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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26화 (226/473)

226화. 료코의 제안

“끄어어!”

상황실을 나와 기지개를 켰다.

뿌드득!

무거운 분위기 속에 오래 앉아 있어서일까.

어깨와 등에서 시원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빠지기 직전까지 쭉 폈던 팔을 내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기지 사람들을 바라봤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늦은 시간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곧장 투입되려는 것 같았다.

톡… 톡.

손가락을 두드리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렇게 봐서 알 정도면 간첩이란 단어가 아깝겠지.

-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금 전 상황실.

료코는 기지 내부에 구원교의 첩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 원래라면 에너지가 발생한 순간 신호가 왔어야 합니다.

기지에선 넓은 반경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탐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날아갔던 도시 역시 탐색 범위에 들어와 있었기에.

에너지가 쏘아지기 직전에 기지로 알림이 왔어야 정상이었다.

- 알림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료코는 기지에서 도시의 소멸을 알아챈 건 그 이후의 일이라고 말했다.

위성에 의해 관측이 되었고, 화면을 받았을 때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다는 것.

- 에너지가 탐지되었다면 동류의 에너지를 추적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며 료코는 흩어져 있는 간부와 병사들을 둘러봤었다.

더 듣지 않아도 다음 말은 알 것 같았다.

내부에서 정보 흘리기를 넘어 강경 행동까지 취하는 첩자가 있다는 것.

구원교에 소속된 군인이라.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건 상황실뿐이었고.

상황실에 접근할 수 있는 인원 중 최근 1, 2년 사이에 입대한 이는 없었다.

한쪽으로 단정 짓기는 힘들겠어.

훨씬 전에 구원교에 있다 군인이 되었던지, 군 생활을 하던 도중 포섭되었던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찾으려면 고생 좀 하시겠네.

당연하지만 첩자를 찾는 건 내가 아니었다.

처음엔 내게 첩자를 찾아달라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내가 무슨 수로 찾겠어.

온 지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 이번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만 함께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료코가 내게 하고자 한 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료코 역시 얼마 전에 기지로 온 외부인인 건 마찬가지.

누가 첩자인지 감도 안 오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마무리될 때까지라 해도 어차피 이틀이지만.

물론 이틀 뒤에 훗카이도가 날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건 나밖에 없었다.

슥.

턱을 괴고 기지에서 빠져나가는 차량들을 응시했다.

이미 최악의 사태가 임박했다 가정하고 최대한 신속히 움직이고 있는 료코와 군이었다.

처음엔 잠깐 고민했었다.

내가 회귀로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알려 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알려 줄 방법은 많으니까.

별의별 각성자가 다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일본으로 오기 전 우연히 만난 예지 능력자에게 들은 거라고 둘러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었다.

의미가 없어.

이틀 뒤 훗카이도와 150만 인구가 소멸된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어디서 어제 봤던 손이 등장하는지, 그 규모는 어떠한지, 막기 위해선 무얼 미리 해야 하는지 등.

날짜를 제외하고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구조물의 힘을 빌리고 손에서 빔 뿜어지는 것도 이번에 안 사실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

“흐음.”

입으로 작은 한숨이 나왔다.

처음에 3일을 기다려 보기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훗카이도를 날린 게 무기라면, 무기고에 넣을 수 있는 거라면 들른 김에 집어 갈까 해서였다.

데몬이겠지.

카랑클을 강화했던 료헤이의 힘과 하늘에 나타난 손을 봤을 때 훗카이도를 날린 건 데몬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어도 의미는 없어.

손에선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다.

황금색은 고사하고 보라색도 보이지 않았다는 건 무기고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즉, 내가 기다리고자 했던 이유는 에너지를 쏘아내는 손을 목격하며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 ….

그래서였다.

기지에 미라코를 내려주고 상황실에서 브리핑을 들으면서도.

떠날까 말까를 계속 고민한 것은 말이다.

내가 무슨 정의의 히어로도 아니고.

애초에 이곳은 한국도 아니었다.

원래도 애국심이란 게 거의 없다시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여기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사명감 같은 게 존재할 리 만무했다.

인류애도 아니지.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없다 생각한 가장 큰 이유였다.

불살주의라거나 인류의 희생을 용납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내가 남아 있다고 훗카이도가 사라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훗카이도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었다.

없지만.

- ….

난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었다.

나 자신인데도 현재의 마음을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150만.

이틀 뒤에 하늘에서 쏘아진 에너지에 사라질 숫자였다.

기사에서 봤던 숫자를 가볍게 읊고 있긴 하지만, 결코 작은 수가 아니었다.

여기도 사라질 거고.

아는 사람이라 할 만한 건 료코와 만난 지 하루 된 미라코 뿐이지만.

어쨌든 이들도 150만에 포함될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보장은 불가능하지만, 못 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쏘아지는 위치만 특정할 수 있다면 오히려 할 수 있다에 훨씬 무게가 실렸다.

이틀.

굳이 내가 잃는 걸 따진다면 이틀이란 시간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난 여길 외면하고 이대로 떠나는 게 옳은가? 에 대한 고민이 내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 사로카부터 백운 님께 받은 게 정말 많습니다. 이번마저 염치없이 그럴 생각은 없고요.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 마음에 턱을 문지르고 있을 때 료코는 말을 걸어왔었다.

