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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87화 (8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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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줄 건 그게 다냐? 혹시 다른 게 또 있으면 지금 꺼내지 그러냐.”

적이 강해진다는 건 그만큼 승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도 커진다는 소리다.

게임에서 강한 적을 죽이면 더 많은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선 더 많은 신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창 입장에선 개눈깔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더라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오히려 더 숨겨두고 있는 힘이 있다면 지금 꺼내길 바랐다.

“···건방진 놈. 곧 죽게 될 놈이 말은 많구나.”

“글쎄.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인 것 같은데.”

눈썹을 꿈틀거리던 개눈깔은 더 말하기 싫다는 듯 칼을 휙 하고 휘둘렀다. 공격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뭔가 마법을 부리려고 했던 것 같다.

잘렸던 왼쪽 어깨가 둥둥 떠오르더니 그대로 착 하고 몸에 달라붙었다. 몸이 찰흙으로 된 것도 아니고 저게 뭔?

김창이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개눈깔의 왼쪽 눈이 초록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게 뭔가 사악한 힘의 조화라는 걸 알아보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의 근원이자 이형의 괴물들을 다루는 힘의 기원이라는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싸움을 시작하지.”

개눈깔이 다시 칼을 휘둘렀다. 이번엔 공격하려고 하는 게 분명해서 김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법사를 제법 많이 썰어 본 칼잡이로서 저런 적을 상대할 땐 거리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개눈깔은 마법사가 아니고 근접전이 상당히 강력하지만 어쨌건 마법을 쓰게 둘 수는 없었다.

김창이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크게 칼을 휘둘렀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리고 김창이 미간을 좁혔다. 빠르게 비행하는 뭔가가 그의 칼을 쳐냈다.

마법인가?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허공에 웬 칼이 날아다니면서 김창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거 믿고 설쳤나? 별 대단한 것도 아닌······.”

김창은 코웃음을 흘리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개눈깔의 칼과 허공을 나는 칼이 동시에 그를 노리고 있었다.

물론 칼이 두 자루로 늘어났다고 해서 위협이 되진 않았다. 김창은 여유롭게 공격을 쳐내고 공세로 전환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금속음이 연달아 울리며 김창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받아내야 할 칼이 두 자루에서 다섯 자루로 늘어났다.

어디서 갑자기 칼이 또 나타났나 봤더니 개눈깔의 마법 때문인 듯했다. 저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아공간? 아니면 게임처럼 인벤토리라고 해야 할까?

다른 놈들은 인벤토리가 없어져서 직접 물건 들고 다녀야 하는데 혼자만 인벤토리 비슷한 걸 쓰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것도 영혼 약탈자가 되면서 얻은 힘이냐?”

“내가 대답해줄 의무는 없다!”

개눈깔이 네 자루의 칼을 대동한 채로 김창에게 달려들었다.

하늘을 나는 칼이라고 하면 별로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저런 적이라면 지난번에도 한 번 상대하지 않았나?

배신자 요정 아샤리온, 마법검의 주인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그 역시 저런 식으로 공격했더랬다.

김창은 그를 아주 쉽게 이겼다. 아무리 칼이 하늘을 날아다니더라도 주인이 죽으면 다 끝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러니 칼이 정말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닌 이상에야 별 위협이 될 건 없었다. 아샤리온의 마법검도 혼자서 검술을 구사한다기보다는 그냥 하늘을 날아다닐 뿐이었으니까.

“겨우 칼 날리는 게 끝이라면 실망인데. 차라리 수백 자루를 날렸으면 모를까, 겨우 네 자루만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개눈깔은 이죽대는 김창을 보며 웃었다.

웃어? 김창이 얼굴을 찡그리며 칼을 휘둘렀다. 좌우에서 각각 두 개의 칼이 날아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직선으로 날기만 하는 칼을 왜 신경 쓰나? 그냥 쭉 달려가서 개눈깔 목만 따면 다 끝인데.

정말로?

“칫!”

김창은 휘둘렀던 칼을 중간에 급히 회수해 방향을 틀었다. 분명 직선으로 비행하고 있던 칼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그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연달아 울리는 금속음과 함께 네 자루의 칼이 뒤로 튕겨났다가 다시 매섭게 질주했다. 그 순간 김창은 저 칼들이 아샤리온의 마법검 따위와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저 움직임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직접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지 않나? 개눈깔이 염력이라도 쓰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정말 어검술이라도 부리는 건가······.

“딴생각할 틈이 있나!”

개눈깔의 호통과 함께 네 자루의 칼이 서로 흩어졌다가 일시에 모였다. 그건 마치 늑대 같은 맹수가 집단 사냥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맹수 무리의 우두머리는 당연히 개눈깔이었다. 그녀는 중앙에서 김창을 강하게 몰아붙이며 압박했다.

허공을 나는 칼이 네 자루인데 그 모두가 진짜 사람이 휘두르는 듯 움직이고 있으니 사실상 다섯 명을 한 번에 상대하는 셈이었다.

상대가 어중이떠중이였다면 다섯 명이 아니라 그 배가 오더라도 상관없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상대는 개눈깔이었다.

네 자루의 칼이 개눈깔의 실력 전부를 흉내 내진 못하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긴 했다. 거기에 진짜 개눈깔도 칼을 휘두르고 있으니 더더욱.

“하하! 왜 갑자기 조용해졌지? 아까처럼 한 번 지껄여보시지!”

개눈깔이 즐거운 듯 웃으며 빠르게 칼을 휘둘렀다. 김창은 그 모든 공격을 조용히 받아내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

한참 깔깔대며 웃던 개눈깔도 상대가 아무 말이 없자 자연스레 조용해졌다. 그녀는 묵묵히 칼만 휘두르고 있는 김창을 보면서 불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모르는 건가?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아무 티도 내지 않으려는 건가?

