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바람 불 때 (2) >
케빈 오가 오늘의 주제를 설명했다.
“이번 주제는 달콤한 디저트입니다. 디저트는 코스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과정이죠. 게다가 코스 요리뿐만 아니라, 후식으로 디저트를 먹기 위해 카페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한! 달달한 디저트는 사람들의 기분을 북돋아 주기도 하죠. 그래서 이번엔
그냥 디저트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디저트를 주제로 삼겠습니다. 요리는 맛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그 대상을 생각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자, 이번엔 디저트인 만큼 30분 드리죠. 그럼, 시작해주세요!”
1등에게 큰 베네핏이 걸려있는 만큼, 주문도 복잡했다.
스토리 텔링이라니!
후다닥-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에서 감동적인 스토리를 짜내느라 하나같이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왕호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그냥 디저트라고만 들었는데······.’
원래 계획은, 진짜 둘이 먹다 둘 다 고혈당으로 죽을 만큼 달달 그 자체인 디저트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계획의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했다.
스토리를 억지로 덧입힐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진정성이 떨어진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 에셰코에 임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즐기러 오지 않았나.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 그대로 애인을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랑의 범주가 그렇게 좁진 않을 것이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심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제3세계 허덕이는 아이들까지.
모두 사랑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왕호의 머릿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스쳐 지나간다.
어머니, 희영이, 돌아가신 아버지, 다희, 여름이, 관장님, 종구, 강창모, 지원이, 나동수, 상문이 등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 당장 디저트를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은 바로···
희영이다.
‘수능이 정말로 코앞이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데, 달달한 쪼꼬렛만 한 게 없지.’
몇 밤만 지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수능이다. 그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날씨도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다.
아마 당일날은 어김없이 찬바람 쌩쌩 불 거다.
수능날은 매번 추웠으니까.
초콜릿은 수험생들의 필수품이다.
초콜릿은 당의 흡수가 매우 빨리 일어나는 디저트다.
단당류로 매우 빨리 분해 돼서, 에너지원으로 곧장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산악인들이 초콜릿을 뭉텅이로 가져가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체중의 1%도 차지하지 않지만, 에너지는 전체의 20% 이상을 사용하는 신비의 영역이다.
때문에, 시험 전에 이 초콜릿을 먹으면 뇌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게 된다. 에너지를 뿜뿜 집어넣어 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수능 대박 나라고 새벽 기도하는 부모님의 심정이 이럴까?’
수능이 다가오니, 되려 왕호의 심장이 더 콩닥거렸다.
결국, 왕호는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왕호가 오늘 만들 요리는,
퐁당 오 쇼콜라fondant au chocolat!
진한 갈색의 초콜릿 케이크인데, 가운데를 가르면 액체 상태의 진한 초콜릿 소스가 스르르- 흘러나오는 프렌치식 따뜻한 디저트다.
왕호는 이것을 머그컵에 담아서 구울 생각이었다. 스푼으로 떠먹으면 무척 편하고 든든할 거다.
‘역시 찬바람 불 땐 핫초코지.’
왕호가 만들 ‘퐁당 오 쇼콜라 컵케이크’는 진화된 핫초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몬스터 재료를 사용하지 않을 거다.
희영이가 먹을 거다.
희영이에게 스탯이나 스킬 버프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희영이는 비각성자다.
체력 상승 버프 정도나 쓸모 있을 거다.
그리고 그 버프는 이미 몇 달 전부터 계속해서 도시락으로 만들어 멕이는 중이다.
아침밥상과 수능 도시락에도 그 버프가 가득 담겨있다.
이번엔 정말로 맛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초콜릿의 당분이 짱구를 빠릿빠릿하게 해줄,
그런 디저트를 만들어줄 거다.
몬스터 재료는 굳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왕호는 간단한 재료들만 가지고 조리대로 들어왔다.
초콜릿, 설탕, 계란, 버터, 밀가루, 그리고 코코아 파우더.
먼저, 보울 안에 초콜릿을 가득 넣고 중탕으로 초콜릿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냥 불을 이용해 녹여버리면 초콜릿이 다 타버린다.
슥- 슥-
초콜릿을 잘 젓자, 어느새 고체였던 초콜릿이 액체 상태로 꾸덕하게 변했다.
‘이제 빠다 투하!’
여기에 사기급 재료인 버터를 뭉텅이로 집어넣었다.
버터 들어간 음식치고 맛없는 음식이 없다.
고체였던 버터가, 뜨거운 초콜릿 액체를 만나자 스르르- 녹아 내린다.
슥슥-
둘이 잘 섞이게 잘 저어준다.
