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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65화 (165/687)

165화

“왜 이러는 거냐!”

“흥. 방금 날 쳐다본 네 시선에 담긴 음흉한 속마음을 모를 것 같으냐?”

“아니. 어떻게 알았...”

“죽어!”

“그만해라.”

이한은 가이난도와 아산을 말렸다.

데스 나이트는 둘이 싸우든 말든 가만히 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명만 바치면?”

그래.

“바치면 그 학생은 어떻게 되지?”

아마 지하감옥에 가겠지.

“지... 지하감옥??”

가이난도는 필요 이상으로 겁먹었다. 그 반응에 이한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걱정할 것 없어. 가이난도. 그냥 지하 징벌방을 말하는 거니까.”

“...그게 왜 어떻게 어째서 걱정할 것 없다는 건데 이한?”

이한은 대답 대신 다시 데스 나이트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바치면 길을 비켜주는 건가?”

학생이여. 내가 비록 목숨을 잃고 산 자의 세계에서 멀어졌지만 그렇다고 가슴에 품은 명예마저 잃어버리진 않았다.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진짜 명예를 생각하시면 여기서 이렇게 길을 안 막으실 것 같은데요...”

“쉿. 요네르. 사람은 아픈 곳을 찔리면 화를 낸다고.”

이한은 요네르의 입을 막았다.

데스 나이트가 심술이라도 부리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문제는...’

데스 나이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속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혹시 길 비켜주신 다음에는 앞질러 가서 또 학생 한 명을 바치라고 하실 생각이십니까?”

......

데스 나이트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는 투구를 푹 숙이고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군.’

“명예 있다면서...!”

“쉿. 가이난도. 사람은 아픈 곳을 찔리면 화를 낸다니까.”

이한은 별로 실망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해골 교장 성격상 그냥 한 명 바친다고 길 열어줬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사악한 자들은 떡 한 개 준다고 쉽게 물러서지 않고 계속 쫓아오는 법.

“어쩔 수 없군.”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사제들은 이한의 반응에 놀라워했다.

저 데스 나이트의 출현에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저렇게 침착하다니.

워다나즈가 대단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너희들. 돌아가서 흰 호랑이 탑 애들이랑 검은 거북이 탑 애들 깨워서 데리고 와.”

“......”

“......”

설마 저희가 생각하는 그 방법은 아니죠?

*         *         *

아산과 가이난도는 여관에서 자고 있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깨웠다.

당연히 학생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달카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데스 나이트라니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잖아.

-황자. 황자라고 해서 우리가 널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여긴 에인로가드야. 물론 여긴 밖이지만 하루 지나면 에인로가드... 으악! 데스나이트잖아!!

반신반의한 채 졸린 눈을 비비며 걸어온 학생들은 기겁해서 뒤로 넘어졌다.

어둠 속에서 죽음의 기사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다들 침착해라. 나는 교장 선생님이 호락호락하게 우리를 들여보내주지 않으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미리 정찰을 나왔지.”

사실 두 탑 학생들을 미끼로 버려두고 이한과 친구들만 먼저 들어가려고 한 거였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한의 진지한 목소리에 다른 탑 학생들도 압도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있던 지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워다나즈 놈이 그렇게까지 솔선수범할 이유가 있나?

“이렇게 데스 나이트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자칫하면 해가 뜨기 전까지 못 돌아갈 수 있어.”

“과연...”

“역시 그것밖에 없나.”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듣자 다른 탑 학생들은 잠에서 확 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잘 시간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납득한 것 같자 이한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 제비를 뽑아서...”

“덤벼라, 데스 나이트!”

“!?”

이한은 깜짝 놀랐다.

앙라고가 검을 뽑아들더니 데스 나이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앙라고, 잠깐...”

말리기도 전에 앙라고는 거리를 좁혔다.

이한은 탄식했다.

‘이래서 기사 놈들과는 큰일을 같이 할 수가 없는 법이구나!’

