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31화 (131/357)

#131. <자신을 증명하는 흑염룡>

“호오…….”

사내가 내심 놀란 눈으로 제갈소명을 바라보자, 제갈소명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맞습니까? 맹주전 소속이?”

“왜 그리 생각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쾌검이란,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가장 짧은 거리를 가장 빠르게 닿아야 하기에 사용되는 근육의 수가 많으며, 폭발적으로 힘을 가하기 위해선 자연스레 동작이 커진다. 속도를 위해 효율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내의 동작은 동작이 작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렇기에 쾌검이 아님에도 예상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검술만 그런 특징을 가진 것이 아니다.

보보마다 바닥을 내딛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음에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이런 특징을 가진 이들이 강호에는 둘 있었다.

‘암살자, 혹은 그림자 무사.’

제갈소명이 암살자를 데려다 놓았을 리는 없으니, 자연스레 그림자 무사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티가 잘 나진 않지만, 연원을 알 수 없는 검법을 펼침에 있어 백수신검 혁무강과 비슷한 동작을 보였다.

결론은 맹주전 소속의 그림자 무사라는 것.

“대답을 안 주셨는데, 저만 대답할 수는 없지요.”

사내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그럼 계속할까?”

“아니 잠깐…….”

대응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시간을 끌어보려 했건만, 사내는 뭔가 자존심이 상한 듯 다시 비무를 전개했다.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필요 없다 생각했는지, 이전보다 동작은 커지고, 과감해져 더욱 위협적으로 변하였다.

촤촤촤촤.

사내가 순식간에 삼초식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여덟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고, 양팔엔 작은 생채기가 생긴 상태였다.

필사적으로 쌍천검결로 방비를 했는데도 말이다.

“귀여운 후배에게 가차 없으시군요.”

“귀엽다고 하기엔 키가 너무 크군. 손도 매섭고 말이야.”

사내는 자신의 벌어진 앞섬을 들썩이며 말했다.

“제대로 안 할 건가?”

“필사적으로 하고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머리 굴리는 것 말고, 말일세. 모름지기 무사라면 자신이 가진바 힘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법 아니겠나.”

이쯤 되자 나도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연유도 모른 채 비무를 한다는 것에 대한 억울한 감정은 아니다.

무사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강자에 대한 호승심.

그간 파쇄식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해 왔던 걸 생각해 보면, 실제로 나 자신의 실력을 측정해 본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야 하나.’

더구나 상대는 나보다 대단한 경지에 올라 있었고, 검법의 연원도 알 수 없는 그림자 무사.

실력을 측정해 보기엔 가장 좋은 상대인지도 몰랐다.

“그럼 한번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또 기분이 나빠지는군, 여태껏 대충했다는 말 아닌가.”

“결투에 있어 상대의 냉정을 흐트러뜨리는 건 전술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태을진경을 끌어올려 대천검법을 사방에 흩뿌렸다.

이 장의 거리를 둔 사내와 내 사이에 흑룡검의 검영이 가득 찼다.

“나 정도 고수에게 이런 환검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 모르겠나?”

“전설로 내려오는 태을검제의 검법입니다. 여타 다른 검법과 비교하면 서운합니다.”

이어 대천검법의 검영 사이에 소천검법을 덧씌웠다.

하나로 합쳐지는 쌍천검결이 아닌 각기 검법을 따로 사용하여 상대를 더욱 혼란에 빠트리는 수법.

“!”

사내는 처음으로 안색을 바꾸며 재빨리 검을 부챗살 펴듯 흩뿌렸다.

채채채챙.

대천검법에 덧씌운 소천검법이 모조리 막힌 와중에 왼손으론 만화무적권을 뻗어내었다.

비룡조를 착용한 권영이 대천검법의 검영 못지않게 많은 숫자로 피어나 사내의 사혈을 노렸다.

휘리릭.

소천검법을 해소한 사내는 몸을 두 바퀴 돌려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만화무적권을 모두 해소했다.

여기까지 나도 예상했던 바였기에, 곧장 태을팔만신보를 펼쳐 그를 따라잡았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것을 예측한 듯 주먹을 뻗어냈는데, 검법과 마찬가지로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탁.

