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648화 (648/687)

648화

그러나 알시클은 속지 않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지팡이를 휘둘러서 투구를 다시 불러 온 알시클은 건방진 아티팩트를 협박했다.

“한낱 투구 주제에 마법사한테 건방지게 굴어? 영원한 냉기 속에 가둬버릴 테다.”

도, 도와주십시오. 주인님.

투구는 평소의 건방진 태도를 버리고 이한을 불렀다.

에인로가드의 학생들과 달리 외부 마법사들은 정말 어떤 짓을 할 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알시클은 건방진 투구에게 교훈을 내려주기 위해 두꺼운 얼음을 불러와서 그 안에 가뒀다.

그리고는 이한에게 물었다.

“이런 아티팩트면 그래도 쓸모가 없지는 않을 텐데.”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이한은 이 <지혜의 투구>가 어떤 아티팩트인지 설명했다.

아티팩트가 사악한 것과 별개로 쓸모라도 있으면 이한이 자주 썼을 텐데, 이 투구는 아는 건 적은 주제에 대답 쿨타임도 너무 길었다.

이한이 괜히 학기 때 홍수 사건을 제외하면 꺼내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알시클은 투구에 흥미를 보였다.

일단 지식을 수집하기 위해서라는 투구를 만든 목적 자체도 흥미로웠고,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했던 것이다.

“부럽다. 이런 걸 얻다니.”

“그럼 펭에린 님이 사가시죠.”

“어? 정말?”

“!”

이한은 농담 삼아서 던진 말에 알시클이 반응하자 멈칫했다.

“정말 사시려고요?”

“판다면야 난 당연히 사지.”

“이 투구, 상점에서도 매입을 거절했습니다만...”

“그야 일반적인 상점에서는 안 사겠지. 사악한 아티팩트니까. 하지만 난 마법사잖아. 이런 아티팩트는 갖고 가서 연구하기 좋다고.”

이한의 눈빛이 반짝였다.

판매가 실패한 이상, 이번 기회에 알시클에게 팔지 못하면 영원히 투구를 치우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럼 은화 한 닢만 내고 가져가시죠!”

“뭐? 안 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알시클은 이한의 터무니없는 말에 질색했다.

아무리 대귀족 가문 출신이라 금전 관념이 없다지만 저런 소리를 한다니.

후배 마법사의 아티팩트를 은화 한 닢 주고 가져갔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그날부터 알시클의 별명은 제국 마법계와 사교계에서 <아티팩트 훔쳐먹는 자>나 <후배 등쳐먹는 자>가 됐다.

“이런 아티팩트를 어떻게 은화 한 닢만 주고 사? 절대 안 돼.”

“저런.”

이한은 최대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펭에린 님께서 생각하시는 적당한 값을...”

“이런 건 돈으로 지불하는 게 아니야.”

선배 마법사로서 이한의 아티팩트를 돈 주고 사는 건 관례에 어긋났다.

은화 한 닢 주고 가져갔다는 소문보다는 나았지만, <금화에 파묻혀 죽을 놈>이나 <후배 압박하는 놈> 같은 별명이 붙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압박이나 회유도 없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교환이 적절했다.

이한이 선물해 준 아티팩트보다 조금 더 값진 아티팩트를 알시클이 이한에게 선물해주는 것.

“...저 진짜 금화가 좋습니다. 어디에도 말 안 하겠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 명예란 건 아무도 안 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으음. 적당한 아티팩트가 뭐가 있었지.”

알시클은 이한의 말은 무시하고 자기가 갖고 있는 아티팩트들의 리스트들을 훑어보았다.

최근에 마법 연구를 위해 비싼 아티팩트 몇 개를 제국 금화로 바꾼 탓에 목록이 좀 빈약했다.

게다가 워다나즈의 아티팩트들은 다 하나같이 강력한 것들 아닌가.

흉흉하고 괴상망측했지만 강력함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음. 적령 백작의 징표가 박힌 지팡이... 이건 서리거인 왕의 원석이 있으니까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너는 대체 서리거인 왕의 원석을 어쩌다가 가진 거야?”

알시클은 고민하다가 억울했는지 이한을 보며 다시 따졌다.

“학교에 차원 관문이... 아니, 그보다 저번에 유미디후스 님 계실 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랬나?”

