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81화 (81/357)

#81. <용을 쫓는 자들(2)>

무림학관 정시 일(一)관문이 끝난 시점에서 가장 몸이 달아오른 것은 유수 문파의 제자들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백팔봉의 강성사문 소속의 제자들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산채 토벌을 이루지 못했고, 그 분노와 집착은 다른 일(一)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향했다.

“벌써 산발적인 전투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팔봉의 많은 제자들이 탈락했고, 심한 경우 부대 전체가 전멸을 한 곳도 있습니다.”

모순적인 것은 그 누구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향한 검은 겨누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일(一)관문에 한해서겠지요.”

이(二)관문, 삼(三)관문으로 이어지면 강성문파의 눈치를 보던 이들도, 모 아니면 도 식의 습격을 벌일지도 모르나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소운님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

녹림칠십이채중 하나인 쌍막채.

실제로는 화막채와 금막채로 이루어진 두 곳을 토벌하고 얻은 일(一)관문패 여덟 개가 그들의 입맛을 돋게 하겠지. 거기에 방두칠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관문패 두 개까지 더하면 총 열 개.

“각오하고 있습니다.”

전생에도 항상 만만한 대상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군침 흘리는 대상이 된 건 처음이다.

“당장 황검문과 청도방을 비롯한 절강성에 터를 둔 백팔봉 문파들이 천목산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벌써 말입니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황검문과 청도방은 각각 백팔봉 23봉와 32봉를 차지는 절강성의 터줏대감들이다. 전생에선 각기 한 명씩의 제자들을 무림학관에 입학시켰던 존재들. 그들이 전생과 달리 움직이고 있다.

“개방이 이미 소운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가장 입맛 도는 먹잇감이자, 가장 비싼 정보일 터다.

가장 약하면서 가장 많은 입관패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 대한 정보에 천금을 지불 할 대상은 얼마든지 있겠지.

“최대한 다른 정보를 흘리고 있지만, 그것이…….”

양군백은 마치 대역죄를 고백하는 얼굴로 말했다.

무림맹의 한 축을 담당하여 실시간으로 시험 중간 결과를 받아보는 개방과 직접 발로 뛰는 하오문의 정보 신뢰도에는 차등이 생기겠지.

더구나 내 정보를 흐리게 만든다고 다른 정보를 줬다간 하오문은 신뢰를 잃게 된다.

“아니요. 하오문의 신뢰에 금이 갈만한 행동은 원치 않습니다.”

“네?”

“하오문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다면, 차후에 제가 이용하는 데도 무리가 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됐다간…… 정말 소운님께 큰일이…….”

“전 하오문의 식객이지 하오문의 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양군백의 눈두덩이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나는 사내의 눈물 따윈 보고 싶지 않기에 얼른 화제를 돌린다.

“우선 황검문과 청도방을 만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나흘의 거리 차가 있지만…… 소운님이 지체하는 순간,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질 겁니다.”

양군백의 얼굴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

아직 해가 뜨기 전 인시(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사제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방을 나섰을 때.

복도에 허 촌장이 등을 돌린 채 곰방대의 연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어르신.”

“……일어났는가?”

“예.”

“일찍 출발하는군.”

“네. 일찍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잠깐 시간 있겠지?”

나는 금·은·동 형제가 자는 방을 한번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고 가기엔 허 촌장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허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털어서라도 잔치를 열고자 했지만, 당장에 황검문과 청도방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쫓아오고 있다는데, 멍청하게 잔치나 벌이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우린 예를 갖춰 거절했던 탓이다.

“오랜 시간은 힘들 것 같습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걸세.”

허 촌장은 객잔의 뒤편에 텃밭으로 쓰는 공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관리가 되지 않아 말라붙은 채소들이 흉했지만, 허 촌장은 신경 쓰지 않고 텃밭 한구석으로 향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일갑자 전에 말이야. 내가 막 객잔을 아버지께 물려받고 장사를 하던 시절에 맛이 변해선지 연신 파리만 날리던 날이 있었지.”

