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카닉 x 네크로맨서-58화 (58/152)

58화. 아서 용병단

엘리엇 암셀은 뭔가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었다.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데스나이트나 데미리치뿐이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지금까지 일으켜 세운 언데드 중 유니크 등급인 아머드 스켈레톤 워리어부터는 생전의 기억과 자아를 유지했었다.

문제는 내가 플레이 한 던전 오브 어비스란 게임에선 언데드와 대화할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엘리엇 암셀의 말이 사실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난 굳이 제니퍼가 데스나이트나 데미리치가 아니란 점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엘리엇 암셀에게 물었다.

"제니퍼 정도의 언데드는 지금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준으로 이 도시의 귀족들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엘리엇 암셀은 제니퍼 정도는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귀족이란 단어를 듣고는 의식적으로 평정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설마···. 발렌틴 학파는 삼대 가문을 밀어내고 팔미라 시를 집어삼킬 계획인 겁니까?"

엘리엇 암셀의 추측은 내 계획을 아득하게 넘어서 버렸다.

'뭐? 팔미라 시를 집어삼켜? 귀족들의 견제에서 벗어나는 것 정도만 생각했는데···. 발렌틴 학파의 위명이 삼대 가문을 밀어낼 수 있을 정도였나?'

< 제니퍼의 데이터를 검색합니다.>

< 발렌틴 학파는 네크로폴리스를 건설할 때부터 멸망할 때까지 도시를 지배했다는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

< 네크로폴리스는 고대 네크로맨서들이 건설한 초거대 도시로 현재의 팔미라 시 이상으로 번성했다고 알려졌습니다. >

'팔미라 시 이상으로 번성했다고?'

< 팔미라 시는 아직 위성도시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

< 하지만 네크로폴리스는 여섯 곳의 위성도시를 거느릴 정도로 번성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난 시스템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팔미라 시와 네크로폴리스의 격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내 본래 계획은 팔미라 시의 지배자들인 삼대 가문에 맞서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계획을 그대로 말했다간 발렌틴 학파에 대해 알고 있는 엘리엇 암셀의 인식과 다를 것 같았다.

난 네크로폴리스에 대한 자료를 빠르게 읽은 후, 계획을 변경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난 소파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난 네크로폴리스를 다시 세울 생각입니다. 기계공학과 마법적 지식으로 한층 업그레이드한 네크로폴리스를 상상해보십시오. 그건 어떤 귀족이나 좀비도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일 겁니다."

엘리엇 암셀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크로폴리스의 재건···. 그건 모든 네크로맨서의 꿈입니다."

엘리엇 암셀은 귀족들 대신 팔미라 시 최상류층으로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팔미라 시의 네크로맨서들에겐 배울 점이 많지 않은 것 같군요."

"네크로맨시적인 측면에서 보시면 그럴 수 있겠지만, 저희도 강화시술을 상당한 수준까지 연구한 상황입니다."

엘리엇 암셀은 약간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암셀학파는 이미 강화시술에서 내 도움을 바라고 있죠?"

내 질문에 엘리엇 암셀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난 더 많은 사령술 주문과 마법 그리고 기계공학을 원합니다. 그게 내가 삼대 귀족가문 정도는 눈 아래로 보는 날까지 네크로맨서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때까진 귀족의 견제를 피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강화시술만 연구해온 네크로맨서들도 고위 강화시술자들을 귀족들에게 뺏기는 실정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내 실력이 드러난다면, 더 심각한 견제가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아서님의 계획에 저희 암셀학파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엘리엇 암셀은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난 밀러 그룹과 계약하고 그들 아래에서 힘을 키울 생각입니다. 더 수준 높은 마법과 기계공학을 훔쳐 배우려면 그보다 좋은 길은 없어 보이는군요."

"밀러 그룹은 비록 골렘나이트를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수의 기간트를 보유한 무력집단입니다. 그들이 아서님의 계획을 알아차린다면···."

