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명의 초신성 (4)
어두운 체육관 안, 마수와 결계가 접촉하는 불길한 소리를 배경으로 변조된 학생의 음성이 들렸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었지만, 눈가만을 가린 탓에 최근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그 학생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작은 영웅’으로 일약 스타가 된 중학생이었다.
그 작은 영웅이 자신을 감싸다 부상을 입어 움직이는 못하는 학생을 향해 아이템 카드를 겨누고 있다.
―살아서 움직이는 미끼가 있으면 다르지. 진족(眞族)도 그 권속도 세 명 죽으면 만족하지 않을까. 미끼들아.
―■■■을 미끼로 쓸 생각이냐? ■■■은 너 구하겠다고 다쳤는데. 은혜도 모르는 새끼야!
―은혜? 까고 있네. 중학교 때 놀았냐? 너도 딴 놈 성적 밟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작은 영웅은 아이템 카드를 사용해 다른 학생을 묶어 버렸다.
* * *
여론의 공격에 시달리던 황명재단의 이사회는 영상 공개를 결정했다.
황명재단 이사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해당 학생의 파렴치한 행위를 뒤늦게 확인한 본 이사회는 치료비와 기타 지원의 거부를 결정하였고, 대중의 오해를 풀기 위해 영상을 공개하기로 결의하였다’
뒤늦게 확인했긴.
‘다 알고도 묻고 넘어가려 했던 주제에 입장을 바꾸는 게 칼 같네.’
황명재단은 미리 가공한 영상을 언론에 제공했다.
영상에 나온 인물의 눈가는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고, 실명을 외치는 부분은 지워져 있었다.
또 다른 논란이 생기는 건 막고 싶었던 건지 황명호가 배려를 해 준 건지, 내가 손민기에게 손을 쓰는 장면은 잘려 있었다.
황명재단이 제공한 영상이 공개되고, 여론은 일시에 뒤집어졌다.
언론사는 각자 뉴스 앵커의 멘트와 자막을 입혀 본방송에서 공개했다.
그 이후엔 언론사가 보유한 웹 동영상 채널에 영상을 올렸고, 영상은 순식간에 100만 단위로 조회 수가 올라갔다.
작은 영웅 손민기는 ‘손미끼’가 되었다.
손민기 관련 기사에는 손미끼를 규탄하는 댓글들로 넘쳐 났다.
[영웅?ㅋㅋㅋ 그냥 손미끼지]
[손 민 기 손 미 끼]
[지를 구하다 다친 애를 미끼로 쓰려 했다고?? 오늘도 마족 1패 적립. 악마종 1패 적립. 사탄한테 가호받은 플레이어 넘들아 긴장 타라~~~~]
[완전 씹소름;;; 에너미만도 못한 새끼]
[황명재단님들아······ 제발 저 새끼 병원비 대 주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그 돈으로 비싼 변호사 쓰면 되잖아요······ 너무 화가 나요······.]
[여기서 돈 주면 호구 인정]
손민기 측은 즉각 대응했다.
공중파 방송이나 주요 신문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간간이 손민기를 옹호하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작은 영웅’의 눈물, ‘무서웠어요, 친구들에게 미안해요’]
[황명재단의 구멍 뚫린 보안, 어린 엘리트를 궁지로 몰아]
[영상 공개, ‘작은 영웅’ 본인 동의 없었다. 명예 훼손 혐의로 고발 예고]
대중은 이미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일 뻔했다.
이 사실은 동정표를 사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 탓에 모든 칼날이 황명재단에 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들은 감히 손민기가 자신들을 속이고 영웅 행세를 한 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 가증을 떨어 놓고 뻔뻔하다]
[해석: 돈 내놔]
[학교의 보호 의무?? 명예 훼손??ㅋㅋㅋㅋ 학교 측에서는 친절하게 모자이크 음성 변조 다 해서 공개했고요, 수험장 들어가기 전에 부상당해도 학교 책임 없다는 내용의 서약서도 쓰셨고요ㅋㅋㅋ인터뷰해서 셀프신상털이한 건 니들이잖아 븅신들ㅋㅋㅋ]
[고소 드립 뜬 인터뷰 올라온 뉴스 쓴 기자 이름 보고 거름. 기자님, 이번엔 얼마 받으셨나요?]