허 촌장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묵묵히 풀어냈다.

“그날도 공을 치고 만들어 놓은 면을 모두 버리려는 때에, 왜 거지 같은 중늙은이가 하나 들어오는 게 아닌가.”

허 촌장은 적당히 땅을 팠다 싶었는지, 호미를 들고 조심스레 주변을 살살 긁어냈다.

“장사가 안돼서 시주 드릴 게 없다고 하니, 호탕하게 웃으며 국수 하나 말아 달라고 하더군. 돈이 없을 게 뻔했지만…… 어차피 장사도 공친 마당에 시주하는 셈 치고 국수를 말아줬네.”

한참을 그렇게 땅을 파던 허 촌장은, 땅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손에 잡힌 듯한 표정을 짓더니 조심스레 작은 보따리를 꺼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땅에 묻혀있었는지, 겉을 감쌌던 광목천 일부가 삭아 흙과 함께 후두둑 떨어졌다.

“역시나 국수를 다 먹은 후엔 돈이 없다고 하더군. 그러려니 했기에 그냥 보내려 했는데. 자신의 물건을 맡기겠다고 하지 뭔가. 되었다고 몇 번을 거절해 봐도 결국 떠안듯 맡게 되었다네.”

보따리는 여러 겹의 천에 둘둘 말려있었고, 그 천들을 하나하나 떼어내자 기름을 바른 가죽 주머니가 나왔고, 가죽 주머니를 벗겨내자 그 안에 꽁꽁 싸매져 있던 물건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중늙은이는 오지 않았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나는 부처를 믿지 않기에 버려버릴까도 했지만, 요상한 기운을 풍기더군.”

마지막 주머니 안에서 나온 것은 각양각색의 알로 이루어진 염주와 작은 목갑이었다.

“끼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네. 이 기물이 너무 기이하여 이 목갑은 열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네.”

그렇게 말하며 염주를 건네는 허 촌장.

내가 별말 없이 염주를 손에 쥐자, 기이하게도 간밤에 황검문과 청도방을 비롯한 다른 사문들로 인해 잔뜩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나는 곧장 머릿속 장서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심현각의 기밀 중에서 강호의 기물편을 펼쳤다.

‘탕마령주……?’

그곳에 작성된 7대 기물 중 하나. 지금 소림사 가장 깊은 심처에 모셔져 있어야 할 탕마령주가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탕마령주는 역대 불력이 높았던 승려들이 입적한 후에 나오는 단 한 개의 사리들을 모아 백팔 개의 염주로 만들고, 면벽수련을 위해 심처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쥐여주어 불심을 가득 담게 해 신물로 만든 것이다.

만드는 기간이 오래 걸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리가 백팔 개나 쓰였다는 점에서, 석탑 백팔 개에 달하는 불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물건.

“귀한 것인가?”

허 촌장은 오랜 시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골동품이 진품인지를 평가받는 사람처럼 초조한 표정이었다.

“……귀천(貴賤)을 논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최전선에서 마교를 상대할 때 소정대원들이 가장 간절하게 바란 신물이다.

마교에는 천마경을 뒤틀어 사술을 익힌 자들이 많았는데. 이 사술은 외적인 파괴력보다도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고 이지를 상실하게 했다.

전쟁터에 나서면 칼에 맞아 죽는 것보다, 사기와 마기가 뇌에 침투해 정신이 맛이 가버리는 놈들이 속출했지만, 당시 무림맹은 어떠한 신물도 전쟁통에 꺼내놓지 않았다.

단지 정심(正心)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항마진언주를 외우라는 개소리뿐.

이제야 왜 그간 무림맹과 소림사가 탕마멸사의 최고 신물인 탕마령주를 꺼내놓지 못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없는 걸 달라 하니 개소리를 내뱉는 수밖에.

“내 예상이 맞았군. 내 예상이 맞았어.”

