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179화 (179/925)

38. 청소년 수련회 (9)

석모도에 발생한 이계는 총 셋.

하나는 1학년 1반의 부반장인 유상훈이 맡은 북서쪽의 기장섬.

둘은 1학년 2반의 반장 주수혁이 방어 중인 북동쪽의 상주산.

1학년 2반 남학생이 더 많다는 이유로 주수혁이 상주산 쪽을 맡게 되었다.

바다를 끼고 있어 방어가 용이한 기장섬에 비해 지형적, 수적으로 열세인 상주산 쪽은 점점 진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윤섭아! 앞으로 너무 나갔어!”

“끄악!”

서걱!

방윤섭이 야수종 에너미의 발톱에 몸을 꿰이기 전, 엑스자로 교차된 쌍검이 에너미를 갈랐다.

선두에서 에너미를 도륙하는 주수혁의 대활약 덕에 아직 중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점점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마땅한 장비와 공략 정보도 없이 자다 일어나서 싸우는 것치곤 굉장히 선전하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이계가 발생하고 시간이 너무 지났어. 에너미의 수가 감당이 안 돼!’

주수혁은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방윤섭을 비롯한 근접형 플레이어 사이에서 점차 실수가 늘어 갔다.

‘거기에 에너미가 재생될 때까지의 간극이 점점 좁혀지고 있어. 이계의 틈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빨리 공략해야 하는데, 공격대를 짤 여유가 없어!’

상주산에 발생한 이계는 둘이다.

주수혁이 홀로 공격대를 맡아 두 개의 이계를 공략하는 사이에 남은 이들이 버텨 줄지 의문이었다.

“디바이스는 연결됐어? 위성 정보는?”

“먹통이야! 디바이스가 비행 모드에 들어간 거 같아!”

“비행 모드에 들어가도 플레이어 협회의 위성 정보는 수신하게 되어 있는데…….”

주수혁의 물음에 연락책 역할을 맡은 보조계 스킬을 주력으로 하는 학생 둘이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통신이 끊긴 것 외에도 문제가 있어. 선생님들이 한 명도 안 온다는 건 이상해. 다른 곳에서도 뭔가 있는 거야.’

주수혁은 그렇게 판단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해 봤자 상황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반 아이들의 동요만 부르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촤악! 퍼억!

복잡한 사고를 이어 가면서도 주수혁은 쉬지 않고 애검 두빛나래를 휘두르며 전장이 된 상주산을 누볐다.

천리안 스킬을 사용하여 다른 지역을 확인할 여유도 없이 전황이 이어졌다.

주수혁은 초조한 기분을 다스리려 애썼다.

‘괜찮을 거야. 다른 아이들을 믿자!’

여기에는 자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선생님을 부르고 주민을 대피시키겠다고 한 맹효돈과 조의신을 떠올렸다.

주수혁의 움직임이 한결 가벼워졌을 때였다.

탕! 탕탕탕! 탕!

격발음이 야산을 뒤흔들었다.

들린 발포음의 횟수만큼 에너미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런 어둠 속에서 에너미만을 정확히 피격할 능력을 가진 슈터는 은광고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다인아!”

얼굴도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멀리 있었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지원이 왔다! 1반 반장이야!”

“아오, 죽는 줄 알았네.”

“새끼, 엄살은. 아, 이제야 좀 쉬겠네.”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안다인과 1반 여학생들의 등장에 눈에 띄게 활기가 돌았다.

“다들 무사해? 부상자는?”

“경상자가 몇 명 있어. 전열을 다시 짜고 싶은데.”

“그래. 우리 반 애들이 앞으로 나갈게.”

주수혁과 안다인이 지휘를 하고 두 사람이 공격에 가담하자 단숨에 전열이 가다듬어졌다.

팀플레이 연습은 주로 반별로 진행하는데, 두 사람은 오랜 콤비인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계의 틈 사이에서 생성된 모든 에너미를 순식간에 정리한 후, 같은 생각을 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공격대를 편성할 거야!”

은광고 교칙 상 1학년 1학기에는 이계의 내부로 잠입해 공략하는 공격대 참가가 금지되어 있었다.

지금은 1학기 종업식은 치렀지만 2학기가 시작되지 않은 여름방학이므로, 교칙을 따지면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교칙에 분명하지 않은 곳이 남아 있는 원인은 전례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지금.

