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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49화 (14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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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김창, 날 구하러 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도 되겠나?”

만네르헤임이 묻자 김창이 고개를 저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널 죽이러 가는 거다.”

“그래, 어쨌거나. 그러면 연락은 여기까지 하지. 조금 있으면 왕이 찾아올 시간이라서. 그리고 원탁으로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그 친구는 죽겠는걸.”

누구? 김창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쌕쌕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하오성을 발견했다.

맞다, 얘가 있었지. 김창으로선 하오성에게 딱히 악의가 있는 게 아닌데 그를 굳이 죽게 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원탁의 랭커 셋을 죽여서 한석구의 상심이 큰데, 그의 충신쯤 되는 하오성까지 죽는다면 그 상실감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김창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고 만네르헤임의 하수인도 열심히 날갯짓하며 주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김여래가 이끌던 병사들은 재빨리 후퇴하고 있었고 하오성의 병사들은 멀쩡히 이쪽을 보고 있었는데 자기네 영주를 데려가는 걸 보고 뭘 어째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김창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 영주, 잠깐 원탁에 요양하러 가는 거니까 너흰 성으로 돌아가서 문이나 걸어 잠그고 있어. 괜히 이상한 마음이나 먹고 그러진 말고. 아까 내가 한 거 봤나?”

아까 한 거라면 벼락의 화신으로 변해 김여래를 단칼에 썰어버린 걸 말하는 건가? 장님이 아니고서야 그걸 못 본 사람이 있을 리가······.

“내가 칼질 한 번 하면 성벽도 자를 수 있으니까 괜한 짓거리 하지 말고 얌전히 너희 영주 기다려. 곧 돌아올 테니까.”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저 칼잡이가 누군지 모른다. 김여래를 죽이고 하오성을 구했으니 적은 아니겠구나 생각할 뿐이다.

어쨌건 저만한 존재가 하오성을 비호하고 있다면 그의 경고를 무시해선 안 됐다.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김창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차원문을 통과해 원탁으로 돌아갔다.

“아, 돌아왔네요!”

그 목소리는 원탁에서 사무 업무를 맡고 있는 서수민의 것이었다. 그녀가 쪼르르 달려왔다가 기절한 하오성을 보고서 헉 소리를 냈다.

“설마 죽은 건 아니죠?”

“그냥 두면 곧 죽을 수도 있겠지. 사제 데려와.”

김여래가 원탁 랭커 중 유일한 사제인 건 맞지만 그가 원탁의 유일한 사제인 건 아니다.

원탁에는 김여래보다 실력이 낮긴 해도 엄연히 사제 캐릭터가 몇 명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의 실력이라면 응급처치 정도는 가능했다.

일단 그들의 도움을 받아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신전에 가서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알겠어요. 바로 데려올게요!”

서수민이 다급히 달려가고 잠시 뒤에 사제 세 명과 함께 돌아왔다. 그들은 마치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처럼 비장한 얼굴로 하오성을 방안으로 옮기고서 문을 닫았다.

김창은 서수민에게 하오성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선 한석구를 찾아 움직였다.

그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있을 곳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한석구.”

김창이 향한 곳은 지하 감옥. 원래는 하오성이 간수장으로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가 영주 자리를 맡아 떠난 바람에 그 부하였던 이정호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 이정호는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 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감옥 안에서 한석구가 이번에 잡아 온 정우신을 고문하고 있었으니까.

“오, 벌써 돌아온 거야? 김여래는?”

“죽었다. 그리고 하오성 말인데, 김여래한테 당해서 쓰러졌어. 일단은 내가 데려와서 사제들한테 상태 좀 봐달라고 했으니까 죽진 않을 거야.”

“오성이가? 김여래 그 씹새끼를 내가 찢어 죽이지 못한 게 참 아쉽네.”

한석구가 정말 아쉽다는 듯 쯧 소리를 내는 사이에 어둠 속에서 켁켁 소리가 났다. 그 기침은 정우신이 내는 것이었는데 그의 몰골은 걸레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끔찍했다.

