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55화 (155/357)

#155. <혼란 속의 흑염룡(5)>

혜성과 장우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 난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제심금언령을 쓰는 늙은이가 아직 남아있다니.’

사도의 제령마음과 사자후의 효능을 섞어 만든 음공은 근본이 사도의 무공이라는 이유로 소림사 내에서 기피되는 무공이다.

더불어 무공의 의도 자체 또한 너무도 음습하여 승려들이 쓰기 꺼려하는 무공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혜성이란 늙은 중이 얼마나 사람 머리 위에 올라서고 싶어하는 인간인지를 대략적으로 알려주는 지표.

금·은·동 형제는 물론이고 사련과 성모란, 게다가 남궁세가의 심법을 익힌 남궁선화까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제심금언령을 자주 써왔나 보다.

나는 옥청천상력을 흩뿌려 제심금언령의 기운을 해소했다.

“휴…….”

“……뭐였지.”

“분명 순간적으로 숨이 답답했는데.”

갑자기 입이 트인 아이들처럼 구경꾼들의 말이 트이자 혜성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겨났다.

“지금 진소운 시주는 부처님을 욕보이고 있소. 알고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는 분명 반말을 하셨는데 왜 갑자기 존대를 하십니까. 어색하게.”

“…….”

“그리고 부처님을 욕보이고 있는 건 혜성 대사 아니십니까?”

혜성은 악양에서 일어난 일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다.

“뭐라?”

“그렇지 않습니까. 장우재 학관생이 바란 것이 뭐 대단한 일이었습니까? 잠시 문파에 들러 유장문이 백도 무림의 동맹이라는 것을 보여달라는 청이었는데. 그것이 그리도 어렵습니까?”

심지어 무림맹에 돌아가 회의를 열겠다는 말도 거짓임이 분명하다.

무림맹에게 있어 유장문과 같은 중소 문파의 소멸만큼 확실한 명분이 어디 있겠나.

차후 악양의 패권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흑도 무림이 패악질을 부리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려는 의도겠지.

“희생이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두고 보려는 이유가 당최 무엇인지 저는 짐작하기 어렵군요.”

혜성과 정도회원들의 눈초리가 사납다.

경멸 어린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아니면 애당초 저들의 희생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겁니까?”

“……이놈!”

“내 듣자 듣자 하니!”

이들은 남이 피 흘리는 것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일엔 득달같이 반응한다.

그들의 시선 속에 우리와 자신들은 같은 선상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일까.

“그만!”

혜성의 노호에 정도회원들이 분한 맘을 숨기지 못한다.

“진 시주…….”

“시주라는 호칭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후후.”

잠시간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혜성이 말했다.

“그대가 도가무문의 제자라 할지라도 부처님의 시선에선 똑같은 중생과 다름이 없소. 장우재 시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사문이 무림맹의 정식 동맹이 아니라 할지라도 무림맹의 입장에선 함께 백도의 길을 걷는 동지이듯 말입니다.”

혜성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을 때마다 구경꾼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 시주의 말대로 내가 직접 나설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곳에서 더 큰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온다면 어찌하겠소.”

“어디에서 그런 큰일이 벌어졌답니까?”

내가 기억하는 한, 현 강호에 악양보다 더 큰 피바람이 불 곳은 없다.

“바로 사천이오.”

저 미친 땡중이.

혜성이 장우재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안타깝소. 하지만 지금 사천에서 수십 년간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던 존재들이 강호 전체를 노리고 있습니다.”

혜성의 거짓말에 난 속으로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네놈들한텐 지금 그런 위기감 없잖아!

“물론 유장문을 비롯한 악양의 백도 문파들의 위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렇기에 나 또한 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겠다 하는 것이오.”

“거참 믿음직스럽군요.”

역시나 노회한 여우의 이빨은 어린 호랑이 것보다 날카롭다더니.

어느샌가 혜성은 자신들이 빠져나갈 만한 명분을 내세워 모두를 설득했다.

이야기를 듣던 장우재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지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체도 하지 않던 혜성이 말했다.

“그렇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혜성이 득의양양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미 진 시주의 이름이 천하에 울려 퍼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악양의 일에 시주가 직접 나서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대는 현 무림학관의 대표이니, 장우재 학관생을 도와야 하는 의무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허탈한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책임을 돌린다 이건가?

“…….”

득의양양 웃음을 짓는 혜성.

확실히 무림맹에서 장로직까지 차지할 만큼 훌륭한 정치력이다.

하지만.

그래도 항시 동료에게 사기를 쳐서 월봉을 뜯어내려 하던 소정대 놈들에 비하면 어설프기 그지없다.

어설픈 땡중이라 이 말이지. 어디 한번 자근자근 밟아볼까.

“괜찮겠습니까?”

내 물음에 득의양양 웃던 혜성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사람들이 소림도 해결하지 못하여 도.망.친. 일을 태을문의 제자가 해결했다며 흉을 볼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

굳은 얼굴을 금세 바꾼 혜성이 말했다.

“강호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소림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으로 중생의 안위가 보장된다면, 부처님껜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겁니다.”

