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326화 (325/925)

54. 동생 (6)

타이틀 히어로 주수혁의 감사한 제안을 받아들여 반 아이들과 한국시리즈 경기를 관람하러 가기로 했다.

주수혁은 우선 티켓 6장을 건넨 후, 갈 사람이 더 있다면 좌석을 더 구해 주겠다고 했다.

현재 우리 반에 등교하는 학생은 10명.

티켓이 4장 더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관람 의사를 밝힌 게 딱 여섯 명이었다.

“갈래! 미로 노래 직접 듣고 싶었어!”

“그린이가 가면 나도 간다.”

“……가고 싶어.”

민그린, 송대석, 한이는 곧바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민그린을 따라가겠다고 대답한 줏대 없는 송대석은 그렇다 쳐도, 민그린과 한이는 독고미로의 무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엄밀히 따지면 독고미로의 무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독고미로가 의미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부르니 보고 싶은 거겠지.’

주수혁의 말에 따르면 플레이리스트 본선 진출자 전원이 와서 애국가를 부를 예정이니 그녀의 개인 무대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언젠가 독고미로가 솔로로 애국가를 부를 일이 있다면 꼭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가야겠다.

“아, 그럼 나도! 야구 경기장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데, 이거 엄청 좋은 티켓 아니야?”

“미로의 노래도 듣고 싶고 레나……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그 뒤를 이어 가겠다고 밝힌 건 권레나와 목우람이었다.

권레나는 재시험이 끝난 후 눈에 띄게 밝아졌다.

목우람은 권레나의 변화에 기뻐하였으나 여전히 저도 모르게 ‘레나 님’이라는 호칭이 튀어나오려고 해서 애를 먹고 있는 듯했다.

한편, 몇몇 아이들은 참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앗, 죄송해요. 이번 주에는 가족과 지내기로 했어요. 세민 삼촌이 부탁한 숙모님 선물도 사 가야 하고…….”

사월세음은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이젠 그냥 오혜정을 숙모로 부르는구나.’

오혜정이 사월세민과의 혼인이 확정되면 반드시 나에게 청첩장을 보낸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니 결혼은 아직일 텐데.

그래도 사월세민이 사월세음을 시켜 오혜정 선물을 사게 하며 챙기는 걸 보니 조만간 청첩장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 나도 못 간다. 그, 요새 도인…… 스승님하고 대련하다 보면 뭐 스킬 같은 게 떠오를 듯 말 듯한데 아직 감이 안 잡혀서. 도인이 이럴 때 몰아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단다. 야구는 저번에도 봤으니까 괜찮다.”

맹효돈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맹효돈은 처음에 탁거산을 도인이라고 부르려다 스승님이라고 불렀는데, 마지막엔 결국 도인으로 돌아왔다.

그냥 머릿속에는 탁거산이 여전히 도인으로 박혀 있는가 보다.

“몇 번 윤섭이랑 훈련하는 거 봤는데, 고되어 보이던데…… 쉬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다.”

“사실 나도 다음 주 주말에 놀고 싶어서 이번 주에 선생님을 뵙기로 했어. 주말에 야구장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선생님?”

“응, 이능파 제어와 광림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어.”

개인적으로 이능 훈련을 받는 중인 김유리와 맹효돈이 공감대를 형성한 건지 대화를 나눴다.

일방적으로 김유리가 말을 하면 맹효돈이 어설프게 대답을 하는 거긴 했지만, 1학기에 비해선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김유리는 요새도 계속 호족의 수석 주술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중이라고 했지.’

반장으로서 학급 운영과 반 아이들과의 친목 다지기에 힘쓰면서도 뒤에선 열심히 이능 제어법을 익히는 게 과연 성실한 성품의 김유리다웠다.

“다음 주는 주중에 플레이리스트 방청도 가야 하고, 주말에는 핼러윈이니까 이번 주에 연습 열심히 하고 다음 주에 놀 거야!”

