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03화 (303/925)

51. 학생 대표 총선거 (11)

총선거 기간과 중간고사 준비 기간이 겹친 한 주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개인적으로 시험에 대비하고 반 아이들의 공부, 주로 맹효돈의 수학 공부를 돕는 데 힘쓰고, 또 염준열을 비롯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의 활약을 지켜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총동아리회장 선거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어. 게임 속에선 없던 일이었는데.’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가 죽어 비상시나 다름없는 은광고에서 건전한 토론을 나눌 시간이 없어서 그랬던 걸까.

플마고와 달리 혼돈과 파괴의 총동아리회장 선거전은 올해부터 투표 방식이 바뀌었다.

각 동아리와 소모임의 대표들이 뽑던 방식에서 동아리에 소속된 은광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투표권을 갖게 되어 동아리 임원이 아닌 1학년생인 나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접 투표가 시행된 것도 있어 후보가 난립하던 총동아리회장 선거는 더욱 과열되었다.

이를 취재하는 문새론은 신문부 부장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할 정도로 몹시 신나 보였다.

[문새론] 기사 작성 끝! 이제 선거 운동 과정에서 사건 있으면 그때 추가 취재할 예정이야.

[문새론] 덤으로 총동아리회장 후보들 공약 전부 요약함!

[문새론] 신문부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아직 조회수가 너무 적다ㅠㅠ 다들 홍보 좀요!

문새론은 이번에 새로 선거 방식이 개정된 과정 그리고 문과와 이과 과목 관련 계열, 체육 계열, 예술 계열 삼파전으로 갈린 총동아리회장 후보 세력 구도 분석을 기사로 냈다.

덤으로 후보들의 공약을 요약했는데 평가가 매우 좋았다.

처음으로 시행되는 총동아리회장 선출 방식과 후보가 많아 감을 잡지 못하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후보에 그 캐릭터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문새론의 기사를 읽던 중에 후보 명단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 이름을 발견했다.

게임 속에서 허수아비 학생회장이 되는 게 싫어서 양주를 마시고 인증샷을 올린 2학년 도서부 학생이었다.

기다려 봐도 양주 흡입 인증샷이 안 올라왔고, 공약 선정에도 공을 들인 걸 보니 이번엔 자의로 선거전에 뛰어든 게 분명했다.

‘공약 내용도 훌륭하고, 동영상으로 한 후보 연설도 괜찮았어.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되겠지.’

한편, 현재 나는 중간고사와 학생 대표 총선거 외에도 주시하고 있는 사항이 있었다.

바로 리플레이 건이다.

나는 그 이후로 손민기에게 리플레이를 사용했는데, 조금 문제가 생겼다.

“예전과는 다른 패턴이 발견됐어.”

“다른 패턴?”

점심시간, 천익산.

슬슬 단풍이 시작되려는지 잎의 색이 조금씩 변해 있었다.

황지호에게 리플레이 건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더니 이렇게 말하며 천익산으로 불러내 여기로 오게 되었다.

—마침 천익산에 첫 단풍이 들었지. 거기에서 이야기할까.

어차피 결계를 치고 대화를 할 테니 대충 아무 곳에서나 이야기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계절감과 풍류를 즐기는 늙은 호랑이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막상 와 보니 정취도 있고 피로도 풀리는 것 같았다.

“손민기에게 그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초기화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어.”

“유상훈에게 두 번째로 사용할 때는 짧아졌다고 하지 않았나?”

“응.”

유상훈에게 리플레이를 두 번 사용했을 땐, 이틀에서 하루로 스킬 초기화까지의 시간이 줄었다.

그에 반해 손민기의 경우, 처음 4일이었던 리플레이 초기화까지의 시간은 일주일로 늘어났다.

또한 아직 리플레이의 단계는 상승하지 않았다.

‘여전히 황지호를 선택할 수 없어. 초기화 시간이 길어지고 있으니 리플레이 사용 횟수를 빠르게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인데…….’

리플레이를 손민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시험 삼아 악몽을 꾸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닌 변순회와 최편득을 택해 봤는데, 이들은 황지호와 마찬가지로 선택이 불가능했다.

‘선택이 될 것 같은 캐릭터가 있긴 한데.’

