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83화 (83/149)

< 에이스의 출현 (3) >

케빈 오의 손바닥 위에는, 왕호가 썰어낸 파채가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그런 케빈 오의 손이 덜덜덜 떨렸다.

‘말도 안 돼! 나보다 훨씬 잘 썰었잖아. 두께도 미친 듯이 얇아! 그런데 이 퀄리티는 대체···’

마치 기계로 자른 것마냥, 파채 하나하나가 균일한 모양새였다. 아니, 기계라도 오차가 존재하거늘··· 이건 그야말로 무결점!

기본기를 잘 갖춘 이들을 선별하려 했건만, 거의 50년간 파채만 썰어온 달인이 등장한 수준이다.

케빈 오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왕호의 양옆에 있는 두 참가자를 주시했다.

‘그래! 저게 정상이지!’

두 참가자의 파채 써는 솜씨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탕- 탕- 탕-

왕호의 오른편에 있는 참가자는 손에 힘이 과할 정도로 들어가 있었다.

보다 못한 케빈 오가 그 참가자에게 다가가 버럭 화를 낸다.

“그만! 아주 도마 부서지겠네. 이걸 지금 파채라고 썰었습니까?”

케빈 오는 참가자가 썰어놓은 파채를 손으로 매만졌다.

“길이는 너무 길어서 오징어 다리마냥 휘어져 있고. 두께도 중구난방이네. 그렇다고 빨리 써는 것도 아니고. 기본기가 안 됐어, 기본기가.”

혹평을 쏟아낸 케빈 오는, 왕호가 썰어놓은 파채를 손으로 쥐어서 참가자한테 보여줬다.

“이거 보입니까? 한번 만져보고 비교해봐요.”

“네······. 헉!”

왕호의 파채를 가까이서 확인하자, 참가자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떱니까? 이게 바로 기본깁니다. 기본기! 드리블만 잘한다고 축구 이겨요? 기본적인 패스나 트래핑을 잘해야지. 이제 납득하겠습니까?”

“예? 납득요? 뭐, 뭘 말씀이십니까.”

“당신이 떨어지는 이유. 죄송하지만 앞치마를 벗고 에이스 셰프 코리아를 떠나주셔야겠습니다.”

“크흑!”

참가자는 눈물을 머금고, 앞치마를 케빈 오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예선장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왕호의 왼편에 있는 참가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렇게 어떻게 썰어 썅!!!’

속으로 욕지거리를 쏟아내고는, 앞서 탈락한 사람처럼 후다닥- 빠져나갔다. 카메라가 적나라하게 찍고 있는 터라,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두 참가자의 잘못은 딱히 없다. 그저, 기본기가 살짝 부족했던 것과, 운이 없던 것뿐이다.

다른 곳에 있었다면 운 좋게 턱걸이로 합격했을 수도 있었지만, 왕호의 옆에 있던 것이 문제였다.

재수 옴 붙은 거나 마찬가지다.

왕호는 두 사람이 탈락하는 광경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었다. 얼떨떨했다.

케빈 오의 말을 듣자 하니, 자신이 썰어놓은 파채는 잘 썬 것 같은데··· 양옆의 참가자들이 모두 탈락하니 조금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카메라도 한 대 더 붙어, 총 두 대가 케빈 오 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왕호도 카메라 앵글에 잡히고 있었다.

케빈 오가 갑작스레 나타나고 옆의 두 사람도 탈락하는 바람에, 왕호는 아직까지 칼질을 다시 못하고 있었다.

케빈 오가 어리둥절해 하는 왕호에게 말을 건넨다.

“혹시 더 얇게 썰 수 있습니까?”

완벽하리만큼 정교했던 두께였기에, 케빈 오는 왕호에게 좀 더 어려운 것을 요구해봤다.

“가능합니다!”

왕호는 힘차게 대답했다.

5분 전에도 더 얇게 써는 것은 가능했다. 지금이면 더더욱 가능하다. 손재주가 2할 이상 뻥튀기됐으며, 웨폰 마스터리 특성으로 칼이 손에 아주 착착 감기니까.

