델과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대결을 펼쳐서 오르간에선 지고 하프시코드에선 이긴 일화로도 유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555곡이나 되는 건반 소나타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는 귀중한 자산이었다. 그중 몇몇 곡들은 까다로운 기교를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낭만 이전 시대 하프시코드 곡이다 보니 현대의 연주자들이 소화해내는 데엔 큰 무리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피상적인 난이도를 가볍게 여기고 파고들면 스카를라티를 제대로 연주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K466은 느릿한 바단조의 곡이다. 하지만 그 안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이베리아반도의 곡조와 바로크 시대의 음악, 그리고 하프시코드의 음악적 특징 등 여러 부분을 알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깊이는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를 어린 학생에서부터 노련한 프로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주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스카를라티가 왜 어렵냐는 달리아의 질문은 그 나이대에 할 만한 질문이 아니었다.
“달리아는 그 곡을 어렵게 느끼고 있었나요……?”
“네…… 다른 애들은 다들 쉽다고 하는데…… 전 어려웠어요.”
“한 번 들려주시겠어요?”
달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피아노로 몸을 돌리더니 이번엔 헤드폰을 분리하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풍경을 그리는 왼손과 노래하는 오른손.
디지털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음악성을 제대로 살리기엔 적합하지 않다. 피아노 소리를 샘플링하며 열화된 소리가 다시 한 번 스피커를 타고 열화되어 나온다.
하지만 달리아가 리듬을 어떻게 느끼고 구성해내는진 이 정도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난 당장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음을 느꼈다.
“……끝났어요.”
5분 남짓한 연주가 끝나고 달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디지털 피아노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걸로는 제대로 문제를 알아주지 못할 것이란 걱정 또한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걱정 말란 뜻으로 가볍게 웃으며 난 그녀의 옆에 살짝 앉았다.
“폴리리듬을 구사할 때 어떤 생각을 하며 하시나요?”
이 곡을 연주하려면 폴리리듬을 유연하게 쓸 줄 알아야 했다. 쉽게 말하면 왼손으론 사각형을 그리며 오른손으론 삼각형을 그리는 일이지만 약간 더 어렵긴 하다. 가끔은 사각형과 밤하늘의 별자리를 동시에 그리기도 하니까.
어쨌든 스카를라티의 K466에서 다루는 폴리리듬은 가장 간단한 구조이긴 했다. 달리아는 자신이 배운 대로 내게 설명했다.
“왼손 2개에 오른손 3개를 끼워 넣어야 하니까…… 그 전부를 6개로 나누고 있어요.”
쉬운 계산이었다. 2와 3의 최소공배수인 6으로 폴리리듬이 들어간 부분을 나눈다. 그렇게 나눈 세밀한 박자로 1부터 6까지 세면서 왼손은 1, 4에서 건반을 누르면 되고 오른손은 1, 3, 5에서 건반을 누르면 된다.
이렇게 한다면 간단한 폴리리듬은 헷갈릴 일도 없고 정확한 박자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기술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함정이 있다.
“느낌을 바꿔 볼까요.”
“예?”
“끼워 넣는다고 생각하시면 선율을 독립시키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른손을 박자에 맞게 흘려보내세요.”
폴리리듬을 단지 기술적 문제로만 치부하고 계산적으로 분석해서 연주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양손의 선율을 하나로 합쳐 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음 사이에 음을 끼워 넣는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폴리리듬을 쓰는 이유가 박자에 구애받지 않는 독립적인 선율을 쓰기 위함임을 생각해 본다면, 그건 완전히 잘못 연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2와 3같이 쉬운 폴리리듬이 있는가 반면 8과 13같이 복잡한 것도 있다. 그럼 최소공배수가 104인데 한 부분을 104개의 박자로 가늘게 쪼개서 연주하는 건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때문에 난 기술적인 접근이 아닌 음악적 표현으로서의 접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가장 좋은 건 자연스럽게 양손이 각자의 선율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잘 모르시겠다면 한 손씩 연습하세요.”
답은 연습뿐이다.
난 웃으며 손을 들었다.
“몇 번 연습하다 보면 박자는 손에 익게 되어 있어요. 그다음엔 양손이 완전히 따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그냥 건반 위에 내버려 두세요.”
“생각을 안 해야 하나요……?”
“아뇨, 왼쪽 머리로는 왼손을 움직이고 오른쪽 머리로는 오른손을 움직여야죠. 아, 뇌는 반대였던가요?”
“???”
달리아는 피아노를 배우는데 갑자기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는 듯한 눈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보다 더 제대로 노하우를 말해 줄 방법은 없었으니까.
아마 지금 바로는 안 되겠지. 하지만 훗날 어느 순간에, 어릴 적 스쳐 지나갔던 연주자가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려내서 해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게 더 익숙해지게 되면 왼손으로 치는 소리는 왼쪽 귀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치는 소리는 오른쪽 귀로 들을 수 있게 되죠.”
