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속 야만전사-69화 (69/132)

#069화. 반란 (2)

“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명령이야. 오는 마차들을 전부 검문하라니.”

“어쩔 수 없지.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잖나. 끝나고 술이나 진탕 마시자고.”

“염병…. 야만인은 무슨. 왕국에 야만인이 어디 있어? 반란은 또 무슨 개소리고.”

툴툴거리는 말과 반대로, 다니엘은 제 임무를 허투루 하지 않았다.

식량을 나르기 위해 이웃 도시로 교역을 나갔던 상단의 마차를 꼼꼼히 검문하고, 도시가 망해 피난을 온 부랑자들의 신분을 하나하나 다시 살폈다.

‘이래선 끝이 없겠군.’

그러나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평소 같으면 진작 검문을 끝마쳐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검문을 기다리는 줄이 절반도 채 줄지 않은 것이다.

“어이, 다니엘. 이거 조금 융통성 있게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씹. 그랬다가 무슨 욕을 들어 처먹으려고. 나는 대장 방으로 끌려가기는 죽어도 싫어. 이번에 끌려가면 세 시간짜리 설교를 들어야 한다고.”

“나는 네 시간일세. 하아……. 어쩔 수 없구먼.”

다니엘은 동료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면서도 내심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평소에도 오가는 인구가 적지 않은 도시건만, 후작인지 대공인지의 독립 선언으로 물류의 흐름이 지극히 활발해졌다.

그 탓에 마차의 수가 평소의 배는 넘었다.

듣기로는 도시의 시장이 독립에 동참하면서 들어온 지원이라는데, 어쨌거나 식량이 들어온 덕분에 도시민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반응이었다.

어차피 왕가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니 충성심이란 게 있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먹을 걸 주는 반란군이 더 반가울 정도로 최근 북부가 혼란스러운 점도 한몫했겠지.

게다가 어느 틈엔가 도시에 국왕이 악마에 홀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시장의 짓이리라….

“확실하군. 통과…….”

‘니미럴. 지금 왕이 꽤 어진 편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완전히 미친놈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좆됐군.’

다니엘은 눈과 입으로는 검문을 하면서, 머리로는 바쁘게 살길을 궁구한다.

이 엿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나쁜 머리라도 열심히 써먹어야 한다는 게 다니엘의 지론이었다.

어쨌든 반란은 반란. 왕가가 호구도 아니고, 북부를 짓밟으러 행차할 것은 분명했다. 모지리인 자신이라도 그건 알았다. 그럼 나는 어쩌지?

‘반란에 동참한 도시의 경비병인 난?’

칼 맞고 뒤지기 딱 좋네, 염병. 다니엘이 얼굴을 찡그리며 다음 사람을 받았다. 어째 상태가 영 구린 마차가 눈에 띄었다.

“방문 목적이?”

“식량 조금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좀 보충하러 왔네.”

“먼 길이라도 떠나는 건가? 여기는 잠깐 들른 거고?”

“그렇네. 로-엘펠란을 통과해서 알-로렌느로 갈 생각인데. 요새 북부 상황이 영 지랄맞잖나?”

“그렇긴 하지.”

보통 지랄 맞은 게 아니지. 다니엘은 마부 겸 용병으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동의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안에는 뭐가 들었지?”

“뭐가 들기는. 식량 조금에 갈아입을 옷, 호신용 무기들에 사람 몇몇……. 별거 없네.”

“사람은 내리고, 짐은 확인해봐야겠군.”

다니엘의 턱짓에 동료가 쩍- 하품하면서 마차의 짐칸으로 향했다.

“내리라 해. 얼굴을 좀 확인해야겠으니까.”

“거, 까탈스럽긴. 그렇게까지 해야겠수?”

“…….”

다니엘의 삼엄한 눈빛에 남자가 움찔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후 그가 짐칸 쪽을 통통- 두드리자 안에서 네 명의 사람이 짐칸에서 내렸다.

‘여자 용병에 어린 계집애, 비실해 보이는 애송이 하나에……. 꼽추?’

마차에서 내린 면면을 확인한 다니엘이 눈을 찡그렸다.

지나치게 다채로운 얼굴들 아닌가. 용병단이라 하기에도 뭣하고, 상단이라 하기에도 애매했다.

게다가 꼽추라니.

“이만하면 됐수?”

묘하게 재촉처럼 들리는 말에 다니엘이 입술을 달싹였다. 보이는 면면에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문제는 꼽추였다.