"그 정도 위험은 내가 감수하겠습니다. 암셀 씨는 제자의 원수를 갚을지 아니면 내 손을 잡을지 그것부터 결정하시죠."

내 말을 들은 엘리엇 암셀은 제니퍼를 바라봤다.

흔들림 없는 제니퍼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그는 뭔가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네크로맨시를 등한시 한 건 사실이지만···. 영원한 삶을 바라지 않는 네크로맨서는 없을 겁니다. 제니퍼가 리치가 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녀의 삼촌인 가이 포스트 부소장도 두 손을 들어 반길 겁니다."

그 순간, 엘리엇 암셀과 나 사이엔 엄청난 인식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성을 갖춘 언데드는 리치뿐이라는 이 세계의 상식이 날 도와주는 기분이군.'

엘리엇 암셀의 대답은 내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아니, 그는 내 예상 시나리오 중 가장 좋은 시나리오를 고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굳이 엘리엇을 죽이고 곧바로 스톨즈를 학파장으로 내세워서 혼란을 야기할 필요는 없겠군.'

엘리엇이 깔끔하게 숙이고 들어오는 바람에 일을 더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셀학파를 어둠 속에서 돕겠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엘리엇 암셀은 고민하지도 않고 내 손을 맞잡았다.

"그럼, 랭커는 언제쯤 시술이 가능하겠습니까?"

"두 분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준비하세요."

그러자 스톨즈가 말했다.

"저희 암셀학파가 고용한 용병들은 대부분 믿을 만 합니다. 오늘이라도 시작하시죠?"

난 스톨즈와 엘리엇 암셀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내가 손을 대면 평범한 랭커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할 겁니다. 초과성장은 이미 예정된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배반하면 속이 쓰리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스톨즈와 엘리엇 암셀이 눈빛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엘리엇 암셀은 한층 더 신중해진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일정을 잡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엘리엇 암셀은 곧장 에어로 리무진에 타려고 했다.

난 그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랭커, 한 명만 만들어드리면 되는 겁니까?"

"하, 한 명만 배출해도 D 구역에선 3대 학파라는 말은 사라지고 암셀학파만 남을 겁니다."

"그 정도면 스켈레톤 자이언트의 소환 마법식을 가져오실 수 있겠군요?"

내가 묻자, 엘리엇 암셀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뭐, 문제 있습니까?"

"한 달 후에 네크로맨서 정기 학술포럼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C 구역에 발도 못 들인 제겐 브라운 학파장님과 맞대면할 자격이 없습니다."

"스켈레톤 자이언트 소환 마법식을 사고 싶다고 제안도 못 할 정도입니까?"

"C 구역에 진출하지 못한 학파장들은 질문할 권한도 없습니다. 당연히 그런 중요한 사령술 매매에 관해선 브라운 학파장님께 직접 제안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이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럼 한 달 안에 C 구역에 진출하세요."

"C 구역에 진출하려면 최소한 9명의 랭커를 배출해야 합니다."

9명.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랭커도 배출하지 못한 암셀 학파에서 고작 한 달 만에 9명의 랭커를 배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시겠군요."

"한 달 안에 9명의 랭커···. 가능하시단 말씀입니까?"

"가능합니다. 대신 랭커 한 명 당 1천억 크레딧은 받아야겠습니다."

"아서님! 9천억 크레딧을 마련하려면 암셀학파를 통째로 팔아야 할 겁니다."

엘리엇 암셀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반발했다.

하지만 나도 가격 협상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D 구역에 묶여있는 암셀학파에게 9천억 크레딧은 천문학적이겠죠. 하지만 한 달 만에 9명의 랭커를 배출한 성과로 C 구역에 진출하고도 감당 못 할 금액이겠습니까?"

"무, 물론 C 구역에 진출하면 매출이 크게 늘 겁니다. 하지만 9천억 크레딧을 벌어들이려면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난 9천억 크레딧을 돈으로만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암셀 학파엔 그 값을 대신할 보물 따윈 없습니다."

