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57)
게임 속의 맹효돈은 상당히 다루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주수혁이 2학년이 된 시점, 지금보다 1년 늦게 구출되어 등장한 맹효돈.
그는 영양실조에 회복 아이템 만성 중독 증상까지 겹쳐 신체적으로 상당히 망가진 상태였다.
주수혁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그럭저럭 회복하긴 했지만, 지금보다 더 엄중하게 회복 아이템 사용이 금해지고 혹독한 재활 훈련을 해야 했다.
‘그 탓에 SSR급 이상의 희귀도 에너미 상대로는 출격 명령도 못 내리고, 스토리상 강제 출격 모드라 해도 한 방만 맞으면 후위로 물러나야 했어. 그에 비해 광림은 다치기 쉬운 능력이고…….’
회복 아이템 사용 자제 권고가 내려진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안 좋았다.
구출이 지금보다 늦어진 만큼 파이트 클럽에서 쌓인 경험치가 있어서 레벨이 높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한 방도 맞지 않으면서 낮은 희귀도의 에너미를 상대로 경험치를 쌓아야 하고, 마땅한 스승도 없이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하니 육성이 쉽지 않았어.’
결국, 극적인 스토리 배경, 훌륭한 타격감과 공격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신 캐릭터 맹효돈은 괴랄한 조작, 육성 난이도로 인해 한 줌 남은 코어 유저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 되었다.
맹효돈의 그런 배경의 여파가 2라운드가 시작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아, 아깝다!”
“효돈이가 또 물러났어요!”
“거기에선 그냥 한 방 맞더라도 파고들어서 갈겨야지!”
반 아이들 말고도 송대석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고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반 아이들과 아직 데면데면한 송대석의 피를 끓게 할 만큼 두 사람은 접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맹효돈은 그렇다 쳐도 저 빵셔틀이 섞인 대련에서 나오리라 생각하기 힘든 높은 수준의 전투였다.
‘탁 도인이 철저하게 맹효돈의 약점을 연구하고, 거기에 맞춰서 방윤섭을 훈련시킨 거야.’
맹효돈의 약점 첫 번째.
스승이 없는 맹효돈은 공격이 굉장히 단순하다.
첫 팀플레이 때 황지호와 한이가 구사한 태호권을 따라한 것처럼 그때그때 눈에 보이는 공격 기술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내는 덕에 티는 잘 안 났지만.
1 대 1 승부에서는 그게 안 먹힌다.
‘그리고 가장 큰 약점은…….’
그의 두 번째 약점.
몸을 사린다는 것.
맹효돈은 회복 아이템 사용에 제한이 걸려 있다.
언뜻 보기에 대담하게 공격하는 맹효돈이지만, 이는 ‘저 공격쯤은 피할 수 있다’라는 확신 아래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뒤집어 말하면 ‘피하기 어렵다’고 느끼면 맹효돈은 쉽게 나서지 못한다.
맹효돈의 공격패턴을 정확히 꿰고 온 방윤섭의 맹공이 지금 그런 피하기 어려운 종류의 공격에 해당했다.
‘그래도 방윤섭은 소질이 너무 딸려. 기회는 온다.’
지금처럼.
방윤섭이 어설프게 스텝을 밟고 쌍절곤을 휘두른 탓에 틈이 생기고 말았다.
맹효돈은 이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지만.
쉭—!
방윤섭은 그대로 쌍절곤을 움직여 발차기를 흘려 넘겼다.
“의신이 빵셔틀 하는 애 선구안이 저렇게 좋았어? 안 그랬던 거 같은데.”
“효돈이보다 느린 것 같은데 어떻게 피한 거지?”
“움직임을 보고 발차기가 올 거라 예상해서 흘려 낸 게 아닌 것 같아. 효돈이가 발차기를 날리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이미 발차기가 올 거라 가정하고 움직였어.”
한이의 날카로운 분석대로였다.
방윤섭은 맹효돈의 공격을 전투 감각을 살려서 피한다기보다는 기계적으로, 학습된 대로 움직여 피하고 막는 것 같았다.