역시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내가 봤을 때 혜성이 있어야 할 곳은 숭산이 아니라 북경이다.

어찌 채식만 한 자의 혓바닥이 이리도 부드럽게 굴러갈 수 있을까.

“다만 걱정이 되는군요. 유장문의 존폐가 진 시주의 손에 달렸으니 말입니다. 부디 실패하지 않길 빌겠습니다. 그랬다간 유장문은 물론이고 진 시주의 대표 직위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

저렇게 거짓말을 하고도 지옥 갈 걱정이 안 드나?

하여간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왠지 진심이 안 느껴지는군요.”

“……응?”

“혹시 제가 실패하시길 바라는 것 아닙니까?”

혜성이 주위를 둘러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까 말한 대로 아쉬울 뿐이지요.”

“사실은 유장문과 같은 중·소 문파들이 모두 사라져야 소림으로선 좋은 것 아닙니까?”

“…….”

“그래야 차후에, 흑도들이 지배한 악양에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소림이 진출하기 편한 것 아니겠습니까.”

혜성의 표정이 살짝 비틀리기 시작했다.

“어디 그따위 불경한…….”

“그럼 약속 하나 해주시겠습니까? 차후 어떤 일이 있어도 소림이 악양에 진출하지 않겠노라고, 강호의 동지들 앞에서 말입니다.”

“…….”

혜성은 주위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건 힘든 겁니까?”

피식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무슨 소릴. 무엇보다 유장문을 비롯한 악양의 백도 무문들의 안녕을 바라고 있소.”

“그래도 약속은 못 해주시겠죠?”

“…….”

이제는 입술 부근이 움찔움찔 떨리기 시작한다.

정말 이러다가 혜성보다 내가 먼저 지옥에 가버릴지도.

“그럼 악양의 백도 무문들을 위해 그 영험한 기도나 해주십쇼.”

혜성도 지지 않겠다는 듯, 처음 보는 경건한 자세로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아미타불.”

이렇게까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아미타불’은 처음이었다.

#

‘그날과 똑같다.’

엎드려 울던 장우재는 기시감에 엉망이 된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흑염룡을 처음 본 날.

그는 부당한 상황 앞에서 분노하고 있었다.

자신은 동생의 인생을 저당 잡아 겨우 얻어낸 입관패를, 진소운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 개나 바닥에 내던지며 외쳤다.

-만약 무림맹조차 공명정대함을 잊고, 자기들 이익을 챙기기 위한 집단으로 전락했다면!

그것도 무림맹…… 아니, 나아가 강호 최고 권력이라 부를 수 있는 장로원의 앞에서.

-난 당신들의 뜻대로 학관에 입관하지 않겠소. 아니, 들어가라 하여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오!

그 충격적인 광경에 장우재는 한참이나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출신이,

유장문보다 못하다 평가받는 태을문임을 생각해 보면,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 누구라도 감히 할 수 없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은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사내만이 내뱉을 수 있는 광오한 말.

그날부터 장우재의 목표는 진소운이었다.

그와 같은, 아니 최소한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당당할 수 있는 사내.

그것이 장우재의 목표였다.

학관에서 소속이 없는 이들을 필사적으로 규합하고,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어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는 백팔봉임에도 12봉성에 들어가지 않았고, 남궁선화와 친분이 있음에도 백도회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려울 줄 알면서 정도회와 척을 지고,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끈질기게 밀고 나갔다.

장우재는 항상 올곧은 그와 함께하길 바랐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악양의 흑도 방파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무당이 물러간 뒤에 점창이 다시금 자리하고 있으니 점창에 선을 대보려 노력하거라.

사문에서 보낸 전서.

이는 장우재로 하여금 자신의 목표만을, 자신의 꿈만을 좇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차가운 현실 앞에 그는 진소운처럼 당당하게 나아가지 못했다.

진소운이 가장 힘들어할 때,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진소운이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을 때도 그를 응원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어찌하여…….’

부끄러움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는 이번에도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의 혜성을 향해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이번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타인을 위해서.

강자 앞에서조차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점이 장우재로 하여금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혜성 대사와의 대화 속에서 어느 정도 예측은 하였다.

유장문은 이제 강호에서 사라질 것이다.

혜성 대사도 정도회도 유장문을 위해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장우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사문이자 가문인 유장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두고만 보는 것뿐.

“그렇담 이번 악양의 일에 시주가 직접 나서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대는 현 무림학관의 대표이니, 장우재 학관생을 도와야 하는 의무도 있지 않습니까?”

정도회도 무림맹도 나서지 못하는 일에 학관 대표를 밀어 넣으려는 혜성 대사의 처사에 실망감이 더욱 커졌다.

제아무리 진소운이라 한들, 이런 일에 나설 수 있을 리 없었다.

그 또한 태을문이라는 작은 문파의 제자.

그런 자가 호기 때문에라도 나서겠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는 스스로 대가도 없이 큰 위험을 짊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그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자신의 예상을 산산이 부서뜨려 버린다.