1학년 1학기를 막 마친 학생들만으로 고난이도 이계를 공략하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    *    *

수련회가 시작되기 전, 조의신이 권제인과 탁거산 두 명예 교사를 불러내 제안했다.

—수련회 마지막 날에는 장기자랑이 예정되어 있어요.

—두 분이 하시는 깜짝 공연, 바이올린 연주와 무술 시연을 가장해서 오셨으면 좋겠어요.

—둘째 날 밤 전까지는 ‘플레이어의 등대’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도착하셔야 해요. 수단은 맡길게요.

그 말을 따라 영원의 호수 팀의 지원으로 권제인과 탁거산이 박스에 몸을 감추고 이동했다.

편한 여행길은 아니었지만 숙련된 플레이어인 둘에게 그리 고된 일은 아니었다.

이상이 감지되어 박스 밖으로 탈출했을 때는 섬 지킴이 김 씨와 조의신의 부탁을 받고 막 등대에 도착한 함근형, 그리고 오는 중간에 함근형과 우연히 마주쳤다는 문새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섬 지킴이 김 씨의 안내를 받아 이동해 목련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바다의 광기와 대처하는 지금에 이르렀다.

상륙한 에너미들은 탁거산과 함근형의 활약으로 문제없이 소탕되고 있었지만, 문제는 저 바다의 벽이었다.

‘레나의 친구가 이렇게나 무거운 힘을 짊어지고 있었다니.’

대략의 설명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김유리가 억눌러 온 힘과 그녀의 광림이 부른 광기는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고 있었다.

권제인이 저 광기를 잠재우지 못하면 크고 작은 피해가 나올 게 분명했다.

‘재러드나 다른 팀메이트와 함께 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최소의 인원으로 움직이느라 그러지 못했어.’

권제인의 광림 ‘수면의 요영(謠詠)’은 연주의 영향을 받았고, 그 연주력에는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었다.

무대, 반주, 관객, 악기, 그녀의 기분 등등.

그런 그녀의 광림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팀메이트가 옆에서 보조해 줬다면 광림의 출력이 상승했을 것이다.

아쉬움을 접고 연주에 집중하려 했지만.

[권제인.]

변조기를 거치지 않은 달콤한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맨체스터 대이계 공략 당시 꿈과 현실의 경계에 갇힌 권제인이 몇 번이나 들었던 나비의 목소리였다.

[권제인,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야?]

권제인의 어깨에 사뿐히 앉은 나비가 속삭였다.

“정보를 준 건 너잖아.”

[그건 호족을 이용하라고 건넨 정보야. 이곳에 당신을 부르기 위해 그런 게 아닌데.]

나비가 편린을 뿌리며 권제인을 방해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당신의 혈육을 데리고 물러나. 목련 아가씨의 광림의 폭주를 막는 건 쉽지 않아.]

“……유리가 이렇게 된 건 당신이 꾸민 짓이야?”

[그분의 손에 ‘제물’이 들어가면 번거로워. 목련 아가씨를 이용해 제물을 비롯한 섬 전체를 지워 버리면 발목을 잡을 수 있는걸.]

권제인은 가슴 위에 서리가 내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가족과 친구가 나비의 손에 이용당하다 죽었던 옛일이 떠올라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이대로 목련 아가씨의 광림을 저지하는 데에 실패하더라도 당신은 살아남겠지. 하지만 당신의 혈육은 어떨까? 지금이라도 연주를 멈추고 데리고 피신하는 게—]

퍽!

“잡것이 꼬였구나.”

이상을 눈치챈 탁거산이 한주먹에 이능파로 구현된 나비를 박살 내 버렸다.

권제인이 탁거산에게 눈인사를 하고 다시 연주에 집중하려 했지만, 나비로 인해 무너진 페이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연주가 무너져 해일이 넘실거렸다.

‘침착해야 해, 연주에 집중하자……!’

그 생각과 달리 처음으로 음이 어긋났다.

이미 사라진 나비령의 힘의 흔적이 권제인의 귓가에 남아 웃음을 흘리는 것 같았다.

그때.

미숙한 선율이 권제인의 귓가에 닿았다.

권제인의 연주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넣은 화음이었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의 연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조카가 권제인의 연주에 맞춰 이능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    *    *

진족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이템창을 열어 상보심금파를 꺼내며 비행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새카만 자루를 움켜쥐기 무섭게 대검을 들고 있는 진족이 날린 검압에 직격했다.

“……!”