탁 도인이 학교 전투 수업에서 남은 기록, 협회에서 공개한 기록 영상 등을 통해 맹효돈의 움직임을 연구해 방윤섭에게 단기 주입 교육을 해 준 티가 났다.
‘그래도 첫 라운드에서는 학습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서 아슬아슬하게 져 버렸지만…… 탁 도인이 가르친 게 방윤섭이 아니라 은광고에서 중간 정도 가는 놈이었으면 맹효돈은 1라운드도 졌을 거야.’
맹효돈은 계속 다음 공격이 읽히자 초조해졌는지 조금씩 실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방윤섭이 휘두르는 쌍절곤을 보호대를 착용한 부분으로 막고 공격을 가하려 했지만, 그만 보호대 밖 맨살을 가격당하고 말았다.
왼쪽 팔에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듯 맹효돈이 얼굴을 찡그렸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방윤섭이 맹효돈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퍼억!
“……윽.”
맹효돈이 비틀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방윤섭이 쌍절곤으로 명치를 날려버렸다.
퍽— 쿠웅!
방윤섭에 비해 키도 작고 왜소한 몸집의 맹효돈이 스테이지 위로 엎어졌다.
방윤섭이 쓰러져 있는 맹효돈의 머리를 노리고 쌍절곤을 휘두르려 했을 때.
“거기까지! 시합 중지!”
파아아—!
제갈재걸의 언령이 발동해 아주 짧은 순간 방윤섭을 구속했다.
그사이에 맹효돈이 정신을 차리고 뒤로 백덤블링하며 튀어 오르듯 일어나 거리를 벌렸지만, 제갈재걸이 선언했다.
“방금 추가타가 이어졌으면 맹효돈 학생은 전투 불능이 될 만한 데미지를 입었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2라운드의 승리자는…… 방윤섭 학생!”
와아아아아아—!
“어떻게 된 거야, 빵셔틀!”
“탁 도인 쩐다…….”
“진짜 오늘 빵셔틀 마지막 날이야? 나 쟤가 다녀간 빵집 순회하는 거 재미 들렸는데.”
“나도. 쟤 맛집만 골라 가잖아. 문새론이 맛집 기사에서 빵셔틀 포인트가 있던 거 다 챙겨봤었어. 아쉽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지만, 여기저기에서 방윤섭을 칭찬하는 말이 들렸다.
‘위험했어.’
제갈재걸의 선언이 늦어져 맹효돈이 전투 불능이 될 만큼 맞았으면 충동적으로 방윤섭 저놈에게 제주도에서 보리빵을 한 트럭을 사 오게 시켰을지도 모른다.
“10분 후, 마지막 라운드를 재개하겠습니다.”
제갈재걸의 말에 카운트다운용 시계가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신문부 스태프에 의해 스테이지 정비가 바삐 진행되고,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밴드부에서는 ‘Last Round With Frost’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방윤섭이 신나게 탁거산과 이야기하며 회복 아이템을 쓰고 있었지만, 맹효돈 쪽은 달랐다.
맹효돈이 뭔가를 얘기해도 함근형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맹효돈의 몸 상태를 알고 저러는 거구나.’
제자의 행동에 너그러운 함근형 선생님이지만, 지금 맹효돈이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는 건 독을 마시는 거나 다름없었다.
“왜 회복 아이템을 안 쓰죠?”
“생각보다 받은 데미지가 적었던 걸까.”
“웃기고 있네. 저 팔팔하게 움직이던 조그만 새끼가 잠깐이나마 못 일어나고, 일어난 다음에도 비틀거리는 거 못 봤냐?”
송대석의 말대로다.
맹효돈은 지금 많이 티는 안 나도 상당한 데미지를 입었을 거다.
맹효돈은 분한 얼굴로 스테이지 너머에 있는 방윤섭을 보고 있었다.
‘실력 차이로 지더라도, 이런 약점에 발이 묶여서 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미리 안배를 하나 준비해 뒀다.
“입구 쪽이 소란스러운데…….”
