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56화 (156/357)

#156. <혼란을 잠재우는 흑염룡>

“끄, 끝났군요.”

진태산의 목소리엔 감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왕금산 또한 눈가의 검은 그림자가 턱까지 내려왔었지만, 표정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이제 버젓한 상단의 상단주라 부를 수 있겠구먼.”

“장주님 또한 이제 사대 상단이 아닌 이대 상단의 주인이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런가? 진 상단주?”

“그럼요. 왕 대인.”

“음하하하하.”

“하하하하!”

고난의 시간이었다.

진태산은 갑자기 떠안게 된 창궁상단을 대천상단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잠을 자는 날보다 자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고.

왕금산은 갑자기 개척된 서역과의 거래 때문에 두 배로 늘어난 천하의 지부들을 관리하기 위해 잠을 줄여야 했다.

더구나 왕소소는 그 와중에 대천상단과 왕가장의 상단들의 합작을 통해 강서의 상권을 확장할 방안을 내놓았다.

그 시작이 바로 태을문이 가진 철광석 광산.

태을문이 가진 철광석 광산은 안휘성 내에 가장 많은 철 매장량을 가지고 있었고, 왕가장은 이를 통해 안휘성과 강서 일대의 철 가격을 조절하며 상권의 지배력을 펼쳐 나갔다.

“전 오늘부터 일주일간 계속 잠만 잘 생각입니다.”

“진 상단주도 그렇소? 난 앞으로 보름간은 집에서 나오지 않을 생각이오.”

술잔을 나누던 진태산이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포권을 쥐었다.

“어쨌든 대천상단이 이리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장주님 덕분입니다.”

“이를 말이오. 태을문이 철을 공급해 주지 않았다면 애당초 우리 또한 이리 성세를 크게 확장할 수 없었을 것이오.”

왕금산이 겸양을 담아 이야기했지만 진태산은 그가 태을문을 위해 엄청난 배려를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하의 왕금산이 뭐가 부족하여 왕가장을 두고 합비의 대천상단에 와서 일을 한단 말인가.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하, 그리 말해 주니 고맙소. 어찌 되었든 나 또한 빚을 갚았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 느낌이오.”

벌써 이 년 전의 일이었지만 왕금산은 아직도 술만 먹으면 진소운에 대한 칭찬을 쉬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

하지만 제 아들을 칭찬하는 말에도 진태산은 절로 이가 갈린다.

좋은 일이긴 하나,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과로의 원인은 진소운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대천상단도 슬슬 세를 넓혀야 하지 않겠소?”

그의 말마따나 자리를 확실히 잡은 대천상단은 밀려드는 일감에 절실한 세력 확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력도 시간도 부족한 진태산의 입장에선 또다시 자기 몸을 깎아가며 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직 사문이 봉문 중이니 확장은 조금 쉬엄쉬엄하려 합니다.”

왕금산이 혀를 찼다.

“쯔쯧, 장사라는 것은 기세를 타는 것인데. 이리 게을러서야 언제 대천 상단을 안휘성 제일 상단으로 키울 생각이오?”

“…….”

진태산이 정색하며 왕금산을 바라봤지만, 왕금산은 멈추지 않았다.

“계룡상단이 결국 무너지지 않았소? 그 자리를 얼른 채갈 생각을 해야지. 요즘 장사꾼들은 기백이 없어, 기백이. 나 때는 말이오.”

“……왕소소가 무림맹과 거래를 트고 싶어 하던데 왜 말리신 겁니까?”

“……음?”

“무림맹을 통해 전국에 오가는 물자의 양과 안정성 때문에 소소가 탐내지 않았습니까. 그거 왜 말리신 겁니까?”

왕금산이 기침을 내뱉었다.

“나 같은 거상은 백과 흑, 어느 한 곳에 적을 두면 힘들어지는 법이라 그렇소.”

“그래서 저희 대천상단이 도와드리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태을문의 아이들이 맹에 가면…….”

“어허! 괜찮소. 이 이상 태을문에 빚을 질 순 없소이다!”

왕금산은 단호했다.

하지만 진태산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저희 태을문은 그걸 빚으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베풀어 주신 바가 워낙 대단하니 말입니다!”

