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32화 (32/357)

#32. <전설을 찾는 이류무사(4)>

“호남성의 사람들은 마령고원을 하늘에 맞닿는 땅이라 불렀습니다. 마령고원은 4계절 내내 비가 내리지 않아 척박하여 약초꾼들 사이에서 지옥이라 불리지요. 다른 분들이 가진 정보와는 다르지만 정확하게 미타성수가 있는 곳을 가리키지요.”

주인의 말에 내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가졌다는 정보는 뭐지요?”

“마령고원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인근의 대담한 엽사들은 물론이고 약초꾼들조차 절대 접근하지 않는 곳이지요. 절망곡이라 불리는 곳인데. 최근에 약초꾼 하나가 그 골짜기에 잘못 발 디뎠다가 여섯 달 만에 발견된 일이 있지요. 그 사람이 절망곡의 안쪽 동굴에서 태양처럼 빛이 나는 얼음 기둥을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태양처럼 빛이 나는 얼음 기둥은 미타성수가 정제되기 전 극음의 성질을 보존한 상태를 이야기했다.

“강호의 인사들은 그 소문을 따라 이곳 악양에 모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때쯤 나는, 이렇게 다 이야기해 주면 금전 20냥은 왜 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하, 이 정도는 아까의 실례를 대신한다 생각하시라 하고 드리는 겁니다. 실제 정보를 얻으시려면 금전 20냥을 내셔야 합니다.”

“그 정보가 뭡니까?”

“절망곡 내부 동굴의 지도입니다.”

“지……도?”

“아까 말씀드린 약초꾼 있지 않습니까? 그 약초꾼을 수소문해 지도를 제작했지요.”

“그렇다 해도 금전 20냥은 너무 비싼 거 같은데.”

“목숨 값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지도가 정확하다는 증거도 없고.”

“반년의 시간을 동굴에서 지낼 생각이 있으시다면야 그렇겠지요.”

“……그렇게 동굴이 넓습니까?”

주인은 양 소매에 넣고 있던 손을 꺼내며 팔뚝 길이만 한 두루마리를 꺼내었다.

그 두루마리가 후루루 펴지자 그 넓이가 1자는 되어 보였고, 그 안으로 개미집 같이 짜잘한 방의 그림이 수백 개는 보였다.

“작은 동굴은 이 공간 정도의 크기고 큰 공간은 절망곡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할 정도로 크다고 하더군요.”

“끄응.”

“어떻게 생각 없으십니까?”

주인은 휘리릭 문서를 되감아 가죽끈으로 착 묶어 보였다. 잘 들고 다니면 다른 이에게 크게 들킬 것 같지 않은 적당한 크기였지만.

“아쉽지만 돈이 없군요.”

“은왕패로는 전장에서 무기한으로 전표를 차관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걸 다 갚자면 평생 일을 해도 못 갚겠지요.”

이미 주인이 지도를 보여준 순간. 지도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혀있었기에, 굳이 금전 20냥이나 헛돈을 쓸 필욘 없었다. 그보단.

“저런…… 정체가 더더욱 궁금해지는군요.”

“아, 그보다 정보 하나 사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보요?”

“네.”

“어떤 정보 말씀이십니까?”

난 마방에서 지내는 동안 무림맹 규격의 기밀문서를 하나 만들었었다.

왕가장에서 받은 여비는 충분했지만,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돈으로 바꾸지 않고 가만히 두고 있는 것도 바보 같은 짓. 더불어 이를 통해 하오문과 차후에 해야 할 중요한 거래도 있었으니 지금 씨를 뿌려두는 것이 필요했다.

“개방의 항주 진출에 관련된 기밀문서입니다.”

“…….”

주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개방은 구파일방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동시에 강호 전체의 눈과 귀과 되어주는 곳이다.

그런 만큼 비슷한 류의 단체인 하오문과 언제나 대립을 해왔는데.

전체적인 세는 개방이 훨씬 대단했지만, 유흥과 상업이 발달한 곳에선 하오문이 정보를 꽉 틀어쥐고 있었다.

그랬기에 수십 년간의 치열한 암투 속에서도 하오문이 계속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음…… 좋은 정보이기는 하나 확실한지 알 수는 없겠군요.”