[기사 잘 봐라. ‘고소’도 아니고 ‘고발’인 데다 ‘고발했다’가 아니고 ‘고발 예고’임. 쫄리는 게 있으니까 각 재는 거지.]
그리고 다음 날.
한 웹 커뮤니티에서는 손민기에 대한 폭로 글이 올라왔다.
학교 측에서 손민기를 은광고에 보내기 위해 성적을 조작하는 ‘내신 밀어주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폭로글을 작성한 인물은 손민기보다 성적이 좋은 과목이 두세 개 있었으나 과목별 석차를 확인하니 손민기와 자신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고 밝혔다.
조작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폭로 글을 쓴 인물이 조작 의혹이 나오자마자 자신의 학생증과 손민기의 자백이 담긴 메신저 스크린샷을 공개해 버렸다.
손민기는 자신의 빽을 과신한 탓에 ‘이 사실을 공개하면 고등학교에 못 가게 만들어 주겠다’라고 협박을 한 모양이었다.
‘손민기가 추락하면 손민기가 말했던 ‘성적을 밟힌’ 이들이 반드시 지원 사격을 해 주리라 예상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손미끼 때문에 내신 불이익 먹은 같은 학교 학생 글 떴다. 세 줄 요약. 1 . 손미끼 빽+학교 손미끼 성적 주작 2 . 손미끼 자백, 협박 3 . 손미끼는 개새끼다]
[저거 범죄 아닌가요? 살인 미수, 폭행에 성적 조작, 협박까지! 꼭 감옥 갔으면 좋겠습니다!]
[저 짓을 한 게 16살. 들키지 않고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고에서 엘리트로 컸으면 대체 몇 명이 희생당했을까. 끔찍하다.]
이쯤 되자 손민기를 옹호하는 뉴스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대중이 욕하는 것은 손민기만이 아니었다.
직접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어 손민기의 기만행위를 한몫 거든 그의 부모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저 읍읍한 손미끼 부모 얼굴이 궁금한 분은 뉴스 다시 보기를 하시면 됩니다^^]
[손미끼 아비네 회사에서 한 달 일하다 퇴사한 썰 푼다]
[손미끼 회사 사이트 주소 링크 올린다~~~~ 고소하든지 말든지~~~~ 캬아아악~~~~퉷!]
[어차피 여기 거의 비정규직으로 돌아가서 망해도 직원 입장에선 아무 생각 없다. 자세한 썰은 못 풀지만 손미끼······ 음······ 콩콩팥팥,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게 레알임.]
손민기의 부모는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소모품을 플레이어 협회와 프로 플레이어 팀에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회사 이름이 털리자 플레이어 협회, 프로 팀들의 홈페이지에는 손민기 부모의 회사와 거래를 끊으라는 내용의 항의 글이 쏟아졌다.
그리고 손민기를 후원하기 위해 진행하던 모금은 어느 사이엔가 모금을 주동한 총대가 증발하여 유야무야 되었다.
모금에 참가한 사람들의 분노도 손민기 일가를 향했다.
[후원금 뱉어 내라 가족 사기단 새끼들아]
[나 손미끼한테 거하게 낚여서 댓글 엄청 달았다······ 후원까지 했다. 쪽팔려 뒤질 거 같다.]
[↑뒤져. 나랑 같이ㅠㅠ]
[손미끼 후원한 흑우 자살각. 12월 한강물 안 차갑냐? 먼저 입수해 보고 알려 준다.]
[↑한강에서 상주하는 플레이어 팀 있는 거 모름? 한강 자살 난이도 헬임.]