“어, 스테이지 쪽으로 누가 가고 있어요.”
스태프석 쪽에서 등장한 건 학생회 임원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서 있는 건.
“유상희 선배님이시다!”
우리 학교 최고의 힐러, 치유광풍 유상희였다.
* * *
“의신이 부탁을 받고 왔어. 회복 아이템도 준비할 예정이지만, 가능하면 대전자를 치료해 줬으면 좋겠다고. 좀 더 일찍 올 생각이었는데 학생회 일이 밀려서 늦어 버렸네.”
“상희를 이런 데다 부려먹다니! 1학년이 건방져. 그냥 치료하지 말고 회복 아이템 쓰든가…… 죄송합니다.”
함근형과 유상희가 동시에 험한 얼굴로 노려보자 도원우가 입을 다물었다.
“이 정도면 광림을 안 써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려 봐.”
파앗!
유상희의 손에서 흘러나온 이능파가 맹효돈의 몸을 감싸자, 통증과 떨림이 멎었다.
순식간에 치료된 걸 보고 맹효돈이 감탄하다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후배가 다쳤는데 치료해 주는 게 당연하지. 정 인사하고 싶으면 고맙다는 말은 의신이한테 해. 난 그냥 부탁받고 온 거니까.”
유상희는 부드럽게 웃은 후, 방윤섭 쪽도 살펴보겠다며 걸어갔다.
유상희한테 다시 감사 인사를 한 맹효돈이 관객석을 보니 수상하게 웃고 있는 부반장, 조의신이 보였다.
‘병 주고 약 주냐. 대체 무슨 생각이야……!’
할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잡념을 털어 내야 했다.
맹효돈은 숨을 고르고 1, 2라운드에서 보인 방윤섭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대항책을 생각했다.
* * *
“이해가 가지 않는군.”
“뭐가.”
“넌 맹효돈이 졌으면 한 게 아니었나.”
유상희가 신문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맹효돈을 치료한 뒤, 황지호가 불쑥 말했다.
“너는 그동안 탁거산의 권유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잖아. 민그린 건은 그렇게 강경하게 대응했으면서.”
황지호의 물음은 지당했다.
나는 탁거산의 정체가 사이비 도인이 아니란 걸 파악한 이후부터는 조언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다.
“오히려 주도적으로 이런 이벤트를 만들어서 맹효돈이 물러나기 어렵게 만들었지. 그런데 유상희를 불러? 무슨 생각이냐.”
“네 생각대로야. 난 맹효돈이 탁거산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으면 해. 하지만 저런 식으로 지는 건 원하지 않아.”
황지호는 여전히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3, 2, 1…… 제로!”
제갈재걸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두 사람의 대치가 재개되었다.
이번 라운드는 1, 2라운드 때와 확실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맹효돈은 약점이 많아. 그래도…….’
그 약점을 모두 씹어 삼킬 만한 천재성과 끈기가 있었다.
괜히 마지막에 밸런스 붕괴 깡패 캐릭터란 소리를 들은 게 아니다.
맹효돈은 1, 2라운드를 거치는 사이에 방윤섭의 움직임에 적응해 여유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탁거산은 초조한 얼굴로 스테이지 위를 보고 있었다.
‘탁 도인은 맹효돈에게 틈을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짐작하고 있을 거야.’
방윤섭의 공격이 조금 느슨해졌을 때, 맹효돈의 몸에서 이능파가 터져 나왔다.
광림의 전조였다.
“효돈이가 광림 쓴 거 같아! 맞지?”
“그럴걸? 대박이다. 이능파의 압력 정도를 보니까 엄청 센 광림 같아!”
“두 놈 다 광림 안 쓰고 뭐 하나 했다.”
“대련에서도 어지간하면 광림은 잘 안 쓰는 추세니까요. 갑자기 이계의 틈이 발생할 수도 있고…….”
아마 맹효돈이 광림을 안 쓰고 있던 건 송대석의 혼잣말 같은 소리에 이어진 사월세음의 대답대로일 거다.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 했지만, 방윤섭의 실력을 보고 써야겠다는 마음이 든 거겠지.
