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17화 (316/925)

53. 두 번째 시도 (7)

저번에 보지 못한 것을 봤다는 김신록은 자신이 본 것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초반부는 지난번과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좀 더 세밀한 부분을 기억해 냈다는 것뿐인데…… 대체 뭘 봤다는 거지?’

꿈이라고 자각한 김신록이 첫 번째와 다른 전법을 취했을 가능성도 생각했으나 그가 취한 행동, 그 결과물은 전부 같은 듯했다.

“꿈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제 행동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네 행동으로 인해 꿈속에서 무언가가 바뀐 건 아닌 거군.”

“네, 달라진 건 학생들이 있던 체육관으로 간 후였습니다. 체육관에는 유상훈 학생, 장남욱 학생 그리고 손민기가 있었습니다.”

“조의신은 없었나?”

황호의 질문에 호랑이들의 시선이 잠깐 내 쪽으로 몰렸다.

김신록은 주저하다가 말했다.

“……네 번째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조의신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저번에는 그 네 번째 학생이 있었나?”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첫 번째 꿈에선 네 번째 학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 네 번째 학생이 있었다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김신록이 말한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학생은 이상한 행동을 하더군요. 처음엔 우왕좌왕하다가 벽을 보고 멈춰 서더니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김신록은 자신이 본 것을 묘사했다.

꿈속에서 김신록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으나 처음 꿈을 꿨을 때보다는 정신이 맑아 자신이 본 것을 온전히 떠올릴 수 있는 모양이었다.

김신록이 설명하는 네 번째 학생은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그 뒤로 이어진 김신록의 말에 기시감은 점점 강렬해졌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랜덤 박스를 열고…… 그 아이템 내용물을 확인하기 전에 리노세론의 스킬에 당했습니다. 저도 아마 그때 사망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네 번째 학생이 이상하게 움직이다가 벽을 보고 멈춘 모습.

초반에 멈춰 서서 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운 좋게 오래 살아남은 정황.

랜덤 박스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기 전에 리노세론의 스킬에 사망.

이건 내 플레이 기록과 일치했다.

‘김신록은 두 번째 리플레이에서 내 두 번째 시도를 본 거야……!’

나는 플마고를 하던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    *    *

국민망겜 ‘플레이어 마이스터 고교’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플레이한 모바일RPG 게임이었다.

체스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체스밖에 몰랐고 그 이후에는 현실에 치여서 게임을 할 겨를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친척 집에 신세 지는 걸 그만두고 싶었다.

장래성이 있으면서도 나의 적성에 맞는 대학의 학과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합격해야 했기에 치열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야 했다.

겨우 여유가 생겼을 때 접한 게 플마고 광고였다.

화려한 광고에 낚인 나는 곧바로 사전 등록자 300만 중 하나가 되었다.

마침내 수능이 끝나, 그 악명 높은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을 플레이하게 되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조연이 은광고등학교 입시 시험을 치르게 되어 서약서에 사인한 후 시험장에 입실하는 장면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이게 뭐야……?’

망연자실하게 붉게 물든 화면을 바라봤다.

나는 게임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고 그냥 화면만 바라보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허망하게 죽었다.

플레이어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몰랐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피투성이 감독관이 등장하더니 이상한 방송이 나오고, 실기 시험을 치르는 예비 고등학생들이 전멸당했다.

‘……뭘 어떻게 해야 했던 거지?’

스마트폰 베젤을 두드리던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얼어 있는 손을 녹이며 충격을 가라앉히고 있자니 화면에 변화가 있었다.

다정한 인상의 교사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체육관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적을 제압했지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절망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이 정지하고 선택지가 등장했다.

[1 . 튜토리얼을 마치고 계속 진행한다.]

[2 . 리플레이한다.]

비록 이 이벤트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멸했으나 게임은 계속 진행되는 듯했다.

그래도 두고 볼 수 없었다.

선택지 뒤로 보이는 처참한 광경을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나는 리플레이를 택했다.

플마고는 망겜답게 튜토리얼에서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기에 나는 한참을 헤매야 했다.

‘터치한 방향으로 캐릭터가 움직이는 거구나…… 처음부터 뭐라도 건드려 볼걸.’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도, 특정 동작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도 직접 움직이며 배웠다.

처음에는 잘못 눌러 캐릭터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기묘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게임상에서 움직이는 방법을 습득한 이후에는 메뉴에 대해 직접 터득해야 했다.

두 번째 시도를 했을 땐 당연히 뭐가 뭔지 모른 상태였다.

어쩌다 보니 몸을 돌려 벽을 보게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 문득 메뉴 버튼이 눈에 들어와 움직이는 걸 포기하고 메뉴를 확인했다.

‘아, 이 버튼을 누르면 게임 메뉴가 호출되는구나. 아이템창…… 이건 소지품을 확인하는 것 같고, 스킬이랑 광림? 뭐야, 다 비활성화되어 있는데. 아이템창을 보자.’

[보유 아이템 목록을 열람합니다.]

텅텅 비어 있을 가능성도 생각했는데, 아이템창에는 아이템이 있었다.

전부 학생이 소지할 법한 아이템이었는데 유독 튀는 게 하나 있었다.