"암셀 학파엔 없겠죠. 하지만 브라운 학파는 스켈레톤 자이언트 소환 마법식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난 엘리엇 암셀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스톨즈에게서 나왔다.

"아서님, 스켈레톤 자이언트의 소환 마법식을 구해오면 얼마로 책정해주실 계획이신 겁니까?"

엘리엇 암셀은 나와 거래해본 적이 없어서 계산이 느렸다.

하지만 스톨즈는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천억 크레딧."

"스승님. 우리가 네크로맨서 학회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면, 그까짓 쓸모없는 주문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내 대답을 들은 스톨즈는 곧바로 엘리엇 암셀을 향해 애닳는 눈빛을 보냈다.

당장 내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스톨즈,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엘리엇 암셀 학파장은 냉정하게 스톨즈의 의견을 잘라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그의 표정으로 쉴 새 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그가 속으로 얼마나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원하는 건 특이한 사령술입니다. 이 시대의 네크로맨서들에겐 버림받은 사령술이라도 상관없습니다. 현대 사령술 전서에 기록되지 않은 모든 마법식과 유물, 아티팩트도 좋습니다."

"현대 사령술 전서로 배울 수 없는 사령술과 관계된 물건만 가져와도 빚에서 천억 크레딧을 제해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엘리엇 암셀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C 구역에 진출한 후에도 암셀학파는 계속해서 랭커를 배출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 C 구역 네크로맨서 사회에서 명성을 날릴 수 있겠죠."

"랭커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으니, 아서 님께서 관심 가질만한 사령술을 가져오면 천억 정도는 깎아주시겠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랭커를 배출하게 해준다면 그 정도 돈을 마련해올 학파들은 널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을 들은 엘리엇 암셀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학파들이 랭커를 배출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그때 스톨즈가 말했다.

"하긴, 시정부 산하 연구소라면 그런 거래를 환영하긴 할 겁니다."

"스톨즈, 네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스톨즈가 멍청하게 암셀학파의 약점을 드러내자, 엘리엇 암셀이 그에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곧바로 내 눈치를 보며 절절매는 투로 말했다.

"아서님 저희 쪽에서 무슨 짓을 해서든 사령술과 아티팩트를 구해오겠습니다. 다른 연구소보다는 저희 쪽에 맡겨 주십시오."

혹시나 다른 경쟁자가 늘어날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D 구역에서 경쟁 중인 비스콘 학파나 토레가 학파가 아니라 시정부 산하 네크로맨시 연구소를 경계하는 건 이상하군.'

- 시정부 산하 연구소들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사령술 주문이나 사령술과 관련된 아티팩트 및 DNA 정보 등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랭커를 확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데이터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들이 가진 사령술 관련 데이터를 내놓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의아해하자, 제니퍼가 조언했다.

"이 정도 제안이면 감당하실 수 있겠죠?"

"상상만 해도 감당하기 버거운 거래 같습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군요."

엘리엇 암셀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술 날짜는 최대한 빠르게 잡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스톨즈!"

"네, 스승님!"

"연구소로 돌아가 랭커 후보군부터 골라내야겠다."

"저도 참여하란 말씀이십니까?"

"이번 거래 성사엔 네 공이 컸으니, 참여할 자격이 있다. 이번 기회에 널 후계자로 삼아야겠어."

난 분명 랭커로 만들만한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오라고 했다.

그 말은, 앞으로 내 손으로 랭커로 만들 용병들은 암셀학파의 핵심 무력집단이 될 거란 뜻이었다.

그 과정에 스톨즈를 포함시킨다는 건 암셀학파 최정예 무력집단에 스톨즈의 수족을 집어넣을 기회를 준다는 말과 같았다.

단지 후계자란 말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힘을 준다는 말이었다.

