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될놈은 그냥 되지 않는다 (3) >
인터뷰 장소는 조그마한 실내 스튜디오였다.
아나운서 한 명이 앉을 수 있는 1인용 소파, 그리고 두 명의 학생이 앉을 수 있는 2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두 개의 소파는 비스듬히 놓여있어, 카메라가 앞을 비추는 구도였다.
희영이와 구희선은 인터뷰용 대본 카드를 들고 있는 아나운서와 한 차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지정된 소파에 착석했다.
딸깍-
카메라에 빨간불이 켜지며 인터뷰가 시작됐다.
아나운서가 메인 카메라를 응시하며, 깔끔한 발성으로 인터뷰의 시작을 알렸다.
“올해 수능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다음 수능을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요. 어렵게 모셨습니다. 이번 수능의 만점자이신 안희영 양과 구희선 양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나운서가 소녀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자, 소녀들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하하, 만점자들답게 목소리도 명랑하군요. 그럼, 바로 인터뷰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안희영 양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어떻게 공부하셨길래 만점을 받으셨습니까? 특히 수학이요.”
“음···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는데요? 모의고사 준비는 보습학원 하나 다니면서 준비했구요.”
“하하하, 전국에 계신 어머님들의 등짝스매시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네요. 그럼, 좀 더 디테일하게 질문해보죠···”
각종 질문들이 쏟아졌다.
연달아 터져 나오는 질문들은 모두 대본에 적힌 것들이었다.
미리 그 대답을 연습하고 갔기에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질문이 모두 끝나자, 아나운서가 자세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습니까 희영양?”
“네! 있어요!”
“하하, 뭔가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이런 말은 아니겠죠?”
“오빠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오빠가 없었더라면 제 만점도 없었을 거예요.”
“오빠요? 희영양 오빠라 하시면··· 혹시, 요리경연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안왕호 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저희 오빠 아세요?”
“당연히 압니다.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말이죠. 오빠에게 특별히 고마운 이유라도 있나요? 대부분의 여동생들은 오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여동생 또한 그렇구요 하하하!”
아나운서의 긴장을 풀어주는 멘트에, 희영이는 웃으면서 말을 시작했다.
“제가 초등학교 갓 입학했을 때부터, 오빠가 절 키우다시피 했어요. 엄마는 조금 먼 곳으로 일하러 가셨거든요. 지금은 청주에 따로 계시구요···”
그렇게 희영이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가 진행됐다.
왕호의 대략적인 가정 스토리는, 에셰코 미션에서 왕호가 살짝 얘기한 적 있다.
하지만 그때 왕호의 어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서부터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터라, 이제는 익숙해진 탓이었다.
희영이는 한창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쳤다.
왕호는 그런 금쪽같은 여동생을 오빠가 보살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이란 그래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희영이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빠가 나를 위해 어떤 것들을 희생해야 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처음엔 희영이도 담담한 투로 말을 꺼냈으나, 점점 목소리에 감정이 묻어나왔다.
“···오빠 집념이면 충분히 맨손으로 유학 갔어도 살아남았을 텐데, 저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던 유학도 포기했었죠. ···매일 동생 따뜻한 밥 차려준다고 새벽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도, 제 두통이 도지면 옆에서 밤새워 간호해주
고··· 아직도 기억나는 게 운동회 할 때, 동생 기죽지 말라고 중요한 일 다 내팽개치고 왔었어요. 헤헤, 그때 이어달리기 1등 먹어서 진짜··· 좋았었는데··· 그리고··· 또··· 아···”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미안함? 고마움? 아니면, 오빠에 대한 자랑스러움?
너무도 복잡해서 알 수가 없다.
나이를 두 배 정도 더 먹으면 그땐 알 수 있을까?
코가 막혀 숨을 한쪽으로밖에 쉴 수가 없다.
주르륵-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에서는 자꾸만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여고생의 감수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고 해도, 고마움에 눈물 콧물 다 쏟았을 거다.
‘추접스럽게 내가 왜 이런담······.’
훌쩍-
희영이는 이을 악물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참으려 했다.
공적인 자리였기에 맘 놓고 눈물을 쏟지 못했다.
그런 희영이의 모습에, 옆에 있던 희선이도 눈물을 훔쳐야 했다. 소녀들은 웃음만큼 눈물도 많을 나이였다.
“자, 희영양 이거······.”
아나운서가 자신의 손수건을 희영이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희영이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구희선뿐만 아니라, 녹화장에 있던 몇몇 카메라맨과 작가들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자, 오빠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시죠. 영상편지 가겠습니다.”
