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무비 (5) >
*
“상문아 이거 꼭 차야 돼?”
왕호가 영 불편한지, 몸통을 좌우로 흔들었다.
왕호의 가슴어림에는 액션캠 하나가 달려 있었다.
“형! 원래 하이바에다가 달아야 되는데, 불편할까봐 좀 내린거예요.”
“···헬멧에 카메라 달고 사냥을 해?”
“그래야 눈높이에서 제대로 찍을 수 있거든요. 1인칭 게임처럼 팔각도도 잘 나오구요.”
“알았어. 뭐, 익숙해지겠지.”
“제가 옆에서 또 촬영할 거니까, 의식하지 말고 평소처럼 하시면 돼요.”
“대화는?”
“형은 실력파니까 묵언수행 하셔도 상관 없어요. 채팅창 보고 소통해도 되는데, 이따 보시면 알겠지만 이상한 댓글 천지라서 그냥 무시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알았어. 시작 한다?”
왕호가 준비를 마치자, 상문이가 방송을 시작했다.
신상문은 그날 이후 개인 방송을 접었다. 어차피 고정 팬들도 50남짓 뿐이라 양해를 구했다.
왕호는 신상문의 조언대로 개인 방송국 아이디를 생성했다. 유튜브 공식 채널도 개설했다.
여러 플랫폼으로의 멀티 송출은 초보자가 관리하기 매우 힘들지만, 상문이가 자기만 믿으라고 가슴을 팡팡- 때렸다.
왕호는 그냥 평소처럼 의식하지 않고 사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의식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익이 생긴다니까···’
열나게 뛰어야지.
고작 이런 걸로 불편해 하면 안 된다.
지금 푸드트럭의 SNS계정은 고맙게도 여름이가 관리 중이다. 인스타 여신 출신 답게, 사진을 예쁘게 찍고 효과까지 넣을 줄 알았다.
여기에 상문이까지 더해 1인 방송과, 유튜브 영상 채널까지 관리해준다.
게다가, 지금 나가는 에셰코 녹화는 메이크업부터 시작해 콘티까지 다 엔터테인먼트 소속사가 짜준다. 추후 방송 섭외나, CF제안이 들어오더라도 그냥 시간만 내면 된다. 다 알아서 케어해준다.
마치, 뷰티 살롱의 토탈케어 서비스마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싹 다 관리해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저, 요리에만 풀집중하면 된다.
꽈악-
왕호가 장미칼과 프라이팬을 힘차게 쥐었다.
‘다른 기술도 사용하면 좋댔지?’
이번엔 유검의 초식뿐만 아니라, 다른 기술도 같이 사용할 생각이다.
중검을 이용해, 프라이팬을 휘두르고.
쾌검을 이용해, 섬광같은 공격도 보여줄 거다.
물론, 호접난무의 숙련도를 올리는 것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편집점 나올 정도만 다른 기술 같이 쓰자.’
호접난무의 마스터 기한은 한 달정도로 기니, 크게 부담되진 않을 거다.
타앗-!
왕호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간다.
목표는 나일드보어 네 마리.
유검 스킬만 사용한다면, 세 마리가 안정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스킬을 다 사용할 작정.
네다섯 마리도 거뜬하다.
꾸이익-!!
화가 잔뜩 나 있는 나일드보어의 안면으로, 왕호의 프라이팬이 육중하게 날아간다.
부우~웅-
브로드 스마이트의 강력함!
까앙-!
청아한 소리가 달팽이관을 자극한다.
프라이팬에 담긴 공격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나일드보어는 특유의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다.
그대로 기절과 동시에 목뼈가 뚜두둑- 꺾여버렸다.
붕~
얻어맞은 사체는 30m가량 뒤로 밀려났다.
[-미친! 뚝배기 그대로 박살나버리네!]
[-맑고 고운 소리 영창!]
[-와, 스윙 궤적보소. 이승엽임?]
인터넷 방송 시청자 뿐만 아니라, 신상문의 눈도 휘둥그레진다.
‘헐, 역시!’
자신의 촉이 딱! 들어맞았다.
뭔가 다른 기술이 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 있었다.
이윽고, 왕호는 발도 스킬로 다가오는 두 녀석의 코를 베어버렸다.
서거걱-
너무 빠른 나머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응? 방금 뭐였음?]
[-헐? 녹화본 느리게 돌려봐야되겟는데?]
[-이거, 유튜브에 올라오나요?]
[-매니저 : 네, 올라옵니다.]
꾸에에엑---!!!
코를 베인 나일드보어가 괴성을 지른다.
코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왕호는 정신 못차리는 놈들에게 다가가, 응비봉사로 고통을 끊어주었다.
추아악- 촤악-
나일드보어의 급소가 무자비하게 썰려나간다.
이미 치명상을 얻어맞은 터라, 반응할 수가 없었다.
꾸이이이이이이익---!!!
숙련도 100%의 위엄이었다.
씨익씨익- 두다다다-
남은 한 마리가, 치사하게 뒤에서 왕호를 공격한다.