카메라 한 대가 왕호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나머지 한 대는 왕호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담았다.

채 써는 것은 전혀 긴장되지 않았지만, 카메라는 긴장된다.

“후우~”

왕호는 한 번 심호흡을 길게 내쉬며, 칼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왕 할 거, 카메라도 찍고 있으니 최고 속도로 간다!

이번엔 응비봉사 초식의 묘리를 응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윽-

왕호가 장미칼을 새로이 고쳐 쥐었다.

그리고 왕호의 칼질이 시작됐을 때, 카메라맨을 비롯한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놀라 자지러지고 말았다.

*

고효준은 미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다니엘에게 귀띔을 받았었다.

파 채 썰기.

‘크크, 안왕호 너는 이런 정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사실, 왕호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미션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 준비도 철저히 해왔다.

맛으로 눈에 뜨일 수 없다면, 퍼포먼스로 주목받으면 된다.

고효광은 파를 들고 자리로 향했다.

여기까진 다른 참가자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식칼을 들고 가지 않았다.

‘무슨 방법을 써도 상관없댔지.’

그렇담, 마법으로 파채를 썰어버릴 거다!

“윈드 커터!”

고효광은 바람 계열 마법을 사용했다.

서걱-

칼을 대지 않았으나, 바람의 힘만으로 파가 얇게 잘려나간다.

“오오오! 각성자다!”

“그것도 마법사!”

“보조 마법사도 아니고, 원소 계열 마법사인가 봐!”

“이야, 진짜 부럽다.”

화려한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된다.

‘후후후.’

고효광이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역시 인기는 맛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연기 잘하는 배우가 있을지라도, 외형이 꽝이면 누가 써주겠나.

스타 셰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요리를 맛깔나게 한다손 치더라도, 퍼포먼스가 부족하면 미디어에 나오지 못한다.

그저, 보이지 않는 호텔 주방에서 기계처럼 요리나 뽑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자신에겐 왕호에게 없는 퍼포먼스적 무기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슉- 슉-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며, 파가 쑥쑥 썰린다.

이것은 칼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정말로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다.

참가자들만 웅성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맨들도 고효광의 화려한 마법에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미션이 시작하자마자 카메라 세례를 독차지 한 건 고효광이었다.

‘예선에선 임팩트가 없어 통편집될 테지만, 지금은 내가 주인공이지!’

플라톤 호텔의 김성오도 마법사 클래스라고 들었다. 하지만 김성오는 불을 이용한 마법이 주특기. 자신처럼 이렇게 칼 없이 재료를 자르진 못한다.

주르륵-

고효광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무리하게 마나를 운용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레벨이 50대인 만큼, 마법을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없다.

그래도 걱정 없다. 딱 10분만 버티면 된다. 10분이면 심사위원이 이쪽으로 오기로 약조되어 있다.

힐끗-

고효광은 카메라 단독 마사지를 받으며, 왼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한 칸 건너, 바로 왕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넌 임마 재수 옴 붙었어! 내 옆에 있으니 엄청나게 비교될 거다!’

왕호의 옆옆자리에 걸린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신과 비교되며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두다다다다-

왕호의 엄청난 칼질 속도를 보자, 고효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 미친 새끼!’

칼질이 얼마나 능숙한지, 따발총처럼 손목이 움직인다. 기계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기본기는 생각했던 대로 탄탄하군. 그래 봤자 칼질이지! 마법을 무슨 수로 이겨?’

고효광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카메라는 아직까지 고효광만을 비추고 있었다. 왕호는 아직까지 한 씬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약속했던 대로 케빈 오 셰프가 카메라를 한 대 대동한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케빈 오의 혹평을 얻어맞고, 왕호의 양옆에 있는 이들이 나가떨어진다.

그 모습에, 고효광을 찍고 있던 카메라맨도 케빈 오를 향했다.

‘흐흐, 안왕호 네놈의 칼질을 찍고 내 윈드 커터를 찍는다면 확실히 증명되겠군.’

시청자들의 반응이 대답해 줄 것이다.