[사기꾼 손미끼 후원금 환불 대책 카페 세웠습니다. 이후의 대응에 대해선 논의 중이구요······ 카페 가입 부탁드립니다.]
영상이 발표되고 약 일주일 후.
손민기는 금전적으로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합의금, 병원비, 변호사 상담 비용에 언론사 간부 접대비를 다 합치면 수십억이었다.
거기에 사업체에는 불매 운동이 터져 매년 갱신되는 납품 계약이 성사될지의 여부도 불투명했다.
당연히 팔다리 재생 시술을 받을 여윳돈 따윈 없었다.
또한 은광고는 물론 손민기가 지원한 모든 고등학교에서 그의 입학을 거부했다.
손민기는 빚만 남은 중졸 장애인이 되었다.
손민기가 완전히 무너진 12월 말.
손민기의 화제가 가라앉을 때쯤엔 관심의 방향도 조금 달라졌다.
[최고 공헌자 조 씨? 주 씨? 왜 아무 말도 안 함? 손미끼 협박설에 킹리적 갓심.]
[손미끼한테 협박당함 내가 봄 ㅅㄱ]
[지금 생각하면 넘나 이상함. 다른 애들 멀쩡한데 왜 혼자 그렇게 다쳤는지. 왜 플레이어SAT-K가 고른 최고 공헌자가 공기 취급받는지.]
[그런데 결국 왜 다친 거임?ㅋㅋ 등신같이 협박하다 지한테 쏟았을 듯.]
[최고 공헌자 우리 반임! 나 ㅈㅅ중 3학년 8반ㅇㅇ 이번 일 많이 힘들었는지 학교 안 나온다ㅜㅜ;]
[그냥 의리 지켜 주려는 거 아님? 손미끼한테 팽당한 급식 영상 초반에서 몸 날릴 때 쩔더라.]
우리들의 일로 손민기는 다시 공격당했지만 원만하게 합의를 봤다는 내용의 언론 플레이를 할 수도 없었다.
합의 내역에 관해 발설하면 합의금의 세 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물어야 했으니까.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주요 기사와 댓글을 죽 모니터링하던 나는 만족한 얼굴로 홀로그램을 닫았다.
계획대로.
아니, 계획 이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 * *
“요즘은 뉴스랑 댓글 읽는 게 일과야. 감명 깊게 읽은 글들은 전부 스크랩하고 있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다시 읽으려고.”
유상훈의 방에 놀러 온 우리들에게 유상희는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홀로그램 화면을 보여 줬다.
“매일매일 전화가 와. 처음엔 통쾌했는데 이젠 귀찮네. 사과도 하고 싶고 넷이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SNS에 올리고 싶다는데······? 잘린 건 팔다리인데 왜 뇌가 잘린 것처럼 구는 걸까.”
햇살을 받으며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유상희는 치유의 여신의 사제답게 청초했다.
말하는 내용은 살벌했지만.
장남욱은 그 말에 별 반응 없이 유상희가 내온 사과 주스를 들이켰다.
이젠 유상희에게 익숙해졌나 보다.
“너희들 연락처는 안 알려 줬어. 망설이는 척하면서 갖고 놀고 있으니까 걱정 마.”
유상희는 주스 잔과 다과를 전부 내려놓고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고맙다, 의신아. 다 네 덕분이야. 처음부터 믿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빚은 꼭 갚을게.”
“아뇨. 사실 전 한 게 없는데요.”
“겸손하네. 사양 안 해도 돼. 이제 난 의신이 선배기도 하고, 편하게 상희 누나라고 불러.”
유상희가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걸 옆에서 본 유상훈이 마수라도 본 듯한 얼굴을 했다.
“억, 상희 누나래.”
빡!
유상희의 손이 유상훈의 등에 내리꽂혔다.
유상훈은 아프다는 리액션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색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유상희의 수도(手刀) 스킬 레벨이 3이었는데.
저번에 입은 부상이 도지지는 않을까.