아직 한 번도 선택하지 않았으나, 유상훈, 장남욱, 손민기와 공통점을 가져 선택이 가능할 것으로 추측되는 캐릭터가 있다.

그러나 시험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이름을 대면 호랑이들이 날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 특히 적호가.’

그 당시 13조의 실기 시험장에 있었으면서 리플레이 목록에 뜬 김신록.

후예라고 하나 그 자리에 있었으며, 그 셋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김신록은 선택이 가능할 것 같았다.

“조의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

황지호가 눈을 가늘게 뜨다 홀로그램을 하나 전개해 내밀었다.

“손민기의 관찰 자료다. 확인해 보겠나?”

그 안에는 시간대별로 찍은 손민기의 영상과 그 내용 요약이 정리되어 있었다.

손민기는 불면증과 틱 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리플레이를 사용한 이후 갑자기 의미 모를 욕을 하거나 발작하듯 몸을 떠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

그의 팔다리가 잘린 계기가 된 사건을 배경으로 목숨을 잃는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으니 이를 견뎌 내는 건 보통 정신력으로는 해내기 힘들 것이다.

“이능파 검사는 아직 안 했어?”

“그의 외조부가 우리를 경계해 설득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납치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어제 설득에 성공했다.”

손민기의 외조부는 황명재단을 경계했으나 척 봐도 미쳐 가는 손주를 방치할 수 없어 이쪽에 맡기기로 한 듯했다.

“이능파 검사를 비롯한 메디컬 체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보여 주지. 그런데, 조의신.”

“왜?”

“아까 하려다 그만둔 말이 있지 않나?”

노친네의 쓸데없는 예리함이 발휘되었다.

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내가 답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추측하겠지. 유상훈, 장남욱, 손민기와 김신록의 공통점은 뻔히 보이니까.’

고민 끝에 말했다.

“초기화 시간이 길어지고 있으니까 손민기에게 계속 사용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 사용하는 대상의 폭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도 했고.”

“……김신록 이야기군.”

황지호는 벌써 짐작한 듯했다.

내가 말하기 꺼리는 걸 보고 더 쉽게 그 후예의 존재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적호와 김신록에게 전해 두지.”

“……괜찮겠어?”

반대할 줄 알았는데 황지호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황지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네 친구인 유상훈과 장남욱에게는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김신록은 5천 년을 산 호족의 후예다. 어린 인간이 감당했으니, 그도 해낼 거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걸렸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리플레이가 초기화되면 선택지의 폭이 늘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제안할 거면 내가 할게.”

“이건 내 판단이다. 내가 하지.”

결과적으로 리플레이가 초기화되는 시기에 황명호 대저택에서 같이 적호와 김신록을 설득하기로 했다.

리플레이 초기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으니 아마 10월 초는 되어야겠지만.

내가 그렇게 설명하자 황지호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10월 초에 뭐가 있는 건가?

“시기가 좋군. 10월 초에는 시간을 비워 두도록.”

“어차피 중간고사 준비 기간이라 약속은 안 잡고 있어.”

“하하하, 훌륭하구나.”

노친네는 점심시간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    *    *

학생 대표 총선거가 끝나고 개표도 완료되어 내년 은광고를 이끌어 갈 학생 대표가 결정되었다.

지익회장 계이담.

선도부장 천동하.

그리고 학생회장은 염준열이었다.

[염준열] 스승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은광고의 학생회장이 되겠습니다.

[염준열] (사진)

내 제자는 개표 결과가 발표되기 무섭게 바로 연락을 했는데, 어찌나 빠르게 메시지를 날렸는지 개표 현장에 있던 신문부원보다 소식이 빨랐다.

내 제자는 학생회장이 됐는데도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한 기특한 제자였다.

‘총동아리회장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지.’

총동아리회장 선거의 경우 표차가 근소하여 세 번이나 재검표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 결과, 플마고에선 양주 인증 사건에 휘말렸던 인물이 총동아리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좋은 소식은 그 외에도 더 있었다.

독고미로의 선전이 그랬는데, 이 소식은 시험으로 지친 아이들에게 활력을 줬다.

“다들 소식 들으셨어요? 이대로 가면 미로가 플레이리스트 최후의 4인 안에 들 것 같아요!”

