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290화 (290/925)

50. 세트 피스 (9)

도시후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아는 척을 했다.

지나치게 쌩쌩하고 건강해 보였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괜히 거슬렸다.

‘저놈 때문에 장남욱이 고생했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후 탓이 아니라고 하지만 철없이 웃는 걸 보니 그냥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옆에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같은 반 아이가 없었다면 못 본 척했을 텐데.

대충 손을 흔들며 화답했더니 도시후가 밝게 웃다가 이번엔 다른 쪽으로 갔다.

도시후가 간 곳은 응원단 쪽이었다.

‘어, 저건…….’

도시후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사관학교 생도 하나를 툭 치곤 실없는 얼굴을 했다.

그 장난질에 안경을 떨어뜨릴 뻔한 인물이 고개를 돌려 도시후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도시후가 장난을 한 상대는 장남욱이었다.

‘장남욱이 어제 응원전에서 지지 않겠다고 했었지.’

일정 문제 때문에 현재 스포츠 교류전은 시간대가 겹치는 경기가 많았다.

경기가 겹치니 은광고, 사관학교의 응원단도 인원을 분산시켜서 배치하게 되었다.

사관학교 측에서 기왕 응원하는 거 친구가 주전으로 나오는 경기를 응원하라며 이쪽으로 보냈나 보다.

장남욱의 잔소리가 길어지고 있을 때, 둘 사이에 누군가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은광고의 응원단복을 입은 인물은 내가 잘 아는 인물이었는데,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새하얀 응원단복을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유상희다. 유상훈이 출전해서 특별히 응원하러 왔구나.’

유상희의 등장에 순간 사관학교 쪽에서 들썩였다.

은광고 최강의 힐러 치유광풍 유상희의 명성은 사관학교 내에서도 널리 퍼져 있나 보다.

장남욱과 도시후와 인사를 마친 유상희는 몸을 풀고 이온 음료를 마시던 유상훈에게도 말을 걸었다.

친누나가 응원하러 온 게 민망한 기분인지 유상훈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유상희 뒤로 보이는 저 추한 그림자는…….’

추한 그림자의 정체는 유감스럽게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

어느 사이엔가 유상희 뒤에 서 있는 도원우가 보이자 대놓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도원우의 육촌 동생인 도시후가 스타팅 멤버는 아니지만 벤치 멤버로 이름을 올렸고, 일단 은광고의 학생회장이자 응원단 소속이니 와도 이상할 게 없긴 했다.

그래도 유상훈의 사기가 걱정되었다.

“곧 시작하나 봅니다. 스포츠 경기를 현장에서 관람하는 건 처음이라 기대됩니다.”

전광판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이 시합 개시 시간에 가까워졌다.

각 팀의 스타팅 멤버가 센터라인 주변에 정렬해 상대 팀 선수와 주심과 악수를 했다.

부심으로부터 공을 건네받은 주심이 공을 한 번 높게 들어 보이자 관중석에서 환성이 터졌다.

곧 센터서클 쪽으로 들어간 주심이 공을 높게 하늘 위로 올리자 각 팀의 센터가 뛰어올랐다.

점프볼로 선제공격권을 가져간 건 사관학교 고등부였다.

“아, 아깝다!”

“센터 두 분의 신장이 비슷해서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점프력은 사관학교의 주장이 더 우수하군요.”

권레나와 목우람이 옆에서 아쉬워했다.

하지만 아쉬워하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팁오프 이후 두 팀은 쉬지 않고 속공을 가해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기 바빠졌다.

환성과 탄식 속에 스코어가 쉼 없이 바뀌는 와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유상훈의 활약이었다.

“부반장의 친구가 또 득점했습니다!”

“지금 은광고가 딴 43점 중 혼자 33점을 득점했어!”

1쿼터를 지나 2쿼터에 들어가자 은광고에서 유상훈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유상훈에게 볼이 가고, 슛 자세에 들어가면 곧바로 공이 들어갔다.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지자 사관학교 고등부 측에서 유상훈을 견제했다.

체격 차를 이용해 유상훈을 누를 생각인지 유상훈을 마크한 건 사관학교의 센터였다.