“···오빠! 언제나 곁에서 지켜줘서 고마워! 엇나가지 않게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마워···”
또르르-
주책맞게 눈에서 또다시 소금물이 흘러나왔다.
“가족의 힘이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오빠들은 이 방송을 보고 반성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자! 이번엔 구희선 양으로 마이크를 넘겨보도록 하죠.”
20년 차 베테랑인 아나운서는, 무거워진 분위기를 각종 위트있는 멘트로 다시 살려냈다.
그의 재치 덕분에, 같이 눈물을 흘렸던 구희선도 인터뷰에 편안히 임할 수 있었다.
질문이 모두 끝나고,
“희선양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을까요?”
“네! 저도 정말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하하, 부모님이신가요?”
“가장 고마운 분은 물론 부모님이지만, 저는 집에서 이미 다 울고 왔어요! 제가 말씀드릴 분은 여러분께 꼭! 알리고 싶은 분이에요!”
“오! 그렇게 말하시니 정말 궁금합니다.”
그렇게 희선이의 스토리도 스튜디오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실수로 고사장에 지각할 위기에 놓였다.
콜택시를 불렀으나, 착오가 생겼는지 도착하지 않았다.
그때 한 아저씨··· 아니, 오빠가 자신을 고사장까지 태워주셨다.
시험 잘 보라고 응원까지 해주고, 직접 만든 초콜릿도 손에 쥐여줬다.
그야말로 녹화장을 다시금 적시는 감동스토리였다.
“와, 지금 같은 황량한 시기에 정말 보기 드문 의인이군요. 입실 마감 2분 전에 들어갔으면, 아마 사진 찍혔을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사진 찍혔는데, 제가 고개 숙이고 막 뛰어가서 다들 저인지 모르더라구요.”
“오! 하하, 그럼 여기서 밝히시는 건가요?”
“네! 그려러고 여기 나왔거든요. 그분은······.”
희선이가 살짝 뜸을 들였다.
그런 희선이를 지켜보는 아나운서, 희영이,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은 궁금함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바로, 제 옆에 있는 희영이의 오빠이자 에이스 셰프 코리아에 출연 중이신 안왕호 오빠예요!”
“헉!”
놀랐다.
모두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부터 왕호를 좋아하던 아나운서도 놀랐고,
왕호의 유튜브 구독자인 PD도 놀랐으며,
희영이의 스토리를 듣고 왕호를 처음 알게 된 스태프들도 놀랐고,
당사자의 동생인 희영이도 깜짝 놀랐다.
“그, 그니까 왕호네 밥차가 찍힌 그 ‘의인’ 사진의 주인공이 희선양이라는 소립니까?”
베테랑 아나운서도 살짝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네! 저 맞아요!”
“세상에··· 그럼, 수능 만점 맞을 인재가 안왕호 씨가 없었다면······.”
“이번 수능을 못 봤겠죠.”
“하하, 이거 국가 차원에서도 안왕호 씨에게 뭔가 해줘야 되겠는데요? 이런 국가적 인재를 살린 셈이니까요. 그럼, 희선양도 안왕호 씨께 영상편지 하나 가겠습니다.”
“흠흠··· 오빠! 저 기억하시죠? 그때 오빠가 태워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꼼짝없이 재수했을 거예요. 제가 재수할 형편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정말 준비를 열심히 했었거든요. 그리고··· 오빠께서 주신 그 응원 덕분에 인생 최고 점수를 수능에서 맞을 수 있었
어요! ···그 초콜릿··· 제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 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희선이는 힘겹게 힘겹게 말을 끝마칠 수 있었다.
너무도 고마웠던 나머지,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토닥토닥-
이제는 희영이가 희선이를 위로한다.
20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는, 이제 당황을 넘어 아주 얼떨떨했다.
‘이거, 누가 보면 안왕호 씨 특집이라고 착각하겠는데?’
단순히 수능 만점자 인터뷰로 기획된 건데, 어쩌다 보니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감동 프로그램마냥 요상하게 흘러갔다.
걱정하는 아나운서와는 다르게, 담당 PD는 카메라 뒤에서 아주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림 대박이다!’
*
왕호는 평일날엔 던전에 가서 장사한다.
때문에, 인터뷰를 마친 두 소녀는 곧장 왕호를 만나러 갈 수 없었다.
대신, 희영이는 자신의 집으로 희선이를 초대했다.
소녀들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왕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빠 왔다!”