“응?”

나는 뻗어내는 그의 손을 잡고 연화(蓮花)의 묘리를 이용해 바닥에 내쳤다.

하지만 그는 등이 바닥에 닿기 직전, 철판교의 수법으로 내 손에서 빠져나가며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채채채챙.

매섭게 사혈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검을 피하고자 태을팔만신보를 펼쳤고, 간격은 다시금 이 장으로 멀어졌다.

“…….”

사내는 방금 전 당했던 수법을 되새기듯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미난 무공을 쓰는 군, 이것도 태을검제의 비전인가?”

“여기저기서 배운 것들입니다.”

“그런가? 점점 재밌어지는군.”

사내는 검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사내의 검을 보고 할말을 잃었다.

“…….”

“왜 그러나?”

“지금 검에 둘린 거 검기 아닙니까?”

“맞네. 그게 왜?”

“그게 왜라뇨? 생사대전도 아닌데 왜 검기를 쓰시는 겁니까?”

“자네가 어느 정도까지 하는지 보고 싶거든.”

사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개의 검기를 쏘아내었다.

일반적인 검기에 비해 겨우 손바닥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지만, 검기가 품고 있는 기운은 심상치 않다.

더구나 동시에 사혈 세 곳을 노리고 날아드는 통해 제대로 대응할 수조차도 없었다.

퍽, 퍽, 퍽.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든 연무장의 바닥이 패며 검은 흙더미가 사방으로 마구 비산 했다.

“무림맹의 재산을 이리 망가뜨려도 되는 겁니까?”

“호오, 아직도 여력이 있다고?”

사내는 되려 자극을 받았는지, 연속으로 검기를 마구 쏟아내었다.

나는 태을팔만신보를 극상으로 펼쳐 환영을 통해 혼란을 주려 했지만, 사내는 그마저도 예측한 듯 내가 도망칠 곳을 향해 검기를 뿌려댔다.

퍼퍼퍼퍼퍼퍽!

작지 않은 연무장 전체가 검기로 가득 차다시피 하고,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흑룡검에 검기를 둘러 소천검법을 쏘아냈다.

쾅, 쾅, 콰콰쾅.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기는 한번 내려칠 때마다 온몸을 때리듯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검기 하나하나에 어려 있는 힘의 크기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

청룡환의 힘을 빌려 상대할 것이 아니라면,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무의미했다.

탁.

태을팔만신보를 극성으로 펼쳤다.

잔상을 너무 떨어뜨려 놓으면 가짜인 것이 간파되기에, 서로 간의 간격을 최대한으로 좁혀 검기를 유도했다.

“호오…….”

사내는 감탄사를 내뱉는 것과는 달리 위협적인 검기를 흩뿌려 잔상과 실체를 찾으려 했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손가락 한 마디의 틈을 두고 검기를 피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 장의 거리가 검 한번 휘두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좁혀진 순간.

검기를 담은 흑룡검을 휘두르며 쌍천검결을 쏟아내었다.

쐐애애액.

사내는 두드러지게 딱딱해진 얼굴로 환검들을 바라봤다.

검기가 어린 이상 환검들과 진검의 구분이 어려워 질 터.

거리를 좁히려 했던 것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펑, 펑, 콰쾅, 쾅.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환검에 검기를 쏘아내고, 환검임을 알아차린 순간, 진검이 그의 몸을 가격했다.

샥.

필사적으로 몸을 비튼 사내는 가까스로 큰 부상은 피했지만, 가슴을 가로지르는 검상까지는 막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직 그의 시야에는 열 개에 달하는 환검과 그 안에 숨겨진 진검 세 개가 남아있는 상황.

나는 승리를 확신하며 쌍천검결을 마저 쏟아냈는데.

촤르르륵.

그 순간, 얇은 철판이 낭창거리는 소리와 함께, 쌍천검결이 하나하나 막히기 시작했다.

펑, 펑, 퍼퍼퍼퍼퍼펑.

