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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4화 (8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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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망겜은 플마고는 등장 캐릭터들의 표정 묘사가 섬세하기로 정평이 났다.

타이틀 히어로 주수혁은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도 감정 표현이 풍부한 편이었지만, 언론에 노출되기 쉬운 재벌가의 자제답게 밖에선 웃는 얼굴밖에 하지 않았다.

위기가 닥쳐와도 주수혁은 동료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런 주수혁이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안다인과 관련된 사항이 그랬다.

‘주수혁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멍청해 보이는 표정이 저거였지. 이계 공략 시작하고 생긴 주수혁과 안다인의 악개, 악성 개인 팬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머리채 잡고 현피 떴을 때도 저런 얼굴이었어.’

저 무디고 어리벙벙해 보이는 얼굴마저 일부 팬들 사이에선 ‘우수에 젖은’,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만드는’ 같은 낯 뜨거운 평가를 받고 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 남세스러운 평가도 맞는 말로 만드는 게 플마고의 타이틀 히어로, 얼굴 천재 주수혁이었다.

‘어쨌든, 지금 주수혁이 안다인 문제로 애태우고 있는 건 맞을 거다.’

망겜의 썩은 물답게 근거 있는 확신을 품고 주수혁에게 다가갔다.

“뭐 해? 조금 있으면 수업인데.”

“어, 의신아.”

말을 걸자 주수혁이 느리게 반응했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말을 걸기 전에 다가오는 걸 감지하고 먼저 인사했을 텐데.

‘생각보다 심각한 일인가?’

주수혁의 표정과 반응을 보니, 안다인과 관계가 있으면서도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일 가능성이 큰 것 같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었어.”

“점심은 먹었어?”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밥도 안 먹었지.

설마 점심시간 내내 여기서 궁상을 부리고 있었나.

주수혁과 안다인 사이에 있을 법한 갈등 상황을 머릿속에서 되짚어 봤다.

가설을 세우기 전에 주수혁이 입을 열었다.

“의신아, 그······ 선상 파티에 올 거야?”

선상 파티와 관계가 있는 일인가 보다.

고개를 끄덕이자 주수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혜지 누나랑 나 사이에 이상한 소문 돌지도 몰라.”

주수혁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구나!’

게임 속에서도 주오 그룹을 안정시킨답시고 주씨와 오씨 가문 사이에 정혼, 약혼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주오 그룹은 주씨와 오씨의 공동 설립으로 시작되었다.

총수는 항상 주씨가 맡았지만, 주요 계열사의 회장직과 재단 이사장직에 있는 오씨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 둘 사이가 틀어지면서 그룹 해체 위기까지 갔었었지.’

두 집안의 싸움질, 일명 ‘주오의 난’으로 주오의 주가는 폭락했다.

바닥을 뚫는 주가 탓에 주주총회에서 온갖 이능들이 폭주하고 그룹 본사 앞에서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주주들이 저놈들을 조지고 나도 죽겠다며 해외의 암살 전문 프로 플레이어를 고용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주씨와 오씨 일가는 그로기 상태에 몰리게 되었다.

결국, 주주들과 여론의 등쌀에 밀려 화해를 하긴 했다.

‘주오의 난을 계기로 사돈 관계를 맺어 두 집안 사이를 공고히 하기로 마음먹었을 거야.’

그 희생자로 선정된 게 주수혁의 육촌 형과 오혜지의 친언니, 오혜정이다.

그나마 오혜정이 약혼 발표 당일 깽판을 치고 탈주하여 흐지부지되었다.

총수 직계 비속 중 미혼에 나이가 맞는 남녀.

이 조건에 모두 해당하는 건 현재 주수혁과 오혜지뿐이다.

‘게임 속에선 5월에 있었던 잠실야구장 사건으로 약혼을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나마 주수혁이 2학년이 되기 전에 오혜지가 사망해서 약혼 이야기는 없던 일이 돼.’

어린이날 잠실야구장 사건은 완봉했다.

그래서 약혼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거다.

‘주수혁의 육촌 형이나 오혜정은 그래도 20대 초중반이라는 묘사가 있는데. 오혜정이 탈주한 걸 보고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오혜지를 잡아 두겠다는 생각인 건가.’

주수혁은 안다인 외에는 안중에도 없다.

오혜지는 주수혁을 친한 동생으로만 여기고 있다.

두 사람을 억지로 맺어줘 봤자 불행한 부부가 하나 생길 뿐이다.

‘둘 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어. 불행해지게 내버려 둘 수 없지.’

최악의 경우엔 오혜정 이상의 역대급 깽판을 쳐 준 후, 두 사람을 데리고 튀어야겠다,

“선도부장 선배님 말하는 거지? 소문 돌아도 흘려들을게.”

