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양단 (3)
“보스몹 같습니다. 여기 보스몹이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보스몹이요?”
왕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얼핏 들어본 것 같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왕호는 던전에 대한 공부를 반나절 남짓밖에 하지 못했다.
강창모가 입을 열어 설명을 시작했다. 강창모는 던전을 이론상으로만 한 달 이상 공부한 사람이다.
“던전에는 던전을 유지하는 ‘코어’라는 에너지석이 존재합니다. 이 코어는 보통 던전에 숨겨져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차원 너머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데··· 가끔가다 몬스터의 몸에 달려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저 거대 실버폭스 이마에 박혀있는 것이 아마 코어 같습니다.”
“그 코어가 박힌 몬스터를 보스라고 부르는 거군요.”
“맞습니다. 코어에서 강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다른 몹들 보다 크고 강력하게 진화한 거죠.”
“그럼, 저 코어가 작동을 멈추면 어떻게 됩니까?”
왕호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깜짝 놀라 중식도를 휘둘렀는데, 너무 강하게 휘두른 나머지 보스몹이 빈사상태에 빠졌다. 당장에라도 숨을 거둘 것만 같았다.
“음··· 코어가 차원끼리의 좌표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빛을 잃게 되면 보통 연결이 끊깁니다.”
“끊겨요?”
“던전이 붕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당장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서 빠져나갈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럼 편히 보내줘도 되겠네요?”
지금 보스몹은 어깨가 완전히 갈라져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어깨로 들어간 중식도는 갈비뼈까지 내려가 박혀있다.
다리 세 개만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힘들어 보인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왕호는 요리사로서 그것을 그대로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살아있는 재료를 손질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이다. 몇몇 특수한 요리를 제외하고는, 산채로 삶아버린다든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회를 뜰 때도 중추신경을 찔러 죽인 후에 떠낸다.
그러나, 왕호의 말을 들은 강창모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그건 안 됩니다!”
“네? 무슨 패널티라도 있나요?”
“독점 던전이 아니라서 패널티는 없겠지만, 신중해야 합니다. 만에 하나 던전 커넥트가 일어난다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던전 커넥트요?”
이건 처음 듣는 용어다.
“던전이 붕괴되지 않고 다른 차원과 연결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중 차원이 존재하는 타워형 던전이 아닌 이상, 한 던전에서는 한 종류의 몬스터만이 나오죠. 다른 차원과 연결되면 곧바로 다른 몬스터가 튀어나올 겁니다. 이 던전이 가장 약한 던전이니, 무조건 더 강력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거죠. 지금 우리가 반대쪽 게이트에 매우 근접한 상태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확률은 극히 드물지만요.”
“그렇군요. 창모님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하하, 왕호님 아니었다면 더 큰일 났겠죠. 여름님이 크게 다쳤을 겁니다. 저흰 지금 힐러도 없는 상황이라 진짜 답 없습니다. 한데··· 실버폭스 던전에 보스몹이 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틀렸나 봅니다.”
강창모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자신이 알아본 바로는 실버폭스 던전은 보스형 던전이 아니라고 나와 있었다.
실버폭스 던전은 제1차 몬스터 웨이브 때 생겨난 던전으로, 무려 60년도 더 된 늙은 던전이다. 코어를 찾지 못해서 처음에는 보스형 던전일 거라 추측됐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보스몹은 결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 보스몹이 차원 너머에 몸을 웅크리고 있거나, 다른 코어가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거나.
반 백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전자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그래도 완벽히 보스몹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테스크 포스가 항상 주시하고 있는 던전이다. 만일 던전 커넥트가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오분대기조가 충동해서 상황을 진화시킬 거다.
후욱- 후욱-
한여름은 심호흡을 길게 내쉬며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랬다. 요단 강에 발을 한 짝 담갔는데, 왕호가 건져줬다.
스윽-
소매를 올려 얼굴에 튄 피를 닦아냈다.
“왕호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 생명의 은인이세요.”
한여름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파티원으로서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이제, 아무리 쉬운 던전이라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되겠네요. 어찌 됐든, 이 던전이란 곳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곳이니깐요.”
“네! 그나저나, 왕호님 사실은 엄청 강한 거 아니에요? 실버폭스가 칼질 한 방에 나가리 됐잖아요! 그것도 보스가!”