무시무시한 박치기 공격!
휙-
이번엔 유검 초식을 이용해, 공격을 아름답게 흘려낸다.
그리고 흘린힘을 되살려 그대로 저승사자에게 보내버렸다.
푹-! 꾸에에엑--!!
쿼드라 킬.
[-맙소사! 말을 잇지 못하겠다.]
[-왕호님 혹시 비공개 랭커이심?]
[-거의 무슨 돼지 도살자인데···]
[-오늘부터 팬가입합니다.]
채팅창이 폭발했다.
채팅 올라오는 속도를 눈으로 좇기 힘들정도다.
개중에는 관심종자들의 욕지거리도 있었는데, 신상문은 욕설을 내뱉은 시청자를 강퇴시킬 여유가 없었다.
그도 넋이 나가 있었다.
‘대애~~~애박!!! 소름!’
신상문의 확신이 더더욱 짙어졌다.
자신의 최대역량을 발휘해, 이 장면들을 스페셜 영상으로 엮는다면···
흐뭇-
상상만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
왕호의 개인방송 컨텐츠는 간단했다.
세 가지 사이클로 진행됐다.
재료 조달을 위한 레이드 방송.
푸드트럭에서 요리를 만드는 요리 방송.
그리고 사람들의 먹방.
마찬가지로, 유튜브 채널의 플레이리스트도 세 가지로 나눴다.
요리 영상.
먹는 영상.
레이드 영상.
요리 영상은 푸드트럭 기존의 메뉴와 신메뉴를 쿠킹 클래스 형태로 촬영했다.
영상미를 끌어올리기 위해, 조명도 설치하고 이펙트도 화사하게 넣었다.
먹는 영상은 동의를 구한 손님을 촬영하거나, 아니면 나동수가 거의 도맡았다.
나동수는 먹는 양도 어마어마했으며, 먹는 모습도 엄청나게 야무졌다. 특히 남들은 세네 번에 집어넣어야 할 양을, 한 입에 욱여넣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신상문은 이 장면을 일명 ‘한입만’ 시리즈로 따로 편집할 정도였다.
그리고··· 유다희도 트럭에 놀러왔는데, 신상문은 그녀를 보고 또 한 번 기겁해야 했다.
우.주.여.신.
‘허, 왕호형 당신은 도대체······.’
유다희에게도 허락을 구해, 먹는 모습을 촬영했다.
무슨 요리를 먹든 유다희가 먹으면, 그것이 바로 5성급 호텔 요리였다.
어마어마한 비주얼 쇼크.
마치 CF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레이드 영상.
신상문은 이 레이드 영상에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요새 먹방이 치고 올라오고 있어도, 1등은 언제나 레이드 영상이었지.’
최고 멋지게 만들어야, 사람들의 조회수가 늘어난다.
그래야 수익이 늘어나고, 왕호형이 유명해진다.
물론, 자신의 수입도 같이 늘어날 거다.
‘걸작. 아니, 명작을 만들겠어!’
신상문의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여기엔, 왕호가 제안한 계약조건도 한몫했다.
수익의 30% 계약.
업계 최고 대우나 마찬가지다.
개인 편집자는 무조건 월급으로 수당을 받는다.
저런 퍼센테이지 계약은, 유명 스트리머를 풀케어해주는 법인 회사에서나 받을 수 있는 수수료였다. 거긴 그야말로 모든 것을 관리해준다. 스튜디오의 지원과 메이크업, 영상 편집 모두를 말이다.
신상문은 그런 법인급의 대우를 받았다.
‘비록, 지금은 막 시작하는 단계라 수입이 거의 없겠지만 나중에는 500만 원도 넘길 수 있어!’
이미 레드오션화 된 업계로의 첫 진입이다.
초기 수익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 달에 50만 원이나 떨어질지 모르겠다.
극초반에야 오픈빨이라는 것이 있지만, 고정팬을 사로잡지 않으면 바로 도태된다.
지금 당장은 완벽한 손해다. 전에 일했던 랭커에게 싹싹 빈다면, 제2 편집자로 못해도 200은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신상문은 왕호가 최고가 될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최고와 최고가 만났으니, 나중엔 월 1,000만 원, 월 2,000만 원의 영상 수익도 얻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만약 정말로 2,000만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자신에겐 600만 원이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 업계 0.1%처럼 한 달에 1억을 벌어들인다면? 정산금이 월 3천!
‘뜨억!’
개인 방송 부분에서만큼은 30%의 주식을 가진 거나 다름 없다.
오너들이 그렇게나 직원들에게 주입시키고 싶다는, 주인의식이 절로 생겨난 것이다.
회사의 승승장구가 곧 자신의 승승장구!
신상문의 눈에서 안광이 번쩍였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이 거침없다.
그의 작업 책상 위에는, 에너지 드링크 캔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흐흐흐, 역대급 매드무비의 탄생이다!’