“응······.”

주수혁은 기운이 없었다.

주수혁은 플마고 세계관상 가장 잘난 놈에 속하지만 안다인에 관한 일이 되면 자신감을 완전히 잃고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다.

그리 마음이 불안하면 또 책 핑계를 대고 안다인의 얼굴이라도 보러 가면 될 걸, 혼자 이렇게 처량하게 고민에 빠져 있다니.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순애는 역시 남달랐다.

땅을 파고 있는 주수혁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좋겠다.

“나 지금부터 수업 빠지고 어디 갈 건데. 같이 갈래?”

모범생 주수혁은 놀기 위해 수업을 빠진다는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주수혁은 처음엔 망설였지만 맹효돈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    *    *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1학년 0반 교실.

반 아이들은 선택 수업을 앞두고 각 교실로 이동해서 아무도 없었다.

쉬익―!

“야, 부반장. 좀 있으면 수업 시작인데 왜 불렀냐.”

교실 자동문이 열리고 맹효돈이 등장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교실 뒤편에 설치된 어느 사물함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어, 그거 내 사물함······.”

삐리릭―!

맹효돈의 사물함 안.

대충 쌓여 있는 교과서들과 구겨진 체육복이 보였다.

무너지기 직전인 교과서 더미 위에 수학 기호 장식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카네이션 꽃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사물함 비밀번호 좀 바꿔라. 사물함 배정받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초기 비밀번호인 0000이야.”

“아, 왜 남의 사물함을 열고 지랄이야!”

맹효돈의 행동 패턴은 꿰고 있었다.

내가 사물함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걸 알게 되었어도 귀찮아서 안 바꿀 놈이다.

맹효돈은 졸업할 때까지 비밀번호를 0000으로 해 두겠지.

“가자.”

“가긴 어딜 가. 그거 놓고 꺼져.”

진짜로 놓고 꺼지면 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는 맹효돈의 중3 담임한테 영영 전해지지 않겠지.

영혼을 터뜨려 가며 밤새 꽃시장을 돌아 놓고도 저 꼴이라니.

“돌려받고 싶으면 따라와.”

나는 보란 듯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파팟—!

그 말을 마치고 교실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맹효돈은 뜬금없는 상황에 빨리 반응하지 못했다.

뒤늦게 맹효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부반장 이 또라이 새끼야! 네가 초등학생이냐!”

초등학교의 교실에서나 봤던 장난질이자 괴롭힘.

상대방 물건 들고 튀기.

그 짓을 지금 내가 하고 있었다.

“잡히기만 해 봐라!”

달리기 시작하는 맹효돈.

분명 내가 먼저 출발했는데 금방 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무식한 신체 능력이네.’

그러면 더 무식한 광림을 써 주면 그만이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내가 사용한 캐릭터는 민그린의 성장 버전이었다.

민그린보다 우수한 다릿심을 가진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몇 없다.

〈해당 캐릭터의 스킬, ‘스프린터’를 사용합니다.〉

거기에 더해 김유리도 가지고 있는 스킬, 단시간 이동속도를 상승시키는 능력을 발동하니 맹효돈과의 거리를 크게 벌릴 수 있었다.

“아, 미친. 개 빠르네! 너 스킬 썼지!”

스킬도 안 쓰고 나를 쫓아오는 맹효돈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광림이 없었더라면 진즉에 따라잡혔을 거다.

스프린터 스킬이 발동하는 동안 조금 여유가 생겨 디바이스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도망치면서 메시지 확인까지 하는 걸 보고 맹효돈이 열불이 터지는지 또 뭐라 소리 지르고 있었다.

“아, 진짜! 잡히면 뒤졌어!”

첫 번째 메시지는 문새론한테서 온 거다.

[문새론] 그거라면 저번에 인터뷰할 때 들어 놔서 알고 있음!

[문새론] 좌표 보냄! 파이팅!

역시 문새론이다.

플마고 최고의 정보통답게 일 처리가 빠르다.

좌표를 복사해 주수혁에게 보내자, 바로 답변이 왔다.

[주수혁] 확인했어. 정문에서 기다릴게!

이동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우리 둘은 순식간에 정문 근처까지 이동했다.

하얀 시계탑이 눈에 들어오자 광림을 해제하고 내 힘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거리가 좁아졌을 때였다.

나는 정문 앞에 대기하던 차량의 뒷문 안으로 들어갔다.

맹효돈도 그 안으로 따라 들어와 카네이션 꽃바구니의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잡았다!”

나는 더 저항하지 않고 맹효돈에게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넘겼다.

쉬이익―!

덜컥.