“그럼 잘 놀다 가.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유상희가 나가자 나는 방바닥에 편한 자세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대충 누웠더니 유상훈 방에 있던 농구공이 등에 닿았다.
나는 곳곳에서 굴러다니는 농구공을 손끝으로 툭툭 밀어대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모인 거냐. 방학한 기념이야?”
단체 메시지 방에서 메시지를 주고받긴 했지만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건 합의서에 사인한 이후 처음이었다.
나는 학교를 빼먹었지만 이 둘은 성실하게 학교를 나가고 있었으니까 만날 시간도 없긴 했다.
“너 축하해 주려고. ‘무명의 초신성’ 님.”
어디서 그걸 안 걸까.
“플레이어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봤다. 수배 에너미 토벌 플레이어로 등록되어 있더라.”
내 얼굴을 보고 속마음을 읽은 양 유상훈이 덧붙였다.
손민기의 패가망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플레이어 협회를 들락날락했다.
플레이어SAT-K에 등록되지 않은 16세의 일반인이 수배 에너미를 토벌한 것은 전례가 없어 기록 관리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본명을 남기기는 싫어서 플레이어SAT-K가 활약상에 따라 임의로 정하는 플레이어 이명(異名)을 미리 받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무명의 초신성이었다.
홍규빈이 말하길······.
‘광림도 못하는 미등록 일반인에 아직 어린 중학생이 활약을 했으니까, 어울린다.’
능글맞은 홍규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명의 어감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현재는 임시 플레이어 무명의 초신성이지만 며칠 뒤에 17세가 되어 자동으로 정식 플레이어가 될 예정이었다.
“그래, 고맙다. 며칠 있으면 너나 장남욱도 정식 플레이어인데 이걸 굳이 축하할 필요가 있어?”
“방학도 했으니까 겸사겸사.”
“축하하러 부른 거 맞냐?”
“게임이나 하자.”
“야.”
나와 유상훈의 하찮은 내용의 잡담이 이어졌다.
대전 게임을 하기 위해 컨트롤러를 꺼내던 중 갑자기 장남욱이 폭탄을 던졌다.
“나 은광고 안 가기로 했어.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에 가서 군인이 될 거야.”
“뭐?”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나도 유상훈도 입을 떡 벌렸다.
장남욱의 결의에 찬 눈이 안경알 뒤에서 빛났다.
“은광고는 처음부터 성적이 되니까 쓴 거야. 은광고에 꼭 가겠다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고를 성적이 되니까 써 본 거라고?
대한민국 200만 고등학생이 들으면 장남욱이 암살 의뢰의 타깃이 되거나 그 목에 현상금이 걸릴 거다.
하지만 장남욱의 목소리는 진지했고, 어딘가 침통하게 들렸다.
“난 상훈이 너처럼 몸을 날릴 용기도 없고, 의신이처럼 작전도 못 세워. 작전대로 움직이는 거, 도망가라고 외치는 거밖에 못했어.”
“세상엔 그것도 못하는 새끼들이 넘쳐.”
“손민기 건도 그래. 난 의신이 같은 기책도 못 세웠고, 상훈이 너처럼 의신이 믿어 주지도 못했다.”
“장남욱······.”
유상훈은 장남욱을 말리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장남욱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그냥 내 성적이 됐고, 이능이 있었으니까 은광고에 지원한 거야. 장래 희망에 프로 플레이어 팀에 들어가는 거라고 쓰긴 했지만, 난 사실 장래 희망도 목표도 없어.”
“장래 희망 제대로 가진 중학생이 어디 있어. 나도 누가 물으면 대충 대통령이라고 대답하는데.”
“그래도 넌 은광고에서 플레이어가 되고 싶잖아. 난 그것도 아니야.”
유상훈은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자유를 중시하는 은광고 교풍은 나와 안 맞아. 이대로 은광고에 가도 지금처럼 너희들 발목을 잡기만 할 거야.”
장남욱은 질릴 정도로 성실한 놈이었다.
