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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21화 (12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21)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재원들이 모이는 은광고.

강력하고 독특한 이능을 가진 학생들과 교직원이 많은 탓일까.

이 명문고에는 괴담이 많았다.

‘적호의 붉은 번개 사건이나, 부정 입학자의 행방불명 사건처럼 실체는 괴담도 뭣도 아니었던 사례도 있지만.’

수많은 괴담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은광고 교내를 떠돌고 있었다.

‘문새론급의 정보통이 작정하고 조사하면 그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온갖 일에 호기심을 보이는 문새론이 괴담을 무서워하고 있고, 별 이유 없이 그걸 파헤치려 하는 괴짜는 드물었다.

신문부에서 쓴 기사의 내용도 현재 은광고에 어떤 괴담이 있는지 소개한 정도에 불과했었다.

“내가 재학 중일 때도 괴담은 많았지. 그중에 계속 신경 쓰이던 괴담이 있었는데, 아직도 소문이 도는 중인 것 같더군.”

성국언이 디바이스의 홀로그램을 전개했다.

홀로그램에 뜬 건 내가 작성한 은광고 괴담 관련 기사였다.

수많은 괴담을 소개한 기사.

그중 하이라이트 처리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회와 선도부가 비밀 결사를 만들어 산짐승을 제물로 의문의 의식을 치른다.]

[달이 없는 밤, 천익산의 모든 등산로는 귀문(鬼門)으로 이어진다.]

‘이 두 괴담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내 옆에 앉아 홀로그램을 들여다보던 성시완이 한마디 했다.

“아, 이거 두 개는 나도 들어 본 적 있는데!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형이 말하면 알아봐 줬을 텐데…….”

“하하핫! 그래, 시완이랑 의신이 둘이 같이 알아보는 건 어때.”

성국언의 말에 의문이 더욱 커졌다.

‘무슨 의도지. 이 괴담은 갑자기 생긴 것들이 아니야. 예전부터 있던 괴담인데. 왜 지금, 우리에게 부탁하는 걸까.’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이상한 부탁을 하는 성국언.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성국언의 옆에 앉아 무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는 전무영.

존재감이 옅은 그가 조용히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무영이 말리고 있지 않아. 왜?’

성국언도, 전무영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

둘의 성격에 관해선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성국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전무영이 제지를 하는 게 보통이었다.

국회의원인 성국언이 후배와 사촌 동생을 붙잡고 괴담 조사를 해 달라는 걸 막지 않는 건 이상했다.

‘이 두 사람은 나와 성시완이 함께 저 괴담을 조사하기를 바라는 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 괴담들이 의미하는 바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둘은 죽을 때까지 무의미하게 움직인 적이 없었어. 괜히 속을 떠보다 두 사람의 계획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빨리 협력해서 신뢰를 얻는 편이 나을 거다.

조사 도중에 저 둘의 의도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네, 알아볼게요.”

“나도. 형이 괴담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내 말에 이어 성시완이 알았다고 하자, 성국언이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우리 둘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요?”

“진족이나 후예를 이용…… 아니, 힘을 빌리는 건 상관없지만, 그들이 이 괴담에 주목하게 해선 안 돼.”

진족이나 후예를 이용해 정보를 모으는 건 괜찮은가 보구나.

맥락상 생략된 말은 그런 내용일 거다.

“네? 아, 학생회에는 용족의 후예가 있었죠. 준열이 잘못 끌어들이면 용쌤하고 홍염의 제왕 선배님한테 죽는 건 나도 알아요, 하하하!”

사람 좋은 성시완은 존경하는 그의 사촌 형이 하는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성국언은 진족이나 후예를 믿지 않는구나.’

저번에 내가 진족이나 후예인지 철저하게 확인하려 했던 것도 그렇고.

성국언의 뿌리 깊은 불신에는 원인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번 괴담 조사로 그가 진족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알게 되면 좋을 텐데.

*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내 기숙사 방.

괴담 조사도 조사지만, 내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있었다.

‘오늘 반 아이들과 나눠 먹었는데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어.’

거실에 한가득 쌓여 있는 달토끼떡 선물세트 상자들.

이러다가는 세끼 전부 떡을 먹게 생겼다.

‘혼자 먹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

우선 옥토연이 좋아한다는 수리취가 들어간 떡은 전부 빼놨다.