“······어?”

맹효돈이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무인 에어 택시의 문은 자동으로 닫혀 있었다.

그는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 봤자 이미 늦었다.

“출발하자.”

“응! 의신아, 효돈아. 안전벨트 해.”

“야, 부반장, 주수혁! 뭐야!”

미리 안에 앉아 있던 주수혁이 버튼 조작을 하자 에어 택시가 하늘로 부상했다.

부우웅―!

창밖으로 변해 가는 풍경을 보며 맹효돈이 어이없어했다.

“야! 뭐 하는 짓이야? 수업 안 듣냐!”

“응! 오늘은 의신이랑 같이 땡땡이치기로 했어. 생각보다 재밌다! 크림치즈 캐러멜 프레첼 먹을래? 에어 택시 내에서 무인 판매하는 건데, 맛있어.”

“아, 주수혁 이 새끼 부반장한테 물들었네. 그래서 어디 가냐고!”

주수혁은 인생 첫 땡땡이가 신나는지 해맑게 말했다.

맹효돈은 당황하면서도 안전벨트를 착용한 우리를 보고 머뭇머뭇 따라 안전벨트를 맸다.

맹효돈이 벨트를 맨 걸 확인하고 말해 줬다.

“네가 나온 중학교.”

에어 택시의 도착 예정지에는 문새론이 알려 준 맹효돈의 모교, ‘탄래중학교’의 좌표가 찍혀 있었다.

*    *    *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서서울호수공원 근처, 영원의 호수가 소유한 팀 빌딩.

서서울호수의 정경이 보이는 최상층.

끼이이익― 끽! 끼익! 끽!

그곳에서 바이올린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음이 울리고 있었다.

소음의 근원은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 권제인이 들고 있는 새파란 이능 바이올린이었다.

“제인아, 그만해! 너의 그 고귀하게 빛나는 재능을 괴롭히지 마! 그건 자학, 예술의 자살이야!”

권제인의 뒤에서 무릎 꿇고 앉은 재러드 리가 이상한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재러드 리가 애원해도 기괴한 소음은 멎지 않았다.

“팀 서브 마스터, 당신 때문이니까 닥쳐!”

“맞아, 닥치고 있어. 제인이의 진정한 팬이라면 저, 저······ 제인이의 음악성을 모독하는 소음도 받아들여야 해!”

“저 슬픔과 탄식이 묻어나는 음도 듣다 보니 나쁘지 않네요. 우리의 권제인 님은 오늘도 자신의 감상을 음으로 표현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계십니다.”

“연주고 뭐고 제인이 쓰러지기 전에 뭐 좀 먹여야 하는 거 아니야? 석촌호수 다녀온 이후로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있는데.”

“재러드 건도 있지만, 그 망할 나비가 헛소리하는 바람에······!”

“팀 닥터가 제인이 쓰러질 때 대비해서 회복 아이템이랑 이동형 침대 준비하고 대기 중이야.”

영원의 호수 간부급 멤버들이 권제인의 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연주를 중단한 권제인이 핏기 없는 얼굴로 재러드 리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눈동자 안에 고통이 가득했다.

“재러드······.”

“제인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앞뒤 상황을 숨김없이 전한 후, 재러드 리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사과만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권제인은 재러드 리를 조금도 책망하지 않았다.

권제인이 용서하지 못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아니야, 재러드는 잘못 없어. 전부 내 탓이야. 당신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나섰어야 했어.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

“제인아아아아! 제발 사과하지 마!”

그런 권제인의 태도에 재러드 리는 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미안, 혼자 있고 싶어.”

“권제인 님이 오늘 한 끼 이상 식사를 한다고 약속하시면 나갈게요.”

영원의 호수 팀 간부 중 가장 젊지만, 재러드 리 다음으로 오랜 시간 곁에 있었던 이가 말했다.

그 말에 재러드 리를 비롯한 모든 간부가 동의를 표했다.

팀 메이트를 걱정시켰다는 생각에 권제인이 다시 죄책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권제인의 말에 팀 간부들이 안심하고 밖으로 나갔다.

발에 쥐가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재러드 리가 질질 끌려 나가는 걸 마지막으로 조용해진 연습실 안.

권제인은 푸른 바이올린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디바이스에서 숨김 처리해 뒀던 주소록을 하나 불러내 전화를 걸었다.

두 번의 신호음이 끝나기 전에 상대는 바로 통화에 응했다.

“은광고 1학년 0반 학생 중에, 조사해 줬으면 하는 학생이 있는데. 한 명······ 아니, 두 명. 이름은······.”

권제인은 후배 두 명의 이름을 말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러면 부탁할게. 꾀돌이 씨.”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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