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돈 있수?
으드드득!
“끄어어어어어!”
요란스럽게 기지개를 켠 후.
호다닥.
책상에 올려뒀던 액션 캠으로 달려갔다.
크럭커를 잡은 증거로 포상금을 받아야 하니 곧 제출해야 할 동영상이었다.
- 동영상 주시면 내일 바로 제출하실 수 있도록 편집해서 보내드릴게요.
헌터 지사로 출근하며 동영상을 많이 받아본 두 사람.
동영상을 주면 임수빈이 대신 편집을 해주겠다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었다.
- 아니에요. 호텔까지 잡아 주셨는데 그런 건 제가 할게요. 첫 제출이라 어떤 식으로 해야 되는지도 알아봐야 하고요.
동영상을 제출하고 포상금을 받는다.
간단한 시스템이지만 앞으로 계속할 일이니 직접 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동영상을 바로 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삭제]
꾸욱.
동영상엔 약간의 편집이 필요했다.
크럭커를 죽인 이후.
청룡의 비늘을 집는 순간은 삭제 해둬야 했다.
반짝.
흐뭇.
바지춤에 숨기고 왔던 비늘이 보였다.
동영상이 그대로 공개됐다간 비늘의 행방을 물어올 게 분명했다.
안되지, 안돼.
내 건데.
비늘이 나온 부분을 통편집한 후 설정창으로 돌아갔다.
- 처음 제출하는 거면 액션 캠에 닉네임 설정하셔야 돼요.
닉네임 설정.
국가직 헌터는 처음에 닉네임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정해진 닉네임으로 제출한 동영상을 올리는 것.
- 99.9%는 다 본인 이름으로 하죠.
이유는 간단했다.
유명해지기 위한 것.
헌터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유명해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일단 유명해지면 동영상을 올릴 때마다 고정적으로 찾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런 고정팬들이 생기면 그만큼 후원금을 받을 확률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유명해진 헌터에겐 많은 기업이 줄을 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유명인을 영입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광고 효과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이름이 아닌 다른 걸로 할 생각이었다.
싸우다 보면 내 무기나 기술 때문에 이름과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긴 하겠지만.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일.
동영상이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길을 걷기만 해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경우라도 줄여야 했다.
# 닉네임을 입력해주세요, 한 번 설정하면 다시는 변경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내 액션 캠에서만 설정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설정을 하는 순간 국가로 보내져 등록이 되는 모양.
으음. 닉네임이라.
이름 짓기.
옛날부터 쥐약인 분야였다.
어렸을 적, 게임을 시작할 때도 이름 짓기 때문에 캐릭터 생성창에서 항상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에라이.
또 그렇게 고민할 생각은 없었다.
바빠 죽겠는데 닉네임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톡톡톡.
# 무기왕.
시원하게 내 목표를 적어 넣었다.
닉네임으로 목표를 적다니.
이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소년 만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구만.
오랜 시간 고민한 건 아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꾹.
# 닉네임, 무기왕. 등록하시겠습니까?
예쓰!
# 환영합니다, 무기왕 헌터님. 첫 동영상 업로드를 위해선 본인 확인 및 액션 캠과의 링크 설정이 필요합니다. 가까운 헌터 지사로 1회 방문 부탁드립니다.
조으아써.
첫 부분으로 돌린 동영상을 다시 재생시켜 보았다.
크럭커에게 나아가기 직전의 상황.
- 무기왕님 심정은 이해 가지만….
임수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닉네임 설정의 기능 중 하나였다.
동영상에서 내 이름이 불리면 자동으로 닉네임으로 교체해주는 기능.
좋구먼.
동영상 편집을 완료한 후.
의자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 * *
“안녕하세요, 양재 헌터 지사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안녕하세요, 포상금 신청이랑 닉네임 등록 좀 하려고 왔어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는 창구 접수원, 김민희.
