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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0화 (12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0)

1학년 0반 반장, 김유리.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밝은 성격, 그리고 곧은 심성과 우수한 이능의 소유자.

타이틀 히로인 안다인의 절친.

그녀의 게임 속 비중은 작지 않았다.

1학년 여름 방학 사건을 계기로 등교를 거부하기 전까지는.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하면서 비중이 급격히 줄었었어.’

1학년 2학기 때부터 등교 거부자가 된 김유리.

그러다 플마고 콘크리트층 붕괴 사건 때, 안다인을 구하기 위해 오랜만에 학교에 재등장했었다.

‘그 사건에서 활약하고 완전히 퇴장한 게 마지막 모습이었지. 김유리도 콘크리트층의 멘탈 붕괴에 큰 역할을 했는데.’

더워지기 시작한 교정.

김유리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전부 하복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민그린도 어제부터 반소매 후드 점퍼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는데도, 혼자서 긴 소매의 춘추복을 입고 있는 김유리.

검은 셔츠의 소매가 김유리의 손목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소매 사이로 두꺼운 가죽 시곗줄이 보였다.

‘광림 봉인술의 인장을 가리고 있는 거야.’

김유리의 퇴장 복선이 눈앞에 있지만,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였다.

“친척이 아닌 다른 분 집에 놀러 가는 건 처음이에요! 뭐라도 사 갈까요?”

“어…… 나도 처음인데.”

“응? 그냥 몸만 와도 돼!”

사월세음과 맹효돈의 대화에 끼어든 김유리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매번 유리와 레나가 만들어 주는 걸 먹기만 한걸요. 뭐라도 사게 해 주세요!”

“아, 우리가 재료 사면 안 되냐?”

“그럴까요? 그럼 부 활동 안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마트에 들렀다 가요! 재료 말고 화장지라도 사 가면 어떨까요.”

사월세음에 이어 맹효돈도 좀 머뭇거리다 한마디 거들었다.

결과적으로 김유리를 제외한 반 아이들이 돈을 모아 재료도 사고 작은 선물도 사기로 한 1학년 0반.

시간상 쇼핑은 부 활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담당하기로 정했다.

등교하는 아이 중 부 활동을 안 하는 건 우리 반에서는 맹효돈, 사월세음, 민그린 셋뿐이었다.

“미안, 마트는 사람 많을 것 같아서…….”

“아뇨! 저야말로 무신경하게 말했어요.”

민그린은 쇼핑에 함께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도 결국 포기하고 사과했다.

사월세음과 민그린이 서로 몇 번이나 사과하는 바람에 김유리가 말려야 할 정도였다.

“하하, 정말 괜찮은데……. 다들 가기로 한 것 같네. 정 그러면 메뉴 리퀘스트를 받을게. 뭐 먹고 싶어?”

맹효돈은 여전히 김유리를 조금 어려워했지만, 메뉴 몇 개를 말하는 데에 성공했다.

곧 아이들도 먹고 싶은 음식을 하나둘씩 대기 시작하던 중.

“부반장, 넌 왜 아무 말도 안 해.”

“저녁에 약속 있어. 블루레몬청 만드는 것만 구경하고 갈게.”

“네? 아쉽네요. 그럼 그린이랑 의신이는 일찍 가는 건가요?”

내 말에 황지호가 미심쩍어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나잇값을 못 하는 저놈은 수천 살이나 어린 학생들 사이에 섞여 저녁밥을 먹겠다고 선언했다.

나를 따라오겠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다.

분신을 다루는 놈이니, 다른 분신을 이용해 내 쪽을 캘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이 간식 메뉴 고르는 건 어때.”

“응, 그러자!”

한이의 제안에 김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그린이 여러 메뉴 중에 망설이는 게 보여, 내 선택권을 넘기기로 했다.

“뭐 먹고 싶어? 메뉴 선택은 전부 네가 해도 돼.”

“어? 그래도 돼?”

내 제안에 민그린이 기뻐하는 얼굴을 하다 우물쭈물 말했다.

“저기, 내일 간식 1인분 더 만들어 줄 수 있어? 재룟값은 더 낼게.”

“그러지 않아도 돼! 오히려 재료 남을까 봐 걱정인데.”

어차피 1인분 정도 추가되는 건 별 차이 없다며 흔쾌히 승낙하는 김유리.

민그린은 아몬드가 들어간 쿠키와 마카롱을 먹고 싶다고 말하곤, 웃었다.

그 말에 게임 속의 어느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떠올랐다.

‘송대석이 아몬드를 좋아했었는데.’