손장난을 쳐서 제비를 뽑게 하려고 했더니 그걸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다니.

데스 나이트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이 건틀렛으로 감싼 한쪽 손을 펼쳤다.

어린 기사여. 용기는 가상하나 지나치게 오만하도다.

데스 나이트는 검을 뽑지도 않았다. 금속으로 덮인 팔로 앙라고의 일격을 막아냈다.

“!”

공격이 막히자 앙라고는 경악했다.

나름 자신에 차서 뻗어낸 일격이 막힌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숨, 숨이!’

공격을 한 건 앙라고였는데 정작 앙라고의 숨이 턱 막혀왔다.

데스 나이트가 흩뿌리는 사자(死者)의 기운이 앙라고의 생기를 짓누르기 시작한 것이다.

“큭!”

앙라고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데스 나이트는 앙라고를 내려다보았다. 투구 속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쩍였다.

‘잠깐. 해결된 거 아닌가?’

이한은 무릎 꿇은 앙라고를 보며 깨달았다.

지금 한 명 바친 셈이니까 이번 길은 통과하고, 다음 길에서는 또 흰 호랑이 탑 기사 한 명 도발해서 나가게 하고...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다들 덤비도록.

“......”

그러나 그런 이한의 생각은 데스 나이트의 폭력적인 발언과 함께 사라졌다.

데스 나이트는 학생들 모두가 덤벼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이한은 오해가 있다고 말하려 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다 같은 탑이 아니라 서로 다른 탑 소속이라고.

그러니까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면 흰 호랑이 탑 놈들만 싸워도 되지 않겠냐고.

그러나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친구들은 공격을 시작했다.

“마비되시오!”

“쏘아져라!”

‘젠장. 미리 말해뒀어야 했는데.’

이한은 친구들에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데스 나이트한테 잡혀가도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지 않은 자신을 후회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싸움은 시작된 상태였다.

“워다나즈 님. 고맙소!”

“뭐가?!”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한 대 때리고 싶군.’

흥분한 목소리로 뛰쳐 나가는, 불의 정령 피를 타고 난 니기소르 사제의 모습에 이한은 살짝 울컥했다.

어지간하면 불사조 탑 사제들에게는 나쁜 감정을 품지 않았지만...

“타올라서 날아가라!”

“휘몰아쳐라!”

“무거워지고, 예리해져라!”

사방에서 주문이 난사되고 번쩍이는 원소들의 충돌이 일어났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어디서 배워왔는지 칼날에 강화 주문을 걸고 덤벼들었다.

이한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왠지 저걸 나한테 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워다나즈! 조심해!”

아산의 외침에 이한은 고개를 숙였다.

데스 나이트가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의 멱살을 잡아서 던진 탓에 친구가 날아오고 있었다.

“샤르칸. 가라!”

이한은 샤르칸의 이름을 부르고, 물을 불러낸 다음, 녹주옥 용액을 던졌다.

평소와는 다른 에메랄드 빛 육신을 부여받은 샤르칸이 행복함 섞인 울음소리를 냈다.

-그르르릉...

“샤르칸. 정면으로 붙지 말고 놈을 혼란시켜!”

이한의 목소리에 담긴 다급함에, 샤르칸은 알겠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학생들은 가볍게 상대해주던 데스 나이트도 샤르칸은 경계하듯이 움직였다.

주인을 섬기는 죽은 자가 왔는가. 같은 처지인 만큼 봐주지는 않겠다.

데스 나이트의 비어 있는 한쪽 손에서 빠르게 검이 뽑아져 나왔다. 녹슬고 거무튀튀한 색이었지만 그 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기운은 살벌했다.

쾅!

바닥을 찍자 주변의 흙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러나 샤르칸은 한 발 앞서 피했다. 예상보다 더 재빠른 움직임에 데스 나이트는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녹주옥(綠柱玉)이 가진 통찰의 힘인가. 성가시군.