여기까지가 1차 작업 끝.
달그락-
왕호는 또 다른 보울을 꺼냈다.
달걀물을 만들 예정.
계란을 탁- 까서, 휙휙- 저어준다.
순식간에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면서 달걀물이 만들어진다.
이 달걀물 위로 설탕을 추아아악- 뿌렸다.
‘헉!’
지켜보던 카메라맨이 흠칫 놀란다.
설탕을 저 정도로 무자비하게 넣을 줄 생각 못 한 것 같았다.
디저트는 원래 설탕 덩어리다.
그러니 많이 먹으면 살만 뒤룩뒤룩 찐다.
물론, 희영이가 먹을 이 당분은 뇌의 작용을 더 활발하게 만들어줄 거다.
이 완성된 달걀물을, 초콜릿 버터 녹인 물에 조금씩 조금씩 부어가며 잘 섞어 준다.
추르륵- 추르륵-
저으면 저을수록, 달걀물과 융합되어 액체 초콜릿이 좀 더 꾸덕꾸덕해진다.
완전히 섞이자, 밀가루와 코코아 파우더를 꺼냈다.
그냥 들이부어도 되지만, 채에 걸러서 좀 더 부드럽게 만들 거다. 뭉치면 안 되니까.
탁탁탁탁-
밀가루가 담긴 채를 손목의 스냅으로 살살 쳐준다.
채에 걸러진 밀가루가 마치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듯한 진풍경을 연상시켰다.
밀가루를 넣어주는 이유는, 이따가 오븐에 구워 겉을 케이크처럼 만들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코코아 파우더도 채에 걸러 넣어줬다.
슥- 슥-
모든 재료를 다 섞자, 꾸덕꾸덕했던 초콜릿 액체가 이제는 꾸덕꾸덕을 넘어 찐덕찐덕해졌다. 점성이 상당히 진해졌다. 마치 초콜릿 액체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왕호는 이 쇼콜라 액체를 살짝 떠서 간을 봤다.
쩝쩝-
‘완벽!’
입가에 웃음꽃이 드리웠다.
절대미각과 절대후각!
이 두 스킬이 말해주고 있었다.
완벽한 달달함이라고.
여기서 더 달아버리면 아마 눈살이 살짝 찌푸려질 거다.
그만큼 달달의 상한선을 완벽히 맞춰버린 것이다.
왕호가 설탕을 아무 생각 없이 부어버린 것 같았지만, 사실은 궁극의 마이크로 컨트롤이었다.
주섬주섬-
아주 예쁜 머그컵을 조심스레 꺼냈다.
손잡이가 달린 흰색의 머그잔이다.
오븐에서 눌러붙지 않도록, 붓을 이용해 녹인 버터를 머그잔에 슥슥- 발랐다.
그리고 만들어진 쇼콜라 액체를 쭈우우욱- 부었다.
대충 컵의 2/3 정도가 차게끔 부었다.
이제 섭씨 200도의 오븐에 8분 정도 구우면 완성된다.
겉은 쉬폰 케익처럼 부드럽게 구워지지만, 속은 꾸덕꾸덕한 쇼콜라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오는 그런 퐁당 오 쇼콜라 말이다.
오븐의 버튼을 누르고,
잠시 후.
띵-!
오븐이 요리의 끝을 알리는 알림음을 힘차게 내뱉었다.
완성.
[전공 요리 “디저트”를 제작했습니다.]
[디저트가 시그니처 메뉴에 등록되었습니다.]
[현재 등록된 시그니처 메뉴의 종류는 2가지입니다.]
[시그니처 힐링 요리 “두뇌의 RPM을 올려 줄, 동생을 위한 퐁당 오 쇼콜라 컵케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시그니처 메뉴의 특성상 버프가 기본 1.5배로 적용됩니다.]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8]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두뇌의 RPM을 올려 줄, 동생을 위한 퐁당 오 쇼콜라 컵케이크-
[여동생 “안희영”을 위한 요리. 긴장하지 말고, 가진 실력 100% 발휘해서 수능 만점을 맞아오라는 오빠의 마음이 담겨있다.]
[가나산 카카오를 사용했다. 풍미가 좋다.]
[아주 잘 구워졌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초콜릿 소스로 가득 찼다.]
[당분의 체내 흡수가 매우 빠르다. 당을 빠르게 올릴 수 있다.]
[매우 달지만 중독적인 단맛이다. 그렇다고 너무 달지는 않아, 끝까지 먹을 수 있다.]
[달콤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초콜릿의 좋은 성분으로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다만, 많이 섭취 시 부작용이 더 커진다.]
