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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47화 (647/687)

647화

그러나 알시클은 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가이난도는 눈덩이를 맞아가며 재빨리 나뭇가지 위의 꽃을 잘라냈다.

‘크윽. 두고보자.’

눈덩이를 털어내며 가이난도는 다짐했다.

자신도 후배가 들어오면 꼭 저렇게 부려 먹어주겠다고!

“다 챙겼냐?”

“예.”

“그래. 은 낫으로 잘랐지?”

“어, 청동 낫으로 잘랐는데요.”

“붉은달꽃은 순수한 은 말고는 힘을 잃어버리는 거 몰라?”

“네.”

알시클은 설명 대신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다시 눈덩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빨리 다시 올라가라. 안 올라가?”

“악. 아악!”

“이번에는 꼭 은 낫으로 잘라와! 너 일부러 태업하는 거냐?”

“아니라구요!”

*         *         *

알시클은 눈에 멍이 든 가이난도와 함께 돌아왔다.

저택의 문을 지나자 가이난도는 훌쩍이며 친구들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왜 그래?”

“완전 미친 마법사야! 계속 재료 갖고 오라고 화를 내는 거 있지!”

“에인로가드도 그러잖아?”

“...붉은달꽃을 청동 낫으로 잘랐다고 화를 내시잖아!”

“설마 은 낫이 아니라 청동 낫으로 잘랐어?”

“와. 그건 좀 심합니다.”

요네르와 랫포드, 닐리아가 모두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가이난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친구 이하의 존재들한테 말한 게 잘못이었다.

“이한, 이한! 밖에서...”

그러나 가이난도의 친구는 이미 알시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이난도는 알시클의 푹신푹신한 뒤통수를 증오 어린 눈동자로 노려보았다.

뼈다귀를 확 던져버리고 싶다!

“워다나즈. 음악 마법 연구를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왜 다른 걸 하고 있는 거지?”

알시클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기껏 음악 마법 연구하는 걸 도와주려고 자기가 잡일까지 맡아줬는데 다른 걸 하고 있다니.

“아. 아까 다 했습니다.”

“...뭐?”

“악보 해독하고 해석한 다음에 새로 가사 붙여서 연주해봤습니다. 제법 괜찮은 거 같아서 앞으로 다른 음악 마법들도 이런 방향성으로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래. 잘 됐... 아니. 잠깐만!”

너무나도 예의바른 말에 순간 넘어갈 뻔한 알시클이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아까 다 했다니 그게 뭔 소리란 말인가?

그리고 새로 가사 붙여서 연주해봤더니 잘 됐다는 건 또 뭔 소리란 말인가?!?!

“처음부터! 처음부터 설명해봐!”

“예? 아니, 펭에린 님한테 별로 재미없으실 것 같은데...”

“빨리!!”

“알겠습니다.”

알시클의 기세가 워낙 살벌했기에(그리고 아직 밖에서 묻은 눈도 털지 않았기에) 이한은 재빨리 설명에 나섰다.

그러니까 옛 가왕국 시절 마법사들은 음악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서 악기 아티팩트도 만들고, 한 곡만 골라서 수십 년 동안 수련하고, 그걸로 공명 현상을 일으켜서 부족한 힘을 채우고...

“과연! 재밌는 발상인데?”

“그렇죠? 그래서 가사 붙여서 연주해봤더니 괜찮더라구요.”

“...넘어가지 말고 나머지도 제대로 말하라고!”

“아니 왜 화를...”

이한은 당황해하면서도 마저 설명했다.

음악 마법이란 게 시전자의 감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가왕국 시절 가사는 그대로 쓰기 힘들어서, 친구들과 같이 새로 만들었다...

그랬더니 잘 되더라!

“...그게 끝이야?”

“예. 잘 되던데요.”

“......”

알시클은 머리를 푹 숙이고 좌절했다.

뭐 이런 미친 재능이 있단 말인가!

밖에 약초 채집하러 갔다 온 사이 고대에 실전된 마법 하나를 뚝딱 끝내버리더니...

“펭에린 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혹시 가이난도 때문에 두통이 생기셨습니까?”

이한은 진지하게 걱정하며 물었다.

가이난도라면 확실히 처음 상대하는 사람의 두통을 유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건 아니고. 하여간, 들어나 보자. 한 번 다시 연주할 수 있겠어?”

