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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58화 (15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58)

제갈재걸의 인사로 이벤트가 마무리되고, 1학년 0반 아이들은 바로 맹효돈을 향해 갔다.

함근형 선생님과 대화하며 멍하니 있던 맹효돈이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다 뻘쭘해했다.

전원 맹효돈 응원 수건을 들고 있거나 어깨에 걸치고 있는 게 마치 짱돌 선생 팬 미팅을 하는 분위기였다.

“대련 잘 봤어! 정말 고생 많았어.”

“수업 시간에 한 대련은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보는 내가 다 떨리더라. 진짜 대박!”

“마지막에는 광림이었지?”

“스피드나 파워도 다 올라갔었죠. 강화 타입인가요? 의신이 빵셔틀이 갑자기 멈춘 것도 광림의 효과죠?”

“광림은 주요 개인 정보라 너무 깊게 묻는 건 실롄데. 학교나 협회 측에서도 함부로 안 묻는 거잖아.”

“아…… 대석이 말이 맞네요. 제가 실수했어요. 죄송해요.”

아이들 말을 가만히 듣던 맹효돈이 한마디 했다.

“응원 와 줘서 고맙다.”

김유리가 반 대표로 전하는 감사 인사에 맹효돈은 뭐라 답변을 하면 좋을지 떠오르지 않는 듯 계속 머뭇거렸다.

그러다 반 아이들 사이에 섞여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야, 부반장 너…….”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 전, 무대 반대편에서 들려온 큰 소리에 나를 비롯한 아이들의 주의가 분산되었다.

“야, 1학년. 우리 상희가 직접 나서서 치료 스킬을 사용해 주고 진찰까지 해 주려는데 태도가 그게 뭐냐. 그런 마음가짐이니까 대련에서도 지고…… 억!”

“원우야, 다친 후배한테 무슨 소릴 하는 거니!”

도원우가 또 추하게 굴었나 보다.

유상희한테 한 대 맞은 건지 도원우의 말이 끊겼지만, 큰 소리는 다시금 이어졌다.

“이눔아! 너 그 콩가루 같은 도 씨네 놈이지? 하이고, 도 씨 그놈이 은광고 학생회장 손주 놈을 그리도 자랑하더니만 콩가루가 어딜 가지 않네. 어디서 내 제자한테 큰 소리야! 내 제자 까지 마라!”

“시바, 나 할배 제자 아닌데! 사이비 도인 할배는 툭하면 나 까 놓고 뭔 내 제자 까네 마네…….”

“스승한테 무슨 망발이냐!”

빡!

“끄악!”

대자로 뻗어 있던 방윤섭의 이마에 탁거산의 딱밤이 떨어졌다.

말이 딱밤이지 벽에 돌을 던질 때 날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탁거산이 도원우네를 콩가루라며 깠지만, 탁거산과 방윤섭도 콩가루 사제로 보였다.

“내 제자는 까도 내가 깐다! 알았냐, 도 씨 놈아.”

저 말에 극히 공감이 갔다,

내 망겜과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까도 내가 까야 하니까.

“……네. 죄송합니다. 탁거산 선생님.”

도원우는 대외용 학생회장 모드로 돌아가서 정중하게 말했다.

상황은 수습된 것 같지만 어쨌든 여전히 개판이었다.

딱밤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방윤섭에게 유상희가 치유술을 걸어 줬다.

“윤섭아, 괜찮아?”

“빵윤섭이, 오늘 수고 많았다. 덕분에 좋은 기사가 나올 것 같음!”

그때, 1학년 2반의 학급 임원인 주수혁과 문새론이 등장했다.

계속 누워 있던 방윤섭이 두 사람을 보자 느릿느릿 일어났다.

“저녁 먹으러 가자. 씻고 나와. 반 애들도 기다려.”

방윤섭이 일어나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주수혁이 말했다.

방윤섭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는지, 탁거산이 난색을 표했다.

“수혁아, 하지만…….”

“윤섭이가 고생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쉬게 해 주세요. 탁 할아버지도 그간 바쁘셨을 테니 좀 쉬셔야죠.”

“아니, 수혁이 너는 또 왜 나를 할배 취급하는 게냐!”

“사범님께서 그렇게 부르라고 하셔서요.”

“곽 씨 내 그놈을……!”

탁거산이 목 뒤를 잡는 사이에 주수혁이 방윤섭을 데리고 빠르게 퇴장했다.