알시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미디후스와 워다나즈, 배그렉이 방문했을 때 기억은 아직도 좀 희미했다.

워다나즈의 어마어마한 재능에 충격을 받아서 엉엉 울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 펭에린 님께서 저한테 프로스트아곤의 알이 박힌 지팡이를 빌려주려고 하셨는데, 배그렉 교수님께서 말리셨잖습니까. 서리거인의 왕과 대결해서 받은 돌이 그 알보다 낫다고.”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다시 알려줘서 참 고맙다.”

“죄송합니다.”

“네 잘못이 뭐가 있겠어. 배그렉 교수 잘못이지.”

알시클은 툴툴대며 아티팩트들을 뒤졌다. 영 적당한 게 보이지 않았다.

“펭에린 님. 먼저 가져가시고 나중에 주시죠.”

“안 돼. 그럼 <후배 속여먹는 자 알시클>이 된다고.”

“예?”

“아, 아무것도 아냐.”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지금 당장 워다나즈한테 줄 만한 아티팩트는 나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알시클은 지금이라도 몇몇 경매에 참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재빨리 카탈로그와 편지를 꺼내는 알시클의 모습에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하시려고요?”

“경매에 참가하려고. 초승달 경매에 참가하려면 내일까지는 편지를 보내놔야 해.”

제국의 경매에는 현장에 직접 참석해야 하는 경매도 있었지만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매도 있었다.

워낙 제국의 땅이 넓은 만큼 한 곳에 모이는 것도 일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경매에 올라온 보물 카탈로그를 보내주고 그 중 원하는 물건의 입찰가를 정해진 날짜까지 편지로 받는 경매가 바로 초승달 경매였다.

“초승달 경매!”

이한과 요네르는 깜짝 놀랐다.

“왜? 너희들도 같이 볼래?”

“그 가격에 거품 많이 낀다는 경매를...!”

“너무 아깝지 않나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다른 경매와 달리 서로 눈치를 보지 못하고 편지 하나로 물건을 사는 만큼 아무래도 평소보다 좀 더 비싼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자기 손해였으니까.

그렇지만 급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알시클은 성가신 두 학생을 밀어내고 카탈로그를 펼쳤다.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마법이 들어간 초승달 경매 물품 카탈로그의 윤곽을 보자 이한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소득을 꿈꾸는 이한에게 있어서 경매는 언젠가 꼭 거쳐가야 할 관문 중 하나였다.

각종 유적이나 의뢰에서 보물을 찾으면 그걸 어디에 팔겠는가.

무조건 자기가 직접 분해하고 분석하는 마법사도 있다지만 이한은 그런 낭비를 저지를 생각이 없었다.

‘뭐가 올라왔는지 궁금한데.’

“저도 좀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구경은 자유인데 옆에서 비싸다고 하는 건 금지다.”

“아니, 비싼 걸 비싸다고 하는 게 어째서...”

이한은 투덜거렸지만 알시클은 단호했다.

아티팩트 고르는데 옆에서 비싸다고 호들갑을 떨면 정신 사나웠던 것이다.

“스파두르스의 알, 예상 가격 제국 금화 이백 닢... 아니. 스파두르스 알이 왜 이렇게 비싸죠?”

방금 한 약속을 즉시 어겼지만 알시클은 투덜대며 설명해줬다.

“스파두르스는 열세가지 색으로 빛나는 깃털을 갖고 있지.”

“하지만 마법적으로는 별로 쓸모 없는 새잖습니까? 그리고 다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하지만 예쁘잖아.”

“......”

알시클의 말에 이한은 한탄했다.

‘저런 색만 예쁜 새의 알 가격이 이백닢이 넘다니!’

이한 기준으로는 믿을 수 없는 사치였다.

헤나곤의 지팡이

제국 서부의 유명 마법사, 헤나곤이 사용했던 지팡이는 오랜 시간 헤나곤이 사용한 마법이 깃들어있습니다.

예상 가격 제국 금화 오십 닢.

로즈나타 블라섬

분홍빛과 붉은빛이 가장 완벽한 조화로 갖춰진 꽃 중의 꽃이자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이 꽃을 길러내기 위해 제국 원예사 중 따라올 자가 없는 <꽃 기르는 자> 펠텔이 일 년 가까이 정성을 기울였다.

이 꽃의 역사는...