김창은 사람은 잘 죽여도 저런 식으로 끔찍하게 고문하여 죽인 적은 없었기에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간수장인 이정호가 왜 구석에 숨어있는지 알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해독제에 대한 정보는 알아냈어?”

“이 독한 새끼, 아무리 고문해도 뱉어내질 않네. 하기야 정보 뱉는다고 내가 살려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말할 이유가 없긴 해. 마탑에 물어보니까 그쪽에 심문 마법 쓸 줄 아는 애가 있대. 그래서 나중에 걔 불러서 정보 빼내려고.”

“그때까지 김용걸이 버틸 수 있나?”

“지금 사제 몇 명이 달라붙어서 매일 같이 힐 주고 있어. 게임으로 치면 독 걸려서 도트 뎀 들어오는 거 정화로 해제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힐로 억지로 목숨 연명하는 셈이지. 그것도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셈이다. 물을 때려 붓고 있으니 당장이야 수위가 유지될 테지만 한석구의 말대로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을 붓는 게 아니라 구멍을 막는 게 우선순위일 테니까.

“그럼 이제 저 새끼 고문 그만해.”

김창의 말에 정우신이 어둠 속에서 으으 소리를 냈다. 말이 아니라 짐승 같은 소리를 내는 걸 보면 입에 재갈이라도 물린 모양이었다. 고문을 받다가 제 혀를 깨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정우신 말이야? 왜? 설마 갑자기 동정심이 샘솟은 건 아닐 테고.”

“저러다 죽으면 내가 쟤를 못 죽이잖아.”

“아, 그런 거야? 그럼 그럴게. 정보 빼내는 거야 마탑의 마법사 오고 나서 해도 되니까. 종호야, 얘한테 물 한 바가지 뿌리고 먹을 것 좀 줘. 마탑에서 사람 올 때까지 살려는 둬야 하니까. 많이 주진 말고. 그랬다가 괜히 헛짓거리한다.”

지하 감옥 구석에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이종호가 찡그린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석구가 위로 올라가자는 듯 고갯짓하자 김창이 그 뒤를 따랐다.

“원탁의 배신자 놈들을 다 처리했으니 이걸로 급한 불은 끈 셈인가? 이젠 왕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궁금한데.”

무려 1년이나 질질 끌어왔던 전쟁은 김창의 등장으로 인해 하루 만에 끝나려 하고 있다. 과연 반신이라 할 만한 무용이었기에 한석구가 짝작 박수 소리를 냈다.

“네가 지옥에서 돌아와 배신자 놈들 싹 죽인 걸 알면 왕은 기절할걸. 걔가 뭘 믿고 겁도 없이 이런 짓을 벌였겠어?”

한석구가 히죽 웃자 김창이 말했다.

“걘 지금 상황에도 믿는 구석이 하나 있을걸.”

“믿는 구석이 있다고? 그게 뭔데?”

김창은 아까 전장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만네르헤임이 자신에게 하수인을 보냈던 일, 그가 왕에게 잡혀있다는 일, 그리고 왕이 대악마의 힘을 이용해 강력한 힘을 가진 군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일.

“내 생각대로 만네르헤임이 왕 꼬득인 건 맞는데, 설마 역으로 왕이 만네르헤임의 뒤통수를 쳤을 줄은 몰랐네. 하여튼 그 양반도 난 놈은 난 놈이야. 그러니까 왕 노릇하고 있는 걸 테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왕이라는 작자가 대악마의 힘을 빌려도 되는 건가? 그거 귀족들이 알면 반발 심할 텐데?”

“왕은 우리 시켜서 자기한테 대드는 귀족들 싹 정리했잖아. 어쩌면 그것도 이걸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 말 안 듣는 놈들은 죄 죽었는데 누가 반발하겠어?”

“그것도 그런가······. 그럼 이 양반은 대체 몇 수 너머까지 본 거야?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어쨌건 난 이제 왕도로 갈 생각이다. 전에 듣기로 왕도 안으로는 차원문 못 연다며? 그럼 그 근처에는 열 수 있나?”