“아니 빚을 질 수 없다니까!! 은인에게 빚을 지는 건 내 신념에 맞지 않소!”

서로가 서로에게 일을 주기 위해씩-씩- 거리는 동안 사용인이 들어왔다.

“상단주님.”

사용인의 부름에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왜?”

“왜 그러느냐?”

“…….”

사용인은 험악한 분위기에 눈치를 보다 진태산을 보며 말했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네. 진소운 공자 편으로 왔다고 전해달라 하시던데요.”

두 사람이 또 동시에 대답했다.

“소운이 그 자식을?”

“우리 진소운을 찾아왔다고?”

“…….”

왕금산이 헛기침을 하자 진태산이 손님을 안으로 모시도록 했다.

“험, 그럼 진 상단주 나는 이만 가보겠소…….”

“궁금하신 거 아닙니까? 같이 만나시지요.”

“아무리 그래도 난 외부인인데…….”

“할 말도 있으니 계십시오!”

“크흠…… 알겠소.”

잠시 후, 고령의 노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진 태산 상단주님 되십니까?”

신기하게도 노인은 진태산을 보자마자 그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렇습니다. 근데 어찌 아셨습니까?”

“소운이 녀석과 똑 닮아 모를 수가 없더군요.”

노인이 너털웃음을 짓다가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초면에. 워낙 친분이 있었던지라.”

진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안내했고, 노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품 안에서 전표를 꺼내었다.

“……이게 뭡니까?”

“소운이와 약속한 돈입니다.”

“돈이요?”

“엥?”

진태산이 급히 전표를 펼치자 전표 안에는 금자 육십 냥이라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이제 막 마을이 살아난 터라 아직 수익이 그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

“……?”

이상한 분위기에 노인이 말을 이었다.

“혹여,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겁니까?”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저희 흑룡현의 수익을 배당하겠다 말했는데.”

“흑룡현?”

“흑룡현이라면…….”

진태산과 왕금산이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최근 천목산 인근에서 패악질을 부리던 쌍막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쌍룡채가 들어섰다.

쌍룡채는 적당한 통행비만을 받고 천목산 인근을 지나는 동안 호위까지 해주었기에, 그간 천목산을 빙 둘러 가던 상단 행렬이 하나둘 다시금 천목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인근 마을들도 상단 특수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상권이 생겼단 소문이 돌았다.

그 마을들 중 하나가 흑룡현.

“분명 그런 소식을 듣긴 하였는데…….”

진태산 또한 새로운 상권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천목산 인근도 생각했지만, 바로 옆에 쌍룡채라는 커다란 산채가 있어 부담을 느끼던 중이었다.

헌데 갑작스레 그곳의 수익을 배당한다는 이상한 말을 들으니 진태산이나 왕금산이나 둘 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혹…… 소운이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겁니까?”

“…….”

“소운이는 흑룡현을 비롯해 금표현 은호현 동룡현의 각 마을들의 수익을 태을문에 돌려주겠다 분명 약조를 했는데.”

“…….”

“아, 마을 이름을 그 아이들의 이름으로 지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진태산과 왕금산의 입이 쩍 벌어졌다.

분명 우연이겠지 하며 넘어갔는데 실제 그것이 태을문과 관련이 있을 줄이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노인은 진소운이 정시과정에서 벌였던 일들을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고, 이야기를 다 들은 진태산은 이를 갈았다.

“이 빌어먹을 놈이…….”

사제들을 데리고 위험천만한 일을 벌인 건 그렇다 치고, 그런 중요한 일이 있었다면 왜 진작 이야기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허허, 소운이는 저희가 배당하겠다는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듣지 않았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시켜서.”

진태산이 고개를 숙이자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시지요. 소운이가 아니었다면 저희 가족은 물론이고 저희 마을 또한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테니까요.”

“…….”

진태산은 금칠을 해대는 노인의 말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왕금산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르신께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먼 길을 오신 겁니까?”

왕금산의 말에 노인이 손을 저었다.

“아이고, 촌부에게 어르신이라뇨. 그냥 허 노인이라 불러주십시오. 약속도 지킬 겸 인사도 드리고 싶어 왔는데. 태을문이 봉문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고 대신 이곳으로 온 겁니다.”