...

...

예상 가격 제국 금화 삼만이천 닢.

“컥.”

한 번도 정신 공격을 당한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이한이었지만 경매 카탈로그를 보니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법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예쁘기만 한 꽃이 무슨 성채보다 더 비싼 것 같았다.

“사람들이 왜 아티팩트를 안 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꽃보다 훨씬 좋을 텐데!”

이한은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중에 아티팩트를 발굴해서 팔 생각을 하고 있는 이한에게 이건 생계 문제에 가까운 일이었다.

왜 이렇게 차이가 심하단 말인가!

“그야 아티팩트는... 일반인들이 쓸 일이 없으니까...”

알시클은 이한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정말 금화를 투자해야 할 마법 연구에는 돈을 아끼면서, 저런 쓸데없는 물건에는 아낌없이 낭비하다니.

알시클 생각에는 저런 곳에 쓰이는 돈을 뺏어서 마법사들한테 줘야 했다.

“그건 강도 아닙니까?”

“강도보다는 좀 더 멋지고 고상한 표현이...”

“산적?”

“내가 잘못했다. 그만하자.”

알시클은 말을 돌리며 카탈로그의 페이지를 넘겼다. 원래 마법사가 쓸 만한 물건이 많은 경매는 아니었지만 이번 경매가 유독 그랬다.

‘음. 저런 걸 보니 나도 뭔가 팔고 싶어지는군.’

카탈로그의 경매 물건들을 보자 이한도 한 방으로 인생을 역전하고 싶어졌다.

갖고 있는 물건들이 그러니까...

‘만마의 팔찌나 새벽별은 안 되겠지? 베헤모스 목걸이도 그렇고. 지팡이도 그렇고... 독 탐지용 은 숟가락을 팔아볼까? 솔직히 독은 탐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다. 이걸로는 얼마 못 나올 거 같군. 디자인이 더 좋았어야 했는데. 아니면 스토리가 있거나.’

이한은 자기가 갖고 있는 아티팩트들을 어떻게 사기쳐서 팔 수 없을까 진지하게 고뇌했다.

그러던 도중 유리에 금이 간 회중시계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이한은 손을 뻗어 붙잡았다.

“이건...”

낯설어서 뭔가 했더니 기억이 떠올랐다.

뛰어난 마법사 발도르오른과 함께 중고 아티팩트를 취급하는 <야광귀의 뒤엉킨 보물더미> 가게에 방문했을 때 산 물건이었다.

이건 딱히 아티팩트는 아니었다. 주인장도 그렇게 말했었고 발도르오른도 동의했었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판 덕분에 은화가 좀 생기신 것 같던데... 사시는 게 어떻습니까? 저렇게 상태 좋은 회중시계는 한 번 놓치면 상당히 구하기 힘들 겁니다.

-과연. 발도르오른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아니, 아니. 그렇게 깊은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발도르오른의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해골 교장도 그렇고 아르실도 그렇고 원래 오래 살아서 심심해진 사람들은 같은 말도 직설적으로 전하기보다는 빙빙 돌려서 은유로 전해주지 않던가.

발도르오른의 저 말이 어떤 암시였다면?

‘그랬을 가능성이 꽤 있다.’

발도르오른 본인이 들었으면 뒤집어졌을 생각을 하며 이한은 유리에 금이 간 회중시계를 섬세하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탐지 마법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 회중시계 안에 숨겨진 비밀이 없나 수색한 것이다.

그러나 회중시계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이한은 자신이 너무 과민했나 싶었다.

‘마력을 좀 넣어볼까?’

이한은 아주 조심스럽게, 회중시계 안으로 마력을 흘러 넣었다.

이런 식으로 마력을 보내 안의 구조를 확인하는 건 부여 마법사들의 특기 중 하나였다.

아티팩트의 제작과 수리에 능통하려면 매번 열어볼 수 없는 것이다.

이한은 타고난 마력량이라는 불리한 단점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에 버금가는 예민한 마력감지력도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마력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귀찮게 구는 미친 비버 수인 교수도.

덕분에 이한은 적절한 양의 마력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점점 더 복잡한 회중시계의 구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딱!

이한의 마력이 회중시계 안의 탈진기를 정확하게 건드리자, 초침 멈추는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한은 주변 시간이 순간적으로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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