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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423화 (423/687)

423화

어색해하던 잉걸델 교수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장클리프 경은 뛰어난 기사인 만큼,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언제 그렇게 마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낼 수 있게 된 겁니까?”

“높은 수준이 아니라 그냥 낭비 감안하고 마력 쓰는 건데요...”

“...어쨌든 장클리프 경은 뛰어난 기사인 만큼, 방금 배운 초식이 도움이 될 겁니다!”

이한은 살짝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잉걸델 교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를 몰라서 대충 넘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 강하시긴 하더군요.”

“너도밤나무 기사단이 허례허식에 너무 집착한다는 말이 많지만, 장클리프 경은 예외에 속합니다.”

“?”

어라?

‘방금 되게 자연스럽게 욕하신 거 아닌가?’

잉걸델 교수는 자기가 욕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한은 제자 된 도리로서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제국의 온갖 검술들에 대해서도 박식한 만큼 분명 도움이...”

“그래도 교수님보다는 아니겠죠.”

“아, 그건 아닙니다.”

잉걸델 교수는 의외로 단호하게 부정했다.

평소 검술에 관해서는 절대로 빈말을 하지 않는 잉걸델 교수였기에 이한은 놀랐다.

“그렇습니까?”

“저는 장클리프 경처럼 사교적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하.”

이한은 바로 납득했다.

하긴 전장 돌아다니면서 검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보다 제국 검술가들 방문해서 하나하나 조사하는 사람이 더 식견 넓은 건 당연했다.

‘내 수준을 착각하긴 했지만.’

이한은 장클리프 경이 가르쳐 준 초식이 정말 도움이 될지 찜찜했다.

수준에 맞지 않는 난이도 높은 마법을 억지로 배우는 건 이미 충분했던 것이다.

과연 자신이 이걸 배울 수준이 되는가?

“...이래서 걱정이 됩니다.”

이한은 잉걸델 교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괜히 무리하다가 다치는 것보다 전문가에게 묻는 게 나았다.

“그렇습니까? 이해가 갑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

잉걸델 교수는 선선히 이한의 고민을 받아주었다.

“교수님도 그런 적이?”

“예. 실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르지 않아서 괴로웠었죠.”

“?”

이한은 뭔 소린가 싶었다.

“아니, 교수님. 기술 쓰고 싶은데 실력이 안 올라서 괴로운 게 아니라 지금 실력에 안 맞는 기술 억지로 배워도 되는ㅈ...”

“하지만 실력은 그렇게 초조해한다고 빠르게 오르는 게 아닙니다. 기술을 최대한 빨리 써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말입니다.”

잉걸델 교수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한은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했다.

“결국 정답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꾸준한 훈련이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목숨 건 대결을 말한 건데...”

“......”

“너무 초조해하지 않아도 에인로가드에 있으면 충분히 겪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까 오히려 초조해집니다만.”

*         *         *

잉걸델 교수와의 즐거운 대화를 끝내고 탑에 돌아온 이한은 사제들이 먼저 강의를 들으러 출발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조금 늦었군.’

사제들은 대부분 강의 시작 전, 다른 탑 학생들보다 먼저 도착하는 편이었다.

이한은 빨리 따라잡기 위해 책을 챙기고 탑을 나섰다.

‘오늘 치유 마법에서 다루는 부분이 간 맞나? 아니, 위장이었나?’

모든 마법 강의가 학술적인 부분도 중요했지만 치유 마법은 특히 더 그랬다.

온갖 종족의 다양한 신체 구조를 파악하고, 일어날 수 있는 질병들을 외워두고, 가장 효율적인 치유 방법들을 미리 배우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치유 마법을 배워서 기사단을 돕겠다고 굳게 결심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그냥 치유 마법사 따로 고용하면 안 되나?’하고 흔들릴 정도로 배워야 하는 지식의 양은 많았다.