“예.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요. 잠시만요.”

이한은 옆에 뒀던 바이올린을 들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불렀다.

“합창 좀 도와줄래?”

“합창?”

“연습해봤을 때 느낀 건데, 옆에서 노래를 같이 불러주면 효과가 올라가더군요.”

“그렇군. 흥미로워.”

알시클은 예전에 실전된 고대 마법이 가진 특성에 흥미를 보였다.

확실히 지금 제국 마법과 체계가 달라서 재밌었다.

‘나중에 마법 학회 나갔을 때 할 이야깃거리가 늘었군.’

학회의 마법사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매우 재밌어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당사자가 에인로가드의 2학년 학생이라면 더더욱.

이건 워다나즈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제국의 다른 마법사들 사이에 명성이 퍼지는 일 아닌가.

알시클은 생색을 내려다가 말았다.

원래 좋은 일은 조용히, 몰래 해주는 게 품위있는 법이었으니까.

알시클은 펭에린 가문의 품위있는 귀족인 것이다.

“시작한다?”

이한은 친구들에게 신호를 보내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가사 없는 전주 부분이라 바이올린 소리만이 울렸다.

알시클은 ‘워다나즈 가문이면서 참 별 것도 다 할 줄 안다’생각하면서 듣다가 멈칫했다.

느릿한 음악 소리에 마력이 담겨있었다.

그것도 암흑 원소가 섞인 마력이!

“???!”

악보에서 봤던 마법의 설명 그대로, 주변을 암흑 원소 마력이 채워나가자 알시클은 정말로 놀랐다.

음악 마법에 흥미를 가졌지만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진 않았는데 이렇게 손쉽게 영역을 장악할 줄이야.

“워다나즈. 워다나즈.”

“네?”

이한은 연주를 멈췄다.

친구들은 짜증 섞인 눈으로 알시클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멈추다니.

“미, 미안하다. 갑자기 궁금해서. 바이올린이 혹시 아까 말한 아티팩트인가?”

“아하. 역시 펭에린 님이십니다. 마법의 효과를 올리기 위해 바이올린을 아티팩트로 개조하란 소리시죠?”

“...아닌데. 그냥 마력 담긴 소리가 나와서 물어보는 거야.”

“아.”

괜히 헛다리를 짚은 이한은 머쓱해졌다.

“제 생각에 시전자와 어울리는 몇몇 노래는 무의식적으로 마력이 깃들어서 방출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근에서 음악 마법 사례를 조사할 때 증명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건 아주 가끔가다가 한 번이고, 수십 명이 무아지경으로 같이 부를 때 이야기잖아.”

“그렇죠.”

“그런데 지금 너는 노래 시작도 안 했고 바이올린만 연주하고 있고.”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력을 담은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미, 미안하다. 계속해.”

알시클은 자신이 지금 에인로가드에서 1년 배운 마법사한테 뭘 따져묻고 있나 깨닫고 허탈해졌다.

그걸 워다나즈가 바로 알았다면 대마법사를 하고 있지...

‘무심코 캐물었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까마득한 후배 마법사가 아니라 그냥 동년배 마법사라고 자꾸 착각하게 됐다.

연주가 다시 시작됐다. 전주가 끝나자 이한은 느릿하게 가사를 내뱉었다. 주변의 마력 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신입생의 희생을 찬미하라, 마법사들이여...”

“??”

알시클은 귀를 의심했다.

가사가 좀 너무 많이 달라졌던 것이다.

고쳤다고는 했지만 알시클은 어디까지나 오타나 비문 정도를 고쳤을 줄 알았는데...?!

“잠... 아니. 미안하다. 계속해라.”

알시클은 멈추려다가 학생들의 눈총을 받고 멈췄다.

이한은 계속해서 에인로가드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애도하는 노래를 불러댔다.

그 곡조가 너무나도 장렬하고 애통해서 알시클은 자신도 모르게 경건해지는 기분이었다.

“너희 선배는 무엇을 보았는가?

-지옥의 악마들과 그 악마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희 선배는 무엇을 보았는가?

-대마법사 리치가 군세를 부리며 학생을 공격하는 것을...”

“아니. 진짜로 잠깐만!”

알시클은 이한과 합창을 주고받는 친구들을 멈추게 만들었다.