“이렇게 하시죠.”

나는 품속에서 문서를 꺼내어 반을 찢어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조심스레 문서를 받아 든 주인은 천천히 문서를 읽다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사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금전 20냥.”

주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냥 지도를 달라고 하시는 게 말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아뇨. 전 지도 필요 없습니다. 돈으로 주시죠.”

“진심이십니까?”

“제가 미타성수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돈이나 좀 얻어서 악양루나 구경하다 갈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주변의 기물들을 둘러보다 눈에 띄는 물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게 왜 여깄지?”

은색의 오므린 꽃봉오리같이 생긴 모양의 기물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게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어찌어찌 이곳까지 흘러들어 왔습니다.”

“사천에서 이걸 알면 가만있겠습니까?”

내가 슬쩍 떠보자 주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씨익 지었다.

“역시나 범상치 않은 분이시군요. 어떻습니까? 금전 1냥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걸 썼다간 사천의 귀신들이 평생을 따라다닐 건데.”

“하긴 그렇군요. 그럼 그냥 선물로 드린다면 어떻습니까?”

“이 비싼 걸 선물로 주신다고요?”

“친구비라고 생각하시죠.”

“이런 위험한 선물이라니 나쁜 친구군요.”

주인은 손을 숨긴 소매를 들어 올려 쿡쿡 웃었다.

“본래 나쁜 친구랑 노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습니까?”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관찰하고 있는 주인. 어떻게든 나를 캐내어 내게서 뭐든 뽑아 먹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역시나 장차 하오문의 13대 문주가 되는 이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인가?

미래의 하오문주 양군백과 개인적인 인연을 터놓는 건 나로선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선택. 나는 기물을 집으며 말했다.

“그 말도 맞군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흑점을 나온 내 심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

태을검제의 마지막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지점이 곧 미타성수가 발견되는 공간과 같다는 건, 나 또한 그 난리통에 몸을 던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어이! 그냥 지나갈 생각이냐! 내 어깨가 지금 부러졌다고!”

“그따위 쓸모없는 어깨였다면 진즉에 버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

챙챙.

무림인들이 모여드니 사방에서 산발적으로 싸움이 일어난다.

그냥 동네 왈패의 싸움도 아니다. 하나같이 이름도 살벌한 고수들이 그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구지신개 마고산, 금각동인 사무인, 극락동자 서현재…… 이런 놈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흑도뿐만 아니라 백도 측의 고수들도 한둘이 아니다.

특히나 백도는 적·아를 구분하기 위해 한 색으로 맞춰 입고, 최소 스무 명에서 많게는 백 명까지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미타성수 쟁탈전이 끝나고 들어가면 너무 늦겠지?’

이 일은 무려 두 달이나 이어진다.

그 후엔 영애를 잃은 남궁세가를 비롯한 백도 무림 방파와 흑도 무림 방파들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또 반년의 세월을 마령고원에서 보내고.

결국 그것들이 다 끝나길 기다렸다간 무림학관 시험도 치르지 못할 판이었다.

‘그래도 들어가야겠지.’

태을문의 비급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다. 오천명이 아니라 만명이 죽은 곳이라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더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태을문의 비급과 더불어 미타성수까지 얻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단 할 일부터 하자.”

미타성수를 얻을지도 모른다면 최소한 그에 관한 준비가 필요했다.

나는 악양의 기루 거리 초입에 있는 장신구점으로 향했다.

허름한 내부와는 다르게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진귀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아름다운 장신구들보다는 허름한 내부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깡마른 노인이 곰방대에 담뱃잎을 넣고 있었다.

“왔냐, 이상한 놈.”

노인은 여전히 수상쩍은 놈을 본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악양에 도착한 나는 마방에서 하루를 보내곤 다음날 곧장 이곳에 와 저 노인에게 천잠사를 맡겼었다.

“다 완성됐습니까?”

“어찌 안 것인진 알려줘야지.”

처음 장신구점에 찾아온 날, 다짜고자 천잠사를 내미니 노인은 나를 미친놈 보듯 봤었다.

난 그러거나 말거나 이걸로 만들고자 하는 물건을 이야기했고, 노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자신의 정체를 어찌 알았는지 내게 물어보았다.