친절한 안내에 따라 액션 캠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성함 한번 말씀해주실래요?”
“백운입니다.”
이름을 들은 김민희가 조회를 시작했다.
“!!”
무언가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는 김민희.
모니터를 재차 확인한 김민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운 님, 어제 10급 헌터 테스트 보셨고요. 테스트 통과 검수인이… 기태랑 님이시네요.”
!?
- 헌터 테스트는 통과했어. 내일쯤이면 등록되어 있을 거다.
헤어지기 직전.
쿨한 한 마디를 남긴 뒤 기태랑은 현장을 떠났었다.
그냥 통과시켜줬겠지 했는데 직접 자기 이름을 적어주다니.
역시 멋진 아저씨다.
“저 혹시….”
“네?”
한 차례 주변의 눈치를 살핀 김민희가 앞으로 몸을 숙였다.
“사적인 질문이지만 기태랑 님과는 어떤 사이신가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어제 우연히 만나서 제 테스트 검수를 해주신 것뿐이거든요.”
“아….”
김민희가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기태랑 님 완전 팬이거든요. 싸인 받는 게 꿈이어서….”
오. 그렇게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단 말인가.
싸인이 무산되었다는 걸 깨달은 김민희가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액션 캠 통해서 등록한 닉네임이 무기왕?”
“….”
왜일까.
부끄러웠다.
게임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정모를 하게 되면 발생하는 일.
- 흑사자님?
- 아! 혹시 왼손의흑염룡님!?
이런 느낌이었다.
분명 적을 때는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일이다.
“무기왕으로 등록한 거 맞으시죠?”
확인사살을 하는 김민희에 눈을 내리깐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통은 다 본인 이름으로 하시거든요. 10급 헌터 백운 님, 닉네임 무기왕으로 링크 되셨구요. 앞으로는 지사로 안 오셔도 액션 캠을 통해서 포상금 신청 및 동영상 업로드가 가능하세요.”
스윽.
김민희가 작은 기계를 내밀었다.
“여기 검지 손가락 지문 한번 찍어 주세요. 지금 가지고 계신 액션 캠을 잃어버려도 등록한 지문을 통해 새 액션 캠에 닉네임이 링크될 거고.”
타닥.
“해당 지문으로 등록된 계좌에 포상금 및 동영상으로 후원된 돈이 들어갈 거예요.”
생체 인식으로 모든 게 되는 세상.
항상 느끼지만 정말 편한 세상이다.
“동영상 올리는 법 알려드릴게요.”
액션 캠을 사이에 두고 김민희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동영상을 올리기 전엔 꼭 한 번씩 확인해보는 걸 추천 드릴게요. 실수로 올리면 안 되는 것까지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요. 요청하시면 삭제는 되지만 이미 다른 곳에 퍼진 경우까지는 삭제가 불가능해요.”
업로드 실수.
많이 봤었다.
민간인의 영웅이라 불리던 사람이 뒤에선 누군가를 협박하고 돈을 갈취하는 장면이라던가.
청렴결백을 외쳤던 헌터가 사고 현장에 있는 물건을 훔친다던가.
익숙해진 업로드에 검수를 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사고들이었다.
난 꼭 해야지.
다시 한번 다짐하며 김민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자, 여기까지 한 후에 업로드 버튼을 누르시면.”
꾹.
게이지가 차며 동영상이 어딘가로 전송되었다.
“백운 님은 국가 소속이라 해당 동영상과 영상에 기록된 수치들은 영상 담당 부서로 전달되고요. 그다음에 해당 부서에서 영상과 기록을 검증해 포상금을 입금해드릴 거예요. 그 뒤에 실제 국가 사이트에 동영상이 올라가면서 대중에게 노출될 거고요.”
그나마 국가 소속이라 한 차례 검수 단계가 존재한다는 건 다행이었다.
철저한 개인 프리랜서라면 촬영부터 업로드 및 등록까지 자신이 검수를 다 마쳐야 하니 말이다.