이한처럼 시간이 부족한 학생은 평소에 남는 시간을 쪼개서 익힐 수밖에 없는 상황.

이한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

강의실에 아무도 없었다.

‘뭐지?’

이한은 순간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기초 치유 마법 추가 심화-본관 남서쪽으로 십오분 정도 걸어가면 바위 기둥 두 개가 보일 텐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오솔길을 따라 가면 나오는 도규관(刀圭館)에서 진행됨

‘맞는데?’

해골 교장이 적어준 쪽지를 본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에인로가드에 들어왔을 때 교장한테 받은 쪽지대로 찾아왔다.

‘이상하군. 교장 선생님이 미친 마법사긴 하지만 이런 걸로 장난칠 사람은 아닌데.’

“자리에 앉아라.”

“!”

이한은 강의실 안쪽에서 거칠게 쉰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깜짝 놀랐다.

알카시스 라그린데 교수가 강의실 안쪽에 칼을 지팡이 삼아 서있었다.

“어... 다른 학생들은 아직 도착 안 한 겁니까?”

“저기 다 앉아 있다.”

다크 엘프 교수는 일어나는 것만으로 지쳤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검집으로 앞을 가리켰다.

“너는 보이지 않겠지만.”

“...???”

이한은 오랜만에 소름 돋는 것을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교수하고 일대일로 배우는 건 좋지 않은데.’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다른 학생 없이 일대일로 가르치는 교수는 약간 미친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한은 알카시스 교수가 피로로 인해 약간 광증에 빠진 게 아닌가 싶었다.

“...선배들이라 안 보이는 거다. 자리에 앉아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

이한은 그제야 무슨 소리인지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여기는...

‘1학년 강의실이 아니잖아!?’

놀랍게도 1학년이 아닌, 2학년 이상 학생들이 모여 있는 강의실이었던 것이다.

이한은 기가 막혀서 알카시스 교수를 쳐다보았다.

볼라디 교수도 이런 짓을 하진 않았다.

‘아니군. 그 사람은 2학년 이상 제자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교수님. 저는 사실 1학년인...”

“외투에 1학년이라고 바느질이라도 해줄까? 자리에 앉아라.”

알카시스 교수의 말에는 더 이상 피곤하게 했다가는 널 해부 상대로 삼아주겠다는 강렬한 무게감이 담겨 있었다.

이한은 일단 자리에 앉았다.

다시 보니 강의실은 다른 의미로 소름끼쳤다.

자리마다 고깃덩이가 하나씩 놓여 있고, 그 고깃덩이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마법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법사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워. 후배.

이한이 자리에 앉자 책상에 글씨가 새겨졌다. 이한은 반쯤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저도 반갑습니다...”

에인로가드에 대해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유령 강의실에서 배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강의하던 도중에 멈춰서 미안하다. 다들 칼질하면서 들어라.”

슥삭슥삭-

고깃덩이에 칼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1학년 학생이 듣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다 안다고? 들었나? 그래. 설명 안 해도 된다니 다행이군...”

알카시스 교수는 진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한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뭘 어떻게 아는 거지?’

이한이 모르는 사이 2학년 이상 치유 마법 선배들끼리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너한테만 설명하면 되겠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넌 굳이 1학년들과 같이 배울 필요 없다.”

“아니...”

“조용히 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

이한은 알카시스 교수를 속으로 욕했다.

“굳이 1학년과 같이 묶어놓는 게 더 낭비지. 앞으로는 선배들과 같이 실습해라.”

“제가 아직 공부하지 못한 부분들은 어떡합니까?”

“독학으로 따라와라. 학년 수석이니 그 정도는 충분하겠지.”

“......”

이한은 말문이 막혔다.

학년 수석을 이러려고 딴 건 아니었는데!

-교수님이 개새끼라서 미안해.

옆 책상에 글씨가 새겨졌다.