“사람들이 소림도 해결하지 못하여 도.망.친. 일을 태을문의 제자가 해결했다며 흉을 볼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보듬는다.

마치 본래 자기 일이었다는 듯.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나서겠노라 다짐한다.

‘어째서…….’

가슴 깊은 곳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그의 앞에서 너무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그에게 했던 과거의 행동들이 너무나 비겁해서.

자신과 달리 그는…… 여전히 찬란히도 빛나는 모습이라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정도회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흩어진 후에도 장우재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우재 학관생.”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음성.

“그만 일어납시다.”

“…….”

도저히 얼굴을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그런 자신의 심경을 아는지 그는 또다시 부드럽게 감싼다.

“그렇게 엎드려 있어선 사문을 구하지 못합니다.”

장우재는 입술을 꽉 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도와주시는 겁니까?”

“다른 학관생들도 장우재 학관생을 돕기 위해 이곳에 함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하지만…… 전 대표님이 가장 힘들어할 때……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전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핫, 난 또 뭐라고. 그때 절 외면했던 게 장우재 학관생만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 스스로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쉽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 당신은?

어째서 당신은 이번에 이리 쉽게 나설 수 있었던 겁니까?

질문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

그가 이렇게 이야기해 준 것만으로 너무나 든든해져서.

마치 그간 고민한 것들이 모두 해결된 것만 같아서.

안도의 감정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이제는 모두가 자리를 떠난 선착장.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청아한 목소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뭐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대책은 생각하고 저지른 거죠?”

성모란의 말에 학관생들의 시선이 진소운에게 쏠렸다.

마령고원의 멸혼진을 깨부순 천재.

사제들만 데리고 무림정시를 통과한 기린아.

홀로 거대한 학관을 운용하고 있는 행정의 달인.

그런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이며 진소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어, 일단은 상황을 살피고 보죠.”

“…….”

“…….”

장우재는 상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너무 울어댄 탓에 기력이 쇠하여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설마…… 아무 생각 없이 나선 거예요? 묵혈방을 상대로?”

진소운이 긴장한 듯 입술을 다신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순 없는 상황 아니었습니까.”

나의 진소운이 저런 실 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리 없다. 분명 그럴 리 없는데…….

진소운은 겸연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그래도 대충은 생각해 놨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

“……아니, 지, 진짜라니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나섰을까 봐?”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는 말투.

감정이 차게 식고 든든했던 감정이 눈 녹듯 녹아내리고 있었다.

#

일행의 맨 뒤에서 걷던 일각이 뒤편을 몇 번이나 살피다가 이내 결심한 듯 혜성에게로 다가갔다.

일각이 눈치를 보며 말을 걸려는 찰나 혜성이 먼저 물었다.

“말해 보아라.”

“……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아니냐. 얘기해 보거라.”

“……저 혹시 저라도 잠시 얼굴을 비추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말입니다.”

혜성 대사가 말없이 일각을 바라보자 그의 말이 빨라졌다.

“아, 물론 늦지 않게 돌아오겠습니다. 빨리 발을 재촉한다면…….”

“어찌 그곳에 가겠다는 것이냐?”

일각은 미리 준비해 뒀던 변명을 풀었다.

“……혹여라도 유장문이 생존한다면 사람들이 소림을 우습게 보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저라도 가서 얼굴을 보인다면…….”

“넌, 유장문이 살아남으리라 생각하느냐?”

“어쨌든 이곳저곳의 도움을 받으면…….”

혜성 대사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묵혈방과 흑부궁이 그렇게 만만한 상대로 보였단 말인가?”

의문을 품는 일각의 표정에 혜성 대사가 말을 이었다.

“묵혈방과 흑부궁이 그간 점창의 눈치를 본다고 움츠려 있었다 생각하느냐?”

“네? 그게 무슨…….”

“악양에서 오십 년 이상 세를 불러왔던 흑도 문파다. 그들이 어디 뒷골목 왈패라도 되는 줄 아느냐?”

“…….”

“그들이 두려워했던 건, 점창을 등에 업은 유월문이나 창성파가 아니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진 점창을 두려워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지.”

그렇다면 흑도 무림은 그간 무엇이 두려워 악양에서 숨죽이고 있었단 말인가.

“바로 무림맹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림맹을 두려워했다면 지금도 나서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쯔쯧. 이러니 본산에서 애들에게 명상만 가르치면 안 된다고 늘상 얘기했거늘.”

투덜거리던 혜성 대사가 핀잔하듯 말했다.

“대세의 흐름이 백도에서 흑도에게로 넘어갔다. 현재로선 무림맹이 악양에 쉽게 나타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탓이겠지.”

“…….”

“파도 한 조각을 보고 물때를 예측해 봐야 단지 물에 젖지 않을 뿐이다.”

“…….”

“진정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고 싶다면 세상을 읽어야 함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말을 하던 혜성 대사가 가볍게 웃었다.

“아마 사천에 다녀온 후에는 네가 대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미리 준비해 두거라.”

“……무슨.”

“진소운…… 그 아이는 이번 해류에 휩쓸려 나갈 것이야.”

혜성 대사는 확신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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