그와 내가 미래에 만날 거라는 걸 이야기 할 수 없었던 다는 물건이 다 만들어지면 말해주겠다 했었다.

“물건이 완성되었는지부터 알려주십시오.”

노인이 천에 쌓인 물건을 한쪽에 툭 던졌다.

천에서 나온 것은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팔찌라 하기엔 가죽이 넓었고, 손과 발에 두르는 수갑(手甲)이라 하기엔 달린 장식들이 너무 많았다.

“네 차례다.”

“하오문에 금전 10냥을 주고 알아낸 것입니다.”

노인의 정체는 만수장인 장도원.

전생의 무림맹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였기에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열 살에 대장간에 팔려가 망치를 쥐었고, 이후엔 목공소, 가죽공방 등등에 팔려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비참한 상황에서도 뛰어난 재능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얻었지만, 타고난 출신이 천하고 실력을 드러내지 않아 초야에 묻혀있던 존재였다.

훗날 마교가 재림할 당시 무림맹에 투신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위한 열 네 개의 신병이기를 만들고 다시 자취를 감췄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그저 하오문을 통해 알았다고 대충 얼버무린 것이었다.

“내 몸값이 금전 10냥밖에 되지 않는다고?”

의심 대신 그 부분이 더 화가 나는 것인가?

“아직 노사의 진가를 모르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됐다. 아양은 그만 떨고 물건이나 봐라.”

“오, 용이 있네요?”

“비룡조라 이름 붙였다.”

“어떻게 쓰는 겁니까?”

장도원은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준 천잠사로 이런 물건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손바닥을 안쪽으로 당겨 보거라.”

철컥.

손등 부분이 당겨지면서 갈고리 형태의 화살촉이 튀어나왔다.

“한철로 만들어 어지간한 바위는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걸 던져서 뚫으라고요?”

“천잠사의 특징은 알고 있지?”

“내공을 주입하면 늘어나는 특징이 있지요. 그럼 내공을 주입하여 늘어뜨린 후, 내공을 회수해서 당겨 쓰는 것이군요. 대단한데요?”

“멍청한 놈. 그런 허접한 물건을 만들려고 내게 맡겼다는 것이냐.”

“에?”

“천잠사는 내기를 불어 넣는 양에 따라 방향도 바꿀 수 있다.”

“에?”

“서로 다른 줄을 하나로 엮어 내기를 주입하는 방식을 서로 다르게 하면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아, 애초에 팽팽하게 감아놓았기 때문에, 네놈에게 충분한 내력이 있다면 굳이 던지지 않아도 비룡조가 스스로 쏘아져 나갈 것이다.”

“그게 무슨…….”

“이쯤 얘기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못 알아들으면 네 것이 아닌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여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되물은 것이다.

더구나 갈고리의 끝은 절지가 되어있어 새의 발처럼 오므렸다 폈다를 할 수 있었다.

“애당초 너 같은 애송이가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걸 쓰기 위해선 무던한 노력과 침술을 방불케 할 정도의 미세한 조절이…….”

피리리리릭.

비룡조에서 쏘아져 나간 갈고리가 허공을 나는 뱀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장도원을 지나쳐 간 비룡조는 장식장 끝에 위치한 은가락지 하나를 툭 집어 다시금 되돌아 오기 시작했다.

피리리리릭.

팔목의 안쪽에선 작은 도르래가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고, 천잠사가 모두 감겼을 땐 내 손에 은가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렇게 쓰면 되는 것입니까?”

“허어…….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나.”

장도원은 몇 번이나 시연을 시켜보았고, 그때마다 나는 그가 시킨 일들을 척척 해내었다.

“크흠. 뭐 제법 흉내는 내는 것 같구나.”

“조금 전엔 믿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됐다! 볼일 끝났으면 돌아가거라.”

“아, 그보다 하나 더 의뢰할 것이 있습니다.”

“또? 에잉, 한 번에 맡기지 않고.”

“저도 계획에 없던 일이라.”

나는 미타성수를 채취할 때 필요한 물건의 모양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장도원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네놈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하하, 말씀드리면 공짜로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장도원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타성수를 채취할 수 있는 물건을 주문해 놓은 나는, 장도원에게 물어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객잔으로 향했다.