유상훈의 기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1 대 1로 마크가 붙는 경우도 상정해 훈련한 듯했다.

상대의 진영을 파고드는 걸 포기한 대신, 3점 슛 라인 밖에서 슈팅을 날려 대는 유상훈은 여전히 무서운 득점력을 유지했다.

2쿼터가 끝나기 몇 초 전, 유상훈에게 다시 공이 갔다.

“……잠깐, 저건 좀 위험한 것 같습니다만.”

목우람의 말대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관학교 고등부의 센터는 2학년 생도였는데, 다소 성질이 급해 보였다.

유상훈의 페인트 동작에 낚인 센터가 공을 향해 손을 크게 뻗었다.

유상훈은 그 손을 피해 몸을 틀며 멀리 떨어진 골대를 향해 슛을 쐈다.

그림 같은 턴 어라운드 페이드 어웨이 슛에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퍽!

공은 이미 유상훈의 손을 떠났는데, 센터의 팔꿈치가 유상훈의 머리를 가격했다.

이 소란스러운 경기장에서 그 타격음이 들릴 리가 없는데,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삐이익!

유상훈이 던진 슛에 스코어가 바뀐 직후, 2쿼터의 종료를 알리는 버저와 파울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쓰러진 유상훈은 바로 일어나지 못했는데, 몰려든 심판과 선수들 사이로 핏자국이 보이는 게 심한 상처인 듯했다.

‘유상훈……!’

유상훈을 걱정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유상희가 응원단석에서 내려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유상훈 쪽으로 달려가려는 걸 도원우가 막았다.

도원우는 유상희가 치료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교섭하려는 듯 주심에게 다가갔다.

‘여기에서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다.’

다행히 이곳에는 유능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많았다.

*    *    *

의료진이 아닌 응원단으로 등록된 유상희가 선수를 상대로 의료 행위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도원우는 은광고의 학생회장답게 빠르게 협상을 마쳤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쪽에서 책임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도원우는 유상희가 유상훈의 친누나이며 협회에서도 이명을 받은 유능한 힐러임을 어필했고, 문제가 발생할 시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것이라 거듭 강조했다.

부심은 고민 끝에 감독의 허락이 있다면 유상희가 치료 행위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

도원우가 초조한 얼굴로 이쪽을 보는 유상희에게 협상 결과를 전했다.

유상희에게 사용하는 말투는 방금까지 정중하게 협상을 이끌어 간 학생회장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가볍고 방정맞았다.

“상희야! 허락받았어, 처남한테 가자!”

“처남?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럼 상훈이한테 가 볼까. 고마워.”

유상희가 냉정하게 말했지만, 도원우는 유상희와 유상훈을 도왔다는 사실에 그저 기분이 좋았다.

기분 좋게 유상희의 뒤를 따르는 사이 이쪽을 보는 도시후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시후가 오기 전에 이상한 말을 했는데.’

시합 전, 도시후는 도원우에게 농구 시합이 끝나면 시간을 내 달라고 했다.

―상희 누나 건으로 얘기할 게 있는데.

―될 수 있으면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

사관학교나 집, 두 곳을 오가는 도시후가 유상희와 접점이 있을 리가 없는데.

도원우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체육관 시설 안내도를 머리에 떠올렸다.

도시후의 실없는 장난질일지도 모르겠지만, 유상희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    *    *

마침 2쿼터가 끝나 휴식 시간 동안 유상훈의 치료를 마쳤다.

응원단으로 온 유상희가 치료 스킬을 쓰겠다고 자처해 유상훈은 말끔히 나았다.

유상훈은 멀쩡하게 다시 일어났지만, 에이스 슈터가 가격당해 피를 쏟는 충격적인 장면을 눈앞에서 본 관중들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사관학교의 코치와 센터가 직접 은광고로 가 고개를 숙였는데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유상훈을 팔꿈치로 찍은 사관학교 센터를 향해 야유가 쏟아졌는데, 만약 응원단이 관객을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물통이나 폭탄 아이템을 투척하는 플레이어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관학교에서 선수 둘을 교체했군요.”

“아까 반칙한 선수가 나갔어!”