"그럼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스톨즈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격려한 엘리엇 암셀은 내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스톨즈도 엘리엇 암셀 뒤에 서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내 의뢰 일정은 스톨즈를 통해 통보하겠소."

내 대답을 들은 엘리엇 암셀과 스톨즈는 창가로 향했다.

그 순간 방화문이 올라가고 창문이 접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에어로 리무진을 탔을 땐, 직원휴게실 앞을 가로막았던 철제방화문까지 올라간 후였다.

***

난 곧바로 스톨즈에게 받은 서류가방 두 개만 챙겨서 암셀빌딩에서 나왔다.

그땐 이미 암셀연구소 소속 경비원들이 빌딩 앞에 내 수송 트럭을 정차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조수석에 탄 순간이었다.

< 밀러 쉴더스 사의 인사팀 과장 조지 스톰으로부터 통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

< 통신을 연결하시겠습니까? >

그건 조금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

'미행까지 붙여뒀던 건가?'

- 미행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데스윙의 정신파를 들었지만, 안심이 되진 않았다.

스톨즈와 엘리엇 암셀을 만난 직후에 통신 요청이 왔다는 게 영 석연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연결해.'

내가 명령한 순간 조수석 앞 창문에 조지 스톤 과장의 얼굴이 비쳤다.

- 아서 씨, 방금 암셀연구소의 임원과 만난 이유를 설명해주셔야겠습니다.

그건 아주 강압적인 태도였다.

애초에 조지 스톤 과장은 날 만난 이후 아서 님이라는 경칭을 썼다.

하지만 스톨즈와 엘리엇 암셀을 만나고 나온 직후 아서 씨라는 호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난 아직 밀러 쉴더스와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쪽과 용병 계약을 한다고 해도 내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할 생각은 없습니다."

- 아서 씨, 본사와의 관계가 단순한 용병 계약뿐만이 아님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쪽이 내 공헌도 수집능력을 높게 평가했다면, 다른 10대 대기업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왜 선택지가 당신들밖에 없는 것처럼 구는 겁니까?"

- 음···. 민감한 사안이라 본의 아니게 날을 세웠군요. 일단 사과드리겠습니다.

조지 스톤 과장은 다른 10대 기업을 언급한 후에야 꼬리를 내렸다.

- 하지만 아서 님이 다른 대기업과 손을 잡으시더라도 네크로맨서들과의 관계에는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 아서 님은 다른 용병들과 달리 강화시술자가 아니니 강화시술소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네크로맨서들과 긴밀한 관계라는 오해를 사서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조지 스톤 과장의 대답은 내 예상 밖이었다.

'3대 가문이면 몰라도 밀러 그룹이 네크로맨서들과 각을 세우는 이유는 뭐지?'

내가 묻기 무섭게 제니퍼의 정신파가 들려왔다.

- 10대 대기업은 3대 가문과의 혼인동맹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몸이나 다름없다?'

- 한 몸까지는 아니겠지만, 10대 대기업의 오너일가는 3대 귀족가문의 피를 이었거나 망명귀족의 후예들이 많습니다. 팔미라 시 네 번째 귀족가문의 자리를 탐하는 자들이니 네크로맨서 학회가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겁니다.

'아직 귀족 반열에 오르지도 못한 놈들이 쓸데없는 것만 배웠군.'

난 제니퍼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조지 스톤 과장의 예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아서 님? 다른 문제는 모르겠지만, 네크로맨서와 관련된 문제는 확실하게 소명해주셔야 오해가 없을 겁니다.

조지 스톤 과장은 다시 한번 날 다그쳤다.

어조가 처음보다 정중해졌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처음처럼 맞설 생각은 없었다.

"돈 가방."

내가 뒷좌석을 향해 손을 뻗자, 데스윙이 서류가방을 건넸다.

난 조지 스톤 과장이 볼 수 있도록 서류가방을 열어 보였다.

"플라즈마윙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날 치려고 했는지는 이미 아실 겁니다. 난 제니퍼 마틴을 죽이고 그 대가를 받아온 것뿐입니다."

