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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10화 (10/78)

10. 나노가 비전을 발견함.

10. 나노가 비전을 발견함.

눈을 뜬 이한에게 흑백영화처럼 보이는 동굴 무덤 내부가 보였다.

마치 야간투시경으로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은 나노가 이한의 시세포를 조정해서 아주 적은 빛까지도 볼 수 있게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나노. 내 눈을 원래대로 돌려줘.”

[야간투시를 보통 시야로 전환합니다.]

흑백으로 보이던 세상이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어두컴컴한 것이 낮과 밤에 걸쳐 있는 것 같은 애매한 광경이었지만, 지금 이곳이 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는 동굴 무덤의 내부라는 점을 생각해야 했다.

이한은 무공의 고수들이 밤에도 낮처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조화신단을 복용하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보이는 것부터가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권법의 위력은 어떻게 변했을까?

과연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수련하던 그 위력 그대로일까?

이한은 한 아름은 될 만한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굳게 서서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가장 이상적인 자세와 기세로 무덤의 입구를 막아 놓은 바위를 향해 두 주먹을 내질렀다.

회오리치듯 뻗어가는 내공의 흐름이 경맥을 타고 흘러갔다.

바위에 주먹이 닿는 순간 철로 된 망치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위력은 예상대로였다.

사람 키 정도 되는 바위에 길게 금이 갔다.

전력을 쏟으면 절반으로 쪼갤 수 있는 정도?

일격에 바위를 박살 낼 정도는 아니었다.

애매했다.

게다가 실전에서는 이런 위력조차 발휘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이상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할테니까.

이한이 익히고 있는 삼단삼극권은 황보세가의 오행권에서 파생되어 나온 권법이다.

위력만 따지자면 오행권의 단점을 극복하려다가 나온 열화판 오행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행권은 원래 매우 불안정한 무공이다.

오행권을 익히려면 황보세가의 비전으로 전해지는 축기공을 통해 화, 수, 목, 금, 토의 다섯 기운을 쌓아야 하는데 축기를 위한 장소부터가 괴랄했다.

불 위, 물 속, 나무 사이, 철로 된 방, 흙 속에 파묻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축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불 위와 물 속이라니.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설사 어찌어찌해서 축기를 한다고 해도 그것을 모두 내공으로 균형있게 정제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조금만 실수해서 다섯 기운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즉시 기혈이 역류하면서 경맥과 단전에 상처를 입힐 정도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오행권은 선천적으로 튼튼하고 질긴 경맥과 천재적인 기감이 없다면 절대로 익힐 수 없는 무공인 것이다.

결국 황보세가에서조차 전승이 끊어질 정도가 되자 복잡하게 오행을 모두 다를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만이라도 제대로 다루어보자고 한 것이 삼극권의 출발이었다.

오행의 기운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분분했다.

그 과정에서 몇 종류의 삼극권이 만들어졌고, 그중 하나가 은밀전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것을 은밀전의 밀위들 중 몇 명이 달라붙어서 수련의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안정성을 높인 것이 이한이 익힌 삼단삼극권이었다.

대신 위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한이 느끼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30년의 내공을 쌓아서 삼단삼극권이 가진 이론상의 최대 위력을 끌어냈음에도 눈에 차지 않았다.

어딘가 몸에 맞지 않는 것 같은 불편함과 어색함도 함께였다.

표정이 굳어있는 이한을 향해 나노가 말을 걸어왔다.

[이한님. 오른쪽 다리를 오촌정도 뒤쪽으로 물리고 오른쪽 발은 외곽으로 20도 정도 돌려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번 정권지르기를 해 보십시오.]

이한은 잠깐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곧 나노가 시킨대로 자세를 잡았다.

꽝!

다시 한번 비슷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한은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분명 같은 방식으로 쳤음에도 이전과 다른 위력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어림잡아도 4할은 넘게 위력이 강해진 듯 했다.

금이 가 있던 바위는 몇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면서 뒤로 넘어갔다.

햇빛이 동굴 무덤 안을 밝혔다.

“뭐지? 나노.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내공의 흐름이 자연스럽지가 않아서 이상적인 형태의 삼단삼극권을 찾기 위해 시물레이션을 돌려보았습니다. 자세를 바꿈으로 경맥에 영향을 미쳤고 내공의 흐름에도 살짝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이한님이 경험하신 것입니다.]

“비전이로군.”

[모든 무공은 비전 아니었습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무공을 가르칠 때 마지막으로 비밀스럽게 전하는 비결을 의미해. 그런 것이 있다고 말로만 들었는데. 세상에나. 나노가 비전을 분석으로 알아내는군.”

비인부전이라는 말이있다.

인격이 결여된 자에게는 가르침을 전하기 않는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장인이 도제에게 기술을 가르칠 때도 인품을 살피는데 무공같이 위험한 공부를 아무에게나 함부로 전할 수는 없다.

제자가 사고를 치면 스승이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법이다.

자칫 제자를 하나 잘못 들였다가 문파가 아예 박살나는 경우라도 생긴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제자의 품성은 재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르침을 받는 자가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건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본성을 속일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일개 사기꾼조차 사기를 치기 위해서 몇 년간 좋은 사람의 탈을 쓰고 사전작업을 한다.