“내가 잘은 몰라도 왕도 안에 차원문 못 열게 하는 것도 마법사 수십 명은 갈아서 한 일일걸. 그 근처까지 전부 막을 수는 없을 거야. 왕 죽이러 갈 거지? 그럼 그 근처에 열어줄까?”

한석구와 김창은 몇 년이나 얼굴을 보고 산 사이였기에 서로가 뭘 원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왕 죽이러 간다고 말도 안 했는데 바로 차원문 열어줄까 물어보는 것만 봐도 그러하다. 김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 난 솔직히 왕 죽여도 상관없긴 한데 다른 사람도 그런가?”

“뭔 소리야?”

“왕은 이 나라의 우두머리인데 그걸 그냥 잘라도 되냐는 소리지. 물론 걔가 잘못한 일이 있기야 하지만 우리 사정만 가지고 멋대로 죽여도 되나? 우리야 죽이고 나면 끝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머리 잃은 무리는 언젠가 무너지는 법이다. 왕이 죽고 나면 그 뒤는 어찌 되나? 과연 왕국이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난 또 뭘 걱정하나 했네. 그거야 당연히 상관없지.”

“어째서? 원탁은 그냥 동향 사람만 잘 챙기면 된다 그런 소리를 하려는 건가?”

“난 능력 없는 놈이 제 능력 너머의 일을 하려는 걸 참 꼴사납게 생각해. 그러다가 자기 다리만 찢어질 테니까. 그런데 나는 능력이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놈도 마찬가지로 싫어하거든? 지금 상황이 그래. 내가 지금까지 원탁 사람만 챙겼던 건 그것만 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야.”

“그럼 지금은 아니다?”

“당연히 아니지. 이젠 시대가 바뀌었어. 난세에서 영웅이 난다고 하던가? 지금은 확실히 난세고 영웅이 날 만한 상황이야.”

“누가 영웅인데.”

“원탁.”

김창은 한석구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얼굴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가득했는데 김창은 한석구가 저런 식으로 웃을 때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 이번에도?

“지금 명분은 우리에게 있어. 아무리 우리가 잘났어도 별 이유도 없이 왕을 죽일 수는 없을 텐데, 저쪽에서 먼저 명분을 만들어줬잖아? 대악마와 손을 잡은 왕이라, 이건 당장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야. 그런데 왕은 영악하게도 자기한테 대들 수 있는 놈들은 진작 제거해버렸지. 이젠 왕의 독주를 막을 수는 없는 셈이야. 우리 빼곤.”

한석구가 히죽 웃었다. 즐거운 상상이라도 하듯이.

“깡패가 왜 욕을 먹는 줄 아나? 보호세랍시고 사람들한테 돈을 뜯는데, 정작 무력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제일 먼저 도망치기 때문이야. 그런데 우린 다르거든? 난 원탁이 깡패 아니라곤 생각 안 해.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들이 있는데 깡패 아니라고 하면 돌 맞지.”

원래 세상에선 자기 객관화가 된 미친놈만큼 무서운 것도 없는 법이다. 김창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한석구가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린 깡패지만 적어도 할 도리는 했어. 호엔을 봐. 거기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우리가 먹고 나서 어떻게 됐지? 부흥에 성공했잖아? 다른 도시들도 다 그래. 우린 돈 뜯은 만큼 일해. 그러니까 우린 왕 죽여도 돼.”

일 잘하는 깡패니까 왕 죽여도 된다는 건 대체 뭔 과정을 거쳐서 나온 개소리란 말인가? 김창이 한마디 하려는데 한석구가 먼저 말했다.

“원래 세금이라는 게 나라가 백성 상대로 삥 뜯는 거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이 나라 상대로 삥 뜯기고 나서도 왜 가만히 있는다고 생각해? 나라가 그만큼 돌려주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우린 왕 죽이고 왕국 전체를 상대로 삥 뜯어도 돼. 왜? 일 못하는 깡패보단 일 잘하는 깡패가 더 나으니까.”

“그러니까 왕보단 원탁이 더 잘났으니까 왕 죽이자는 소리냐?”

한석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젠 원탁도 전국구에서 놀 때가 됐지? 그러니까 왕국, 우리가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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