“맞아. 이번 미션곡 음원 성적 보니까 4인은 그냥 갈 거 같아. 저번에 교류전 개막식 때 들었던 듀엣 미션곡도 좋았는데, 이번에 한 아이돌 노래 커버곡도 좋았어.”

“요새 공부할 때랑 그림 그릴 때 미로 노래를 들어.”

“결승까지 가면 플레이리스트 촬영 때문에 중간고사 끝나도 등교 못 하겠네.”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건 10월 초.

플레이리스트 최후의 1인이 결정되는 건 10월 말.

일정을 고려하면 독고미로의 등교는 멀어졌지만, 아이들은 아쉬운 마음보다 기쁜 마음이 커서 한마음으로 독고미로를 응원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독고미로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레나가 안 보이는데.”

야간 스터디가 시작된 시각.

오늘은 일반 에너미학 스터디가 없어 반 스터디에 합류한 한이가 물었다.

“레나는 오늘 레슨 있다고 했어요.”

“아, 걔 저번 시험 때도 레슨 받으면서 시험 쳤지.”

“역시 레나 님. 훌륭하십니다!”

한이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한이의 표정을 보니 권레나가 요새 힘들어 한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황지호나 김유리 외에도 권레나가 어딘가 이상하게 군다는 걸 눈치챈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권레나가 권제인을 만나서 조금 쉬고 왔으면 좋겠는데.’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권제인은 서툰 사람이었으니까.

*    *    *

영원의 호수 팀 빌딩, 권제인의 연습용 홀.

오늘 이곳에선 권제인이 아닌 권레나가 홀 중앙에서 백금색의 이능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지금 권레나가 연습하고 있는 주법은 데타셰로, 여러 음을 활의 방향을 바꿔 가며 연주하는 주법이었다.

그러나 부드럽게 이어져 들려야 할 바이올린의 소리는 몇 번이나 끊겼다가 들리기를 반복했다.

‘포지셔닝이 제대로 안 돼서 정확한 음정에서 벗어나고 있어. 활이 밀착도 안 됐는데 보잉 하는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갔잖아.’

바로 앞에서 제자의 연주를 듣던 권제인이 한 손을 들어 굳은 입가를 감췄다.

연주는 연주자의 마음을 반영한다.

권레나의 미숙한 연주에서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이 묻어나 듣는 권제인도 괴로운 기분에 잠겼다.

평소라면 가감 없이 냉정하게 소감을 말했겠지만, 지금은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번보다 더 엉망이야. 반 아이들과 스포츠 교류전을 관람하고 기분 전환을 했을 줄 알았는데. 이래 갖고선 연습이 안 돼.’

그렇게 생각했으나 하나뿐인 조카이자 제자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지 짐작이 갔기에 계속 모르는 척했다.

그러나 뜻하는 대로 연주를 하지 못하는 권레나는 그것대로 괴로워 보였다.

결국 권제인이 제자의 연주를 중단시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네, 감사합니다.”

권제인 심호흡을 했다.

별것 아닌 질문이었지만 용기를 내야 했다.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전부 알고 있으면서 무슨 일 있냐니.

권제인은 자신이 비겁한 질문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만약 권레나가 사정을 조금이라도 말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

긴 침묵 끝에 권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시험도 있으니까 당분간 레슨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세 기사의 맹세 건으로 준비해야 할 것도 있고.’

권제인의 고민이 깊어졌다.

조카와의 단란한 레슨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었기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레슨은 중단할게.”

“네? 저, 그러니까, 그게…… 선생님과는 바이올린 레슨 말고도 실기 연습도 하고 있으니까, 계속 뵙고 싶은데요…….”

권레나는 다급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제인은 다정한 목소리로 레슨을 받을 시간에 권레나가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마지못해 권레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권제인이 안심한 얼굴을 했다.

“질문이 있으면 얼마든지 연락해. 늦은 시각도 괜찮아. 내가 연락을 받지 않으면 재러드에게 연락하고. 바이올린이나 공부에 관한 상담이 아니어도 괜찮아.”

“……네.”

권제인이 등을 돌리자 권레나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지만, 권제인은 조카의 그런 표정을 보지 못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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