“허허. 허 옹께서도 매우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계시오. 혹시 술 좋아하시오? 한잔하시겠소?”

그렇게 허촌장까지 자리한 세 사람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상단을 하신다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혹시나 저희 마을에 지부를 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지부요?”

“네. 물동량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면서 마을의 땅과 건물을 사 들어오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헌데 이왕이면 태을문이 상단을 가지고 있으니 들어오면 좋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일이 많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자 진태산이 거절하려는 순간.

왕금산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오! 아주 좋은 생각이오. 안 그래도 이곳 대천상단이 투자할 곳을 찾고 있었다오.”

“……아니 왕 장주님 그게 무슨…….”

진태산이 거절하기도 전에 허 노인이 얼른 끼어들었다.

“오! 그렇습니까? 마침 저희 마을에 제일 목이 좋은 자리를 비워 뒀습니다.”

“거길 시작으로 상권을 넓혀 가면 되겠구려. 하하하하.”

“태을문에서 직접 온다니 저희 마을 사람들도 아주 안심할 겁니다.”

진태산이 말려볼 사이도 없이 일이 진행되어 버리고, 왕금산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진태산을 바라보았다.

“…….”

진태산은 다시금 업무의 산에 빠져들 생각에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리고 그 원한은 자연히 일의 원인이 되는 이에게로 돌아갔다.

뿌드득.

‘진소운 네 이놈!!’

#

“아앗!”

갑작스런 내 비명에 성모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래요?”

“귀가 갑자기 간지러워서 말입니다. 누가 내 욕을 하나?”

“씨- 놀랐잖아요.”

선착장과 유흥가와 달리 스산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성모란과 남궁선화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기입니다.”

장우재의 안내로 유장문에 들어선 우리 일행들.

“……!”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전경에 터져 나오는 욕지거리를 꾸욱 눌러 참았다.

‘제길.’

눈앞에 보이는 전경이 기억을 자극하여 전생에 태을문에서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오르게 만든다.

내 표정이 심각했던 것일까? 장우재가 변명하듯 말했다.

“저 아이들은 유장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입니다. 고아원이나 보육원에 잠시 대피시키려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은 듯한 아이들이 몸에 맞지도 않는 진검을 들고 긴장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장우재의 말에 대답하려는 찰나, 그보다 빠르게 선명한 기억이 솟구쳐 올라 말을 막는다.

-태을문의 아이들이 처음 받아본 진검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묵혈방은 손속이 잔인하고 집요하기로 유명하여 저희도 최후를 각오하고 있습니다.”

유장문의 어른들은 천을 찢어 검과 자기 손을 고정하고 있었다.

-태을문의 어른들은 각자 한 손에 폭혈단을 쥐고 싸움을 준비했다.

“아마 전쟁이 시작하면 하루를 견디지 못할 겁니다.”

유장문의 곳곳에는 커다란 화롯불이 켜져 있었고, 담벼락에는 깨진 도자기가 진흙에 발려 고정되어 있었다.

-태을문의 여자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문 내부 이곳저곳을 오가며 전달하고 있었다. 다들 한 개 이상의 주먹밥은 챙기지 않았다.

잔잔한 수면 아래의 진흙들이 뭉게뭉게 피어나며 기억의 호수를 혼탁하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고막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떠오른다.

-아아아악

-사, 살려줘!

-크허헉.

전생에 마교 손에 죽어갔던 태을문 사람들의 비명과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여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

내가 말이 없는 사이, 남궁선화가 조심히 물었다.

“……항복하진 않는 건가요?”

“그 생각도 했었습니다만…….”

“……?”

“이미 항복을 선언했던 신정문과 현신무관이 멸문당했습니다.”

“아무리 흑도라 해도…….”

“저희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상식의 영역을 넘어선 수준입니다.”

단순 신경전이 아니라 전쟁이라 부를 수준.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까지 싸움에 끼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아이들만이라도 창궁상단에 보내놓는 것이 어떻겠어요?”

장우재가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래 주시는 겁니까?”

“애당초 진 공자가 함께한다고 할 때부터 생각했던 바예요. 물론 창궁상단의 창궁단도 지원을 올 거고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우재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우린 유장문의 대연무장에서 문주와 장로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다른 유장문의 무사들처럼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그래, 어찌 되었느냐.”