띠띠띠띠-
도어락의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에, 두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나 왔다! ···엉?”
덕구와 함께 집으로 들어온 왕호는, 뜻밖의 얼굴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꾸벅-
“안녕하세요!”
“어! 희선이? 구희선 맞죠?”
“네!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하하, 기억 못 할 리가 있나. 근데 우리 집엔 어떻게···”
희영이가 구희선의 대답을 가로챘다.
“희선이 나랑 친구 먹었어! 내가 데리고 왔지롱!”
“정말? 학교도 다른데 어떻게 만났어?”
“뭐, 어쩌다 보니까······. 근데, 오빠가 저번에 태워줬다는 애가 희선이었어? 와, 대박 소름 끼쳤던 거 있지.”
“진짜 인생 길게 살다 볼 일이네. 내가 태워줬던 학생이 동생이랑 친구도 먹고. 아! 그러고 보니 희선이는 수능 잘 봤어요?”
아직 왕호는 희선이가 수능 만점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수능 만점자 기사라도 한 번 찾아봤으면, 이름이 같다는 사실이라도 알았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기사 훑어볼 시간에 장사준비 조금이라도 더 하는 게 이득이었으니까.
왕호의 뜬금없는 질문에, 희선이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진~짜! 잘 봤어요.”
구희선은 말하고 나서 희영이와 눈빛을 교환했다.
인터뷰 방송 나가기 전까지 비밀로 하자는 무언의 짓궂은 약속이다.
“오, 다행이네. 희영이가 친구는 잘 안 데리고 오는데··· 소미랑 혜진이 이후로 처음인가? 왔으니까 저녁이라도 먹고 가요. 내가 해줄게.”
“헉! 정말요? 앗싸! 대박사건! 내일 학교 가서 자랑해야겠다. 아 맞다! ···오빠 저 부탁 하나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부탁?”
“희영이한테 들었는데, 주말에 장사 진짜 잘 되신다면서요! 저도 홀에서 알바할래요! 용돈 벌고 싶어요!”
“홀 알바요? 한 명 더 있으면 좋긴 한데··· 그거 상당히 힘들 텐데.”
“돈 버는 일 중에 어디 쉬운 게 있나요. 저 서빙 알바는 예전에도 해봤어요! 잘 할 수 있어요!”
“음··· 알았어요. 어차피 한 명 더 쓸 생각이었으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약 구희선이 수능 만점자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극구 만류했을 거다.
차라리 과외를 하는 게 10배는 더 이득일 테니 말이다.
왕호가 부엌으로 향하자, 덕구가 구희선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풀쩍-
“와, 얘 진짜 귀엽다!”
“외모만 보면 진짜 귀엽긴 한데··· 조심해. 응큼하니까.”
희영이가 경고했다.
“에이~ 강아진데 응큼하다고? 여자라도 밝혀?”
“응. 겁나 밝혀. 특히 예쁜 여자.”
“와! 그럼 내가 예쁘다는 뜻이잖아. 꺄아~!”
기분이 좋아진 희선이는 덕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덕구는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아주 행복에 잠겼다.
그렇게···
왕호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졸지에 유이한 수능 만점자 두 명을,
고작 서빙 알바로 써먹는 이상한 사장으로 둔갑했다.
*
부들부들-
플라톤 호텔 사장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렸다.
어이없음과 분노가 혼재되어 나타난 생리현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기사를 훑고 있었다.
시장의 추세, 현재의 트렌드, 대중들의 니즈, 각종 화젯거리 등등···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오는 기사는 이것들을 대부분 충족시키는 것들이다.
서비스 업계의 수장인 그가, 이러한 기사들을 살펴보는 것은 습관이나 다름없었다.
“니기럴! 아니 진짜!!! 이건 또 무슨······.”
맷돌 손잡이가 없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안왕호 그 새끼의 이름이 또다시 메인에 등장했다.
제발 제발 어디 가서 사고라도 치라고 그렇게 기도했건만.
사고는커녕, 자꾸 이상한 미담이 흘러나온다.
이번엔 무슨 수능만점 메이커?
프린세스 메이커는 들어봤어도, 수능만점 메이커는 또 뭐람.
“씨벌 진짜 이러다 나가리 되겠네······.”
위기였다.
어찌저찌 방송국 놈들을 다시 구워삶긴 했지만, 정말로 위기였다.
“설마 또 뭔가 터지지 않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보다 더 큰 무언가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 터지는 것들만 해도 애초에 납득이 안 가는 것들이니 말이다.
< 될놈은 그냥 되지 않는다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