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수색
눈앞으로 나타난 벽으로 발을 뻗었다.
콰앙!
문을 찾고 있을 시간따윈 없었다.
건물 하나 정도는 게눈 감추듯 깔끔하게 날려버릴 수 있는 에너지였다.
쾅. 쾅.
깊이도 들어왔네!
쾅!
마지막 벽을 뚫어내자 바깥의 공기가 뺨을 스쳤다.
순간이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공기조차 떨리고 있었다.
파앙!
다시 한번 연기를 터뜨리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했다.
“배… 백운 님.”
미라코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 등 너머를 보고 있는 미라코였기에.
지금 하늘에 나타난 게 뭔지 보고 있을 터였다.
나도 보고 싶다!
너무 빠른 속도로 쏘아지고 있었기에.
지금 당장은 고개를 돌릴 틈이 없었다.
싸이비들의 다목적실이 나름 도시에 위치하고 있던 탓에 피해야 할 건물이 많았다.
콰아아아아아!!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안 돌아봐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묶여 있었던 다목적실은 이제 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아….”
왠지 모르게 망연자실한 목소리였다.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광경을 보고 있는 듯한 목소리.
사아악…!
이 정도면 됐겠지.
속도를 줄이며 몸을 돌렸다.
“허.”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직접 보고 나니 미라코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원형 기둥 모양을 한 에너지의 결집체였다.
하늘에서 쏘아져 그대로 건물이 있던 위치로 꽂히고 있는 에너지.
콰가가아아아…!!
건물이 사라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에너지의 도착지에서 시작된 폭발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후우우웅…!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후폭풍으로 인한 바람이 닿을 정도이니.
도시 안에 있던 건 전부 소멸했다고 봐야 했다.
저건 또 뭐냐.
사라지고 있는 도시에서 에너지가 떨어진 하늘로 시야를 옮겼다.
저게 뭔지 직관적으로 와닿진 않았으나, 형태만 봤을 땐 무언가의 손이었다.
불량식품 색이 떠오르는 푸르딩딩한 파란색 손.
두꺼운 갑주 같은 걸로 덮인 손이었고, 그 손의 중앙에서 에너지가 쏘아지고 있었다.
데몬이라면… 어디서 쏘고 있는 거야.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주시했지만.
보이는 건 덩그러니 떠 있는 거대한 손과 약간의 손목뿐이었다.
일렁.
문… 인가.
자세히 보니 손목이 나타난 하늘은 미묘하게 일렁이는 중이었다.
망자의 세계에서 열렸던 포탈이 떠오르는 모양새였다.
손이 저만하면 얼마나 크다는 거야.
아직 실체를 본 건 아니기에 100%라 할 순 없지만.
하늘에 드러난 손목과 손을 보고 있자니 무기일지도 모르겠단 희망은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에너지를 쏘아내면서도 손은 묘하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갑주 사이사이로 굵직굵직한 핏줄까지 보이는 걸 보니 살아있는 무언가의 손이었다.
오싹.
도시를 지우고 있는 에너지를 보고 있자니.
망자의 세계에서 카사락이 쏘아냈던 힘이 떠올랐다.
느껴지는 것만 봤을 땐 지금 도시에 떨어지고 있는 에너지보다 몇 배는 강력했었다.
막아야 하니까 일단 달려들고 본 건데.
나도 저렇게 지워질 뻔한 건가.
“어떻게 이런 게… 도시가 없어지다니.”
미라코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네요.”
건물에 있던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끌려가던 중 봤던 도시의 사람들도 반응을 봤을 땐 같은 종교에 속해있었다.
료헤이란 놈, 보통이 아니네.
단순히 떨어진 에너지가 강해서는 아니었다.
료헤이가 꼬리 자르기를 위해 망설임 없이 한 행동이 놀라웠다.
구원교의 일부분과 구조물을 발견한 나를, 추가로 정보를 더 뱉을 수도 있는 규타이를 없애기 위해 도시를 날려버리다니.
“저건 대체 뭘까요?”
“글쎼요.”
에너지를 다 쏘아내서일까.
하늘에 내밀어졌던 손은 다시 균열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저걸로 날린 거구나.
당장 저 손의 정체를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틀 뒤 훗카이도의 1/3을 날리며 1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건.
조금 전 하늘에 나타났던 저 손이 주인이었다.
스윽.
“미라코 님, 기지로 돌아가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여기에서 알아낼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손이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에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도시도 폐허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까 건물에 있던 구조물 보셨죠?”
“네… 네.”
“그게 방금 쏘아진 에너지의 원천이고, 분명 더 있을 거예요.”
“!!”
훗카이도의 피해를 생각했을 때 준비된 구조물은 한두 개가 아닐 터였다.
분명 여러 개의 구조물이 분산되어 숨겨져 있을 터였다.
“찾아야 해요.”
* * *
“주의를 주겠습니다. 계획되지 않은 걸 시도 때도 없이 요청하다니.”
굼벵이를 닮은 데몬, 포이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 료헤이로부터 다급한 요청이 왔었다.
오타루 근처의 작은 도시로 헤키리스의 힘을 사용해달란 것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것 같습니다. 겨우 힘을 조달하는 게 전부인 놈이.”
포이카는 료헤이의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쓸만한 건 인정하겠으나.
자신이 모시고 있는 군주에 대한 예의는 다시 배울 필요가 있었다.
“놔둬라.”
“…!”
뜻밖의 대답에.
눈이 커진 포이카가 고개를 들었다.
급하다고 하니 일단 말을 들어주긴 했지만, 헤카리스 역시 비슷한 이유로 기분이 얹짢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포이카의 눈에 들어온 헤키리스의 얼굴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까드득… 까드득.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헤키리스.
헤키르스의 미소는 만족감에 의해 그려진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군.’