완승을 노린다면 2라운드가 시작하자마자 썼으면 좋았을 텐데.
파아앗!
맹효돈의 뒤에서 이능파가 거대한 주먹 형태로 떠올랐다.
주먹이 향하는 방향은 방윤섭이 서 있는 곳.
방윤섭은 그 주먹이 날아오는 게 아닌가 해서 놀라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파아아…….
그 주먹은 이능파로 산개되어 스테이지를 감싸다 사라졌다.
관객들과 방윤섭은 어리둥절했지만, 맹효돈의 광림의 정체를 아는 인물들은 모두 흥미진진해하는 눈으로 스테이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맹효돈의 광림이 무사히 발동했어. 실제로 발동하는 건 처음이네.’
맹효돈의 광림 ‘싸움꾼의 인력(引力)’.
광림이 발동 중인 동안 싸움꾼인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올리고 싸움터로 인식한 장소에 적을 묶는, 공격형이자 포획형.
맹효돈이 싸움의 대상으로 지목한 상대는 그를 쓰러뜨리거나 광림을 해제하게 하지 않는 이상, 맹효돈이 지정한 ‘싸움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광림의 대상은 복수로 지정할 수 있었으며, 그 ‘싸움터’의 범위는 맹효돈이 설정할 수 있었다.
‘맹효돈은 자기 광림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싸움꾼의 인력(引力)’은 파이트 클럽에서 살아남는 데에는 유용했지만, 탈출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지막까지 적을 붙잡아 은인인 주수혁의 활로를 뚫고 의리를 다했을 때, 처음으로 자신의 광림이 좋아졌다며 중얼거리다 최후를 맞이했다.
“이거나 먹어라!”
광림을 발동 중인 맹효돈이 방윤섭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스피드도 파워도 훨씬 향상된 주먹질.
지금 방윤섭이 이걸 받아서 흘려 넘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도 그걸 짐작했는지 기겁하며 뛰어올랐다.
콰콰쾅!
이능파를 머금은 맹효돈의 주먹이 스테이지를 때리자 방윤섭이 서 있던 바닥이 두부처럼 으깨졌다.
여기저기에서 금이 가고 가루가 된 스테이지를 본 방윤섭.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지만, 허세를 부리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헛방이다, 등신…… 어? 어!”
방윤섭이 그렇게 외치며 뒤로 점프해 더 물러나려 했지만,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싸움꾼의 인력에 걸렸어!’
맹효돈이 설정한 ‘싸움터’를 벗어나려다 걸린 것이다.
큰 한 방을 선보이면 방윤섭이 쫄아서 뒤로 도망칠 걸 예측하고 ‘싸움터’를 옥타곤 스테이지보다 더 좁게 설정해 제한범위에 걸리도록 유도했나 보다.
‘돌머리지만 싸움 머리는 달라……!’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싸움 천재 맹효돈다웠다.
방윤섭은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황하다 뒤늦게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맹효돈의 주먹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뻐억!
“꿱!”
정면으로 맞은 방윤섭의 안면에서 시원한 소리가 났다.
쌍코피는 터졌지만, 그래도 힘 조절은 했는지 코뼈가 부수어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맹효돈이 다시 주먹을 쥐고 방윤섭을 패려 할 때.
“거기까지!”
제갈재걸의 언령이 맹효돈을 일순 묶었다.
맹효돈이 주먹을 거두자, 제갈재걸이 선언했다.
“마지막 라운드의 승자는…… 맹효돈!”
와아아아아—!
홀로그램 전광판에 쓰여 있던 문자가 바뀌고 체육관이 들끓었다.
맹효돈이 숨을 고르고 방윤섭을 패려던 주먹을 허공을 향해 들어 올리자 환성이 더 커졌다.
[맹효돈 2 : 1 방윤섭]
[맹효돈 승리!]
최종 스코어가 적힌 전광판이 떠오르고, 두 사람의 분투에 관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대자로 무대에 뻗은 방윤섭은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