멍청한 놈,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기는. 울어라. 그리고 빌면서 내게 목숨을 구걸해. 너는 그래야만 한다.

개눈깔의 왼쪽 눈이 더욱 세차게 불타올랐다. 그건 그녀 자신도 모르게 지금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김창이 자신에게 복수하려고 타락한 거냐고 물었던가? 그땐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같은 칼잡이에게 진 것도 모자라 눈 하나까지 잃었는데 복수심이 없을 수 있을까······.

추한 감정이긴 해도 잘못된 건 아니었다. 개눈깔은 김창을 쓰러트려 그가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저 빌어먹을 놈을 쓰러트려야 한다. 어떻게? 더욱 강하고 빠르게 압박해서.

“죽어라! 이만 죽어!”

개눈깔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저쪽은 칼이 한 자루뿐이지만 이쪽은 무려 다섯 자루니까.

칼이 많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고? 개눈깔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한 놈은 전부 죽었으니까.

“죽으라고!”

개눈깔은 빠르고 강력하게 칼을 휘두르며 김창의 몸에 더 많은 상처를 새겼다.

김창의 무장은 대단히 빈약해서 사실상 칼 한 자루를 빼면 무장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전사나 성기사처럼 갑옷을 챙겨 입은 것도 아니고 무투가처럼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한 것도 아니라서 칼로 베면 그대로 잘렸다.

살점 일부가 날아가고 피가 줄줄 흐르는 가운데 김창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칼들을 묵묵히 쳐내고 있을 뿐이었다.

개눈깔은 분명 자신이 압도하고 있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원래 일이 잘 흘러가고 있을 때를 조심하라고 했던가? 그럴 때일수록 사고가 터진다고 했었지 아마.

그러면 나도 조심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완벽하게 상대를 압도하고 있는데 대체 뭘 조심해야 하지?

개눈깔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이미는 불안감을 억지로 눌렀다. 그녀는 걱정을 잊기 위해 더욱 격정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불안감이 으레 그러하듯 누르기만 한다고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무공을 꾹 누르면 오히려 더 크게 튕기는 것처럼 불안감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눈깔은 여전히 말이 없는 김창을 보며 발작하듯 소리쳤다.

“왜 아무 말이 없어! 뭐라고 말 좀 해봐, 이 개자식아!”

빽 하고 지른 소리에 김창도 놀랐던 것 같다. 줄곧 아무 말도 없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음? 잠깐 생각 좀 하는 중이었는데, 무슨 말 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지금 이토록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

그건 상대를 모욕하는 발언이요, 또한 무시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개눈깔의 얼굴이 새빨간 색으로 물든 가운데 영혼 약탈자의 분노가 몰아쳤다.

“뒈져라, 개―자―식―아!”

다섯 자루의 칼이 일시에 김창을 노렸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의 몸에 닿지 않았다. 칼을 휘둘렀던 개눈깔이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미 지쳤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녀는 놀라움을 느끼며 김창의 얼굴을 쳐다봤다. 기세가 아까와 달랐다. 그러면 정말 지금껏 다른 생각을 하면서 싸우고 있었나?

그게 말이 되는지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제 김창이 적극적으로 공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챙! 연달아 울리는 금속음과 함께 하늘을 날던 칼들이 하나둘씩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칼 두 자루를 해치운 김창이 개눈깔과 거리를 좁혔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던 개눈깔이 입술을 세게 깨물면서 발을 쿵 하고 굴렀다. 그러자 그녀를 중심으로 마력이 폭발하더니 주변 모든 것을 날려 보냈다.

그러나 김창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력의 폭발에도 버티더니 오히려 중심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자루의 칼이 주인을 지키기 위해 날아왔다. 그러나 몇 합 부딪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이제 남은 건 개눈깔이 든 칼 한 자루뿐이었다.

이제 어쩌지? 거리를 벌리고 마법을 쓰며 시간을 벌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개눈깔은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저 칼잡이는 정면에서 밀고 들어올 테니 이쪽도 정면에서 받아쳐야 한다!

결심을 굳힌 개눈깔이 칼에 모든 마력을 담았다. 이제 그건 칼이 아니라 거대한 빛의 덩어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김창 역시 이게 마지막 일격이라는 걸 깨달았을 텐데 굳이 피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오러가 맺힌 칼날을 휘두를 뿐이었다.

두 개의 빛이 충돌했다. 순간 거대한 굉음이 울리고 거센 바람이 불었으며 강한 진동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어찌나 강렬한 충돌이었는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모두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김창과 개눈깔은 물러서지 않았다. 둘은 이대로 끝장을 보겠다는 듯 힘겨루기를 이어갔다.

“내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힘겨루기 끝에 승리한 것은 개눈깔이었다. 그녀는 칼에 모든 마력을 담았기 때문에 일격의 위력은 김창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말했지! 옛날과는 다를 거라고!”

김창의 칼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이제 그의 손은 텅 비었다. 칼잡이가 칼도 없이 공격을 받아낼 수는 없다.

개눈깔이 광기에 가까운 웃음을 흘리며 있는 힘껏 칼을 내질렀다. 칼이 심장을 찔렀다.

“···어?”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창은 물론이고 개눈깔도. 두 사람은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서로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개눈깔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정확히는 심장을 뚫고 나온 칼날을.

분명 김창은 맨손일 텐데 어떻게 공격을······.

“네가 하는 거 보고 나도 한 번 해봤는데.”

김창이 움직였다. 그가 손을 휙 하고 휘두르자 개눈깔의 몸에 꽂혀 있던 칼이 스스로 움직여 허공을 날았다.

칼은 의지를 가진 것처럼 하늘을 날아 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마치 마법처럼 칼을 불러들인 김창이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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