허 촌장은 처음으로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갑자 전이면 소림사의 수허대사가 방장을 맡고 있었을 당시다. 이런 신물은 방장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반출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반출에는 기록이 남아야 한다.

더구나 당대에 깨달았다며 거지꼴을 하고 다닌 승려는 없었다.

“혹시 소림사에서 물건을 찾으러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게 소림사의 물건이었는가?”

허 촌장은 그 사실도 몰랐던 모양이다.

“네.”

“허허, 그랬구만.”

“왜 주인을 수소문하지 않으셨습니까?”

“나 같은 촌부가 이런 귀한 물건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수소문을 한단 말인가? 그랬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알고?”

자칫 잘못 소문이 났다간 무법자들에 의해 가족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는 일. 나는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열어보겠나?”

“……주인이 있는 물건 아닙니까?”

“내가 생각해 보았네. 국수값 대신 받기 거한 물건이긴 하지만, 결국 물건값으로 받은 게 아닌가. 게다가 60년간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엄연히 내 것인 거겠지?”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탕마령주 말고도 소림사에는 탕마멸사에 대항할 수 있는 신물들이 많았을 텐데도, 전쟁통에 하나도 꺼내놓질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리는 없으니, 이는 분명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꼬숩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천하에서 국수를 제일 비싼 값에 팔아먹은 분이시군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열어나 보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목갑을 열었다.

펑 하는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목갑이 열리자, 안에서 청아한 향기가 물씬 풍겼다.

엉망이 되어 흙냄새만 풍기는 텃밭이 아닌,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 와 있는 기분이었다.

“어떤가?”

허 촌장은 군침을 삼키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단이라는 물건입니다. 이야기는 들어보셨지요?”

강호에 관심이 없는 민간인이라도 소환단에 대해선 모르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영약 말인가?”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평범한 사람이 먹으면 평생 잔병치레 없이 장수할 수 있다곤 합니다.”

“그럼 무공을 익힌 자가 먹는다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당장 남들 십오 년은 수련해야 할 내공을 단박에 얻을 수 있으니, 강호에서도 영약 중의 영약을 소환단과 대환단으로 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 정도인가?”

“잘 소화한다면 그렇습니다.”

허 촌장은 턱수염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잘했군. 잘했어.’라며 이런 귀물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보관해 온 자신을 칭찬했다.

“오랜 시간 궁금하셨을 텐데. 잘 참아 오셨습니다.”

“아니, 계기가 없었다면 꺼내지 않았을 걸세. 난 그 오랜 세월 동안 강호에 나타난 보물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봐온 사람이야.”

“그렇군요.”

보물임을 알았음에도 일갑자의 시간 동안 꽁꽁 지켜온 비밀을 꺼낸 계기란 게 대체 무엇일까?

나는 목갑을 허 촌장에게 넘겼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허 촌장은 고개를 저으며 목갑을 밀어냈다.

“응?”

“그거 자네가 먹어주게.”

잘못 들었나? 재차 허 촌장에게 물었다.

“어르신, 제 이야기 못 들으셨습니까? 평범한 이가 먹으면 잔병치레가 없고 무공을 익힌 자가 먹으면…….”

“나도 아네. 허나 그것 하나 먹는다고 천지가 개벽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

“손자 녀석이 무공을 익히고 싶다 하면 근처 무관에 데려다주면 될 일. 괜히 영약의 기운이 몸 안에 남아 의심을 샀다간 더 큰 횡액이 닥치겠지.”

허 촌장의 걱정은 알지만, 그가 버텨온 세월을 생각해 난 차마 보물을 받을 수 없었다.

“어르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큰 물건입니다.”

“자네가 아니면 꺼내지 않았을 걸세.”

“네?”

“내가 오랜 시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지만, 그 어떤 무림맹도도, 그 어떤 협의지사도 우리를 위해 검을 들지 않았어. 그들이 지키는 협의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지.”

모두가 그렇다고 단언할 순 없겠지만, 대부분이 그러한 것이 현실이다.