데스 나이트는 샤르칸이 피하는 궤도를 막기 위해 연달아서 검술을 펼쳤다.

학생들의 마법이 그 위로 쏟아졌다. 데스 나이트도 계속 맞아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방패를 올렸다.

“이한. 그냥 두고 도망칠까?”

“야...!”

가이난도의 너무나도 시원한 질문에 아산이 당황했다.

다른 놈들 들으면 어쩌려고!

“방법이 없으면 도망쳐야지!”

“방법이 있긴 해.”

“그런데?”

“이게 좀 못 미더워서...”

“???”

“아니다. 일단 불러보자.”

이한은 페르쿤트라가 남긴 문양에 힘을 부여하며 주문을 외웠다.

데스 나이트는 아주 까다로운 상대였다.

환상 마법도 통하지 않고, 각종 어지간한 원소 마법에 대한 저항력도 높았다.

물 구슬을 수십 개 날려서 난타를 한다고 하더라도 놈이 가진 방어력을 뚫기 쉽지 않았다.

물을 거대하게 만들어서 파괴력을 늘리려고 해도 데스 나이트가 그걸 기다려주지 않을 테고...

남은 건 하나밖에 없었다.

“우레를 노래해주십시오, 정령이여!”

페르쿤트라.

강력한 번개의 정령인 페르쿤트라는 분명 데스 나이트를 상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한이 페르쿤트라를 불러내는 걸 꺼려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까지 불러냈을 때 전적이 다...

‘영 시원찮았던 것 같...’

-네놈의 불신이 내게 안 느껴질 것 같으냐!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동시에 페르쿤트라의 고함이 이한의 머릿속을 울렸다.

-오해입니다!

-오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페르쿤트라는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마법학교의 신입생한테 이런 진심 어린 불신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일이 아무리 꼬여도 그렇지...

-그렇다면 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죽음의 기사를 쓰러뜨려서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나는 원래 이런 저급한 도발에 응하는 정령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 네 그 터무니없는 의심에 이번만! 확실하게 능력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페르쿤트라는 몸집을 부풀렸다.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페르쿤트라를 후려갈기더니 더욱 더 힘을 키워올렸다.

강한 정령은 변명을 하지 않는 법이었지만, 페르쿤트라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맨 처음에 만났을 때는 해골 교장의 징벌방 안이었고 그 다음에 만났을 때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의 족쇄에 묶여서 힘이 제한되었을 때 아닌가.

원래 페르쿤트라는 한 번 불러낼 때마다 소환자의 막대한 감사와 존경을 받아야 나올까 말까한 그런 정령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 불러낼까 말까’하는 건방진 마음으로 나오게 되다니...

보아라, 그리고 전율해라!

내가 졌습니다. 위대한 번개의 정령이시여.

데스 나이트는 샤르칸을 공격하던 걸 멈추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번쩍이며 번개를 터뜨리던 페르쿤트라는 멈칫했다.

...뭐라?

제가 가진 힘으로는 감히 당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해골 교장의 소환수인 만큼 데스 나이트는 페르쿤트라의 정체를 당연히 알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처지인 만큼 자기보다 강한 정령에게 맞서서 헛된 낭비를 저지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법학교의 학생들이여. 너희들은 내 시험을 실력으로 통과했다. 너희들은 제물을 바치지 않고 길을 지나가도 좋다!

“...!”

“!!!”

데스 나이트의 선언에 학생들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로 이렇게 길이 열릴 줄이야.

데스 나이트는 이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이름을 기억하겠다. 학생이여.

해골 교장의 언데드 소환수들에게 이름을 남기는 건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이한은 지젤을 쳐다보았다.

쌍검을 들고 있던 지젤은 워다나즈 놈이 왜 갑자기 쳐다보나 싶어서 마주 노려보았다.

‘음. 듣는 사람이 많아서 사칭은 무리겠군.’

이한은 포기했다. 아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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