“모르겠어요.”
“잘 들어 보세요.”
그리고 난 손을 뻗어 건반을 짚었다. 천천히 달리아가 했던 음악을 되풀이한다.
같은 음악이지만 리듬을 너무 끼워 맞추려 한 탓에 선율이 엉켜서 잘 들리지 않았던 것과 달리 제대로 들리고 있었다. 이 변화는 달리아 역시 느꼈으리라.
난 짤막한 한 프레이즈를 연주한 뒤 손을 놓았다. 달리아는 깜짝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방금…… 그렇게 들린 것 같기도 해요.”
“그런가요?”
“제가 해 봐도 되나요?”
“물론이죠.”
바로 그녀는 다시 한 번 집중해서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몇 번 헤매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훨씬 나은 폴리리듬을 구사해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정확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독립적으로 손을 써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과, 방금 들려준 음악으로부터 노하우를 습득해낸 것 같았다.
물론 그간 이 곡을 많이 연습한 덕분도 있겠지만 상당히 빠른 발전이었다.
난 박수를 짝짝 치며 칭찬해 주었다.
“바로 그거예요. 훨씬 좋아졌는데요?”
“정말요?”
달리아가 기뻐하며 웃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일곱 살 같아 보이지 않는 진중한 무게가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딱 그 나이대 아이처럼만 보인다.
난 마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꾸준히 연습만 한다면 그 어떤 폴리리듬이라도 전부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더 어려운 것도 있나요?”
“많죠.”
달리아가 궁금해하기에 난 그 일부분을 살짝만 맛보여 주기로 했다.
시작은 2와 3의 폴리리듬. 다음은 4와 3. 스크리아빈의 에튀드 op.42의 7에서 따왔다.
그다음은 반대로 왼손3 오른손4의 쇼팽 환상 즉흥곡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많이 들어 봤을 폴리리듬들이다. 달리아도 머잖아 마주하게 되겠지.
달리아는 내 연주가 신기한지 더 재촉했다.
“더 어려운 건요?”
“음…… 이건 비율을 잘 모르겠네요.”
악보를 기억할 때 한 마디에 음이 몇 개 들어 있는지 숫자로 세진 않는다. 그저 선율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쇼팽의 녹턴 op.9의 1번.
벨칸토 창법을 묘사했다고 하는, 쇼팽 특유의 20개인지 30개인지 모를 잇단음표를 오른손으로 주르륵 펼쳐놓으면서 왼손을 짚는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난 왼손의 박자를 고정한 채 오른손의 속도만 올려 나갔다.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선율이 계속해서 빨라진다.
왼손이 하나의 음을 내보낼 때 오른손이 흘려보내는 음표는 3개였다가 3개 반의 반이었다가 3개 반이 되어 간다. 이미 양손의 비율을 따지는 건 무의미해졌다. 난 왼손과 오른손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쓰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이어 나가다가 오른손의 속도가 거의 한계에 이르러 연주를 그만두었다.
이 피아노가 디지털 피아노가 아니었거나, 내가 3시간 동안 협주곡을 연주하고 온 게 아니었다면 조금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살짝 아쉽다.
“…….”
그런데 그렇게 되는 대로 연주하는 사이에 잠깐 신경 쓰지 못한 달리아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난 의기양양해할 정도로 염치없지 않았다. 되레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지금 실력 자랑이라도 한 것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건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달리아는 피아노 의자에서 폴짝 내려오더니 난데없이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엄마가 어떻게 데려온 거예요?”
“……예?”
“오늘 하루만 레슨해 주신다고 하셨죠? 역시…… 레슨비 굉장히 비싼 것 아닌가요?”
상황을 모르는 달리아로선 오늘 내가 레슨비를 받고 왔을 거라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일반적인 개인 피아노 레슨은 그런 식으로 받게 되니까.
그런데 그 액수가 높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달리아는 갑자기 덜컥 걱정이 든 것 같았다.
“우리 엄마 돈 없는데, 여기까지만 가르쳐 주시고 레슨비 반만 가져가시면 안 돼요?”
“…….”
이 애를 어쩌면 좋지?
분명 내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면서도 자제하려는 모습이었다. 울상이 된 달리아를 보니 귀여운 건지 기특한 건지도 잘 모를 기분이 들었다.
웃으면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 줄까, 아니면 조금 장난을 쳐 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머리로 하는 생각보다 몸이 더 빨랐다. 난 달리아를 와락 껴안아버렸다.
달리아는 깜짝 놀라 몸부림쳤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는 전해 받은 듯했다.
잠시 후에 난 그녀를 놓아주며 말했다.
“전 오늘 사실 카밀레와 오케스트라에게 음악을 배우러 왔어요. 그러니까 이건 제가 배운 걸 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달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카밀레에게도 배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난 전부 사실이라는 의미로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달리아는 엄마를 부르며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