*         *         *

처음에는 모습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선배들이 좀 소름끼치긴 했지만, 이한은 불평한 것치고는 금세 적응했다.

사실 생각해보니 이런 강의가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책상이나 의자가 날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알카시스 교수는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하는 점을 제외하면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다.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해줬고, 실수를 한다고 해서 구박하지도 않았다.

탕!

이한의 뒤쪽으로 검집이 날아가더니 책상 위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리고 다시 교수의 손아귀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자 고깃덩이에서 나는 칼질 소리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정교해졌다.

‘학생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으시다니. 친절하시다.’

이한은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 실습 강의 내용은 고깃덩이(치유 마법 연습용으로 만든 슬라임이었다) 속에 숨겨진 종양을 찾아내고 절제해내는 것이었다.

종양을 찾는 데에는 온갖 방법이 있었다.

탐색 마법을 써도 됐고, 손끝의 감각만으로 승부를 봐도 됐으며, 혹은 아예 절개를 해가면서 찾아도 됐다.

중요한 건 슬라임이 죽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아까 검집이 날아간 건 슬라임이 죽어서인가?’

“죽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집중 안 하나!”

알카시스 교수는 고함을 지르며 검을 집어던졌다.

‘음. 죽이면 검이 날아가는군.’

이한의 손놀림이 한층 더 빠르고 정교해졌다.

죽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팽팽한 긴장감이 이한이 배운 모든 것을 활용하게 만들었다.

*         *         *

“있던 정도 사라져서 도망칠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배들은 교수의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옛말에 채찍과 당근이란 말이 있었다.

포상과 엄벌을 번갈아가면서 상대를 끌어들이는 아주 고전적인 방법인데...

...알카시스 교수는 채찍과 채찍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지금 1학년 후배를 보라!

아무도 안 보이는 강의실에서 혼자 외롭게 앉아서 슬라임을 해체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그들이 저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면 없던 트라우마도 생길 것 같았다.

“교장 선생님한테 허락 받고 강의 동안에만 마법 풀어야 하는 거 아니야?”

“퍽이나 해주시겠다. 왜. 교문 개방하고 외출 허락도 해달라고 하지 그래.”

“이 자식이...”

탕!

검집이 날아들었다. 선배들은 식겁해서 다시 집중했다.

-그래도 조언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확실히.

선배들은 괜히 에인로가드 학생이 아니었다. 알카시스 교수의 눈을 피해 마법 글자로 서로 소통했다.

잉크를 묻혀 책상 위에 쓰면 그 글자가 꿈틀꿈틀 움직여 상대에게 날아가는, 강의 도중 몰래 소통하기에 편리한 마법이었다.

-내가 가까우니까 내가 할게.

-고맙다. 필.

필은 후배를 돕기 위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괜찮은 슬라임이 걸린 덕분에 시간이 남았다.

‘<질병 감지>나 <생명력 파악>... 너무 어렵나? 더 쉬운 게... 생명력 증폭의 물약이 있으면 쉬울 텐데 그건 없을 테고.’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될까 고민하던 필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이한이 벌써 칼을 들고서 슬라임을 째고 있었다.

“!??!?!”

필은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다.

후배가 너무 과감하게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안 돼!’

저건 꽤 많은 학생들이 먼저 겪은 실수였다.

슬라임의 생명력을 믿고,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한 다음 과감하게 째고 들어가서 종양을 적출해내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은 실패하고서 알카시스 교수한테 심한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했다고 성공할 만큼 이런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슬라임은 생각보다 픽픽 죽어나갔다.

푹-

그러나 이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종양에 정확히 도달했다. 동시에 남은 다른 손으로 색색의 돌을 던졌다.

“흠.”

그리고는 다시 방향을 수정하고서 조심스럽게 종양을 적출해내기 시작했다.

“......”

필은 경악했다.

여기에 예지 마법을 쓴다니.

슬라임을 잡겠다고 용살검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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