핼러윈이라는 말에 불현듯 다음 주 계획이 떠올랐다.

‘이제 슬슬 출국 준비를 해야지. 지리 정보를 비롯해 사전에 모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모으고, 전용 메뉴의 설정집을 한 번 더 확인하고…….’

핼러윈은 해외에서 보낼 예정이다.

정확히는 어느 진족의 고성(孤城)에 열릴 파티에 참가할 생각이다.

‘출국 준비 외에도 할 일이 있어.’

한국시리즈를 보러 가는 건 이번 주 토요일.

플레이리스트 방청일은 다음 주 수요일.

핼러윈은 다음 주 토요일.

이 사이에 또 빼놓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헌화하러 가야 하는데…….’

이번 주 일요일은 가족들의 기일이다.

이 세계에는 내 가족들의 가짜 유골이 안치된 봉안당이 존재한다.

비록 가짜 유골이라고 하지만, 기일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이 세계와 전 세계를 통틀어 내가 아니면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헌화할 사람이 없으니까.

어쩌면 부모님께는 옛 친구가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들에게 꽃을 올릴 사람은 없을 거다.

상념을 끊은 건 황지호의 처웃는 소리였다.

“하하하하! 그날 이 몸은 바쁘시다. 한국시리즈를 함께 관람하기 어려울 것 같군. 너무 아쉬워하지 말도록.”

황지호의 고등학생 버전 분신이 요새 많이 바쁜가 보다.

그런데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었나?

“……누가 아쉬워했냐?”

“대석아! 그런 말은 대놓고 하면 안 돼!”

송대석의 눈치 없는 말이 내 심정을 대변했다.

*    *    *

한이는 꿈속을 느리게 헤매고 있었다.

다리가 무겁고 이능파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도약 스킬도 쓸 수 없었다.

힘겹게 앞으로 나아간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눈을 가리고 있는 누군가였다.

‘누구……?’

다섯 색으로 수를 놓은 천으로 눈을 가린 상대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이는 눈을 가린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누군가는 입을 움직여 한이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그러나 희미한 빛을 두른 누군가의 형체는 떨리고 있었고, 주변은 어두워서 그 입술을 읽기 어려웠다.

‘혹시 당신은…….’

한이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이잉……!

손목에 느껴지는 진동과 함께 한이의 의식이 현실로 떠올랐다.

한이는 밴드 타입의 디바이스에서 울린 진동 알람에 잠에서 깨었다.

‘또 그 꿈을 꿨어…….’

입학 첫날부터 늘 같은 꿈을 꿨다.

이 꿈을 꾸지 않는 건 극도로 수면 시간이 짧을 때뿐이었다.

꿈의 내용이나 그 꿈이 주는 느낌이 딱히 무섭거나 꺼림칙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금씩 꿈의 이미지가 또렷해지는 것 같아.’

점차 꿈에서 보이는 것들이 늘어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한이는 자신의 꿈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이는 그 꿈에 나오는 눈을 가린 누군가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상위 존재겠지. 그것도 오랜 기간 인간의 꿈에 간섭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신일 거야.’

한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대여한 상위 존재에 관한 각종 서적의 내용을 떠올렸다.

단서가 적어 상위 존재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으나 한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입 모양을 읽는 건 아직 어렵지만, 조만간 눈을 가린 천에 놓인 수와 수를 놓는 데에 사용한 색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

생각을 마친 한이가 기지개를 한 번 크게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주말이었고 아직 이른 시각이었으나 태호권 아침 자율 훈련에 나가고 낮에는 야구 관람을 하러 가야했다.

‘……직접 미로의 무대를 보다 보면 위화감의 정체도 알 수 있겠지.’

초등학교 시절, 독고미로는 한이를 밀어내며 가혹한 말을 했다.

―나, 솔로 아이돌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이제 혼자 다니려고!

―무대 위가 무섭긴 한데, 혼자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익숙해지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애들 앞에서 나한테 인사 안 했으면 좋겠어.