우매한 시청자들은 단순한 칼질보다, 화려한 마법을 더 좋아하니 말이다.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지 않자, 고효광은 마법을 멈추고 왕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혹시 더 얇게 썰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안왕호가 케빈 오의 요구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장미칼을 고쳐 쥐었다.

‘풉! 장미칼?’

자세히 보니, 왕호가 들고 있는 식칼은 다름 아닌 장미칼이었다. 홈쇼핑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이라는 그 장미칼이다. 가정주부들이나 쓴다는 바로 그 칼 말이다. 이곳은 호텔 셰프를 뽑는 곳인데, 정말 수준 떨어지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왕호가 다시금 칼질을 시작했을 때, 고효광은 자신의 영혼이 탈곡되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예, 옘병!’

재수 옴팡지게 더러운 놈은, 안왕호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드르르르르--

왕호의 칼이 춤을 춘다. 칼이 춤을 추자, 검신에 그려져 있던 장미가 마치 공중을 수놓는 것 같았다.

흩날려라 장미꽃!

눈으로 포착할 수 있는 프레임보다, 왕호의 칼질이 더 빠르다. 그렇기에 왕호의 칼질은 신비할 정도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저게 뭐야! 파채가 아니라 파실을 뽑고 있어!”

“어, 어디서 튀어나온 요리사야?”

“요리사가 아니라 휴머노이드 아닐까? 정부에서 비밀리에 제작하고 있는 기계가 분명해!”

참가자들도 놀라고, 스탭들도 놀라고, 카메라맨도 놀라고, 케빈 오도 놀라고, 지나가던 하루살이조차 놀랐다. 아니,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모든 참가자의 눈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썰기를 멈춘 채, 왕호의 몸짓을 구경하기 바빴다.

케빈 오는 자신의 두 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단지, 이 청년의 실력을 좀 더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근데 이건···

드르르르--

마치 은행에서 쓰는 돈 세는 기계처럼, 파채가 썰려 나온다. 일단,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속도다.

게다가 저 불도저 같은 속도라면 응당 도마에도 상처가 나야 한다. 속도가 엄청난 만큼, 절삭력도 강해졌을 테니까.

하지만 도마는 매끈매끈 사 올 때의 그 모습 그대로다. 힘을 낭비하지 않고 완벽히 칼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디 그뿐이랴?

썰려 나온 파채의 두께는 파채라고 볼 수 없는 수준.

그냥 실이다 실. 그것도 하늘하늘한 실크. 어찌나 얇은지 당장 저 파채··· 아니, 파실을 모아다 엮으면 명주실타래가 튀어나올 판이다.

왕호의 기본기와 함무라비 검법이 결합되어 발생한 결과였다.

“그, 그만!”

케빈 오는 다급히 왕호를 멈춰 세웠다. 더 볼 필요도 없었다.

맘 같아서는 이 진기명기를 계속 보고 싶었으나, 심사를 계속해야 한다.

“추, 축하드립니다. 안왕호 씨 본선행 확정입니다. 대기실로 가셔서 쉬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왕호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휴, 무슨 녹화가 레이드 뛰는 것보다 더 진 빠지네.’

어쨌든, 본선행 확정이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30명 남짓한 인원들끼리 요리로 치고받고 싸워야 한다.

딱 5명 안까지만 들자!

이것이 왕호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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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니기랄! 육시랄!!!’

고효광은 손톱이 깨질 듯이 두 손을 말아쥐었다.

칼잡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가지고 있던 상식이 와장창! 부서져 내렸다.

공연의 성지라는 라스베가스에 가도 저런 기묘한 광경은 보지 못할 듯싶었다.

회심의 윈드 커터 마법은 완벽히 묻혔다.

더 이상 카메라맨도, 주위에 있는 참가자들도, 심지어 심사위원도 자신의 마법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케빈 오가 합격을 줬음에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케빈 오의 무미건조한 말투처럼, 방송에 비칠 자신의 모습도 무미건조 그 자체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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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는 대기실로 곧장 향하지 않았다.

경연장이 잘 보이는 강당 2층으로 향해서, 참가자들을 눈여겨봤다.

심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 에이스의 출현 (3)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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