수리취떡, 수리취개피떡, 수리취인절미, 각색차조인절미…….

수리취가 들어간 떡이 생각보다 많아서 이걸 다 먹는 것도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옥토연도 좋아한다는 떡이니까 먹고 감상을 남기자. 다 먹지는 못해도 성의는 보여야지.’

남은 떡들은 선물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히 올무였다.

벚꽃잎 모양의 꽃무늬가 들어간 하얀 절편을 보니 올무가 생각이 났다.

올무가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았더라도 선물은 주고 싶었다.

‘안 받아 주면 어쩌지? 떡을 안 좋아하면? 그러다 더 화내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쏟아졌지만, 긴 고민 끝에 선물은 주기로 했다.

가장 포장이 잘되어 있는 상자들을 골라 올무 몫으로 정했다.

다음으로 떠오른 건 백호군이었다.

‘백호군에게도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은련관에서 상보심금파에 관해 조언해 준 백호군.

조언뿐 아니라 숙련도를 쌓게 직접 도움까지 줬다.

‘대련에서 상대도 안 되고, 지친 바람에 체스 상대도 안 해 준 건 좀 분하긴 한데.’

그렇게 하얀 신수와 범의 선물을 정한 후에도 떠오르는 이름들은 많았다.

그 뒤에 생각난 건 적호를 구해 준 유상희.

게임 속에서 유상희가 과일을 좋아했었다는 묘사가 떠올랐다.

‘유상훈이 죽고 난 뒤에는 음식 자체를 잘 먹지 않았지만. 게임 속에서는 도원우가 항상 학생회실에 과일 선물 세트를 뒀었는데.’

그녀가 좋아할 것 같은 과일찹쌀떡, 생과일떡이 담긴 상자를 빼 뒀다.

‘다음은 누구한테 줄까.’

키모폴레이아 선내를 안내해 줬던 주수혁.

선상 파티 사건에서 활약하지 못해 풀이 죽었던 장남욱.

뱃멀미로, 또 집안 사정으로 고생을 한 도시후.

아쉽게 체스대회 결승전에서 만나지 못한 박승현.

체스대회 때 응원을 와 준 2학년 0반 일당.

지익회에 남는 간식이 있을 때마다 내 몫을 챙겨 주는 성시완.

감사, 혹은 격려의 의미로 달토끼떡을 줄 사람을 정하다 보니 상자는 금방 줄었다.

‘남은 건 우리 반이랑 신문부 사람들하고 나눠 먹어야지.’

그렇게 일과를 마무리하고 평소보다 일찍 잠들려 했을 때.

딩동.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김유리였다.

[김유리] (사진)

[김유리] 오늘 찍은 사진들이야! 방금 보정 끝났어! ^▽^!

나와 민그린도 찍힌 반 단체 사진.

우리가 나간 후에 계속된 요리 교실.

저녁을 먹기 전 찍은 사진.

김유리가 보낸 메시지에는 0반 아이들 사진이 여러 장 첨부되어 있었다.

황지호의 기행이 찍힌 사진도 있었다.

‘황지호는 대체 뭔 생각을 한 거야.’

저녁밥 조리에 참여한 아이들이 각자 자신들이 만든 요리를 들고 찍은 사진.

라자냐와 스파게티, 미트볼 접시가 보이는 가운데, 황지호는 신선로를 들고 있었다.

‘그래도 애들 입맛에 잘 맞았구나.’

다음 사진을 보니, 신선로가 제일 먼저 동이 났다.

특히, 한이가 분해하면서도 맛있게 먹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황지호가 찍히지 않았는데도, 어디선가 ‘하하하하!’ 하고 처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사진이었다.

[김유리] 다음엔 저녁도 같이 먹자ㅎㅎ

[김유리] 마카롱은 아침 간식으로 가져갈게! 그럼 내일 봐 >▽<ق

김유리는 메시지 말미에 후식으로 만든 마카롱 사진을 첨부해 왔다.

붙임성 있는 메시지들에서 딱히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처럼 밝게 행동하고 다른 아이들을 챙기는 좋은 반장의 면모가 보일 뿐이었다.

‘많이 불안할 텐데.’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    *    *

주중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영원의 호수 팀 빌딩에 방문하기로 한 토요일이 되었다.

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서서울 호수공원.