아니, 오히려 아무런 힘도 없는 민초 때문에 흑도들과 원한을 쌓는 것에 대해서 문초를 하는 사문도 있었다.

“자네가 처음이네. 그러니 자네에게 먹일 생각이네.”

“……저 어르신.”

“그렇게 귀한 물건이라면 자네가 나에게 빚을 졌다 생각하게.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믿고 의지할 만한 뒷배가 한번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으니.”

허 촌장의 말이 결국 부담을 줄여주는 의도라는 것을 안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기에, 나는 결국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럼 제 사제들에게…….”

“아니, 자네가 먹어주게.”

“네?”

“증거조차 아는 사람들이 없어야 안전한 거 아닌가.”

“…….”

결국 허 촌장은 집요하게 소환단이 내 입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소환단이 혀에 닿는 순간. 이것이 일갑자나 묵힌 단약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분해되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좋네. 좋아. 드디어 주인을 찾았어.”

허 촌장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아 참, 이것도 자네가 가져가게. 자네 사제가 쓰든 주인에게 돌려주든 알아서 하시게. 나는 모르는 물건이라 생각할 터니.”

며칠 전 동룡이 살성에 미쳐있었던 것을 보고 이 물건을 꺼낼 다짐을 했나 보다.

혹여나 나로 인하여 소문이 잘못 나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었기에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사제들을 위해 용기를 내준 그의 마음에 감읍하여 나는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올렸다.

“감사드립니다. 어르신.”

“……됐네. 이제부터 내 뒷배가 자네라 이야기하고 다닐 테니까.”

막 떠오르는 태양 때문인지 허 촌장의 얼굴이 붉게 비춰 보였다. 허 촌장은 그것을 들킬세라 금세 객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천목산을 나선 진소운 일행은 곧장 북으로 향했다.

절강성을 넘은 다음 곧장 북서로 방향을 바꿀 참이었다.

곧이어 시작하는 제 이(二)관문과 아직 발표되지 않은 제 삼(三)관문의 최적의 동선을 고려한 이동이었다.

채채채채채챙!

“동룡! 튀어 나가지 마!”

“아, 알았어!”

“쫌 만 버텨! 곧 사형이 온다!”

금표가 발악하며 외치자 그 목소리가 하늘에 닿았는지, 후열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스, 습격이다!”

금은동 세 형제를 둘러쌓고 있던 8명의 습격자들은 진소운의 습격에 자중지란이 일어나 버렸고, 그사이 검진을 더욱 살벌하게 발동시킨 금은동 세 형제는 앞뒤로 습격자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싸움을 끝냈다.

“하아, 하아. 빌어먹을.”

“제기랄.”

태을문을 나설 때만 해도 욕지기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던 금은동 형제의 입에서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벌써 두 번째 습격이었다.

천목산을 떠난 지 이틀도 안 지난 시점.

절강성 안탕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홍선문의 제자와 무인들이었다.

절강성 끝자락에 위치한 홍선문이 어찌 벌써 정반대나 마찬가지인 천목산 인근까지 왔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 차려라! 또 온다!”

“제길.”

진소운의 말에 은호가 욕지기를 내뱉었지만, 금표와 진소운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벌써 격렬한 두 번의 전투를 겪었지만, 다행히도 내공은 절반 정도 남아있었다.

행공을 필사적으로 운용했던 덕이다.

이제는 처음처럼 이런 거추장스런 무공을 왜 익혀야 하는지 따위의 의문은 갖지 않는다.

행공이 없었으면 이미 몇 번이나 죽었을 테니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운용한 행공에도 불구하고 내공이 바닥났을 때쯤.

해가 저물고, 그날의 습격이 끝났다.

“더 심해질 거로 생각하십니까?”

추격자들의 눈을 피해 산속 깊은 숲속으로 들어온 진소운 일행은, 불도 피우지 않은 채 육포를 씹고 있었다.

