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구하는 삼류무사(3)>
다시 철검문.
모든 이의 배웅은 거절했지만 무림맹의 총군사의 배웅까지 무시할 수 없었던 성천월은, 썩은 얼굴로 제갈소명을 배웅한 뒤 금옥에서 연일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성모현을 찾아갔다.
“네 이놈! 네놈이 이러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차후에 철검문을 누가 물려받겠느냐!”
사조의 검을 빼앗기게 된 원흉이었지만 성모현은 당당했다.
“할아버님! 이럴 수는 없는 법입니다! 분명 흡성대법을 익힌 것이 분명합니다. 무림맹의 감찰각을 불러…….”
“닥쳐라 이놈! 네놈이 철검문의 기둥뿌리까지 다 뽑아낼 셈이구나!”
“분명 확실합니다. 초식이 이어지지 않고…….”
“이, 멍청한…….”
철검문주 성천월은 더 이상 이 멍청한 손자에게 철검문을 맡겼다간 사단이 나도 크게 사단이 날 거라 생각했다.
“모란이를 불러 오거라.”
“네?”
“성모현. 네놈이 모란이를 상대로 오십 초를 견뎌낸다면 네가 저지른 모든 죗값을 사하여 주마.”
“……그게 무슨.”
갑작스런 성천월의 말에, 성모현도 성주탁도 철검문의 다른 무사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모란아 네가 가진 바를 모두 펼쳐내라.”
“…….”
“숨길 생각 하지 마라. 너도 보았다 시피 이미 철검문의 존폐가 절벽 끝에 매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모현 저 녀석이 철검문을 이어 갈 수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성천월과 성모란의 이야기를 듣는 다른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조부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장자를 제외하다니요!”
“이 멍청한…….”
“전, 철검문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모현의 오갈 곳 없는 분노는 결국 자연스레 성모란에게 향했다. 그동안 그리 잘 보살펴 주었더니만 결국 녀석도 승계를 노리는 경쟁 상대였던 것이다.
“모란! 네가 감히!”
“닥치고 덤비세요.”
성모현은 진소운에게 당했을 때보다 더 큰 분노가 일렀다.
나고 자라면서 함께하는 것이 당연했던 피붙이에 대한 배신감은, 살의마저 일으키는 증오로 변질되었다.
“너 따위가……!”
처음부터 펼쳐지는 십성의 파산검법.
초장부터 살초를 펼친다.
그의 심경을 대변하듯 검의 움직임은 광폭하고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
쾅.
우레와 같은 쇳소리는 세 번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성모현은 성모란의 검면에 맞아 삼 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슨……!”
“일어나세요. 오라버니.”
쾅. 쾅. 쾅.
진소운의 일전과는 전혀 다른 소리.
파산검법과 파산검법의 격돌은 요란한 폭발음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성모란의 표정은 변함이 없는데 반해, 성모현의 얼굴은 이미 절박함과 놀람으로 가득했다.
힘을 쓰고 싶은데, 힘이 들어가지 않는 기분.
분명 내공도 초식의 성취도 자신이 더 높음에도 무력해지는 느낌.
펑.
이번엔 사 장이나 날아간 성모현은 벌떡 일어나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성모란을 보았다.
분명 자신의 아래라 여겼는데.
몇 번의 날카로운 반격은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이 압도했었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마치 초식이 뚝뚝 끊기고, 힘이 빠진다.
당연하게 움직이는 손발이 마치 내 것이 아닌양 서로 엇갈려 움직인다.
“이건…….”
멍한 성모현에게 묵직한 추궁의 목소리가 꽂혔다.
“모란이도 흡성대법을 익혔느냐?”
“…….”
성모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끌고 가라.”
철검문의 무사들은 총애하던 성모현을 대역 죄인처럼 아무렇게나 붙잡아 금옥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질질질질.
성모현은 너무나 큰 충격에 스스로 걷지 못하고 질질 끌려갔다.
‘하지만, 녀석의 손이 닿았을 때 분명…….’
머릿속의 의문감이 남아있었지만, 성모현은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미 성모란으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것인지 증명되어 버렸기에, 이제는 입을 여는 것조차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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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상단을 태을문에서 치워내자면 우선 태을문의 재정을 재편해야 한다.