*
매드무비Madmovie란 게임 속 화려한 슈퍼플레이들을 편집한 영상을 말한다. 웅장한 락 배경음과 함께 화려한 슈퍼플레이를 보고 있노라면, 심장박동이 강렬한 비트마냥 덩달아 쿵쿵 뛴다.
그야말로 눈 호강!
스포츠 선수의 뛰어난 활약상을 모아놓은 ‘스페셜’ 영상이라고 보면 된다. 전설적 축구선수인 호날두의 “무회전킥 스페셜” 같은 영상 말이다.
요새는 레이드 뛰는 고랭커들의 영상도 매드무비라 일컬어진다.
지금, 한 충격적인 매드무비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벌써 인기 급상승 동영상으로 태그까지 달린 상황이었다.
<안왕호 레이드 매드무비 1탄>
영상의 주인공은 안왕호.
요새 에이스 셰프 코리아 참가자로 핫한 요리사였다.
영상은 화려함 일변도였다.
쿵쿵쿵-
강렬한 락 비트가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유도한다.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 액션은, 몰입감과 타격감 두 마리 토끼를 모조리 휘어잡았다.
게다가 임팩트 있는 구간에서의 속도 조절은, 영상의 완급 밸런스를 완벽하게 맞추었다.
마지막으로, 타격시 같이 터져나오는 약간의 CG효과!
왕호의 몸짓을 더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간지라는 것이 폭발했다.
그에 맞춰 댓글들도 폭발한다.
[댓글]
[-와, 슈퍼플레이 지린다. 무빙 보소.]
[-레벨 400넘나? 퓨어파이보다 더 쩌는데?]
[-편집 진짜 잘 됐다. 편집자 소고기 사줘야할 듯.]
[-역대급 매드무비네. 퍼가도 될까요?]
[-안왕호 채널 들어가니까, 진짜 요리사였네. 요리 영상도 많네요.]
[-님들 먹방도 한 번 봐보세요. 한입만 시리즈 미침 진짜ㅋㅋㅋ]
[-하, 야밤에 요리 영상보고 바로 다이어트 포기했다.]
[-헉! 먹방 영상 중에 여성분도 나오는데, 졸라 이쁘다. 누구인지 아는 사람? 세젤예인데 진짜······.]
조회수가 순식간에 50만을 돌파해, 100만까지 바라본다.
만약, 해외 유저들에게까지 노출된다면 가히 1,000만 이상의 조회수도 노려볼 수 있을법한 영상이다.
덩달아 왕호의 유튜브 구독자 수도 지수함수 그래프처럼 가파르게 상승했다.
업로드 일주일도 안 되어, 벌써 10만을 향해 달려간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미친 속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왕호는 이미 “왕호네 밥차”라는 SNS페이지를 운영중이었다.
팔로워 숫자가 무려 12만!
그들 중 절반인 6만 명이, 초장부터 구독을 누르고 시작했다.
남들은 0명에서 출발하지만, 왕호는 6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아예 출발선부터가 달랐다.
이것은 신상문도 예측하지 못한 호재였다.
*
에이스 셰프 코리아는, 대한민국 최대 문화 기업이라는 PJ e&m에서 제작한다. 보유하고 있는 케이블 방송국 채널만 무려 20개!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다.
상암에 위치한 방송국 사옥에서, 에셰코에 관련된 긴급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예능국 국장을 비롯한 간부들부터, 에셰코 연출을 맡은 문 PD까지 회의실에 둘러앉아 있다. 다들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국장이 물었다.
“예. 안왕호 참가자에 대한 칭찬일색으로 가득합니다.”
문 PD가 답했다.
“우승 예정자는 다른 사람이지?”
“예. 플라톤 호텔측 셰프입니다.”
“여론은 무시하고, 편집 잘 해서 밀어붙이면 될 텐데? 이게 긴급회의까지 할 사항인가?”
“그게··· 두 번째 방송에서 김성오가 1등을 먹은 뒤로, 게시판이 난리입니다. 다들 납득할 수 없다고···”
“흠··· 지금 촬영된 분량이 어디까지지?”
“앞으로 김성오가 2번 더 1등을 먹을 겁니다. 안왕호는 매번 2등이고요. 아마, 여론이 더 악화될 겁니다.”
국장이 짜증나는지,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냥, 뚝심있게 가지? 이게 뭐 음악 프로그램도 아니고, 대중들이 맛을 어떻게 아나? 그냥 심사위원이 더 맛있다고 하면 더 맛있는 거지.”
“그것이··· 안왕호 그 친구가 SNS활동을 활발하게 합니다. 거기서 이미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덥니다. 플라톤 호텔과 비교해도 훨씬 맛있다고······.”
“허! ···그래도 플라톤 측과의 관계도 있는데, 일단은 밀어 붙이게. 중간에 안왕호라는 친구 1등도 한 번 시켜주고.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잖나.”
“···알겠습니다. 더 지켜보겠습니다.”
문 PD도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왕호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와서 악마의 편집을 할 수도 없는 상황.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 매드무비 (5)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