사람 한 명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그래서 제자를 들일 때 몇 년씩 막일을 시키며 품성을 시험하는 것이 꼭 노동력 착취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식한 방법 말고 세련된 방법도 존재한다.

아니면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족쇄라고 할까?

그것은 무공의 수련에 약간의 함정을 파 놓는 것이다.

본래의 내공 흐름에 비해 약간 부족하거나 오히려 약간 넘치는 내공의 흐름.

본래의 동작과 약간 차이 나는 동작.

본래의 연환식과 비교해서 차이나는 한두 개의 초식.

함정은 한 개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치명적이다.

무공이 가진 본래의 위력보다 한참 떨어진 수준이 된다.

제자에게 제대로 된 무공을 전수하겠다는 결심이 선 후에야 비로소 무엇을 교정해야 할지 알려주는 것이다.

방금 나노가 이한에게 다리의 자세를 약간 바꾸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비전이다.

너무 간단해서 하룻저녁이면 교정이 가능할 정도지만 말이다.

대사형이 스승님과 함께 며칠 폐관수련을 하고 나왔더니 갑자기 무공이 엄청나게 세졌다는 목격담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그런데 나노는 분석을 통해 삼극권에 숨어있는 비전을 밝혀낸 것이다.

아마 황보세가에서 삼극권을 만들때 숨겨놓은 제약일 것이다.

나노는 황보세가에서 숨겨놓은 제약을 찾아낸 것이고.

나노가 가진 범용성을 생각하면 다른 곳에서 흘러나온 무공의 분석에서도 기대할만했다.

“나노. 넌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낸 거다.”

[저는 언제나 이한님의 조력자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인간은 애완동물이나 애착 인형조차 인격으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과 거의 흡사하게 반응하는 인공지능을 인격으로 대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한은 부서진 바위를 치우고 동굴 무덤 밖으로 나갔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자 그제서야 자신의 몸에서 악취가 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조화신단을 먹고 내공을 쌓는 과정에서 몸 안의 노폐물이 몸 밖으로 밀려 나온 것이다.

입고 있던 옷의 일부도 누렇게 변색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말로만 듣던 일이 자신의 몸에서도 일어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한은 그제서야 자신이 진짜로 내공을 익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노. 내공은 생각보다 다양한 힘을 가지고 있어.”

[예. 인체의 거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유전자 맞춤으로 설계된 슈퍼 솔져보다 낫다고 봅니다.]

“그래, 전투력은 물론이고 인간의 몸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가능할 수 있지.”

어쩌면 정신까지도.

만약 내공이 생긴다면 어떻게 이용할지 상상만 하던 일이 여럿이었다.

그중 몇 가지만 현실에서 실현해 낼 수 있어도 앞으로 할 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이한은 은밀전주가 남긴 비표를 회수하기 위해 경사의 중심부로 향했다.

*

계곡이 깊으면 산도 높은 법이다.

경사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처참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지만, 일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권력을 쥔 사람들, 부를 가진 사람들.

그들은 일반인과 유리된 그들만의 세상에서 산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화려함이라니. 이곳의 문명 수준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사람을 갈아 넣어서 만든 곳이겠군요.]

“사람값이 싸니까.”

[나무로 조각해서 만든 병풍은 처음 봤습니다. 보통 섬세한 것이 아닙니다.]

“그거 공인 하나가 일 년을 들여야 겨우 하나 만드는 거다. 그런데 나노도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감상은 아닙니다. 분석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나 간혹 어떤 예술품에서는 분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기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구분해내는 것이 감상이라면 감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술에 까막눈인 나보다 낫군.”

이한이 있는 곳은 경사의 10대 기루 중의 하나라는 명월루였다.

이곳은 기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비용이 일반 노동자의 일 년분 임금과 맞먹는 곳이다.

덕분에 이한은 철상자에서 꺼낸 금 조각 중 하나를 여기서 소모해야 했다.

단지 하룻밤을 내부에서 머무르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 밤 이한을 시중들기 위해 들어왔던 기녀를 아예 푹 재워버렸다.

술을 먹이고 수혈까지 짚었으니 내일 아침까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한은 입고 있던 옷을 뒤집어서 다시 입었다.

화려했던 비단옷이 검은색의 야행복으로 변했고, 이한 역시 중년의 한량에서 밤도둑으로 변신했다.

이한이 이렇게 큰돈까지 써가며 명월루의 내부로 들어온 것은 경비를 서는 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명색이 경사 10대 기루 중의 하나라서 경비를 서는 자들의 눈이 보통 매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내부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손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한은 편안한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비표가 있는 장소는 명월루의 손님맞이 방 중 한 곳이었다.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명월루주를 위해 언제나 비워놓은 방이기도 했다.

비표는 그곳의 천장에 숨겨져 있었다.

[이한님. 빈방이 아닙니다. 인기척이 있습니다.]

이한은 즉시 움직임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나노가 이한의 청력을 최대한 강화했다.

곧 이한의 귀에 누군가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비어 있어야 할 방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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