[효과 : 뇌에서 도파민과 엔돌핀이 분비됩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집중력이 강화됩니다. 체내의 에너지가 급격히 생성됩니다. 머리가 좋아집니다. 대상이 감동할 시, 효과는 2배로 증가합니다.]
[버프 :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가 발동됩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 뇌의 모든 작용이 활발해집니다. 대뇌의 기능이 최대로 활성화되면서, 언어, 기억, 논리력, 사고력, 공간 지각 능력의 고등정신 기능이 활발해집니다. 소뇌의 기능이 최대로 활성화되면서, 정보의 처리, 구성, 통합 능력이 활
발해집니다. 이 버프의 효과는 12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헉!
빠르게 떠오르는 알림에 왕호가 놀랐다.
그것도 많이 놀랐다.
아주 화들짝 놀랐다.
‘힐링 요리가 거기서 왜 나와···?’
느닷없이 힐링 요리가 만들어졌다.
그것도 그냥 힐링 요리가 아닌 시그니처 힐링 요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 재료는 단 0.1mg도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일반 재료만으로도 힐링 요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됐든 힐링 요리다.
힐링 버프의 효과가 상당했다.
‘이거··· 부정행위는 아니겠지?’
버프의 효과를 읽어보니, 뇌를 아주 싱싱한 상태로 만들어 준단다.
수험생 입장에서 이것보다 사기적인 버프는 없을 것이다.
수능은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컨디션을 수능날까지 얼마나 유지할 수 있냐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 요리를 먹으면 그냥 뇌가 찌릿찌릿해지면서,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뱉을 것만 같았다.
‘부정행위는 아니겠지, 모르는 지식을 주입시켜주는 것도 아니니까.’
수험생에 한에서는, 컨디션을 100%로 만들어주는 ‘징크스 브레이킹’ 버프보다 좋은 것 같았다.
징크스 브레이킹은 체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니 말이다.
어차피 희영이는 비각성자이기도 하니, 그 외의 효과들은 쓸모 자체가 없다.
히죽-
왕호가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시그니처 메뉴가 한 가지 늘었다.
‘심지어 디저트가 등록됐어!’
파스타 보다 디저트의 종류가 월등히 많다.
강력한 버프를 만들어낼 길이 훨씬 넓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것은,
이걸 먹고 능력의 200%를 발휘할 희영이의 환한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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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의 시간이 다 지났다.
왕호는 자신이 만든 디저트 요리를 심사위원 앞으로 제출했다.
왕호의 요리를 보자, 세 명의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케빈 오가 먼저 말을 꺼냈다.
“흠··· 안왕호 씨가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네요. 너무 대충 만든 거 아닙니까?”
이번에야말로, 왕호에게 1등을 줄 수 있나 싶었는데··· 나온 요리가 아주 홈메이드 수준으로 조악해 보였다.
달랑 머그컵 안에 담긴 컵케이크가 전부.
그것도 그냥 갈색빛의 단순한 초코케이크.
위에 슈가 파우더를 솔솔솔- 뿌려 데코레이션 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참가자들이 제출한 것에 비하면 너무도 저렴해 보였다.
“제 동생이 먹을 거라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수저로 퍼먹으면 쉽게 먹을 수 있거든요.”
비주얼이 홈메이드처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홈에 있는 희영이를 위한 요리니까.
여동생이라는 말에 케빈 오가 눈을 빛냈다.
다들 애인이나 미래의 배우자를 꼬시는 듯한 화려한 요리였는데, 왕호만이 특이하게 가족을 주제로 삼았다.
“여동생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요리니, 당연히 가족도 포함이겠군요. 헌데, 굳이 컵에다가 구울 필요가 있었을까요? 따로 구워서 접시에 플레이팅했다면, 좀 더 고급스럽게 나올 수 있었을 텐데요? 먹기도 그리 불편하지 않을 테고.”
“제가 만든 요리는 그냥 케이크가 아니라, 퐁당 오 쇼콜라입니다. 접시에 담으면, 흐르는 초콜릿 때문에 먹기가 쉽지 않죠. 컵이라서 떠먹기 편합니다. 비록, 외관상 고급스럽지는 않겠지만요.”
“아하! 이제야 납득이 갑니다. 그럼 왜 여동생에게 이 요리를 해주고 싶은지 들을 수 있을까요?”
케빈 오의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래도 이 빈약한 비주얼을 커버하려면, 정말 짱짱한 스토리 텔링 혹은 기똥찬 맛이 필요할 거다.
‘믿는다. 안왕호! 둘 중 하나는 잡겠지.’
케빈 오는 이번에도 왕호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찬바람 불 때 (2)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