중앙 호수 저편에 푸른 이계 금속으로 덮인 건물이 하나 보였다.

“와! 호수도, 건물도 전부 예뻐요!”

“사진 찍어야지!”

“저기 멀리 보이는 게 영원의 호수 팀 빌딩 맞지?”

“빨리 가고 싶다!”

“아, 잠깐만 기다려.”

어젯밤, 권제인이 중앙 호수 앞에 도착하면 먼저 연락하라는 메시지를 남겼었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나] 호수 앞에 도착했습니다. 팀 빌딩 앞에 도착하면 다시 메시지 보낼게요.

딩동.

바로 답변이 왔다.

[권제인] 안 돼, 오지 마.

권제인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오지 말라고?

설마 애들 데리고 돌아가야 하나.

‘권레나가 실망할 텐데.’

권제인은 조카가 보고 싶지 않나?

아니면 조카를 만나지 못할 사정이라도 생겼나?

정신이 대략 멍해져 있는 내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권제인]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어.

이게 무슨 뜻인가.

권제인은 몇 글자만으로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흠.”

그때, 눈을 반짝이며 하늘을 한번, 호수를 한번 쳐다본 황지호.

눈을 빛내는 이놈을 보니 불길했다.

파아아아―!

갑자기 어둡게 변하는 풍경.

주변을 둘러보니 이능파가 어두운 색을 띠고 호수공원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어, 어. 뭐죠?”

“이능파!”

힘의 근원에 재러드 리가 서 있었다.

그가 광범위하게 이능을 전개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이게 10대 시절에 ‘세 기사의 맹세’에서 스카우트한 재러드 리의 힘이구나!’

서서울 호수공원이 어둠에 잠기자, 어디선가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파 라이트의 강렬한 빛, 인텔리전트 라이트가 뿜는 푸른 광선.

조명이 향하는 곳은 중앙 호수의 중심이었다.

“저기에 누가 있는데.”

“권제인 선배님이다!”

“와! 물 위에 서 계셔!”

“지금 스킬 쓰시는 중인 걸까? 아니면 가호의 효과? 그것도 아니면 광림?!”

“뭐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데.”

마흔한 개의 소리 분수가 설치된 약 1만 8천 제곱미터의 중앙 호수.

배경과 조명이 무대처럼 변한 호수 위.

그 한가운데에 푸른 머메이드라인 드레스를 입은 권제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가만히 감고 바이올린 현 위로 활을 그었다.

솨아아―!

그녀의 연주에 따라 공원 전체로 퍼져 나가는 선율.

그 음색에 반응해 소리 분수가 일제히 가동되었다.

방금까지 떠들고 있던 아이들이 그 소리에 압도되어 입을 다물었다.

‘저번에 들었던 것보다 더 굉장해졌어!’

곡이 중반 정도 흘러갔을 때, 권제인이 호수 위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녀의 걸음에 맞춰 이능파의 흐름이 변하고 빛의 입자가 퍼져 나갔다.

‘광림이다.’

권제인의 광림 ‘수면의 요영(謠詠)’.

맨체스터 대이계 공략 당시 호수를 만들고, 기적을 만들었던 그 광림.

그녀의 연주와 이능에 반응해 수면이 노래를 부른다는 추상적인 사기 능력이었다.

그 엄청난 광림을 퍼포먼스 연출을 위해 쓰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고생했던 조카, 그리고 그 친구들이 찾아온다니까 선물을 준비한 거야.’

재러드 리가 사용한 능력도 그렇고, 이만한 광림 낭비, 이능 낭비를 라이브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나.’

오히려 공연 전문가인 팀원들이 온 힘을 다해 권제인을 서포트 중인 것 같았다.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밤이 사라지고 호수에 빛이 돌아왔다.

말 그대로 백일몽을 재현한 듯한 꿈같은 시간이었다.

‘멋진 연주였지만, 이건 좀 심했다.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황지호야 그렇다 치고.

다른 애들, 특히 권레나가 이상하게 여기면 어쩌려고 그러지.

하치만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어떡해…… 너무, 너무 멋지다……! 디바이스 카메라로 찍어놨어야 했는데! 역시 권제인 선배님이셔……!”

연주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넋을 놓은 아이들.

그 사이에서 권레나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권제인의 팬의 눈엔, 이런 기행도 그저 멋지고 권제인다워 보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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