왼쪽 종아리가 불타는 감각이 들었다.

고통은 참을 만했지만 밸런스가 무너져 비행 스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저 진족은 대화할 틈도 주지 않고 추락시킬 생각인 듯했다.

“바로 떨어지진 않는군.”

진족이 날린 검격이 다시 나를 향했다.

이번에 저자가 노리는 건 내 목이었다.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대검의 풍압에 밀려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거세게 흔들렸다.

쉬이익! 카앙!

살기에 반응해 일격을 막아 냈지만 상보심금파를 쥔 오른팔이 저릿저릿했다.

왼팔은 업혀 있는 사월세음을 지지하는 중이라 상보심금파를 두 손으로 들 수 없었다.

“이상하군.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귀물(貴物)인데.”

진족이 검게 물든 상보심금파를 주시했다.

“죽인 다음에 알아보면 되겠지.”

나직하게 말한 진족이 다시 검을 들었다.

상보심금파를 의식한 듯 자세를 고쳐 잡는 사이, 그 진족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자는 게임 속에서 본 적이 있어. 이 섬으로 끌려오던 에너미의 ‘주체’다!’

이번 습격을 이끈 리더 격에 해당하는 진족이 틀림없었다.

‘진족이라는 점 외에 정보가 없는데……!’

이 진족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캐릭터가 누구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현재 플레이어의 궤적으로 사용 중인 사월세음으로서는 상대가 안 되는 건 확실한데…….

파팟!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이번엔 대검을 든 이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대검의 날과 상보심금파의 이빨이 부딪쳐 불꽃이 번뜩였다.

동시에 오른팔에 격통이 달렸다.

대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진공파를 날리기라도 한 걸까.

오른팔이 길게 베여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나왔다.

발과 팔에 입은 검상이 타오르는 것처럼 열을 피웠다.

‘막았는데도 대미지를 입었어!’

통증으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 가장 범용성이 넓은 광림을……!’

그렇게까지 생각했을 때, 내 피를 머금은 상보심금파가 빛을 뿜어냈다.

파아앗!

빛을 경계한 진족이 내게서 멀리 물러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빛이 멎은 순간 보인 건 거대한 체스보드와 밤하늘이었다.

어느 사이엔가 통증은 멈춰 있었고, 등에 업혀 있을 사월세음도 보이지 않았다.

[내 새로운 주인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멋대로 개입하였다.]

상보심금파의 목소리를 듣고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였다.

이곳은 이전에도 봤었던 내 정신세계였다.

사고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상보심금파가 배려해 준 것 같았다.

키모폴레이아와 은련관에서 경험한 것처럼 아주 짧은 순간을 길게 느끼도록 말이다.

[길게 버티지는 못한다. 저 ‘흉내꾼’에 대응할 수를 찾도록.]

흉내꾼?

상보심금파는 이 진족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저자가 누군지 알아?”

[이 구치정파와 맞댄 적이 있는 상대니까.]

좋은 피스를 얻었다.

저강렵이 상보심금파를 맞댄 자에 한해서라 해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컸다.

[저자는 웅족 수장의 오른팔이다.]

웅족 수장의 오른팔.

거물을 상대하게 되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상보심금파의 목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왜 웃는 거지? 비록 ‘흉내꾼’이지만 인간이 감당하기에 어려운 자다. 바로 모든 갈래를 개방해라. 알았나?]

“한 손으로는 갈래를 못 쓰잖아. 저자는 사월세음을 노리고 있어. 손을 놓으면 걔가 위험해져서 안 돼.”

[네가 이대로 죽으면 그 소년도 더 위험해지겠지.]

상보심금파는 맞는 말밖에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제없었다.

“현실로 돌아가자.”

상보심금파는 바로 응하지 않았다.

검은 자루와 날이 손에서 불만을 표현하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게 느껴졌다.

[……정말로 수상하게 웃는군.]

무기에게도 수상하다는 취급을 받고 말았다.

상보심금파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시야가 하얗게 물들고 등에는 온기와 무게가, 손과 다리에는 격통이 돌아왔다.

나는 지체 없이 광림을 발동했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나는 웅족에 대항하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비록 이 캐릭터는 강력한 디버프를 받은 상태였지만, 그 상태 이상은 특정한 적을 상대할 때에 한해 해제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건 백호군의 카드였다.

“천신이시여, 부디 허락을.”

이 말을 마치자 내 이마에 영롱한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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