“다 됐습니다. 지금 캠에 있던 동영상은 전송되었고, 몇 시간 후에 검수가 끝나면 포상금 입금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연락처 란이 비어 있는데….”
“아직 핸드폰이 없어서요.”
핸드폰이 없다는 말에 김민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21세기 시대.
이젠 군인 장병들도 부대 내에서 핸드폰을 쓰는 시대인데 없다니 라는 눈빛이었다.
만들어야겠구만.
당장 연락할 사람은 없지만, 정보의 검색을 위해서라도 하나 장만할 필요가 느껴지던 참이었다.
“네! 그럼 다 끝났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윽!
“저….”
다시 한번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김민희.
“기태랑 님은 정말 모르시는 거죠?”
“네. 진짜 몰라요.”
뜨거운 김민희의 싸인 투지를 느끼며 호다닥 지사 출구를 향해 뒷걸음질 쳤다.
* * *
양재천 근처.
- 산수 지리소 -
낡은 가게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이 가게가 맞을까?
이 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으음.”
잠깐의 고민을 마친 후, 문을 열어젖혔다.
바로 이곳이야! 라는 확신은 안 섰지만 지금 당장은 선택지가 없었다.
딸랑.
“계세요?”
오래된 책의 향기와 함께 묵은 먼지가 나를 반겼다.
와. 진짜 더럽네.
정말 어느 곳 하나 건드리고 싶지 않은 가게였다.
책이란 책엔 하나도 빠짐없이 먼지가 쌓여 있었고, 건드리는 순간 폐렴에 당첨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게의 청결 상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이.
“누구쇼?”
지리소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인.
주인을 본 첫인상이었다.
긴 백발과 흰수염을 흩날리며 모습을 드러낸 노인.
도인이란 존재가 실제 한다면 저런 모습이겠거니 싶었다.
“안녕하세요, 구룡산의 지리서가 있을까 싶어 왔는데요.”
지리소에 찾아온 목적이었다.
동굴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용님을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
가긴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가 막막했다.
“구룡산? 없수다.”
“그… 그렇군요.”
노인의 짧고도 깔끔한 대답.
없는 걸 있다고 거짓말하진 않았으니 솔직한 주인장이라고 해야 될까.
“그럼 안녕히계세요.”
만난 지 일 분만에 이루어지는 이별.
가게 문을 나서기 위해 몸을 돌렸다.
“지금은 없지.”
뒤에서 의미심장한 노인의 말이 들려왔다.
“지금은?”
빙글.
노인이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돈, 얼마나 있수?”
“!?”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노인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만들어주지, 돈만 충분하다면.”
* * *
국가 헌터들의 동영상이 올라오는 사이트, 한튜브.
띠링.
알림음과 함께 한튜브로 동영상이 올라왔다.
제목은 구룡산에서의 혈투, 닉네임은 무기왕.
@ 무기왕? 이 촌스러운 닉네임은 뭐지?
@ 온몸이 오그라드네, 어린이집 다니는 헌턴가봐요.
대부분의 헌터가 실명을 사용했기에, 실명이 아닌 닉네임은 네티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케이스였다.
거기다 무기왕이라니.
유치원생도 손사레 칠 닉네임이었다.
@ 어그로는 미쳤네요, 저절로 재생 버튼에 손이 가네.
@ 선발대 출발할게요. 얼마나 유치하게 싸우나 보고 댓글 남기겠습니다.
영상을 발견한 네티즌들이 비웃음과 함께 동영상을 클릭했다.
그런 네티즌들 앞으로 플레이되는 동영상.
[아가리 벌려라.]
[철컥.]
[탄 들어간다.]
@ 선발대 어디 갔어요? 후기 안 남기나?
선발대의 댓글을 기다리는 네티즌들.
띠링.
잠시 후 선발대의 한 줄 평이 올라왔다.
@ 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