정신을 완전히 차린 한여름이 평소 성격대로 호들갑거린다.
왕호도 조금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나··· 약하진 않은 것 같은데······.’
아무리 카운터 어택이라고 해도, 공격 한방에 실버폭스가 빈사상태에 빠졌다. 심지어 덩치가 두 배로 큰 실버폭스 보스몹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레벨이 상당히 높기에 그랬을 것이라 추측된다. 다른 각성자들은 몬스터를 잡아야 레벨 업을 하지만, 왕호는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레벨이 오른다. 힐링 요리사에겐 요리하는 것이 곧 레이드나 마찬가지다.
‘상태창!’
왕호는 오랜만에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안왕호 Lv. 20]
[클래스 – 힐링 요리사]
[체력 : 880/880 마나 : 690/690]
[힘:24 민첩:27 지구력:26 지력:15 맷집:29 손재주:30 미식:15 치유력:18]
[보유 스킬 : 감정, 러닝, 중급 요리, 절대미각, 절대후각, 중급 썰기, 중급 으깨기, 중급 다지기, 이터블 감정, 초급 제독, 초급 발골, 일도양단]
‘역시 레벨 빨인가?’
강창모의 레벨이 13인 것을 비교했을 때, 왕호의 레벨은 상당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공격 스킬 하나 없었지만, 기본적인 피지컬로 몬스터를 압도한 것일 테고.
그리고 왕호는 모르고 있었지만, 왕호의 스탯은 동 레벨 각성자들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스탯을 올리기 위해 노가다를 서슴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높은 레벨에 더해, 식칼을 오랫동안 잡아 왔기에 효율적인 파지법과 자세를 안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나왔고, 중급으로 올라가 있던 썰기 기술과 합착돼, 막대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는 일도양단이라 스킬의 생성. 왕호는 새로 얻어낸 스킬도 확인해봤다.
[일도양단一刀兩斷 - 숙련도 0% 마나 소모량 : 300]
[태산 같은 힘으로 대상을 반으로 쪼개는 검술.]
[검에 마나를 입혀 강하게 내리긋습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절삭력이 높아집니다.]
첫 공격 스킬이다. 마나 소모량이 엄청나 자주 사용할 수는 없다. 대신 마나를 머금은 공격이기 때문에, 물리적 피해를 입지 않는 몬스터도 공격할 수 있으며 같은 힘을 사용하더라도 더 강력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그동안 실버폭스를 지켜보면서 할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의 스피드, 그들의 힘, 그들의 체력, 그들의 스테미너까지. 전부 자신의 눈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실버폭스의 은신 모습도 왕호는 금세 찾아냈다.
‘몽골눈이 아니라, 이것도 레벨의 영향이 있었겠지.’
이제야 조금씩 납득이 간다.
저 보스의 공격을 빠르게 파악한 것도, 절대후각 스킬로 민감해진 후각 덕이었다. 개코 수준의 코가 보스 특유의 냄새를 캐치한 것이다.
물론, 자신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도, 레이더로 전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왕호의 스타일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배팅할 만큼 무모한 배짱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래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안다고 해서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쁘진 않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중에 지기知己를 얻어냈다. 혹시라도 나중에 몬스터 고기가 필요할 때, 지피知彼까지 완벽해진다면 제대로 각을 잴 수 있다. 던전 요리사로 대박치는 길이 열리는 거다.
“칼 좀 쓴다고 했잖습니까.”
왕호가 볼을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게요. 처음에 식칼 들고 나왔을 땐, 조금 의심했었는데 이젠 완전 든든해요! 근데··· 어떡해요. 칼이 쟤 몸에 박혀있네요······.”
“그러게요. 저대로 놔둬도 될지······.”
왕호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강창모를 쳐다봤다.
지금은 아는 것이 가장 많은 강창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음 일단은 놔두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어차피 살 운명이라면 칼을 빼내고 살 수도 있겠죠. 우선은 돌아가서 테스크 포스에 신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공공 던전이라, 보스몹이 나타났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판단은 테스크 포스에서 할 겁니다. 코어를 상하지 않게 보스를 죽여 던전을 유지하던가, 아니면 던전을 폐쇄하겠죠. 지금 여기서 저 보스를 죽인다면 코어가 작동을 멈춥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창모님 말대로 하죠. 아! 아까 독점 던전은 패널티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뭡니까?”