민그린은 아마 송대석 몫을 부탁한 모양이다.

*    *    *

부 활동도 모두 끝난 방과 후, 정문 앞.

장을 봐 온 맹효돈과 사월세음이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민그린은 두 사람 뒤에 숨어 있다가 반 아이들이 모이니 고개를 내밀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오후 수업에 나가지 않는 민그린은 교실에 남아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럼 가자! 학교에서 가까워. 조금만 걸으면 돼.”

1학년 0반 아이들이 전부 모이자 김유리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은광구의 주택가.

‘저기인가 보네.’

김유리가 가리킨 곳은 게임 속에서도 본 기억이 있는 건물이었다.

낮은 울타리와 아담한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

이 앞에서 안다인이 몇 시간 동안 서서 김유리를 설득했었다.

결국, 등교 권유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와, 예쁘다!”

“엄마가 홈 카페에 로망을 품고 있어서! 아, 이쪽 화단은 내가 꾸민 거야.”

“진짜 유리는 못하는 게 없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티켓팅은 어려워하는 것 같지만.

사월세음과 권레나와 함께 쉬는 시간에 연습하는 걸 몇 번 봤으니, 조만간 그 약점도 극복해 낼 거다.

“자, 들어와!”

김유리의 집은 그녀의 성정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았다.

황명호 대저택 같은 웅장함, 화려함은 없었지만, 정돈된 환경과 신경 써서 고른 듯한 인테리어와 소품이 눈에 띄었다.

특히 거실과 부엌 사이는 프랜차이즈 카페와는 다른, 개인 카페 같은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와, 카페 같아!”

“어? 이 배경 유리 SNS에서 몇 번 봤는데. 카페에 간 게 아니라 집에서 찍은 거였어?”

“하하하, 홈 카페 해시태그 붙여 두는 걸 깜박했나 봐. 보통 집에서 찍어 올려.”

김유리가 조금 쑥스러워하면서 웃다가 앞치마를 몇 벌 꺼내 왔다.

곧 지원자를 받아 블루레몬청과 아몬드 쿠키를 만들기 시작해 요리 교실이 열렸다.

참가자는 권레나, 민그린, 사월세음.

그리고 황지호였다.

“하하하하!”

앞치마를 한 황지호가 부엌에서 미쳐 날뛰고 있었다.

좋은 의미로 활약을 해서 나를 비롯한 1학년 0반 아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말도 안 돼. 저울도 안 쓰고 정량을 맞췄어!”

“진짜요? 한 번 더 재 볼래요! 0 .1g의 오차도 없네요. 박력분의 양도, 베이킹파우더의 양도 정확해요. 대체 어떻게 한 거죠?”

“쟤는 왜 핸드 블랜더를 쓴 나보다 빨리 반죽을 완성한 거야? 손으로 저걸 한 거라고?”

“지호도 은근히 못하는 게 없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황지호도 티켓팅은 못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티켓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연줄과 돈을 가진 황지호.

티켓팅 연습을 할 필요를 못 느낄 테니, 노력파 김유리와 달리 티켓팅은 계속 저놈의 약점으로 남을 거다.

“너희는 안 해?”

“만드는 과정에 흥미는 있지만,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좀.”

“나도.”

내 질문에 구경 중인 한이와 맹효돈이 답했다.

한이는 해 볼까 말까 고민하다 황지호가 처웃으며 요리하는 꼴을 보고 마음을 완전히 접은 것 같았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요리 교실이 끝나고, 아몬드와 마카다미아가 들어간 쿠키가 완성되었다.

블루레몬청은 실온에 이틀 정도 둬야 한다니, 완성품은 영원의 호수 팀 빌딩을 방문할 때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있잖아, 단체 사진 찍지 않을래? 우리 집 놀러 온 기념으로!”

김유리의 제안에 아이들 모두가 찬성했다.

“저도 찍고 싶어요!”

“저기, 사진 찍으면 대석이…… 아니, 친구 보여 줘도 돼?”

“먹기 전에 찍자.”

그릇에 담긴 쿠키를 든 김유리와 미완성품인 블루레몬청이 담긴 유리병을 든 권레나가 가운데에 앉은 후.

그 두 명을 중심으로 남은 아이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다들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후드를 푹 눌러쓰고 민그린은 집으로 달리고 있었다.

민그린은 불특정 다수와 함께 밀폐된 공간에 장시간 있어야 하는 대중교통은 이용하기 힘들고, 비싼 택시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녀는 운동도 할 겸, 항상 달려서 등하교했다.