품이 넓은 로브로 전신을 가린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이할 정도로 굽은 등허리와 안쪽으로 깊게 말린 어깨는 보기만 해도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난생처음 보는 꼽추의 모습에 다니엘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괜히 마녀가 낳은 괴물이란 말이 나도는 게 아니었다. 꼽추와 가까이하면 마녀의 저주가 옮는단 소문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이런 제기랄. 저딴 걸 도시에 들이겠다고?”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닌가? 어차피 잠깐 들렀다가 그대로 나갈 생각인데. 그렇다고 도시를 우회해서 멀리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나. 북부가 얼마나 개판인데?”

다니엘은 남자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겼다.

이 도시를 지나지 않으면, 산맥을 타고 길을 쭈욱 돌아가야 하는데, 작금 북부의 혼란을 생각하면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꼽추의 얼굴을 굳이 확인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다가갔다가 병균이라도 옮으면 어쩐단 말인가.

‘시발, 그냥 들여보내?’

미신에 대한 불안과 개인적인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던 다니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후드. 잠깐 벗어봐…….”

“거기. 움직이지 마라.”

다니엘의 고개가 퍼뜩 돌아갔다.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린 탓이었다.

‘저 양반이 여기는 왜?!’

“어린 계집애 하나. 용병으로 보이는 여자 하나. 삐쩍 마른 사내놈 하나에 멍청해 보이는 용병. 들은 대로군.”

“뭐야. 멍청해 보이는 용병이라니. 그거 설마 내 얘긴가?”

마부가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건 들리지도 않았다. 다니엘의 신경은 갑자기 행차한 직속상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겨, 경. 여기에는 갑자기 어쩐…….”

“내가 못 올 곳에라도 왔나?”

“그런 얘기가 아니오라…….”

“됐다. 미적대기는. 어이, 로브 뒤집어쓴 너. 당장 그 로브 벗어라.”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다니엘은 혼란스런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 직속상관…. 경비대장이자 도시의 유일한 기사인 페텔 경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말 안 들리나? 그 로브. 내가 힘을 써야 벗을 생각인가?”

‘염병…!’

다니엘은 낭패감을 느꼈다. 페텔 경은 도시의 유일한 기사라는 점과 제 혈육인 시장을 믿고서 안하무인으로 유명했다.

이따금 도시민을 마음대로 겁탈하거나, 재물을 빼앗는단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다행히 경비대의 업무에는 소홀한 편이라, 검문소에서 행패를 부린 적은 없었는데….

하필이면 오늘 그 페텔 경이 직접 행차한 것이다.

“경. 꼽추와 눈을 오래 마주치면 저주에 걸린단 소문도 있지 않습니까…. 어차피 물품의 보급만 마치고 떠난다 하니, 그냥 보내주심이…….”

“무슨 소리지? 그깟 저주에 이 내가 당하기라도 할 성싶나? 그리고 저들의 인상착의가 시장께서 잡으라 하명한 이들과 똑같으니, 응당 확인해야 한다.”

“북부에 저주를 퍼뜨렸다는 그 야만인 말입니까…? 하지만 저치는 야만인이 아니라 꼽추인데…….”

“그러니까. 직접 확인해봐야 그걸 알 것 아닌가! 빨리 확인해!”

염병할 페텔! 다니엘이 입술을 짓씹었다.

“어이, 그렇게 됐으니 어서 후드를 걷고 얼굴을 보여…….”

다니엘은 마뜩치 않다는 표정으로 꼽추에게 말을 건넸다. 직접 만지기는 싫고, 가까이 다가가기도 싫어 어중간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아이고, 텄네.”

“뭐?”

멍청한 얼굴의 마부가 떠든 소리에 다니엘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어딘지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투였다.

“쓰읍. 이거 벌써 두 번째인데…….”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다니엘이 마부에게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우드득- 우드득! 섬뜩한 소리가 다니엘의 앞에서 들려왔다. 꼽추가 있는 방향이었다.

‘뭔 소리지?’

뼈를 부러뜨릴 때 나는 소리와는 조금 다른, 기괴한 마찰음. 다시 고개를 돌린 다니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꼽추의 몸이 점차로 거대해지고 있었다.

다니엘과 비슷한 덩치에서 오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크기로. 그건 아주 찰나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다니엘이 창을 휘두를 새조차 없었다.

“전이랑 똑같이 간다.”

“쓰벌. 전부 올라타!”

쯔어억- 소리와 함께 꼽추의 로브가 찢어졌다. 거기서 드러난 것은 잿빛의 야수…. 아니, 서릿골의 야만인이었다.

“역시나─!”

웃음기 섞인 페텔의 목소리. 그리고 번쩍거리는 오러의 빛이 다니엘의 곁을 스쳐, 야만인에게로 쇄도했다.