헤키리스가 조금 전의 감각을 떠올렸다.
료헤이가 준비한 구조물을 통해 흘러들어온 엄청난 양의 에너지.
이미 한 차례 사용한 적이 있었으나 여전히 색다른 힘이었다.
‘이 정도까지 날 강하게 만들어 주다니.’
료헤이의 힘을 받기 전에도 헤키리스는 지하 공당의 절대적인 군주였다.
사고 체계를 지닌 데몬이 인간의 눈을 피해 숨어드는 장소, 지하 공당.
생각과 판단이 가능한 만큼 본능에 이끌려 날뛰기만 하는 여타 데몬과는 수준이 다른 개체들이었다.
그런 데몬들이 모이다 보니 초기의 지하 공당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었다.
스스로가 우월한 개체라는 걸 알고 있는 데몬들이 모였으니 쉽게 서열 정리가 되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꿇어라, 죽이진 않을 테니.
피 냄새가 들끓으며 강한 개체만이 살아남았던 시절.
그랬던 공당의 서열을 단숨에 정리하고 왕좌를 차지한 게 헤키리스였다.
- 살려… 줘.
- 크… 크르륵.
말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헤키리스에게 덤볐던 모든 데몬이 무릎을 꿇으며 목숨을 구걸했었다.
까드득.
이미 그만큼 강력했던 헤키리스인데도.
료헤이는 그걸 넘어 헤키리스가 도저히 닿을 수 없었던 경지까지 힘을 끌어 올려 준 것이었다.
‘일부분 모아놓은 힘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포이카가 열어 준 포탈의 너머로.
헤키리스는 자신이 행한 일을 똑똑히 봤었다.
그저 손 한 번 까딱였을 뿐인데 도시 하나와 그 안에 있던 모든 생명체가 소멸했다.
- ….
자신에 의해 가루가 되어버리는 존재들을 보며.
헤키리스의 머리로 한 가지 단어가 떠올렸다.
신.
그야말로 신의 손짓이었다.
모든 공격으로부터 완전무결한 몸을 가짐과 동시에.
앉은 자리에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힘.
자신은 단순한 공당의 군주가 아닌, 신이란 경지로 발을 내디딘 것이었다.
-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틀 뒤, 수많은 이의 믿음과 충성을 바탕으로 헤키리스 님은 신이 되실 겁니다.
씨익.
‘이틀 뒤, 난 신으로서 첫 발자국을 내디딜 것이며.’
헤키리스의 입가가 양옆으로 길게 늘어졌다.
‘훗카이도는 세계에 나의 존재를 알리는 희생양이 될 것이다.’
* * *
기지의 상황실로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꼴깍.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가는 침묵이었다.
괜히 따라 들어왔나.
예상했던 대로 도착한 기지는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오타루에 이어 도시 하나가 또 사라져 버렸고, 이번엔 전과 달리 인명 피해까지 있었다.
싸이비 종교에 소속된 놈들.
구하고자 했다면 무리더라도 에너지를 막으려 노력해봤겠지만.
밖으로 나오기 전까진 어떤 게 떨어지고 있는지 몰랐었고, 미라코까지 함께 있는 상황이었기에 굳이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았었다.
구할 가치가 없기도 하고.
오타루에 이어 이틀 뒤엔 훗카이도를 날리는데 가담하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데몬에게 인간을 바치면서 눈 하나 깜짝 안 한 놈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료코 님과 국가 입장에선 아니겠지.
아무리 싸이비 종교라 해도 자국민이었다.
정확히 몇 명인지 집계되진 않았어도 적지 않은 수가 소멸해버렸으니.
기지에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한 방에 그렇게 됐다는 거죠?”
료코가 믿기지 않는단 얼굴로 되묻자.
미라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상세히 설명을 해 나갔다.
….
설명이 끝나자.
“그렇군요. 하늘에서 쏘아 도시를 날리는 힘이라.”
료코가 미간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있다는 걸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힘이긴 해.
방금 봤던 힘을 봤을 때 대비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늘에서 나타난 불명확한 포탈과 그곳에서 갑자기 등장해 도시를 날려버리는 무언가의 손바닥.
심지어 손바닥의 등장을 감지한 후 에너지가 쏘아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속수무책.
순식간에 도시를 날릴 정도로 막강한 힘인 건 알지만 대처할 수단이 없으니.
료코의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가진 단서는 힘을 모아둔다는 구조물과, 힘을 모으는데 구원교라는 종교 단체가 관랸됐다는 것뿐이군요.”
생각을 마친 건지 료코가 모여있는 간부들을 둘러봤다.
“고민할 시간도 아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지에 있는 인원만으론 부족할 거 같으니 정부에 증원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동안.”
료코가 화면에 띄워진 지도를 보며 각 도시를 가리켰다.
훗카이도 주변에 모인 도시들이었다.
“기지의 인원을 총동원해서 도시를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종교의 규모가 작지 않은 만큼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다들 방심하지 말고 샅샅이 수색해달라고 전달해주세요. 아무리 작은 도시 하나라고 해도 통째로 종교에 넘어갔었다면… 집단적으로 구조물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간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목격자로 불려왔던 미라코도 자리에서 일어나 료코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저벅.
“백운 님.”
지나가던 미라코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하도 정신이 없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백운 님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예요.”
다시 한번 꾸벅 숙이는 미라코에.
뜨끔.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인사를 받을만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마음만 먹었으면 오타루에서 충분히 안 잡혀갈 수 있었으니까.
“하… 하… 별말씀을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미라코가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고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나가볼… 응?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둘이 남길 기다렸는지 료코가 내게 걸어왔다.
“백운 님.”
평소보다 더 진중한 표정으로 앞까지 걸어온 료코.
료코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