“안타깝게도 정도회에게선 도와줄 수 없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허……, 어찌…….”

유장문의 문주는 좌절하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헌데 그분들은 누구시더냐?”

“아, 네. 저희 학관 대표님이신 진소운 대표님이십니다.”

“인사 올립니다. 태을문의 진소운이라 합니다.”

“흑염룡!”

“저 친구가 그?”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별호를 말한 적이 없건만, 이제 흑염룡은 명실상부 내 별호로 뿌리를 내렸나 보다.

정말 대단하다 사황봉주.

“반갑네. 자네에 대한 소식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네. 이리 와주어 고맙네.”

“별말씀을요. 당연히 와야 하는 자리이지요.”

“그리 생각한다니 참으로 고맙네. 어린 자네도 이리 달려와 줬거늘.”

문주의 얼굴엔 여전히 수심이 가득했다.

장우재가 얼른 나섰다.

“아버님, 그리고 이쪽은 철검문의 성모란 소저와 남궁세가의 남궁선화 소저입니다. 남궁선화 소저께서 창궁단을 지원해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탄성은 문주의 주위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창궁단을!”

“이렇게 감사할 수가.”

“정말 고맙네. 남궁 소저.”

격한 유장문의 반응에 되레 머쓱해진 것은 남궁선화였다.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지만, 그래도 백 명이 최대일 거예요. 이렇게 악양 전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뺄 수 있는 인원이 한계가 있거든요.”

문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그것만으로도 우린 갚을 수 없는 커다란 빚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네. 만약 이번 전쟁에서 유장문이 살아남는다면 내 평생 남궁세가에게 진 빚을 잊지 않겠네.”

문주의 말에 다시금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장우재는 얼른 움직여 아이들을 창궁상단으로 보냈다.

한차례 부산함이 지나간 후, 나와 우리의 일행. 그리고 장우재와 학관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 공자, 유장문의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

“현재 아이들을 빼고 삼백이 조금 안 되는 수준입니다.”

어쩜 숫자까지도 이리 비슷할까.

“딱 다섯 배 차이군.”

묵혈방의 인원이 총 천오백 명이 넘는다. 절정과 삼류가 혼재되어 있는 수지만, 이 정도까지 숫자가 차이나면 수준은 상관이 없어진다.

‘애당초 유장문도 고수가 많은 문파라 할 수 없었으니.’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상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담벼락에 깨진 도자기를 발라놓은 걸로 봐선 기관진식이나 기문진법도 없는 상태.

“대표님.”

장우재를 바라보자, 그가 더욱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지금 묵혈방에는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모여 있습니다.”

“…….”

“호남성 뿐만 아니라 인근 성에까지 전서를 보내어 고수들도 모으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장우재의 말대로라면 현재 악양의 흑도들은 항복한 상대마저 멸문시키면서 무림맹의 간을 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무림맹이 움직이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이참에 악양을 통째로 삼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짜 쉽지 않겠네.”

“…….”

내 혼잣말을 들었음인가.

장우재의 얼굴이 검게 변한다.

나는 얼른 그를 위로했다.

“장 공자,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마침 악양 지부장님과 친분이 있습니다. 그분을 통해 중재하면 어느 정도 협상이 가능할 겁니다.”

“정말입니까?”

남궁선화에 이어 당가 출신인 악양지 부장까지 끼어든다면 저들도 위기의식을 가지겠지.

그럼 악양에서의 전쟁이 조금은 수그러들 것이다.

‘어차피 훗날에 다시금 무림맹의 손에 떨어질 악양이다. 지금 이들이 흘리는 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는 모여있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난 일단 무림맹 악양지부에 다녀오겠습니다.”

“지금 말입니까?”

낮과 밤을 가릴 수 없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아마 묵혈방은 최대한 빨리 움직이려 할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땡땡땡땡땡땡땡.

시끄러운 종소리가 유장문 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장우재를 비롯한 유장문의 무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장우재에게 물었다.

“뭡니까?”

장우재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종소리가 울리는 곳을 응시했다.

“……적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적?”

그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함성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와아아아아아악!”””

“쳐라! 한 놈도 남겨두지 말아라!”

“““와아아아악!”””

살기 가득한 그 함성이 점점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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