업데이트된 엔트리 표를 홀로그램으로 띄운 아이들이 시합 전 대화를 나눴다.

사관학교 고등부에선 센터와 스몰 포워드를 교체했다.

교체되어 새로 들어온 선수 중 하나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새로 추가된 항목은 ‘SF 도시후(1학년)’.

도시후가 3쿼터부터 코트 위에서 뛰게 되었다.

‘아마 유상훈의 마크는 도시후에게 시킬 생각이겠지.’

도시후의 체격은 작지 않은 편이지만, 유상훈을 마크하던 센터보다는 덜 위협적인 체격을 갖고 있고 또 유상훈과 친분이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도시후를 투입하기로 한 것 같았다.

센터를 뺀 건 숨만 쉬어도 야유를 받는 중인 그 선수를 보호하기 위함일 거다.

“어? 왜 바로 시작 안 하지?”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둘을 위해 간략히 설명했다.

“주심이 플래그런트 파울을 선언해서 유상훈이 자유투를 얻었어. 3쿼터 경기는 자유투가 끝난 뒤에 은광고가 공격권을 갖고 시작할 거야.”

유상훈은 방금 부상을 입었다가 회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완벽한 슛을 쐈다.

가볍게 자유투를 성공시킨 유상훈이 가볍게 주먹을 들어 올리자 관객들이 아낌없이 환호를 쏟아 냈다.

그렇게 재개된 경기에선, 사관학교 고등부가 좀 더 좋은 움직임을 보였다.

크게 벌어져 있던 스코어의 차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저분, 시합 전에 부반장과 인사한 사관학교 생도 맞죠? 블로킹을 굉장히 잘하시는군요.”

“아, 또 막혔어!”

유상훈, 도시후를 날려 버리지 않고 뭐 하는 거냐!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도시후는 얄밉게 수비를 잘했다.

도시후는 저번에 1학년 끼리 치른 농구 시합 때도 주수혁을 기가 막히게 막더니,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도 유상훈은 틈만 나면 다시 슛을 쏘고 다른 은광고 선수들도 안정적으로 점수를 뽑았다.

삐이이!

이윽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경기 결과는 10점 차이로 은광고의 승리, MVP는 유상훈이었다.

“이겼어! 막판에 점수 차가 더 좁혀져서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인상 깊은 경기였습니다. 특히 부반장의 친구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가능하면 다음 경기도 또 보고 싶습니다.”

응원단 쪽에 인사하러 온 농구팀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자리를 뜬 후에도 우리 반 아이들은 농구 시합 이야기를 했다.

은광고에 가까워지자 아이들의 화제는 저녁 메뉴로 바뀌었다.

오늘 농구를 보러 온 멤버 셋 전원이 기숙사생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밥을 같이 먹으리라 생각한 것 같았다.

아쉽게도 나는 그 자리에 함께하기 어려웠다.

“미안, 저녁밥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경기는 즐거웠지만 마음에 뭔가 계속 걸렸다.

오늘 경기를 같이 보러 갈 급우 중 하나가 없었으니까.

“부반장, 어디 가십니까?”

“의신아, 어디로 가?”

황지호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착한 둘이 같이 가려 할지도 몰랐다.

나는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잠깐 어디 들를 곳이 있어서.”

*    *    *

황명호 대저택.

대저택에 가기 전, 쇼핑하는 동안 백호군에게 메시지를 남겼더니 배려심 깊은 내 주력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올무와 함께 나를 마중 나왔다.

왕왕!

착한 올무는 저번에 내가 멍청하게 올무의 깊은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서운하게 굴었는데도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동용 셔틀을 타고 미로정원을 통과하는 사이에 올무에게 몇 번이나 사과했는데, 올무는 관대하게 내 모든 사과를 받아 줬다.

올무와 함께 현관문을 열자 적호가 우리를 맞이했다.

은호의 후예들은 자리를 비웠는지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조의신.”

그때였다.

딩동.

디바이스가 메시지 수신을 알렸다.

나뿐만이 아니라 백호군도, 적호도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았다.

메시지를 보낸 건 황지호였다.

[황지호] 5층으로 올라오도록.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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