태을문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해결하자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터였다.
강호 영약서에 적힌 영약들을 팔아 돈을 모을 수도 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물 창고나 무덤들의 보물을 가지고 나오는 방법도 있겠다.
하지만 영약들은 내가 다 먹어야 하고 보물들 대부분은 먼 성에 있어서 당장 구할 수가 없었다.
“설사 발견한다 한들 보물을 가져와 처리하는 것도 문제고.”
영약이나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어디서 뭔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면 강호 전체에서 승냥이 같은 이들이 몰려들어 전쟁이 벌어진다.
이런 류의 전쟁이 흑도와 마교와의 전쟁 못지않게 큰 피해가 벌어지기에, 무림맹은 그 어떤 신고보다 빠르게 출동하여 영약이나 보물로 인한 유혈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종종 마적이나 산적이 마을에 몰려오면 강도떼가 들었다 신고하지 않고 영약이 나타났다 신고하기도 한다.
어쨌든 결국 계룡상단과 같은 후원자를 임시방편으로나마 데려다 놓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계룡상단을 대체할 만한 상단을 찾아보자면 안휘성 내에서도 꽤 많은 상단을 찾을 수 있다.
인근엔 강소성의 남경이 있고, 절강성의 항주가 있어, 안휘성은 상인들과 표국들이 세를 넓히기 좋은 입지 조건이었고, 그만큼 거부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 금력이 대단한 자들은 태을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해득실을 철저하게 따지는 그들에게 태을문은 줄 것이 없다.
그렇다면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후원이 필요했다.
그리고 큰 부를 가진 사람은 그 감사의 마음도 충분히 크다.
“왕가장의 집이 너무 넓어서 결국 마을 하나를 차려버렸다지?”
“거기에 딸린 직원이며 식솔이 대체 얼만가. 인근 성에서도 자신의 성으로 거처를 옮기면 땅을 공짜로 준다고 했다더군.”
“내가 바로 그 왕가의 마을. 왕부를 만든 사람이야!”
“자네 왕가장에서 일하나?”
“왕부를 만들었다고. 기와며 대들보며 다 올렸지.”
“……장난하나? 곽 씨. 닥치고 안주나 먹어.”
왕가장은 왕씨 포목점을 시작으로 10대에 걸쳐 거대한 부를 일군 유서 깊은 가문이다.
왕가전장을 시작으로 왕가상단, 왕가표국, 왕가객잔 등등 수없이 많은 사업을 운영하고, 국가에서 독점하여 주는 권리인 염상(소금상인) 자격도 따내어, 안휘성을 넘어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막대한 부를 일군 가문이었다.
물론 이런 어마어마한 가문이 태을문을 상대해 줄 일은 없다.
“하지만 금지옥엽 딸내미가 연관되어 있다면 다르겠지.”
당대의 장주인 왕금산이 늘그막에 얻은 금지옥엽 외동딸인 왕소소.
어찌나 귀하게 여겼는지 왕소소가 십오 세가 되도록 밖에 돌아다닌 적이 없었고, 학문과 취미 모두를 고래 등 같은 거대한 저택 안에서 해결했다.
외출이란 것도 저택 마당을 마차로 돌면서 했다고 하니, 왕금산의 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 재력으로 딸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왕소소의 미모가 한번 보면 누구나 홀리고 두 번 보면 병을 얻을 정도로 대단해서, 황상에게 빼앗길 걸 걱정해서 숨겨두는 거라더군.”
“벌써 궁에 들어가 버려서 왕부에 있지 않다는데?”
그런 그녀가 전생에 실종되어 영영 사라져 버린 사건이 있었다.
왕금산은 사라진 왕소소를 찾기 위해 10대가 쌓아놓은 모든 가산을 털었지만, 결국 왕소소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왕금산이 가산을 모두 털고도 찾지 못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기절 할 뻔 했지. 설마… 그들이 움직였을 줄은….”
무림맹은 강호 전체의 정보가 모였다가 다시 퍼지는 곳이다.