일단은 혼자 가는 것보다 어떤 무리에라도 대충 끼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믿을 수는 없겠지만, 도중에 뜬금없이 칼침 맞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객잔으로 향하는 사이, 일갑자에 이르는 내공 덕분에 민감해진 기감에 누군가 들어왔다.

‘뭐지?’

지금 내가 악양에서 만날 만한 사람은 없다.

몇몇은 내가 그들을 안다 하더라도 그들은 나를 모를, 전생의 인연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설마.’

문득 핏줄이 벌겋게 터진 눈으로 내게 저주를 퍼붓던 계연석이 떠올랐다.

살수라도 고용한 것일까?

태을문에선 나를 노렸다간 바로 범인으로 지목될 테니 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거기까지 생각이 뻗치자 머리털이 삐쭉 섰다.

빽빽한 인파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공격을 한다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수상한 기운은 인파를 유려하게 헤치고 빠르게 이편으로 달려들었다.

곧장 내공을 끌어올려 대처하려는 그 순간.

“진 공자!! 여긴 어쩐 일이에요?”

수상한 기운의 정체는 바로 철검문의 성모란이었다.

성모란이 한 손에 닭꼬치를 들고 해맑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게요. 나도 깜짝 놀랐어요.합비에서도 보기 힘든 사람을 이곳에서 보다니.”

“성 소저께선 이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저요? 당연히 미타성수를 찾으러 왔죠.”

자신이 손에 닭꼬치를 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성모란은 얼른 뒤로 닭꼬치를 숨기고 말했다.

“혼자 말입니까?”

“아뇨. 아는 동생하고요. 그 외 동생을 도울 사람들 몇과 제 친구들도 함께 왔지요.”

“아…… 일행이 있으십니까?”

“설마, 진 공자도 미타성수를 찾기 위해 온 건가요?”

“……뭐,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요.”

“누구랑요?”

“전 혼자입니다.”

“세상에…… 간이 큰 줄 알았지만 정말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요.”

“……저, 소저 말이 좀 심하신 듯 한데…….”

“아뇨. 전혀 심하지 않아요. 어떻게 혈혈단신으로 미타성수를 찾으러 갈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일행을 좀 찾아보려 했습니다.”

“아, 정말요?”

“네.”

“그럼 저희와 함께 움직이는 건 어떠세요?”

성모란 정도의 고수라면 믿고 뒤를 맡길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녀가 내 배에 칼을 꽂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물론 천잠보의를 입어서 괜찮겠지만.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 잠깐만요.”

성모란은 뒤편을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는 중일 터.

하지만 한참 입술을 달싹거리던 성모란은 갑자기 고개를 젓더니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뭔가 말이 잘되지 않는 듯 보였다.

“소저, 불편하시다면 무리하여 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 아니예요! 도, 동생이 절 놀려서 그런 거였어요.”

“놀려요?”

“어험, 아무튼 미타성수를 먼저 선점한 것에 대해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함께해도 좋대요.”

이런 단체 행동의 경우 보물이나 영약의 선점권에 대해선 미리 약속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이런 약속 없이 들어가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최후에 저들끼리 칼부림이 일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지금 이쪽으로 오겠대요.”

잠시 뒤 앞쪽이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난 그 앞에 선 사내들의 복장을 보고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궁세가!’

악양의 거리에 수많은 고수가 즐비하다고 하지만, 지금 이들 이상 가는 고수들은 손에 꼽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사람들도 모두 길을 비켜준 것이었다.

난 성모란의 한쪽 팔을 잡고 바깥으로 끌려는 순간.

“선화야!!”

“!!”

성모란이 번쩍 손을 들어 인사했다.

“언니! 갑자기 사라져서 깜짝 놀랐잖아. 이분이…… 그분이셔?”

“어…… 으흠, 태을문의 진소운 공자님이셔.”

성모란에게 언니라 부른 여성이 입가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길 주변으로 물러났던 남정네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포권을 쥐며 인사를 하는 남궁선화.

“안녕하세요. 남궁선화라고 해요.”

내가 함께하기로 한 일행은 이번 쟁탈전에 죽는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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