- 암셀학파의 후계자가···. 스톨즈? 이 사람에게 경쟁자를 제거해준 대가를 받아오셨단 말입니까?

"그게 아니면 이만한 거금이 어디서 났겠습니까?"

난 마그니움 주괴가 가득한 서류가방을 들어 보이며 되물었다.

그러자 화면 속 조지 스톤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 피차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으려면 계약 이후엔 이런 일은 미리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계약 말입니다."

- 네.

"투자금이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2천억 크레딧에 공헌도는 모두 밀러 쉴더스쪽에 넘기고 현상금은 모두 제가 갖고 싶습니다."

- 하하하! 아서 님, 제 예상보다 호탕하시군요!

"어떻습니까? 제 조건을 받아주시면 당장이라도 계약서에 사인하죠."

- 사냥 전리품에 대한 수익은 모두 아서 님이 갖겠다. 그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조지 스톤 과장은 기존에 7 대 3으로 나누기로 했던 비율을 내 마음대로 10 대 0으로 바꿨는데도 승낙해버렸다.

- 하지만 아직 아서 님께서 이 업계에서 활동하신 기간이 짧아서 실적이 너무 적습니다. 투자금 산정은 회사 내규에 따라 계산하기 때문에 제 직권으로 조정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공헌도는 다 드리고 1천억 크레딧 투자금 받고 사냥 전리품은 모두 제 몫 맞습니까?

- 아, 그 사냥 전리품 중에 좀비의 머리는 밀러 그룹 산하 연구소에 판매하셔야 합니다. 물론 가격은 정부청사 매입계보다 높게 책정해드릴 계획입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네."

내가 대답하고 1분도 지나지 않아 고급스러운 에어로세단이 내 수송차량 앞에 정차했다.

그리고 그 차 뒷좌석에서 조지 스톤 과장이 내렸다.

'역시 미행하고 있었군.'

- 주군, 이 미천한 언데드가 무능력해서 주군께 폐를 끼쳤습니다. 벌해주십시오!

데스윙의 정신파와 함께 뒷좌석에서 무릎 꿇는 소리가 들렸다.

'네 몸을 업그레이드한 건 나다. 네가 발견하지 못한 건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과 같은데 널 어떻게 탓하겠냐?'

난 여유가 생기는 대로 보다 정밀한 센서와 전뇌로 데스윙을 업그레이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계약서는 준비됐습니다. 여기서 바로 확인해보시겠습니까?"

내가 조수석에서 내리자마자, 조지 스톤 과장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마주 잡는 내 가슴은 서늘했다.

밀러 쉴더스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날 미행했는지 짐작도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죠."

난 시스템과 제니퍼의 도움을 받아 계약서에 독소조항이 없는지 확인한 후 말했다.

"이대로 계약하시죠."

난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하고 한 부를 넘겨받았다.

"그럼 아서 님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조지 스톤이 웃으며 말하자, 그의 부하직원들이 커다란 캐리어를 내 앞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 1천억 크레딧 확인했습니다.

내용물을 확인한 데스윙이 보고했다.

"그럼···. 좀비 머리를 얻으면 어디로 가져가야 합니까?"

"D-2 구역에도 밀러 그룹 산하 연구소가 있습니다."

조지 스톤은 웬 신분증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 아서 용병단

- 출입 권한 : 4등급

내 사진과 용병단 이름을 제멋대로 적어놓은 신분증이었다.

신분증 뒷면을 보자, 출입 가능 목록이 표시되었다.

- D-2 구역 말라 연구소

- D-15 구역 이브레아 연구소

- D-22 구역 브란데 연구소

"D 구역에만 연구소를 세 곳이나 운영 중이십니까?"

"본사는 강화시술 연구에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아서 단장님이 앞으로 많은 도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악수를 한 조지 스톤 과장은 부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10대 기업 산하 연구소들의 출입 권한이라···. 기대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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