나는 흑룡검을 통해 느껴지는 반탄력에 신음하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무려 삼 갑자에 달하는 양과 고절한 태을진경의 특성으로 봤을 때, 밀린다는 건 상대가 진짜 괴물이라는 뜻이었으니까.

흔들리는 내부를 다잡고 고개를 들자, 그의 왼손엔 못 보던 검이 새로이 쥐어져 있었다.

방패막이와 칼 머리가 없이, 검파와 검신이 하나로 이어진 특이한 검.

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연검 쓰는 건 반칙 아닙니까?”

허리에 둘린 요대가 사라진 걸 보니, 평소에는 요대처럼 두르고 있다가 위급한 상황엔 검으로 사용하는 용도였나 보다.

호위무사들이 종종 그런 방식을 쓴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 실력의 그림자 무사도 같은 방식을 쓰는 걸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보게, 난 자네 스승이나 무공 사부가 아니네. 엄연히 따지자면 지금은 적이지.”

“좋습니다. 그럼 저도 적을 상대하듯 하겠습니다.”

나는 왼손을 뻗어 비룡조를 쏘아냈다.

사내는 역수로 쥔 연검으로 비룡조를 튕겨냈고, 비룡조는 힘없이 그의 뒤로 날아갔다.

“이게 단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서진 연무장의 대리석 중 가장 큰 조각을 쥔 비룡조가 회수되며 대리석이 그에게로 날아갔다.

퍼걱.

동시에 나는 비검 세 자루를 날리는 동시에, 태을팔만신보를 극성으로 펼쳐 그의 사방을 점거.

대천검법을 부챗살처럼 흩뿌렸다.

촤르르르르륵.

“이게 무슨…….”

콰콰쾅, 쾅! 쾅!

정신없이 검을 휘두른 사내는 그 와중에 내 진 체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곤 여지없이 검을 찔러 들어왔다.

나는 소천검법의 쾌의 묘리를 이용해 그의 검을 막아내고, 검에 전해지는 반발력을 디딤돌 삼아 뒤로 두 걸음 물러난 뒤, 쌍천검결을 쏟아내었다.

콰콰콰콰콰콰쾅!

검기와 검기가 맞부딪칠 때마다 뇌성벽력이 치듯 대기가 떵- 떵- 울렸고, 충격에 의해 비산한 흙더미들과 모래로 인해 연무장 일대는 안개가 낀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쉬지 않고 태을진경을 운용하여 흙먼지 속에 숨은 그를 향해 흑룡검을 내리쳤다.

퍽, 퍽, 퍽, 퍼퍼퍼퍼퍽.

그는 용케도 흙먼지 속에서 환검과 뒤섞인 진검을 찾아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방어하기에 급급한 그를 향해 나는 마무리를 하듯 쌍천검결의 오의를 쏟아냈다.

[쌍천검결]

[오의 쌍천진천하]

흙먼지가 내려앉기도 전에 연무장 전체에는 환검이 가득 찼고, 그 사이로 스무 개에 달하는 진검이 검기를 머금은 채, 그의 목숨을 노리고 들어갔다.

콰콰쾅! 콰콰쾅! 쾅! 쾅!

검기가 맞붙으며 터져 나오는 뇌성벽력에 두 귀가 멀어버릴 정도로 거대한 소음이 진동했고,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

------------!

종전까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폭음과 함께, 흙먼지를 모조리 밀어내며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숨을 고르며 사내를 바라보는 내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사내의 검 끝에는 팔뚝 길이의 검신이 길게 뻗어있었던 것.

“하하…….”

검강이라니, 검강이라니…….

동생의 기회를 빼앗긴 남궁산도 저 정도로 치사하진 않았다.

내 아버지나 내 사문의 선배들이 저 사람에게 뭔가 깊은 원한이 있는 건 아닐까?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친목 비무 중에 검강이라니.

“시발…….”

“지금 강호의 선배에게 욕을 한 건가? 못된 후배로군.”

“지금은 강호의 선배가 아닌 적 아닙니까?”