“지금이 가장 편할 때라 생각하는 게 맘이 편할 거다.”

“…….”

진소운의 말에 은호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뭔갈 잊고 있단 생각이 떠올랐다.

“이(二)관문! 이 관문 시험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거죠?”

“그럴 리가 있겠냐?”

진소운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은호는 육포를 씹다 모래라도 씹었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벌써 시험이 시작되었다고요?”

“일관문패를 받으며 받은 것이다.”

진소운은 항주 지부장에게 받은 이(二) 관문 공고문을 보여주었다.

●무림학관 정시 二관문

자기개발

시험- 내단 확보.

내용- 무림학관의 학생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줄 알아야 한다. 무사에게 가장 기본적인 발전이란 내공 증량. 내공 증량을 위해 내단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조건-

10년 기준의 내단 한 개를 이(二)관문패 하나와 교환한다.

관문패는 내단 하나당 최대 3개까지만 교환할 수 있다.

단, 영물과 마물의 내단을 구분치 않는다.

공고문을 본 은호의 두 눈이 토끼처럼 떠졌다.

“사형, 언제부터 내단이 동네 불곰 쓸개가 된 건가요?”

진소운은 대답 대신 씁쓸히 웃었다.

“아니, 진짜로 농담이 아니고. 이게 무슨 개소리랍니까.”

은호의 말에 금표와 동룡이 공고문을 보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런 미친 새끼들.”

영물·마물.

인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자연 속에서 영험한 기운을 받아 본래 제한된 생명 이상을 살아가는 존재들.

일반 호랑이보다 큰 몸체를 가진 호랑이도 영물이고, 그 호랑이가 인간을 공격하는 성향을 가지면 마물이다.

하지만 내단이 생길 정도의 긴 세월을 살아온 영물·마물이란 드물다.

내단이 형성되기 전 인간 세상에 해를 끼치다가 죽거나, 반대로 인간의 눈에 띄어 사냥당하는 것이 일상이니까.

더구나 10년 수준의 내단이 형성된 영물·마물은 30년 수준의 외공을 익힌 무인이라 봐도 무관하지 않던가.

일관문을 통과한 자들은 다른 경쟁자들의 견제 혹은 습격에 대항하면서, 동시에 사냥을 하러 다녀야 하는 것이다.

“이건 당최 이루라고 만든 시험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소운은 공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걸 잘 봐라. 그 시험을 낸 의도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금표와 동룡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양새.

반면 은호는 달빛에 비춘 공고문을 더욱 자세하게 봤다.

‘시험을 낸 의도라고?’

진소운의 말에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던 은호는 드디어 공고문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단 확보인데 내단을 ‘직접’ 사냥하여 얻어야 한다는 말은 없군요.”

은호의 말에 금표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뭔 소리야. 내단을 가져오라는 말이 곧 사냥을 하라는 말이지.”

“형, 잘 생각해 봐. 우리야 돈이 없어서 그렇지, 시중에서 내단을 구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겠어?”

금표는 부지불식간에 뒤통수라도 맞은 표정으로 입을 헤…… 벌렸다.

“허…….”

“시험의 의도는 첫 번째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은호의 말에 진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일(一)관문패를 지키면서 영단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은. 무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영단을 구할 수 있는 재력, 혹은 영물을 사냥할 정도의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자들을 선발하겠다는 말이군요.”

“맞다.”

“핫…….”

정답을 들었지만, 어떤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이 시험은 재능있고 노력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닌, 그중에서도 돈과 힘까지 있는 사람을 뽑는 것 아닌가.

은호의 그런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진소운이 말했다.

“무림맹은 무림맹만이 강호의 절대적 세력이 되길 바란다.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힘 있고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계속 무림맹 안에서 경쟁하길 바라지.”

“그게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겁니까?”

빤한 정답을 알면서도.

은호는 그 잔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물었다.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잔인하다.

“말해 무엇하냐. 그 말도 안 되는 시험을 치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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