이미 주변에는 어느 정도 음악 마법의 효과가 펼쳐져 있었다. 암흑 원소가 깃든 탓에 한낮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쏟아져내려옴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몰처럼 어슴푸레했다.

“아. 한창 좋은 부분이었는데.”

닐리아는 아쉬워했다.

이 다음 가사는 자신이 떠올려서 추가한 만큼 애착이 있었던 것이다.

이한은 알시클이 왜 멈추게 했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으로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우신 거죠?”

“...그것도 놀랍긴 한데! 그거 말고. 가사 안 이상하냐고 가사!”

어디서 연주했다가는 에인로가드 신입생들 절반으로 줄 노래였던 것이다.

*         *         *

흥분을 가라앉힌 알시클은 해골 교장 앞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나서야 간신히 음악 마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정말 흥미롭군. 워다나즈. 네가 2학년 때도 이 마법을 꼭 연구해봤으면 좋겠다.”

“시간이 된다면 해보겠습니다.”

물론 이한은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음악 마법을 파고들 생각이 없었다.

방금 <에인로가드 신입생을 찬미하라>는 어디까지나 그 효과가 좋아서 열심히 익힌 거였다.

주변의 영역을 일시적으로 지배한다는 효과는 지금 이한의 마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효과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다른 음악 마법들은...

‘효과가 좀 애매했지.’

해골 교장과 같이 돌아다니면서 수집했던 음악 마법들의 효과는 썩 대단치 않았다.

쓰라면 못 쓸 건 없지만 굳이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정도.

‘믿음직스러운데?’

그러나 알시클은 이한의 대답에 흐뭇해했다.

저런 진지한 자세를 보니, 2학년 연말쯤에는 학회에 초대해서 음악 마법에 대한 발표를 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알시클은 지팡이를 들고 아직 공간에 남아있는 암흑 원소를 밀어낸 뒤 주변을 밝혔다.

그리고는 오기 전에 이한이 하던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아. 제가 갖고 있는 아티팩트들을 좀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반영구에 가까운 아티팩트라 하더라도 무적의 존재는 아닌 법.

꼼꼼한 확인과 관리가 더 좋은 성능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이한 같은 경우 워낙 이상한 아티팩트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만마의 팔찌, 흑자석 검, 각종 마법이 보관된 베헤모스 목걸이, 나무 정령이 깃든 지팡이...

알시클은 흥미로워하며 이한의 손질을 구경했다.

과연 누가 해골 교장 후계자 아니랄까봐 아티팩트들도 흉흉하고 괴상망측한 것들만 골라서 갖고 있었다.

“지팡이에 박혀 있는 저 돌은 뭐지? 되게 흉흉하네.”

“서리거인 왕의 원석입니다.”

“...그걸 대체 어쩌다가...?”

좀 평범한 건 없나 둘러보던 알시클은 특이하게 생긴 투구를 발견했다.

“저 투구는 뭐지? 평범한 아티팩트는 아닌 것 같은데.”

“아. 지혜의 투구입니다.”

이한은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 학교 지하 던전에서 주웠던,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고 사악한 아티팩트였다.

가게에 팔려고 했는데 거절당해서 그냥 갖고는 있었지만...

“괜찮은데?”

“교수님이 개조해주셔서 진실을 숨기진 않게 됐는데, 기본적으로 사악한 아티팩트에요.”

“그건 별로 문제가 아니지.”

알시클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위험하다고 피한다면 그건 마법사가 아니었다.

“에인로가드에서 이 투구 도움을 많이 받았겠다?”

“사실 홍수 왔을 때 한 번 빼고는 그냥 쓰지도 않았는데요. 그리고 홍수 때도 별로 도움 안 됐습니다.”

“...아니, 그 정도야?”

알시클은 투구를 감싼 헝겊을 치우고 잠든 투구를 깨웠다.

드디어! 내 사악한 지혜를 빌릴 때가 온 것인가?

“반갑군. 투구.”

주인이 바뀌었구나! 드디어!! 정말로 잘 선택했다. 예전 주인은 사악하고 음흉하고 치밀한 멍청이였지! 그 예전 주인이 한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라!

“나 여기 옆에 있다. 투구.”

......

투구는 조용히 불빛을 끄고 사라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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