“요새는 새로운 던전이 생겨나게 되면 입찰을 통해 선독점 권한을 길드에 부여합니다. 낙찰받은 길드는 가장 처음 던전 탐사에 나섭니다. 던전의 형태, 구조, 성격, 몬스터의 종류 등을 파악하죠. 그중에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바로 코어를 찾는 일입니다. 만약 보스몹이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결단이요?”
“이게 이해관계가 상당히 복잡합니다. A형, B형에 따라서도 보스몹을 잡을지 아닐지 갈리고, 독점을 계속 유지할 수 있냐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코어를 살리면서 보스를 죽일 수 있으면 그렇게들 하죠. 하지만 이 방법을 쓰려면 보스몹을 살아 있는 상태로 생포해야 합니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만한 실력이 없는 길드들은, 보스몹을 피해 다니며 최대한 사냥을 하다가, 독점 기간이 끝나면 보스몹을 잡습니다. 던전이 붕괴될 테지만, 코어석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너무도 자본주의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왕호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60년 전, 처음으로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절반 가까이 되는 인류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180도로 변했다. 몬스터에 의해 더 이상 인류가 위협받지 않자, 인간의 이익을 위해 몬스터를 사육하다시피 한다.
‘코어를 살릴 수 없다면, 보스몹을 일부러 놓아두면서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몬스터의 입장에서 상상해봤는데, 극악무도하기 이를 데 없다.
슬금슬금-
왕호가 강창모와 이야기하는 사이, 보스몹은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왕호에게 일격을 얻어맞자마자 본능이 외쳤다. 저 인간은 자신보다 훨씬 고수라고!
한낱 마물에 불과했지만, 생존에 대한 갈망이 없던 힘까지 쥐어짜내게 만들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세 다리로 최대한 멀어진다. 다행히 몸통에 칼을 쑤셔 넣은 인간은, 자신을 완전히 해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르르- 그르르르-
어느 정도 멀어지자 실버폭스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만 더 가면 게이트를 넘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힘은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여기서 힘을 조금 끌어모은 다음, 자신의 차원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치명상을 입었지만, 실버폭스는 자신이 죽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스스로의 재생력을 믿었다. 코어에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가 칼을 밀어낼 거고, 마나는 자신의 갈라진 몸을 이어 붙일 것이다.
그러나,
쫑긋-
실버폭스의 널따란 귀가 바짝 솟는다.
저벅저벅-
머리맡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얘는? 몸에 칼을 처박고 있네. 누가 사냥하다 도망친 건가? 근데 덩치는 엄청 크네 흐흐 개꿀이다. 막타만 치면 되잖아?”
실버폭스를 발견한 남자는 비겁하게 웃으며, 칼을 꺼내 들었다.
스르릉-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칼이 서슬 퍼런 날을 빛내며 검집을 미끄러져 나온다.
“안됩니다아!!!”
그 모습을 보고는 파티원으로 보이는 자가, 멀리서 강하게 외친다. 상당히 식겁한 모습이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딱 봐도 경험치 많이 줄 거 같구만.”
훅-
그는 결국 검을 보스몹을 향해 내리꽂았다.
푸우우욱-!
날이 바짝 선 칼날은 실버폭스의 등짝을 정확히 관통했다. 보스몹은 꼬리를 움직일 힘조차 없었기에,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간당간당한 생명력으로 겨우 버티던 보스몹은, 이제 겨우 레벨3 짜리의 조악한 찌르기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실로 허무한 죽음이다.
실버폭스의 몸이 축 늘어진다. 이마에 박혀있던 보라색 보석은 서서히 그 빛을 잃고 회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뭐야? 경험치가 왜 쥐꼬리만 하게 올라? 기여도가 낮아서 그런가?”
남자는 보스몹의 몸에서 피 묻은 검을 뽑아내며 투덜거렸다.
파티원의 급박한 외침을 들었는지, 왕호 일행의 고개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헉! 미, 미친!”
강창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떤 미친놈이 보스몹의 등짝에 칼을 쑤셔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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