―내 옆에 앉지 마. 다른 데로 가.

그 이후로 독고미로도 한이도 학교에서 혼자로 지냈다.

독고미로는 보육원을 찾아오긴 했으나 한이가 있는 시간을 피해 방문했다.

독고미로는 자신도 혼자인 주제에 한이가 보고 있으면 늘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뒤에선 패왕이네 뭐네 하며 날뛰었다.

어린 한이는 그런 독고미로를 보는 게 그저 몹시 힘들고 싫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과거를 냉정하게 볼 여유가 생긴 지금, 독고미로를 떠올릴 때 괴로움보다는 위화감을 더 크게 느꼈다.

‘초등학교 동창 애들 SNS에 돌던 이상한 이야기가 진짜라면, 혹시 미로는…….’

한이는 생각을 멈추고 은광고 거주 구역의 1학년 건물을 나섰다.

지금은 독고미로 생각 대신 태호권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토요일,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리는 잠실 야구장 앞.

경기장 주변이 온통 주오 드래곤즈를 상징하는 붉은 색과 흰색으로 덮여 있었고,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곳곳에 주오 드래곤즈의 마스코트 용용이 인형 옷을 입은 이들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응원 풍선과 응원 수건을 건네는 게, 주오 드래곤즈에서 얼마나 애타게 승리를 염원하는지 느껴졌다.

‘최근 15년 동안 준우승은 10번 정도 했는데 우승은 한 번도 못 했으니 정말 우승하고 싶을 거야.’

팀 성적이나 선수와 팀 기록을 고려해 봤을 때, KBO에서 주오 드래곤즈가 강팀이란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늘 주오 드래곤즈는 우승을 못 했다.

만년 2등, 영원한 우승 후보.

이 말은 언제나 주오 드래곤즈의 수식어로 빠지지 않아 구단주와 팬들의 발작 버튼, 역린이라고도 불리는 말이었다.

구단의 상징이 용이라서 그런지 역린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플마고에서는 어린이날 사고 때 주전 선수가 몇 명 시즌 아웃당하고, 몇 명은 재기 불능이 돼서 기세가 완전히 꺾였었지.’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번에는 정말로 주오 드래곤즈가 우승을 노려 볼 만했다.

“……사람 많다.”

“아, 그린아, 나랑 대석이 사이에 서서 가자.”

“그린아, 이리로 와!”

민그린은 학교 사람들이 많은 건 익숙해졌지만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민그린은 후드를 더 깊게 눌러 쓰고 권레나와 송대석 사이에 끼어서 이동했다.

목우람은 그걸 보고 자기 뮤즈는 마음씨도 착하다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먹을 거 사자.”

“네, 찬성합니다. 오늘 저는 소지금이 0원이 아닙니다! 레나…… 는 뭘 먹고 싶습니까?”

“여기 맛있어 보이는 거 엄청 많아서 고민되는데…….”

권레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금 기운이 없어 보이는 한이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단 거 먹고 싶다. 추러스 냄새 나는데, 쇼콜라 추러스 먹으러 갈까?”

“……가자.”

권레나의 제안에 한이가 금방 기운을 냈다.

아이들과 추러스 집 앞에 줄을 섰을 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크게 소란스러워지고 사람이 많아졌다.

“뭐야? 왜 그래?”

민그린이 발돋움을 해 멀리 내다보려 했지만 인파 탓에 소란의 근원이 보이지 않았다.

키가 커 멀리 내다볼 여유가 있는 송대석이 대신 확인해 줬다.

“플레이리스트에 나오는 사람 같은데? 애국가 부를 준비 안 하고 여기에서 뭐 하는 거냐.”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구경하나 보네.”

“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민그린이 송대석 뒤로 피신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유명인사가 등장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 내장산의 성자였다.

“…….”

갑자기 등장한 내장산의 성자는 권레나의 바이올린 케이스를 가만히 주시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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