주수혁이 평소대로 행동했다면 남아서 뒷정리를 돕다 갔겠지만, 방윤섭의 입장을 고려해 빠른 퇴장을 선택한 것 같았다.

문새론이 체육관 밖으로 나서는 두 사람 뒤에 대고 ‘신문부 뒤풀이 끝나고 갈 수 있음 갈게!’라고 외치는 게 보였다.

“2반 분들도 뒤풀이 가시나 봐요.”

“우리도 빨리 가자!”

“신문부는 아직 남아서 정리할 게 있어. 조금만 기다려 줘.”

“그럼 우리도 같이 도울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되는데.”

“아냐, 빨리 가고 싶으니까 도울래.”

착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스테이지 정리를 마친 후.

미술실에 남아 있던 민그린도 불러서 1학년 0반은 승리 기념 회식을 하기로 했다.

나와 황지호가 신문부 뒤풀이에 가지 않자 신문부원들이 아쉬워했지만, 1학년 0반의 저조한 출석률을 고려해 기꺼이 보내 주기로 했다.

“……함근형 선생님은?”

“기말고사 채점하실 게 아직 남아 있나 봐.”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몇 명 보였다.

민그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종합 게시판에 금찬솔이 작성한 글을 하나 띄우며 말했다.

[제갈쌤이랑 맛난 거 먹으러 갈 거다! 부러움? 우리 담임임ㅋ 그것도 졸업할 때까지 영구담임임!]

밑에는 이벤트 시작 전에 찍은 단체 사진이 하나 붙어 있었다.

잘 보니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모두 제갈재걸의 타이 색과 같은 무늬의 단체 천 엠블럼을 착용하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대놓고 부러워하면서 그 단체 사진을 봤다.

“제갈재걸 선생님은 신문부랑 2학년 0반 합동 뒤풀이에 가셨다고 하던데.”

“교무부장 선생님이 안 가시면 선배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하니까…….”

2학년 0반 선배놈들은 제갈재걸에게 반 협박을 가한 후 납치하듯 끌고 갔다.

제갈재걸은 고민하다가 결국 승낙했는데 2학년 0반이 친 사고를 수습하느니, 그냥 식사를 한번 해 주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인 것 같았다.

“어, 잠깐만요. 우리도 그렇게 하면 함근형 선생님 모시고 갈 수 있는 건가요?”

“0반 선배님들한테 평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자.”

“그러자!”

위험한 발언이 들려온 것 같지만, 착한 우리 반 아이들이 2학년 0반 놈들처럼 될 리가 없으니 무시하기로 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제갈재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담임 선생님도 일을 떠맡는 경향이 있어. 다른 놈한테 일 좀 미루고 우리랑 놀러 갔으면 좋겠는데.’

제갈재걸에게 피해가 갈 일은 극구 삼가면서도 끊임없이 놀자고 보채는 2학년 0반 놈들도 그런 마음일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나를 수상한 것을 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어쨌든 민그린과도 합류했겠다 예약한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맹효돈은 자신 몰래 음식점까지 예약해 뒀다는 사실에 어처구니없어했다.

“자, 그럼 효돈이의 승리를 축하하며 건배합시다! 효돈아, 잔 들어 줘.”

“어…….”

김유리가 건배사를 마치자 맹효돈이 어색해하며 잔을 들어 올리고 근처에 앉은 아이들끼리 잔을 부딪쳤다.

오늘 메뉴는 철판구이.

개인실로 분리된 방 안, 10인용 테이블 위에 놓인 거대한 철판 위 아이들이 고른 마늘 통삼겹살, 부추 연어 스테이크, 버터 새우구이 등이 동시에 구워지고 있었다.

처음에 레스토랑 측에서 셰프를 붙여 줬지만, 황지호가 직접 하겠다며 이를 거절했다.

저놈이 ‘하하하하!’하고 처웃으면서 하는 조리를 눈앞에서 봐야 하는 게 좀 그랬지만, 모든 메뉴를 기가 막히게 구워 내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철판구이는 어느 나라 음식이야? 메뉴판에는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다 있는 것 같은데.”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는데, 옛날에 몽골 전사들이 방패에 음식을 조리했다는 설이 있고…….”

김유리의 설명과 맹효돈의 승리 소감을 들으며 메인 메뉴를 전부 먹은 후.

디저트로는 냉동 철판으로 교체해 철판 아이스크림 롤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각자 원하는 재료를 넣어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황지호, 민그린, 권레나, 김유리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롤이 터지는 바람에 고생을 했다.

