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모든 걸 기억하는 천재무사-188화 (188/357)

#188. <다시 쓰는 사천혈사(8)>

“자네 지금 무슨…….”

지부장은 똥지게에서 튄 물이 새 옷에 묻기라도 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뭐, 저런 반응이 이해는 간다.

무림맹에 충성하는 이들에게 강호의 안녕과 평화라는 명분은 제 속곳을 팔아서라도 지켜야 하는 가치일 테니.

나 역시 과거엔 저들과 같았고.

근데 그런 호구 짓은 전생에 한 번 했으면 족하지 않나?

여태껏 억지 미소를 머금고 있던 지부장의 얼굴엔 작은 경멸과 혐오가 어려 있다.

나는 기왕 속마음이 드러난 김에, 뻔뻔한 얼굴로 지부장을 쳐다보았다.

“물론 저도 강호의 안녕과 평화를 누구보다 지키고 싶습니다.”

“헌데 말과 행동이 어찌 다른가?”

“물론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방 대협께 전서를 보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지부의 무사들을 쓰면 될 일이네.”

이 양반이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지부장 자리를 도박으로 딴 게 아니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 텐데.

“방 대협께선 무림맹의 무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말입니다. 특.별.한 방법으로 전서를 보내야 하는데. 그게 한두 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말이죠.”

“그게 무슨…….”

“아! 말씀드려도 잘 모르실 겁니다. 이 녹림도들만 쓰는 특별한 방법이라.”

이쯤 이야기하니 슬슬 지부장도 눈치를 챘는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린다.

“……자네 실망이군, 그래도 협의 가득한 신성으로 소문이 자자하여 누구보다 정의 실현에 진심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냥 내주긴 아까웠는지 인신공격을 하기 시작한다.

상황이 불리할 때, 가장 쉽게 상대를 도발하는 방법이지.

확실히 지부장 자리를 도박으로 따진 않았나 보다.

그런데 그가 뭔가 착각하는 게 있다.

나는 애초에 소정대 출신으로 공격당할 ‘인신’ 같은 게 없는 인간이거든.

“저 또한 정의 실현에 누구보다 진심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가 굳이 이 먼 사천까지 와서, 여태껏 저와 ‘척’을 세웠던 ‘점창파’ 소속의 학관생들을 구할 이유가 무에 있겠습니까?”

“…….”

더구나 내가 보여준 활약이 있기 때문에, 지부장 입장에서도 감히 나를 매도하긴 힘들 터.

그의 얼굴은 이내, 자신이 앉은 자리가 사기 도박판임을 알아챈 호구처럼 거무죽죽해졌다.

자, 기세는 다시 내 쪽으로 기울었고.

“저도 물론 초개와 같은 심정으로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서를 보내기가 쉽지 않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허……. 특별한 방법으로 전서를 보내야 한다?”

“그렇죠. 아주아주 특별한 방법이라 들어가는 품이 좀 많습니다.”

“…….”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지부장이 살기 등등한 눈빛으로 질문했다.

“뭘 원하는가?”

좋아, 걸려들었군.

나는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금전 일천 냥과 제 일행이 타고 갈 마차를 대절해 주십시오.”

“에엑?!”

지부장이 기함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금전 일천 냥…… 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아니, 그건 차치하고서라도 대체 마차는 왜 필요한 것이지?”

“제가 방 대협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심신이 불안하면 전서에도 불안함 마음이 깃들지 않겠습니까?”

“…….”

지부장은 이제, 노골적으로 나를 사기꾼 보듯 바라보았다.

서운하네. 같이 강호의 안녕을 바라는 사람들끼리.

“……자네, 방두칠을 설득할 수 있는 건 확실한가?”

“저와 방 대협의 관계는 당주님께 여쭤보십시오.”

입을 쩍 벌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승호당주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풀고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본래 사천에 올 예정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로지 진소운의 부탁 때문에 이곳에 들른 거라고…….”

“…….”

승호당주의 증언에도, 지부장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이럴 땐 굳이 신뢰를 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때는…….

끼익-

나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 왜 갑자기 일어나나?”

“지부장님께서도 이 일이 거북하신 것 아닙니까? 저 또한 방 대협께 부탁드리는 바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서 말이지요. 그리 급하지 않으시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시는 편이 제게도 더 좋습니다.”

신뢰를 스스로 가지게 만들면 될 일.

“자, 잠깐!”

지부장은 마지막 하나 남은 춘화도를 사려는 사람처럼 내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시간을 주겠나? 지부 내의 자금을…….”