‘나만 빠지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조금 전까지 김유리의 집에 있었던 민그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제는 집에 가야 한다고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었다.

다행히 그녀처럼 약속이 있던 조의신이 먼저 말을 해 준 덕에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늦었어.’

시계를 보니 평소 송대석과 저녁을 먹던 시각에서 몇 분 지나 있었다.

민그린은 후드가 벗겨지지 않도록 옷깃을 움켜쥐고 더 서둘렀다.

그리고 집 앞.

송대석이 서 있었다.

달려오는 민그린을 발견한 그가 그녀를 향해 뛰어왔다.

“늦어서 미안해!”

송대석의 눈 밑은 새까맸지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민그린을 집 안으로 끌고 가 바로 문을 닫았다.

무언가를 경계하는 태도였다.

“무슨 일 없었어?”

“응. 왜?”

송대석이 낮게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송대석은 스승의 날 후기 글 악플 사건 이후로 민그린을 계속 걱정했다.

그 사건 이후, 종합 게시판에서 민그린을 공격하는 악플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알량한 미술 지식을 바탕으로 민그린을 표절범으로 몰다가 실패한 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았다.

‘은광고 종합 게시판에 선플이 훨씬 더 많지만, 유독 집요하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몇 명 있긴 해.’

어린 나이에 큰 성과를 거둔 민그린에겐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질투를 주체하지 못하는 악플러가 달라붙었다.

민그린은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 애써 밝게 말했다.

“괘,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학교에선 함근형 선생님이랑 우리 반 애들이랑 같이 다니고 있고, 반 애들은 다 착하고…….”

송대석이 퀭한 눈으로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는 민그린을 바라봤다.

“그, 위성 관찰은 잘되고 있어? 요새 평소보다 더 열심히 보고 있었잖아.”

아주 어설프게 말을 돌리는 민그린.

송대석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대답했다.

말을 돌리려는 그녀에게 맞춰 주기로 한 것 같았다.

“좀 거슬리는 게 있었어.”

“거슬리는 거?”

송대석은 홀로그램을 전개했다.

수십 개의 창에서 플레이어SAT―K 외에도 현존하는 모든 위성의 관측 자료가 떠올랐다.

위성 외에도 사설 이능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까지 첨부된 홀로그램 창들.

방대한 관측값들이 플레이어SAT―K의 관측 자료에 맞춰 정리되어 있었다.

‘대석이는 저걸 어떻게 다 확인하고 정리하는 걸까. 위성에 관해선 웬만한 전문가 보다 대석이가 더 낫지 않을까.’

민그린이 잔뜩 떠 있는 숫자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송대석은 한 좌표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번에는 석촌호수 쪽이 좀 이상했는데.”

송대석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위를 스와이프하자 화면이 전환되었다.

화면에 나타난 건 대형 크루즈선의 사진과 해로였다.

“얼마 전에는, 키모폴레이아 근처가 이상했어.”

*    *    *

아이들이 어떤 저녁을 만들지 신경 쓰였지만, 선약이 있어 김유리의 집을 뒤로하고 나왔다.

오늘 저녁 약속을 한 이들과 합류해 이동한 곳은 은광구의 어느 중식당.

첫 코스로 나온 사품냉채보다 내가 보여 준 글에 관심을 보이던 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후배가 직접 한 민원인데 확인해 봐야지.”

성국언이 내가 작성한 탄래중학교 민원 글과 답변으로 받은 글을 모두 확인한 후 말했다.

“일하는 걸 싫어하는 놈들한테 민원이 가면 보통 이런 답변이 와. 또, 구린 이유가 있을 때도.”

탄래중 건을 성국언이 맡아 주기로 했다.

아마 곧 영혼까지 털리겠지.

안심하고 코스 요리를 즐기려 할 때였다.

“나도 후배에게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은데.”

성국언도 내게 부탁할 게 있는 건가.

고작 학생인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은광고 학교 신문 기사는 전부 읽고 있어. 네가 작성한 글 중에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성국언이 은광고 신문부가 낸 기사를 전부 읽고 있었나 보다.

우리 부에서 쓴 기사는 다 은광고 웹사이트에 공개되긴 하지만, 그걸 읽는 외부인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어떤 기사를 말하는 걸까.’

신문부 활동을 하면서 꽤 많은 기사를 썼는데.

국회의원이, 그것도 성국언이 관심을 가질 만할 주제에 대해 떠올리고 있을 때.

“은광고 괴담에 관한 일이야.”

성국언이 생각지도 못한 주제를 꺼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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