장남욱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을 돕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걸 배우려면 군사관학교로 가서 군인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아마 그 사건 이후로 매일 고민했을 거다.
내가 여기서 뭘 말해 줘야 할까.
군생활 경험을 살린 충고?
은광고와 군사관학교, 각각의 장단점에 대한 비교나 분석?
만약 장남욱의 눈에 조금이라도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면 뭐든 말했을 거다.
“그래. 알았다.”
지금 장남욱에게 필요한 건 그런 정보들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아무것도 못하더라도 얘기 정도는 들어 줄게.”
장남욱은 자기를 말려 줬으면 해서, 자기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 줬으면 해서 우리에게 이 말을 한 게 아니다.
그냥 ‘친구’가 자기 얘기를 들어 줬으면 하고 말한 거다.
“아저씨 같다.”
“아재냐?”
내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는 두 명의 중학생에게 곧바로 까였다.
곧 나와 유상훈의 두서없는 수다가 이어졌다.
장남욱도 어느새 긴장이 풀린 얼굴로 별거 없는 내용의 수다에 끼어 잔소리를 해댔다.
* * *
겨울 해는 짧다.
유상훈의 집에서 조금 이른 시간에 저녁밥을 먹은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해산하기로 했다.
유상훈의 가족들은 자고 가도 된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장남욱의 부모님이 직접 유상훈의 집으로 마중을 나왔고, 나도 사양했다.
집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은 세 종류가 있었다.
지하철, 지상버스, 무인 에어버스.
무인 에어버스 요금은 비싸기도 했고 내가 사는 달동네에는 에어버스 정류장이 없었기 때문에 지상버스로 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온 유상훈과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장남욱은 눈치 못 챈 거 같은데 마음에 걸렸던 게 있어.”
“뭐가?”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로변에서 차가 지나쳐 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때, 네가 아이템을 손민기한테 던진 게 이상해. 상태이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결계에 던지는 게 낫잖아.”
유상훈의 말꼬리가 이렇게 긴 건 처음 봤다.
뒤통수 맞고 죽기 직전에도 이렇게 말을 길게 하진 않았다.
오랫동안 의문으로 여겼나 보다.
“그때부터 이걸 생각한 거야?”
대답하지 않았다.
운명력이 발동한 그 순간부터 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다음 수를 생각했다.
‘이 게임을 최종장까지 플레이한 게이머라면 누구나 그렇게 가정하고 움직였을 거야.’
빠져나갈 길도 몇 개 남기긴 했다.
유상훈을 미끼로 삼는 걸 그만두거나 언론 플레이로 공을 가로채지 않았거나.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유상훈에게 사과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손민기는 최악의 수만을 두었다.
“현상금 나왔어. 다음에 밥 살게.”
대놓고 말을 돌리는 나를 유상훈이 빤히 바라봤다.
유상훈은 답을 듣는 걸 포기해 줬다.
“난 합의금 받았다. 내가 살게. 장남욱도 부르자.”
그러고 보니 현상금보다 합의금이 훨씬 컸다.
패배한 기분이다.
합의금에서 우리가 입을 다물기로 한 조건으로 올린 만큼의 금액은 나와 장남욱도 나눠 받긴 했지만.
우리는 어디로 갈지 미리 정하기 위해 홀로그램을 투사해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 엔진의 AI가 추천한 건 두 곳이었다.
한강이 보이는 공중 호텔 스노우 앤 에어 겨울 특선 뷔페.
프랑스 유명 파티셰 플레이어 내한 기념 한정 디너 코스.
둘 다 괜찮아 보였다.
호텔 뷔페냐 코스 요리냐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고맙다, 조의신.”
유상훈은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인사를 못 들은 척했다.
* * *
그리고 며칠 뒤, 1월 1일.
나 무명의 초신성 조의신은 17세가 되어 정식 플레이어가 되었다.
아날로그시계의 초침이 0을 통과하는 순간.
시스템 알람음이 들렸다.
〈광림의 사용이 가능해졌습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