“에헷! 어찌 그런 말씀을. 저더러 무림맹의 돈을 받아 녹림도에게 주란 말입니까? 절대 싫습니다.”

“그, 그럼……?”

나는 지부장을 바라보며 산뜻하게 웃어주었다.

“그야 당연히 강호의 안녕과 평화에 진심이신 지부장님의 사재를 털어주셔야죠.”

“…….”

“……그럼 전 이만…….”

“에헤엣! 이 사람! 왜 이리 성질이 급해? 잠깐 기다리게! 내가 곧장 전표들을 확인하고 돌아올 테니.”

지부장이 꽁지가 빠져라 내실을 나가자 방 안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일천 냥이라……. 이걸로 뭘 할까나, 장도원의 대장간을 커다랗게 지을까?

그럼 적광검이 더 빨리 나오려나?

그렇게 군산은침의 향을 즐기고 있는 내게 구정룡이 물었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뭐가 말입니까?”

“내가…… 아니, 우리가 자네의 그 약점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는가? 그런데 지부장의 심기를 이렇게 건드리다니!”

구정룡이 보기엔 내가 작두 안에 목을 넣었다 뺐다 하는 걸로 보였나 보다.

“당주님, 대당주 승진 몇 번 떨어지셨습니까?”

“뭐?”

뜬금없는 이야기에 구정룡이 움찔 놀랐다.

“당주님 나이면 이제 대당주 달 나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혹시 승호당에 애착이 강해서 그러신 겁니까?”

“…….”

갑자기 허에 찔린 듯 얼굴을 찌푸리는 구정룡.

“그게 아니라면 청룡각 최고의 무력 단체인 승호당의 당주께서 왜 번번이 승진에서 미끄러지는 걸까요?”

“지금 이 얘기와 상관이 있는 건가?”

있다마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과의 관계로 귀결될 테니까.

점창 출신의 지부장이 지금 내게 ‘소협’, ‘소협’ 거리면서 극공의 예를 취하는 이유는, 그가 내게 부탁할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사천혈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애당초 내가 녹림과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즉시 발작하며 나를 금옥에 처넣으려 했겠지.

내게 아쉬운 것이 있는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

지금 방두칠을 이용해 그를 돕는다 한들 그가 과연 내게 감사한 마음이나 가질까?

사천혈사가 끝난 이후엔 자신의 승진을 위해 나를 언제든 갈아 마셔버리겠지.

무림맹의 높은 직위는 그만치 많은 이들의 피와 살을 양분으로 자라나는 나무니까.

그러니 그냥 도와줘선 안 된다.

도와주더라도 상대도 한 발 걸치게 만들어야 한다.

전서 한 장에 일(一)천 냥이란 비상식적인 금액은 훗날 그가 오리발 내미는 걸 방지해 줄 터.

감찰각 인원들이 보기에 방두칠에게 전서를 보낸 내가 수상해 보이겠나.

아니면, 그런 부탁을 위해 일천 냥을 전달한 지부장이 수상해 보이겠나.

“……허, 그,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일천 냥이 적은 돈도 아니고…….”

“물론 적은 돈은 아니죠.”

“지부장의 월봉으로 감당 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월봉이요?”

“그럼, 점창의 제자가 그만한 돈이 어디서 난단 말인가?”

와, 이 양반 진짜 순진하시네.

수완 좋은 지부장은 임기 첫해에 오십 칸짜리 대궐 같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걸 모르나?

이런 건 백번 설명해 봤자 소용없다.

“뭐…… 한번 보십쇼.”

남은 군산은침을 털어넣을 때쯤. 지부장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빳빳한 전표 다발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행히 마침 바꿔놓은 전표가 있었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로써 자네가 전서를 보내는 데 문제가 없는 것이겠지?”

나는 구정룡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지부장에게 대답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조금 이상한 걸 압니다만, 이미 녹림채는 땅굴 파고 사라졌다 보시면 됩니다.”

방두칠이 어지간히 채주들을 쥐어 팼어야지. 전서 하나만 보내면 알아서 지들이 받던 통행세도 안 받을 것이다.

“으잉! 그, 그런가?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이제 두 발 쭉 펴고 주무시면 사천의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겁니다.”

“다행이야! 자네 같은 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금전 일천 냥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하고선 땡이라도 잡은 듯 마냥 즐거워하는 지부장.

구정룡은 그의 태도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역시 순진한 사람이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는 지부장을 다시 불렀다.

