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25화 (324/925)

54. 동생 (5)

천동하는 좋은 선배다.

명석한 두뇌와 우수한 이능을 타고난 천동하는 천재, 영재, 수재가 넘쳐나는 은광고에서 염준열과 수석 자리 다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천동하가 주변에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거나 이를 이용해 타인을 무시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하면서도 후배를 생각하는 배려심도 있었고 마진승이나 추한 버전의 도원우를 제어할 만한 강단도 있었다.

이 정도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니어도 존경할 만한 인물인데, 내 팬이라는 동생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나에 비하면 훨씬 좋은 형일 것 같은데.’

출국하기 직전에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동생들에게 답인사도 안 했던 나.

동생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천동하.

둘 중 누가 더 좋은 사람인지는 뻔했다.

왜 이런 좋은 사람을 형으로 여기지 않는 걸까.

남의 가정사에 관해 물어도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생분하고 무슨 일이 있나요?”

“나와 내 동생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기보다는…….”

천동하는 어두운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야.”

무슨 일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그 말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득 천동하와 염준열이 그의 동생을 두고 이런 대화를 한 게 떠올랐다.

―동하야, 너한테 동생 있었어? 외동인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내고 있어.

현 상황에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니, 그날 느낀 위화감이 더욱 커졌다.

‘천동하와 염준열은 가깝게 지냈어. 플마고에서 천동하가 목숨을 던지고 그 사실에 염준열이 폭주할 만큼 충격을 받았는데, 뭔가 이상해.’

이때 이상한 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천동하에게 동생이 있다는 걸 염준열이 몰랐다는 점.

둘째, 천동하가 염준열에게 동생에 관해 언급하는 걸 크게 꺼려 하고 표정이 지나치게 좋지 않았다는 점.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으나 개인사를 파고드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천동하는 내게 거듭 자신의 동생에 관해 언급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동생을 이유로 내게 선도부 자리와 연구소 인턴을 권하기까지 했다.

‘……이건 천동하 나름의 구조 신호일지도 몰라. 응해야 해.’

나는 천동하가 동생 이야기를 했던 것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내 동생이 무명의 초신성 팬이라서 신경 쓰였어.

―네 기사를 보여 주면 반응이 좋아.

―너보다 한 살 어려.

―입학시험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천동하가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동생 이야기를 늘 하는 것도 아니라 단서가 적긴 했지만 알게 된 정보는 몇 가지 있었다.

‘천동하의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어리고, 내 팬이야. 또. 입학시험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거겠지.’

거기에 더해 ‘네 기사를 보여 주면 반응이 좋아.’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마치 내 기사가 아닌 걸 보여 주면 별 반응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으니까.

‘혹시…….’

아직 추측의 영역이지만, 비관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어두운 표정을 했는지 천동하도 덩달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동생은 ‘발견된 당시’ 감금 증후군, LIS(Lock-In Syndrome) 판정을 받은 상태였어. 감금 증후군이라고 하기엔 뭔가 마음에 걸리는 점이 많은데, 현재 내 동생의 증상은 감금 증후군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감금 증후군은 의식, 인지 능력, 정신 기능은 멀쩡하나, 신체의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를 뜻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눈과 눈꺼풀뿐.

혼수상태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으나, 의식을 완전히 잃고 외부 자극에 거의 반응하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감금 증후군에 걸린 이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한다.

감금 증후군에 걸린 이는 말 그대로 몸 안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감금 증후군 외에도 걸리는 말이 하나 더 있었다.

“동생이 ‘발견된 당시’라는 게 무슨 뜻이죠?”

보통 동생에게 ‘발견되다’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마치 천동하는 동생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처럼 들렸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숨겨 둔 아들이 있었어. 동생의 존재를 알고 발견하는 게 좀 늦었지. 아버지의 유품에 남은 DNA로 세 번이나 검사를 했는데…… 전부 같은 결과가 나왔어. 그 아이는 내 이복동생이야.”

천동하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듣는 나도 충격받을 만큼 무거운 말이었다.

이미 작고한 부친에게 숨겨 둔 아들이 있는 것도, 그 아들이 감금 증후군이라는 걸 알고 천동하가 얼마나 놀라고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도 안 갔다.

‘……그래서 염준열이 천동하의 동생의 존재 여부를 몰랐구나.’

천동하는 계속 차분하게 말했다.

“내 동생과는 눈동자의 움직임, 눈을 깜빡이는 정도, 뇌파와 이능파를 통해 소통하고 있어.”

“제 기사를 보여 주면 반응이 좋다는 것도 혹시…….”

“그래.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뇌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신문 기사나 뉴스, 유명한 방송은 주기적으로 보여 주거나 읽어 주고 있었으니까.”

천동하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좋은 반응이 없었어. 내가 그 아이의 형이라고 밝혀도 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 오히려 뇌파나 이능파가 혼란스럽게 바뀌더라. 그런데…….”

천동하가 말없이 그의 말을 듣는 나를 보곤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기사를 보고 아주 좋아했어. 특히 네가 스테일메이트 배 체스 대회에서 우승한 기사를 보여 주면 기뻐했지.”

“왜 동생분이 제 기사를 보고 그렇게…….”

“그 이유는 나도 몰라. 한 살 차이 나는 중학생이 입학시험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게 아닐까 하고 추측 중이야.”

이 말을 끝으로 천동하는 입을 다물었다.

아침부터 후배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이야기를 한 게 미안한 건지, 천동하의 눈꼬리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천동하의 이복동생이 왜 천동하가 아닌 내 팬이 된 걸까.’

동년배에 그럴듯한 영웅담을 남긴 인물이 있으면 동경할 법하기도 하다.