애당초 태을진경의 공부에는 검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태을문의 사람들 중에 검강을 쓸 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 어쩌면 지금은 내 한계를 직접 목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억지로 검기를 모아 만든다면 검강 비슷한 모양새를 갖출 순 있겠지만, 그것이 저 진짜 검강을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입안의 살을 당겨 깨문 뒤 정신을 차리고 바닥을 박찼다.

“계속할 생각인가 보지?”

“무림학관 대표가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도 똑같은 방식으로 덤벼드는 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군.”

내공을 때려 박아 쌍천검결을 흩뿌렸지만, 허공을 수놓은 수십 개의 검영들은 그의 휘두름 한 번에 먼지처럼 사라졌다.

촤르르르륵.

태을팔만신보를 펼쳐 여덟 개의 환영을 만든 뒤, 그의 팔방을 옮겨가며 비검을 흩뿌린다.

검기가 가득 담긴 비검이 그의 머리 위를 가득 수놓지만, 그의 검이 순식간에 비검들을 반토막 내어 바닥에 떨군다.

“이런 걸로는…….”

여유를 부리던 그는 이내 토끼처럼 눈을 뜬다.

역시나 저 정도 고수가 되면 이쪽이 뭘 준비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일까?

움직이지도 않은 채 검강을 자랑하듯 휘두르던 그가, 무릎을 굽혀 화살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런 사내의 얼굴을 향해 만해천지검결을 쏟아내었다.

“이런…….”

허공에 생겨난 다섯 자루의 흑룡검.

용봉지회는 쌍천검결과 만해천지검결의 차이를 알지 못했지만, 그는 단박에 알아차린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

다섯 자루의 흑룡검은 허공에서 쌍천검결을 펼쳐 수십 개의 환검과 이십여 개에 달하는 진검을 휘둘렀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마치 새해에 행사를 하듯 연속적으로 폭음이 터져나가며, 허공을 수놓은 환검과 만검이 만들어 낸 진검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여전히 만검 다섯 자루는 사내를 노리고 있었다.

사내의 검강의 길이가 사람 키만큼 더욱 길어졌다.

어차피 이걸로 상대할 수 없으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난 필사의 심정을 담아 만해천지검결을 마저 쏘아냈다.

“죽어!”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연무장 바닥이 모조리 부서짐과 동시에 흙더미가 파도처럼 일어나며 사방에 흙먼지를 흩뿌린다.

충격에 놀란 인근 숲의 새들이 동시에 날아올랐고, 숙소의 기와 몇 개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전력을 다했던 탓에 삼 갑자에 달하는 내공도 대부분 써버려 단전마저 텅 빈 느낌이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흙먼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하아, 씨발.”

한 줄기 바람과 함께 흙먼지가 가시자, 그 안에서 사내가 검강을 유지한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흑도무림의 기대주라더니 역시나 입이 걸군.”

평소 같았으면 아구창을 돌려줬을 농담이었지만, 더 이상 대응할 기운 따윈 없었다.

“제가 졌습니다.”

내가 바닥에 발라당 누우며 말하자, 나를 잠시 바라보던 사내가 말했다.

“……나도 꽤 즐거웠네.”

그 말과 함께 사내는 땅으로 꺼지듯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꽤 선전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저 사내에게는 기별이 가지 않았을 지도.

‘역시나 무림은 넓고 고수는 많구나.’

두 번째 삶을 다시 살게 된 뒤에 전력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또다시 느껴지는 무기력함에 더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거라고 봐야겠지.’

엉망이 된 연무장을 바라보며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고 있을 때.

제갈소명이 옆으로 다가왔다.

본래라면 먹이를 기다리는 개처럼 벌떡 일어나 예를 차려야 했으나,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더불어 총군사도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예를 차리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고.

“흠…….”

잠시 장내를 둘러보던 제갈소명이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복마신목이 날아갔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와중, 제갈소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 말이야.”

“……네.”

“혹시 맹주전에 가고 싶은 생각 있나?”

“…….”

또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

원래 천재들은 이렇게 앞뒤 다 잘라먹고 이야기하는 게 특징인가?

어쩐지 전생에 그에게 가졌던 호감이 푹푹 깎여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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