“아 참,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지부장이 웃음을 뚝 끊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설마, 이제 와서 돈이 부족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는 구정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사천에서의 일에서 승호당 당주님께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서 말입니다. 근데 제가 스치듯 들은 이야기론, 이런 훌륭한 당주께서 승진 심사에서 매번 떨어지셨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왕 상황이 만들어진 거, 승호당주한테 ‘현실’을 좀 보여줘야겠지. 이번에 도움도 많이 받았고.

“장차 무림맹에 출맹하여 강호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야 할 제가 보기에 이건 너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부장님께서 도와주실 일이 없으실지요?”

“흠…….”

지부장이 턱을 쓸어 내더니 제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친다.

“그렇군!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선 아니 되지! 승호당주. 내 이름으로 추천서를 써주면 어떤가?”

“네? 아, 저, 저야 물론…….”

“에헤이, 지부장님! 앞으로 지역장도 하셔야 할 분이 왜 이리 소탈하게 구십니까.”

“응?”

“지역장 안 하실 겁니까?”

지부장이 굵은 침을 삼킨다.

“내, 내가 어찌…….”

“아마 이번에 제가 복귀하게 되면 최소 못해도 만통부의 부장님 정도는 만나지 않겠습니까?”

“……총군사님을 만날 수도 있겠지.”

“그렇지요. 그분 앞에서 제가 이번 사천에서의 일에서 지부장님의 공헌 덕분에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다 말하지 않겠습니까?”

“으잉?”

“저는 협의와 정의를 아는 자를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지부장의 눈깔이 사술에 당한 것처럼 몽롱하게 풀린다.

지금 당장 혈교의 환상 뭐시기 미혹진에 당해도 저것보단 정신이 똑바로 유지되겠네.

“친한 지부장님들께 연락 돌려서 추천서 좀 쫙 받아주십시오.”

구정룡의 두 눈이 부릅떠진다.

지부장은 그럴듯하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러면 확실히 평가 점수가 높아지겠군. 내 곧장 전서를 보내어 추천서를 받아주겠네.”

지부장은 자신의 목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지역장으로 승진할 희망까지 가득 품었다.

“저 또한 최대한 빨리 전서를 보내어 사천의 녹림채를 꼼짝달싹 못 하게 하겠습니다.”

“자네 덕분에 일이 술술 풀리는군.”

“과찬이십니다. 이게 다 지부장님의 강호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간절한 마음 덕분이지요.”

“이 사람! 아주 말이 술술 나오는구만 하하하하하!”

“지부장님만 하겠습니까! 하하하하하!”

모두가 행복해졌건만, 구정룡은 어째 영 적응이 안 되는 눈치였다.

저 양반도 참 승진하기 힘들겠네.

#

학관생들의 귀환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여러 문제에 당면해 있었으니.

그 첫 번째가 각 문파의 부상자들을 어찌 학관까지 데려갈까였다.

장로원이 주최한 행사였지만, 장로들이 저들끼리만 먼저 무림맹으로 돌아가 버린 탓에 닭 쫓던 개가 돼버린 학관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고, 이를 해결해 준 것은 진소운이었다.

“의원당의 환자들 말입니까? 그 사람들은 마차로 후송할 예정입니다. 상태가 심한 자들은 치료를 받고 움직여야지요.”

“돈이요? 돈이 왜 필요합니까? 지부장님이 내기로 했는데.”

“아아! 저랑 지부장님이랑 다 이야기가 되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같은 정도회라도 그 내부에서는 누가 위로 가나 아래로 가나 경쟁을 하기 마련.

점창의 제자들 외엔 당연하게도 소외될 거로 생각했건만, 모든 문파의 제자들이 동등하게 대우받았다.

두 번째 문제는 이동 간의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사천으로 올 때야 장로원에서 전낭을 펑펑 풀어 좋은 객잔에서 자고, 편하게 뱃놀이하듯 왔었다.

하지만 무한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주는 사라졌고, 길잡이 노릇을 할 사람도 없는 상황.

장강 오리알 신세가 될 뻔한 그들의 걱정을 덜어준 것 또한 진소운이었다.

“학관생들은 모두 말을 타고 돌아갈 겁니다. 묵엽표국에서 길잡이를 맡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객잔을 들를 여력은 없습니다. 세 끼 주냐고요? 당연히 주지요. 공평하게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 값이나 표국의 비용은 모두 지부장님이 내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저랑 지부장님이랑 그런 사이라니까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하하하하!”