천동하의 동생이 처한 환경을 고려해 보면 당시 같은 중학생이 보인 활약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대화에서 마음에 걸리는 점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에 관해 추궁하는 대신 다른 말을 하기로 했다.

“황명 연구소 인턴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이 말에 천동하가 처음으로 밝은 얼굴을 했다.

조만간 황명 연구소에 견학 가겠다는 약속에 천동하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    *    *

권레나의 재시험 통과가 확정된 이후, 우리 반 아이들은 플레이리스트 방청 준비로 바빠졌다.

독고미로는 이번 주 방송에서 작곡자에게서 신곡을 받는 모습이 나오고, 바로 다음 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곡 일부를 포함한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음 주 무대에서 독고미로가 어떤 노래를 부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듯했다.

같이 방청을 갈 아이들의 일정과 동선을 완벽하게 조율한 김유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함근형 선생님이랑 용제건 선생님 두 분 다 오신다고 하셔서 보호자 문제는 해결됐어!”

밤늦게까지 촬영을 하니 미성년자인 우리는 보호자 없이 끝까지 촬영장에 남아 있기는 어려웠다.

다행히 담임인 함근형 선생님과 부담임이 용제건이 촬영장에 따라온다고 하여 그 건은 문제가 없어졌다.

역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학생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플레이리스트 촬영 늦게까지 하지 않아? ……이거 다 보면 늦잠 자서 다음 날 지각할 것 같은데.”

“하루 정도 밤새도 괜찮아.”

“그냥 수업을 째면 안 되냐.”

“함근형 선생님이 섭섭해하셔서 안 돼요!”

우리 반 말고도 재학생 대부분이 독고미로 이야기를 주 화제로 삼았다.

신문부 활동을 하는 사이에도 계속 독고미로의 이름이 나왔다.

신문부 측에서 플레이리스트 방송이 끝난 이후 독고미로와 염준열을 동시에 인터뷰할 예정이라는데, 둘이 기꺼이 이에 응했다고 한다.

“막방 직전이라 둘 다 지금 인터뷰하긴 어렵다는데, 종영되고 나면 둘이 같이 인터뷰를 해 주실 생각인가 봄요!”

문새론은 예전에 내 소개로 독고미로와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독고미로는 지금과 달리 카메라 앞에서 제 실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하는 유력 탈락 후보였기에 상당히 미묘한 입장이었다.

그래도 문새론은 정중하고 싹싹하게 독고미로를 인터뷰하고 정성껏 기사를 썼다.

독고미로의 성품이나 매력이 묻어나는 인터뷰 기사는 그녀의 존재를 학교에 알리는 데에 이바지했다.

‘문새론이 인터뷰를 아주 잘한 덕에 플레이리스트에서 기사가 인용될 정도였지.’

한참 플레이리스트와 독고미로에 관해 이야기하다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문새론이 황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아, 황지호 씨. 기사 잘 봤음요! 이제 공식 행사에도 얼굴을 내비칠 예정임?”

“하하하! 그 기사를 봤나 보군.”

“헐? 너 기사에 나옴?”

“아, 본 것 같다. 닮았다 했는데 진짜 쟤였나 보네.”

신문부 아이들이 의문을 표하자 문새론은 기사 하나를 띄웠다.

기사에 황명 그룹 관광 계열사의 호텔 사업부의 에어 호텔 기공식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안에 정장 차림으로 VIP석에 앉아 있는 황지호가 작게 찍혀 있었다.

주말에 고등학생 버전 분신은 뭘 하나 했더니 저기에 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황명 그룹에서 에어 호텔을 만들 생각인가? 게임 속에선 없던 전개인데.’

황지호가 일을 하니 또 뭔가가 바뀐 모양이었다.

문새론의 설명이 이어졌다.

“황명 그룹에서 공식 행사 자리에 기자들 잘 안 부르잖아. VIP들도 거의 얼굴 안 내비치던데 황지호 씨가 나와서 놀랐음요.”

“슬슬 공식 행사에 나서서 이 몸의 얼굴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이 얼굴로 기업을 이을지도 모르니까.”

황지호의 말에 신문부 아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헐, 님 그러니까 진짜 대기업 자제 같음요.”

“말투만 보면 벌써 총수네.”

“하하하하!”

설마 차기 총수 후보 중에 황지호가 있는 건가.

‘뭐, 지금 총수도 황지호니까 그놈이 그놈이지.’

혼란과 파란의 신문부 활동이 끝난 후.

총동아리회관을 나서서 개인 훈련을 하러 지익회관으로 향할 때였다.

“아, 의신아! 잘됐다. 마침 할 말 있었는데.”

나를 불러 세운 인물은 타이틀 히어로 주수혁, 진짜 재벌가 자제다운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

“이번 주에 한국시리즈가 시작하는데, 내 몫으로 티켓을 받았어. 그런데 나는 바빠서 못 갈 것 같아서…….”

현재 대한민국 야구계에선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는 중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남은 건 이제 한국시리즈뿐.

대전하는 팀은 KBO 정규리그 페넌트레이스를 1위로 통과해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게임 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SZ 스타즈’.

이에 대항하는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완승하고 올라온 ‘주오 드래곤즈’.

주오 드래곤즈의 경기도 있으니 주수혁이 표를 확보한 모양이었다.

주수혁은 주오 드래곤즈의 홈인 잠실 야구장에서 치를 한국시리즈 3차전 중앙석 티켓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보다는 0반 아이들이 가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우리 반 아이들?”

주수혁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응, 애국가 제창자로 플레이리스트 팀이 오기로 했거든. 미로도 애국가 부르러 올 거야.”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2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