“네놈만 잡으면, 대공께서 우리 가문을 중히 쓰시겠지─!”

쿵! 오러가 야만인에게 적중하면서 먼지구름이 일었다.

놀란 다니엘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곁을 페텔 경이 지나쳤다.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오러로 신체를 강화한 것이다.

먼지구름이 걷힌다.

야만인은 오러에 당하지 않은 듯 멀쩡했다.

그걸 본 페텔 경이 허공에 거대한 반원을 그렸다. 뒤에서 지켜보던 다니엘의 눈으론 검의 움직임조차 쫓기 힘든 쾌속한 일격이었다.

“죽어─라─!”

오러가 거대한 올가미처럼 야만인의 전후좌우를 완전히 포위한다.

다니엘의 식견으로는 저게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 알 수 없었으나, 대단히 위협적이란 것만은 알았다.

기사들의 전유물인 오러. 그 특유의 다채로운 공격 투로가 가감 없이 발휘된 것이다.

놀랍게도, 페텔은 특유의 오만함 만큼이나 나쁘지 않은 실력의 소유자였다.

“쯧.”

야만인이 혀를 찼다. 당장이라도 목이 잘릴 상황에도 몹시 태평한 반응이었다.

다니엘은 저 야만인이 멍청하여 오러가 뭔지도 모르는 거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여유가 설명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다니엘의 착각이었다.

쩌어엉──!!

오러가 부서졌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야만인의 검은 도끼가 오러의 광채를 산산히 흩어버렸다.

“뭣…!”

페텔이 눈을 부릅떴다. 오러를 막기 위해선 같은 오러를 쓰거나, 성기사처럼 신성력을 두르는 방법밖에 없다.

그게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평범한 도끼 따위로 오러를 부수다니?

“놈─! 사악한 무구를 다루는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제 오러가 파훼당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인지, 페텔의 목소리가 분노로 마구 떨렸다.

우우우웅─!

“죽어라! 사악한 악마의 하수인아─!”

그 분노에 호응하듯 페텔의 검이 더욱 가열차게 빛난다.

오러를 한계까지 쥐어짠 듯, 면갑 사이로 비치는 페텔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그리고-.

“사악한 무구라….”

정의의 신이 들으면 아주 기뻐할 소리를 하는군. 여신의 축복이 깃든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칸이 피식 웃었다.

어째선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도끼의 무게감이 꼭, 여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지켜보고 계셨소? 음흉하긴.’

도끼를 쥔 칸의 팔뚝이 순간 크게 부푼다.

터질 것처럼 맥동하는 피의 흐름을 느끼며,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거력이 깃든 팔을 그대로 내리쳤다.

“……!”

도끼를 향해 검격을 올려치던 페텔이 무어라 외쳤다. 그게 칸을 향해 살기 어린 저주를 입에 담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낀 페텔의 외마디 비명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쯔저저저적! 쾅─!!

“어, 어어…….”

주저앉은 채 전투를 지켜보던 다니엘이 황망한 얼굴로 괴상한 소리를 냈다.

겨우 도끼질 한 번에 판금갑옷으로 무장한 기사가 두 쪽이 나서 갈라졌다. 이게 말이나 되나? 다니엘은 지금 상황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악몽-.

“어이.”

“네, 넵!”

“너처럼 순진한 놈들이 가장 먼저 죽는 법이다. 알아들어?”

“저, 저는…….”

“위에서 시킨다고 곧이곧대로 하면 뭐가 남나. 원래 사람 일이란 게 뭐든 유도리 있게 가야 하는 법이야. 나 때는 위에서 시키면 적당히 가라도 좀 쳐주면서…….”

“형씨! 돌파할 거니까 빨리 타게!”

“쓰읍. 어쨌든.”

다니엘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기사를 단번에 통나무처럼 쪼개버린 괴물이 자신에게 충고해주는 상황에 머리가 고장이 날 것 같았다.

칸은 어벙벙한 경비병을 보며 혀를 찼다.

책임감과 노예 근성을 착각하는 놈을 보면서,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헛소리를 지껄였다. 야만인으로 몇 년을 살았는데, 이놈의 현대인 감성이란 게 빠지질 않는군.

“뭐, 시킨다고 다 하면 자기 손해라는 얘기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칸이 펄쩍 뛰어 달리기 시작하는 마차에 올라탔다.

다니엘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도시로 들어가는 마차를 보며 ‘자기 손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후, 악마의 하수인을 태운 마차가 도시를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그리고 북부에서 이름 높은 용병단으로 구성된 추격대가 곧장 그 뒤를 따랐다. 북부의 지배자가 된 엘펠란 대공의 깃발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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