덕분에 귀로에 대한 부담이 확연히 줄었다.

승호당 또한 갑자기 사라진 장로원 때문에 학관생들을 떠맡게 되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진소운 덕분에 부담을 한 층 덜게 되자, 다시금 농지거리를 하고 꿍쳐둔 술을 꺼내어 마시는 이들이 나오기도 했다.

“……성도 지부장이 왜 갑자기 이런 호의를 베푼 겁니까?”

감천악은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답이 안 나오는 문제에 대해 구정룡에게 물었다.

“…….”

“당주님!”

“으, 응?”

퍼뜩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휘휘 돌아보는 구정룡.

또 이런다.

요 며칠 새 성도를 떠난 뒤부터 구정룡의 상태가 영 이상하다.

말 위에서 넋을 놓고 있는 건 다반사고, 밥숟가락을 뜨다가도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헤실헤실 웃는다.

그 상태가 너무도 이상하여 혹시나 사술에 걸린 건 아닌지 진소운에게 물었지만, 진소운은 피식 웃더니 별것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지부장의 부름으로 나갔던 날 이후로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날 뭔 일이 있긴 있었던 것 같은데…….

“성도 지부장의 과한 호의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시냐 물었습니다.”

“아…… 그거 별거 아니다. 성도 지부장이 진소운에게 빚을 진 게 있거든.”

“빚……이오?”

무림맹 지부장의 자리는 간혹 현령 자리에 비견되곤 한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들어오는 재물이 상상도 못 할 정도일 텐데, 일개 학관생에게 빚을 진다고?

“사천의 녹림칠십이채 채주들에게 무림맹의 행사 동안 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전달했다.”

“…….”

“진소운의 이야기론 이번 혈교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하냐에 따라 지부장의 목이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데.”

구정룡이 손날로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이야기하자, 감천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소운이 그걸 받아들였습니까?”

“응? 받아들였지.”

“……좆됐군요.”

“……응? 뭐가 돼?”

감천악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희 돌아가는 즉시 감찰각에 방문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주님 정신 차리십시오. 상대는 무림맹 성도 지부장입니다. 그 사람이 진소운과 녹룡의 유대를 알고서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감천악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사천의 일이 마무리되는 즉시 진소운은 감찰각에 끌려갈 겁니다.”

구정룡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그러나 감천악은 아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진지한 표정이었다.

“진소운 당연히 철저하게 숨길 줄 알았는데……. 어찌 이리 미련한 짓을…….”

“…….”

“당주님, 우리까지 엮이지 않으려면 감찰각에 먼저 가야 합니다.”

사태의 위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정룡은 쓸개라도 씹은 듯 입맛을 다시며 전방을 바라본다.

“당주님!”

감천악이 채근하자, 결국 참지 못한 구정룡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거 완전 개새끼네!”

“……네?”

“야 이 새끼야, 그깟 말 같지도 않은 ‘흑룡채 채주’라는 ‘소문’에 감찰각을 가? 그러고도 네가 승호당의 부당주가 될 자격이 있어?”

“…….”

이 인간이 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옆에서 듣지 않았던가.

흑룡채의 채주 진소운이 화엄채의 명령권도 가져갔다고.

그런데 갑자기 ‘소문’이라니?

게다가 그날 방두칠의 목소리가 워낙 크지 않았나.

분명 사천에서도 몇몇은 들었을 터.

그런데 당주는 왜 갑자기 진소운을 감싸고 돈다는 말인가.

의아해하는 감천악의 머리 위로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와…… 제 안위를 위해서라면 생사를 함께한 동료건 나발이건 필요 없다 이거지? 너 언젠가 나도 막 뒤통수치고 그러겠다? 응?”

시발, 대체 뭐라는 거야?

감천악이 상황 파악을 채 못 하고 있을 때, 구정룡이 홱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승호당원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얘가 진소운이를 감찰각에 신고하고 싶단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진소운과 함께 ‘파사제령’을 먹으러 갔던 이들이 득달같이 감천악에게 달려들었다.

“부당주 개새끼, 그럴 줄 알았다!”

“저 새끼 저거 관상이 아주 배신자 관상이여. 앞으로 쟤랑 검진 짜지 마.”

“어쩐지 우리 엄마도 저 새끼랑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고.”

“우리 모두 부당주를 탄핵하고 진소운을 부당주로 추대하자!”

“추대하자! 추대하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탄핵의 위기를 맞이한 감천악은, 당최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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