‘아이템이 있어! 학생증, 수험증, 수험생 서약서 사본…… ‘수험용 랜덤 아이템 박스’?’

저 아이템 박스가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는 방법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급히 그 아이템을 사용하려 했지만, 게임 초보는 뭘 어떻게 해야 아이템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리버리하게 헤맨 후에야 사용법을 알게 되었다.

아이템을 길게 터치하자 사용 여부를 묻는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두 번 터치하는 걸로 안 되는구나. 사용한다를 누르면 이제 써지겠지.’

[수험용 랜덤 아이템 박스를 사용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뜬 후, 아이템 박스가 열려 아이템 카드가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무슨 아이템 카드가 뽑힐지 기대하고 있을 때였다.

파아아!

스마트폰이 빛을 뿜었다.

에너미가 스킬을 사용하는 이펙트였다.

랜덤 박스에서 뽑힌 아이템 카드를 확인하기 전에 화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어? 어…….’

내가 헤매는 사이에 제한 시간이 다 되어 마수가 광역 스킬을 사용했다.

이 마수가 소리를 내는 대상을 먼저 공격하다가 마지막에는 광역 스킬을 써서 마무리를 한다는 건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두 번째 실패 이후 게시판을 뒤지며 조작법을 익히고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을 읽으며 정보를 모아 다시 리플레이를 시도했다.

‘특정 아이템을 쓰면 시간을 끌 수 있어!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멸기를 쓰는데…….’

‘한 번만 더 해 볼까…….’

‘좀 더 세밀하게 조작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아.

‘……왜 다른 캐릭터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는 거야!’

내가 튜토리얼 클리어를 포기한 건 플마고의 시스템상 자유도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였다.

튜토리얼 클리어를 포기한 후에도 간혹 선택지가 떴다.

다음 이벤트로 진행할 것인가, 리플레이 할 것인가.

그때마다 나는 늘 리플레이를 택하고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다시 플레이했다.

리플레이만 한 건 아니었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내 플레이 기록을 단서로 공략법을 찾아 줄지 모르니, 내가 시도한 방법은 기록을 남기고 전부 공개했다.

[헐, 이걸 이렇게까지 리플레이하는 사람이 있네ㅋㅋㅋㅋㅋㅋ 한번 따라 해 볼까ㅋㅋㅋㅋㅋ]

[몇 번 해 보다 포기.]

[음……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됨? 뭐 저렇게 깨면 레어 아이템이라도 줌?]

[그런 거 안 주니까 하지 마ㅋ]

[이거 클리어 안 해도 진행돼요. 착한 사람은 이런 거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그만하고 현생을 살아 주세요…….]

처음에는 나와 함께 리플레이를 하던 유저들은 하나둘씩 학을 떼고 떠나갔다.

게임이 점점 망겜이 되어 아예 게임 자체를 안 하게 된 탓이 더 크긴 할 거다.

어느 순간부터 공략 글을 올려도 조회수가 오르지 않게 되었다.

[이 개망겜을 아직도 플레이하는 흑우가 있네.]

[저거 운영진에서 굴리는 알바 아님? 대체 얼마를 받으면 저 망겜을 이렇게까지 플레이함? 대단하닼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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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광고 댓글만 달리게 되었지만, 나는 계속 글을 올리고 댓글 창을 열어 두었다.

누군가가 다른 공략법을 찾아 줄지도 모른다.

난공불락이라 여긴 묘수와 전법도 몇 년, 혹은 몇백 년 후에 깨진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리플레이를 반복했다.

백호군을 끝으로 모든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망해 배드 엔딩을 맞이할 때까지.

*    *    *

머릿속에서 내가 플레이한 두 번째 시도와 김신록이 한 묘사와의 비교를 마치기 전에 김신록이 입을 열었다.

김신록은 조금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 네 번째 학생 말입니다만, 불확실한 부분이 있으니 다시 조의신이 능력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김신록의 저 말은 호랑이들에 의해 묵살되었다.

적호 주변에 울긋불긋한 이능파가 피어오르는 게 이제 눈앞에서 아들이 고통받는 걸 지켜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들아, 쉬고 있거라. 이제 말도 그만해라!”

“……적호의 말을 따르거라.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지만…….”

“그만 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적호가 화를 내고 황지호는 적호 편을 들고, 김신록은 우물쭈물하면서도 계속 저항했다.

저 모습을 보니 빠르게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족의 후예를 이렇게 고생시키고 성과를 안 낼 수는 없어. 결론을 내려야 해.’

김신록의 말에 리플레이의 정체가 어느 정도가 짐작되었다.

리플레이를 사용한 대상은 내가 한 리플레이를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았다.

튜토리얼에서 그랬듯 나는 결국 캐릭터를 다 살리지 못하고 다음 이벤트로 진행하였지만, 캐릭터의 죽음 등의 거대한 분기로 추측되는 부분에선 늘 리플레이하겠냐는 물음이 나왔다.

‘리플레이 기능은 플마고 속에서 그 질문이 등장하는 기점과 관계가 있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시스템 알림음이 들렸다.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의 차원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스킬 ‘이차원 미래 개변 적합체 전용 메뉴’의 리플레이 기능이 1단계에서 2단계로 상승합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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