자신의 권한이 닿는 선에서 무얼 원하든 다 들어주겠다는 제안과 함께였다.

듣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고나 할까.

- 슥슥.

시원하게 소화가 된 것 마냥 손으로 가슴팍과 배를 몇 차례 쓸어내렸었다.

가!? 말어!? 하던 고민 역시 어느새 말끔하게 사라졌었다.

대신 료코에게 뭘 말할까에 대한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 지금 바로 말씀드려도 되나요?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었다.

내가 원하는 건 명확했기 때문이다.

- 네… 네, 말씀하세요.

이렇게 바로? 라는 듯한 놀란 얼굴로 말하라는 료코에.

지체 없이 입을 열었었다.

- 제가 원하는 건.

* * *

“알겠습니다. 계속 보고 부탁드립니다.”

료헤이가 전화를 끊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

직접 들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보고였다.

도시로 잡혀갔던 두 명의 인원이 무사 복귀했으며.

구원교의 구조물과 헤키리스의 손에 대한 이야기까지 알렸다는 것이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구조물이 알려진 건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제부터 군이 구조물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료헤이가 핀치에 몰려 난처해지는 건 아니었다.

이틀.

이제 이틀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걸 이제 와서 알아차렸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거기다 이미 다 대비가 되어있고 말이다.

까득.

료헤이의 인상이 찌푸려진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기지에 심어 놓은 내부자가 이름을 알려왔었다.

한국의 10급 헌터, 백운.

백운이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규타이와 함께 있었는데.’

헤키리스의 심판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백운은 건물 안에 있었다.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복귀라니.

-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합니다.

“하.”

료헤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범위에 들어가는 사람은 물론이요 도시까지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헤키리스의 심판이었다.

심판의 목표물임과 동시에 도시의 한복판에 있던 자가 어떻게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순간이동이 가능한 각성자인가.”

잠시 생각하던 료헤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말이 안 되는 가정이었다.

‘불가능하다.’

자신의 힘으로 직접 강화한 카랑클이었다.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이동기 각성자가 잡을 수 있는 데몬이 아니었다.

- 콰아앙!

그렇다고 마냥 부정할 수도 없었다.

실제로 백운은 카랑클을 쓰러뜨렸고, 헤키리스의 심판으로부터 살아남았다.

- 내기할래? 네가 말하는 그 존재한테 내가 닿을 수 있나 없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화를 통해 백운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치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던 목소리.

이게 왜 지금 떠오른 건진 알 수 없었다.

‘….’

휙휙.

료헤이가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이다.’

몸을 돌린 료헤이가 방으로 향했다.

말도 안 되는 가능성.

분명 그럴 거라 생각하면서도, 료헤이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 * *

“후후.”

기대되는구만.

걸음을 옮기며 료코에게 말했던 걸 떠올렸다.

내가 가장 원하며 가지고자 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무기.

그래서 별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가져간 유물들이 있는데요.

과거 유물관에서 일했기에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지겹게 반환 요청을 하고 있음에도 종말의 날이 온 그때까지도 반환하지 않은 유물이었다.

안 주겠단 거지.

그저 모르쇠로 일관한 일본의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돌려주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단순히 유물을 돌려주는 게 아닌, 국가의 자존심과도 연관되는 부분이라 더 의지를 다진 느낌이었다.

-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들여보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져간 거 다 돌려주세요! 라고 요구하진 않았다.

한국 입장에선 정당한 요구일지언정 현재 나와 료코에게 있어선 부담을 넘어 무리한 요구가 될 터였다.

- 유물요…?

뜬금없는 요청이어서일까.

료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었다.

그럴 만도 하지.

료코는 내 능력을 알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뜬금없이 유물 보관소를 보여달라고 하니 의아한 것이었다.

하나쯤은 있을 거야.

보관소를 보여달라고 한 이유였다.

유물관에서 일하며 파악한 바로는.

일본이 가져간 유물 속엔 조선 장수들의 물품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가짓수가 적지 않다 보니 어느 장수의 유물이 있다 특정 지을 순 없으나.

분명 장수들이 사용하던 무기가 섞여 있을 확률이 높았다.

찾아야 하는 무기 리스트를 정리할 때도 좀 아쉬웠었지.

리스트에 넣기가 뭐랄까, 참 애매했었다.

어디에 보관 중인지, 접근은 할 수 있는지 등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무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국가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였다.

일본이 가져간 유물은 방법을 찾을 때까지 후순위에 두기로 한 것은 말이다.

- 문화재청 장관과 가까운 사이입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의외의 곳에서 방법이 생겼구먼.

물론 막상 들어갔더니 황금빛은 고사하고 보랏빛조차 없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쉽겠지만 적어도 유물 속에 무기가 없다는 건 확인한 거니까.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야.

무기 혹은 단서가 없을지언정.

불확실성 하나가 해소되는 것이었기에 들여보내 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저벅.

유물 속에 무기고에 넣을 수 있는 무기가 있기를 바라며.

아까보다 훨씬 가벼워진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내가 배정받은 구역을 응시했다.

싸이비 잡으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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