나도 처음에 실패했더니 황지호가 처웃으면서 ‘해 줄까? 부탁하면 해 줄 수도 있는데.’라고 놀리듯 말해 두 번째에는 총력을 기울여 성공시켰다.

그렇게 만든 바나나와 초코칩 토핑을 올린 바닐라 철판 아이스크림은 유난히 달고 맛있었다.

반 아이들이 전원 디저트 만들기에 성공하자, 대화 화제는 다시 맹효돈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효돈아, 그럼 너 탁거산 선생님 제자는 안 될 거야?”

“교수 능력은 뛰어나신 것 같은데요.”

“맞아. 의신이 빵셔틀이 효돈이한테 1승을 따낼 줄은 몰랐어.”

그건 그동안 방윤섭의 흡연 현장을 찾아내 응징하던 맹효돈이 더 잘 알 거다.

제자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탁거산의 능력은 방윤섭 건으로 입증된 셈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맹효돈에게 집중되었다.

“모르겠어.”

“몰라?”

“그 할배…… 아니, 도인…… 선생님이 강하고, 잘 가르치는 것 같긴 하지만 굳이 도인의 제자가 되면서까지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맹효돈이 몇 번의 시도 끝에 탁거산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도중에 다시 도인으로 돌아온 건 왜일까.

‘……역시 이번 건만으로는 동기 부여가 안 됐나.’

게임 속 구출된 시점의 맹효돈이라면 바로 승낙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수많은 사건을 막지 못한 시점에 맞이하는 2학년 시절과 달리 사건은 몇 개 터졌을지언정 이 세계는 협회와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

거기에 중학교 은사를 제외하면 맹효돈의 친구나 선생님은 전부 최상급 플레이어뿐.

그뿐만 아니라 맹효돈은 우연히 마주친 이계에서도 그럭저럭 활약을 하며 에너미를 처치해 냈다.

그는 굳이 지금 당장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는 거다.

맹효돈에게 있어 이 세계는 안전하고 굳이 강해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위기가 올 거야.’

그때 맹효돈이 강해져 있다면,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탁거산의 능력은 입증해 냈으니 이제 동기 부여만 해 주면 될 거다.

맹효돈이 고생은 좀 하겠지만, 그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겠다.

“이 새끼는 또 왜 이렇게 수상하게 웃어.”

맹효돈이 매우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봤지만, 모르는 척하며 그냥 웃었더니 다른 애들도 나를 수상하게 여겼다.

“이대로 헤어지기 좀 아쉬운데.”

“저도요!”

“매일 스터디 모임하느라 같이 있어서 그런가.”

뒤풀이를 마치고 기숙사로 가기 전 아이들 몇 명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김유리가 바로 제안했다.

“그럼 우리 집에서 더 놀다 갈래?”

그 말에 송대석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기뻐했다.

‘다른 아이가 먼저 운을 떼서 다행이네.’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 날.

가능하면 김유리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대화하다가 김유리의 집에서 다 같이 자고 가게 되었다.

김유리는 기꺼이 비어 있는 게스트 룸들을 내어줬다.

아이들이 떠들다가 지쳐서 하나하나 잠들고.

나는 물을 마시는 척 거실에 나와 기다렸다.

‘게임에서는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라는 묘사가 있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아. 날이 하루 이틀 늦어질 수 있어. 그런 경우엔 또 핑계를 대서 내일 또 여기에 묵고…….’

마침 주말이니 댈 만한 구실은 여러 개 있었다.

플로어 스탠드 하나만 켜진 어두운 거실.

혼자 물컵을 쥐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여기에서 뭐 해?”

휙 돌아보니, 황지호가 서 있었다.

김유리 집에 올 때쯤부터 분신 쪽 일이 바쁜지 다소 멍하니 있던 황지호.

분신의 부하를 덜기 위해 잠든 줄 알았는데, 언제 또 깼나 보다.

“물 마시는데.”

“한참 동안 물컵을 들고만 있었으면서.”

저놈이 언제부터 지켜본 건지 모르겠다.

“다른 게 아니라 이무기의 귀천 건 말인데…….”

황지호가 말을 중단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오고 있는 건가.

곧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김유리가 나타났다.

실내화도 신지 않고 맨발로 온 걸 보니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의신아, 지호야…….”

우리를 보고 말을 거는 김유리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김유리의 왼손을 봤다.

걷어붙인 소매 밑으로 보이는 그녀의 왼쪽 손목엔 평소 착용하던 두꺼운 줄의 시계가 없었다.

그리고 광림 봉인술식의 인장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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