그런 만큼 사소한 정보부터 세상에 퍼지면 안 되는 기밀 정보까지 다양했는데, 만통부는 그 정보들에 등급을 매겨 분류했다.
만통부의 정보들은 대부분 갑(甲)등급을 벗어나지 않았다.
문서 하나하나가 강호의 판세를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정보들로 가득했기에 정보의 관리도 그만큼 철저했고.
하지만 그런 만통부의 정보조차 초라하게 만드는 곳이 있었다.
바로 만통부의 비밀 부서 심현각.
심현각의 정보 대부분은 갑(甲)외 등급으로 매겨진다.
이곳의 정보는 심현각의 관리인과 만통부의 총군사, 무림맹의 맹주만 열람할 수 있으며 한번 기밀로 결정 나 봉인된 정보는 맹주라 할지라도 절대 열어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들이란 무엇일까?
바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약점과 구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강호의 거대한 거목이 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목줄을 죄기 위해 모여진 것들이 심현각의 자료들이었던 것.
“애당초 나에게 심현각 자료를 외우게 할 때부터 나의 생사여탈은 결정 되었던 거겠지.”
잠시 전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린 나는 얼른 머리를 저었다.
어쨌든 난 이 심현각에서 난 천하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왕소소 실종사건’의 범인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당시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바로 그곳.
“창궁상단…….”
이 당시 왕소소 실종사건에 연루된 문파만 3곳.
용의자로 지목된 흑도문파 견사문과 혈주보가 멸문당했고, 백도문파 탕현문도 멸문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정작 왕소소에 대한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고, 저돌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던 왕금산은 무림맹과 흑도맹에 막대한 배상금을 치러야 했다.
“애당초 창궁상단이 짜놓은 판 위에서 놀아났던 것이니 죽어도 왕소소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지.”
창궁상단은 남궁세가에서 만든 신생 상단이다.
이 시기 창궁상단의 가장 큰 고민은, 왕가장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염상(소금상인)의 권리를 위해 입찰에 나섰지만, 백십 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염상의 권리를 지켜왔던 왕가장을 넘을 수 없었다.
남궁세가 방계의 우두머리이자 창궁상단의 실제적 주인인 남궁상원은 창궁상단이 크기 위해선 왕가장을 밟고 일어설 수밖에 없다 판단했고, 이를 위해 일을 꾸며낸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당신의 그 작전에 고춧가루를 뿌릴 셈이고.”
지금 당장 전생의 기억 속에서 쓸만한 다른 일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창궁상단의 일을 택했다.
알량한 의협심이나 정의감 때문에 상대하기 어려운 창궁상단을 택한 게 아니다.
“철검문에선 제 놈들과 상관없는 일인냥 굴었겠다.”
성모현과의 혈투. 무림맹 총군사까지 나섰던 ‘금공’ 사건. 그 와중에 남궁상원은 단상 위에서 지루한 듯 하품을 하고 있었다.
철검문이 안휘성 내에서 패악질을 부리는 것도 남궁세가의 묵인, 더불어 창궁상단의 입김 덕분이라는 것을 아는 내가 그 꼴이 좋아 보일 리 만무했다.
남의 목숨을 절벽 끝으로 몰아넣고도 제 놈들은 상관없다는 그 태도.
“그렇다면 내가 네놈들 일에 고추 가루쯤 뿌려도 큰 문제는 없겠지?”
상대가 남궁세가의 창궁상단이라 하지만 그리 두렵지는 않았다.
창궁상단의 무사들이라면 자연스레 창궁무애검법을 익혔을 것이고, 납치의 과정을 세세하게 아는 나로선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성모란은 어쩌면 그렇게 나쁜 여자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성모란이 넘겨준 영단은 무려 강철호신단이었다.
화산파의 설매단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철심단 따위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영약.
철검문 내에서도 직계 중의 직계만이 먹을 수 있는 그 영단을 내게 선뜻 준 것이다.
철심단과 강철호신단을 소화한 내 내공은 단숨에 45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네놈들이 튀긴 똥물에 네놈들 옷이 더럽혀지는 꼴 좀 보자.”
어차피 미래엔 마교와 무림맹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남궁세가 방계 따위를 겁내기엔 최종 두목이 너무 큰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